사회주의 랜드마크 - 빛은 나를 경계한다








통일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쪽을 보는 것이 안보 관광인지 통일 관광인지 모르겠다. 사실 그것은 안보도 통일도 관광도 아니다. 아무리 좋은 망원경으로 북쪽 산하를 본다 할지라도 그것은 저 너머의 허상에 불과할 뿐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아니었다. 


나는 이 한반도에 있으나 결코 가까이 가거나 볼 수 없는 북한에 대해 고민을 한다. 생각해 볼까?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분명히 한반도의 북쪽에 있으나 보이지 않는 곳, 보이지 않아서 더 궁금하고 그 실체를 알고 싶은 곳, 피를 나눈 형제라는 사실이 때때로 어렵고 두려운 곳…. 


경기도 1번 국도 일대에 설치되어 있는 탱크 저지선 구조물의 형상을 만들었다. 


 나는 인공위성이 촬영한 평양의 시가지를 출력해서 평양의 전체 지도를 만들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작은 지도가 아니다. 평양의 시가지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도이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요즘의 구글 지도는 건물은 물론 자동차와 사람들까지도 보여준다. 그렇다고 완벽한 지도라고는 할 수는 없다.. 강과 길과 아파트와 여러 구조물들이 불규칙한 그리드 위에서 평양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 약간의 현실성과 비현실성이 이 작품의 묘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지도 위에 나는 평양의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는 기념비적인 사회주의 랜드마크를 세웠다. 투명 아크릴 판 위에 마치 광고판처럼 불을 밝힌 사진들이 그 것들이다. 


그런 다음, 지도와 구조물을 사각의 밀러아크릴 박스로 덮어 놓았다. 관람객들은 저 멀리서 아크릴 박스 안에서 무언가 총천연색으로 빛을 밝히고 있는 이미지들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대략 3미터 전방까지는 그 박스 내부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박스 내부가 아주 밝은 조명 있다. 


하지만 그 이상 가까이 가면 밀러아크릴 박스는 완전히 시커멓게 암흑천지로 돌변한다. 센서에 의해서 박스 내부의 조명이 꺼져 버리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의아해 한다. 왜 갑자기 꺼져 버렸지? 왜 안을 볼 수가 없는 거지? 가끔 관객들은 작품에 문제가 있다고 하소연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것이 나의 의도였다. 여전히 금단의 구역이라 할 수 있는 평양, 언제쯤 그 곳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은 나와 평양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말하고 있다.왜? 그곳이 평양이니까요. 북한이니까요. 

 


 

박준식 作 (사진작가)


- 작가소개

독일 베를린 조형예술 대학교(U.d.K) 마이스터 졸업, 현재 성신여대에 출강하면서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을 치루었는데, 근래 비무장지대(DMZ)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2012년 DMZ 대성동 자유마을에서 '경계를 넘어서'라는 작품전을 기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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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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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린 그 헤아림

손성호
(밀알교회 목사)


"너희가 남을 헤아리는 대로 하나님도 너희를 헤아리실 것이다"(누가복음 6:38)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가 새 ‘웹진’을 발간하며 ‘목회’ 카테고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청탁을 받고, 자세한 내용을 듣고자 찾아간 그 날, 한백교회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곧바로 책을 빌려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다.

한국전쟁 발발 6일전, 평양을 대표하는 교회지도자 14명이 북한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그 중 12명이 총살되고, 2명이 돌아왔다. 풀려난 두 사람 중 30대 중반의 한 목사는 정신병자가 되었고, 또 한 사람, 신 목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그날의 처형사건을 미궁에 빠뜨린다. 살해된 12명의 목사는 하루아침에 순교자가 되었고, 그들이 맡고 있던 교회들은 폐허더미가 되었으나 연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무너진 중앙교회 종루에는 아직도 종이 매달려있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거칠게 혹은 은은하게 종은 허공을 가르며 파동을 일으킨다. 살육과 분노의 땅에 신의 임재를 갈망하듯. 평양의 그리스도인들은 살아 돌아온 한 목사와 신 목사를 의심하고, 그들을 향해 ‘유다! 유다!’라고 외치며 손가락질한다. 실성한 채, 폐허가 된 중앙교회를 찾아 괴성을 지르곤 하던 한 목사마저 죽자, 이목은 신 목사에 집중된다. 그가 알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는 어떻게 죽음의 지경을 탈출할 수 있었는가? 정말 그는 12명의 동료목사를 죽음으로 내몬 배신자인가? 평양을 점령한 한국군 정보부대는 이 사건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의 잔인성을 폭로하고자 소설의 주인공 이 대위를 신 목사에게 보낸다.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침묵하는 신 목사에게 대위가 묻는다.

“목사님! 당신의 신 - 그는 자기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알고 있을까요?”

내게 소설 ‘순교자’(김은국 작)를 추천한 사람은 김 장로였다. 그는 대학생 시절인 70년대, 이 책이 일으킨 센세이션을 설명하며 연일 교회 안에서 책의 내용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고 했다. 그는 왜 내게 이 책을 추천했을까?

