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묵시록 5 : 국기(國旗)와 국가(國歌)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몇 달 전 우연히 인터넷 CNN뉴스에서 54년 만에 쿠바의 아바나에서 미국의 성조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보았다.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쫓기듯 국기를 내리고 대사관을 철수했던 미국이 쿠바와 수교를 맺은 후, 아바나에 대사관을 다시 여는 첫날 국기계양식의 모습이었다. 1961년 미국 대사관에서 마지막으로 성조기를 내렸다는 3명의 해병도 노인이 되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성조기가 쿠바에서 다시 휘날리는 감동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1961년 쿠바에서 그리고 1975년 베트남에서 자랑스러운 성조기가 강제로 내려지는 모습을 많은 미국인들은 ‘치욕’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들에게 쿠바에 다시 꽂은 성조기는 미국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쿠바에 가해진 보복의 테러에 대한 사과나 반성은 찾을 수 없었다. 굴하지 않는 의지와 멈출 수 없는 자유의 행진을 뜻하는 성조기 앞에 사과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기라는 깃발이 갖는 의미는 대부분 미국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국가와 애국심, 전쟁과 희생, 자유와 영광 등의 이념을 깃발 하나로 엮어낸 원조가 바로 미국이다.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도 미국이 만들어낸 것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 맹세, 다짐, 경외심, 바른 자세는 미국이 완성해낸 국가라는 종교의 성례전에 속한다. 그 대가는 초월적인 위안과 더 큰 실제인 국가와의 합일을 체험하는 것이다. 국기는 종교적 감성을 유발하지만 그에 따르는 규범은 언제나 군사적이다. 미국의 국기는 애초 독립전쟁 때 제정된 군기였다. 지금도 군사적 정신을 함양하고 희생과 복종의 정신을 요구하는 도구로 쓰인다.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의식을 제공하고, 안과 밖,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게 만든다. 따라서 국기는 군사문화를 상징하는 군기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세상 나라들의 국기는 모두 비슷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자유란 개념이 군사주의를 연상시키지 않고, 미국의 문화가 군사적이라는 판단도 흔치 않다. 그러나 군사주의의 문화는 미국의 국민의식 저변에 깔려있다. 군사용으로 개발된 기술이 현대적인 삶의 필수적인 일부가 된 예가 많다는 사실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인터넷은 초기에 군사기술로 개발되었고, 군사주의가 지향하는 세상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세상은 감시와 통제와 검열에 익숙하고, 삶이 통계와 데이터의 가치로 평가되는데 익숙해 있다. 미국 정서의 무의식 속에는 명령과 복종, 법과 질서, 심판과 처벌이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군사문화는 전쟁으로 형성되고, 미국은 언제나 전쟁 중이다. 그러나 18세기 독립전쟁에서 21세