김 장로는 1년 전 아내를 잃었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그의 아내는 남편의 장로 피택 소식을 듣고 얼마 후 호스피스 병동에서 평화로이 눈을 감았다. 유독 사랑이 깊었던 부부의 별리(別離). 김 장로는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아내도 없는 사람이 무슨 장로임직이냐며 사양하기를 몇 번. 그는 깊은 절망에 빠진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노회에 제출할 장로임직 청원서류 중 하나인 ‘신앙고백서’라며 대학노트에 적은 삐뚤빼뚤 글씨의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넸다. 몇 일 동안 고민했지만 그것뿐이었다며 전날 밤 어렵게 적었노라고 했다.

‘저는 얼마 전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습니다.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낳고 자라, 한평생 하나님을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죄인입니다. 저 같은 죄인을 하나님은 구원해 주셨고, 지금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아픔과 고통가운데 하늘나라의 소망을...’

그는 내게 부족한 부분을 고쳐 달라 부탁했고, 나는 먼저 그의 글을 타이핑했다. 그리고 나서 한 줄 한 줄 임직할 장로의 신앙고백문에 어울리는 용어들을 섞어 손을 보았다. 그는 고맙다며 그가 쓴 종이와 내가 쓴 종이를 받아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조용히 교회 사무실에 있는 직원에게 그가 쓴 종이의 내용을 타이핑 해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아들 또래 밖에 되지 않는 젊은 목사에게 그는 유난히 친근한 마음을 드러내곤 했다. 그와 나누는 대화는 늘 담백하고 진솔했다. 그가 어째서 나와 그토록 수사(修辭) 없는 대화를 하곤 했는지 헤아릴 순 없지만,  ‘순교자’를 추천한 일도 신앙고백서를 보여준 일도 이제 생각해보면 모두 하나로 통하는 어떤 뜻이 흐르고 있다.

다시 순교자로 돌아가 보자. 실성한 채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은 한 목사는 늘 찾아오던 중앙교회에서 숨을 거둔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신은...없어...신은...없어’였다. 여전히 진실을 감추고 있던 신 목사는 마침내 입을 열었고, ‘그가 선택한 진실’을 사람들에게 밝혔다. 신 목사를 이해하고 존경하면서도, 그의 발언을 못마땅해 한 이 대위는 다시 한 번 신 목사에게 묻는다. ‘목사님, 목사님의 신은 저들의 고통을 정말 알고 있을까요?’ 신 목사가 입을 열었다.

‘평생토록 난 신을 찾아 헤맸소. 이 대위! 그러나 내가 찾아낸 것은 괴로움과...죽음, 냉혹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뿐이었소. 그 다음은 없소...아무것도 없소...날 좀 도와주시오. 내가 내 백성을, 불쌍하고 고통 받는 내 교인을, 전쟁과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 그리고 삶의 피곤 앞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시오. 괴로움이 그들의 희망과 믿음을 움켜쥐고는 그들을 절망의 바다로 떠내려 보내고 있소. 우린 그들에게 빛을 보여주고 그들을 기다리는 영광과 환영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희망이라는 환상을 준단 말입니까?’
‘그렇소. 그들은 인간이기 때문이오. 절망은 이 피곤한 생의 질병이요. 무의미한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삶의 질병입니다. 우린 절망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오’
‘당신은? 당신의 절망은 어떡하고 말입니까?’
‘그건 나 자신의 십자가요. 난 혼자 그걸 짊어져야 하오. 모두가 다 십자가를 질수는 없어 그래서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들이요’

신 목사는 전쟁의 고통과 살육의 현장에서 인간이 희망을 잃었을 때 어떻게 동물이 되며, 약속을 잃었을 때 어떻게 야만이 되는지를 보았다고 했다. 그 자신, 한평생 신을 찾아 해맸으나 그가 발견한 것은 인간이었다고 했다. 절망과 싸우고 있는 괴로운 인간들 말이다. 그것을 본 이상, 그는 침묵하는 신을 대신해 십자가를 져야 했다.

김 장로는 내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나보다. 모든 비밀을 다 알기라도 하듯, 자신에 차 외치는 강단의 선포보다 차라리 당신의 아픔, 당신의 고통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랑 깊은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고. 아내를 먼저 하나님 품으로 떠나보내고, 안수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으면서 그의 귓가에 닿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은 소설 속 전쟁으로 무너진 중앙교회의 종소리처럼, ‘거룩한 아픔’을 실어 그의 영혼을 만지고 있었나보다.  

새로운 임지로 떠나기 앞서, 당회원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식탁으로 이동하던 길. 김 장로는 어김없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목사님!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조바심 내지 마세요. 교인들도 다 알아요. 그 사람들이 왜 주일 아침마다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 교회에 갈까요. 위로 받고 싶은 거예요. 주님은 내 맘 알아주시겠지. 주님은 내 고통 알아주시겠지. 목사님은 예수님의 그림자가 되세요. 그림자라도 보게 해 주세요’

오늘(2월 17일), 김수환 추기경이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예수의 그 삶을 살아보지도 못했노라는 그의 고백이, 땅에 남은 빈가슴들을 채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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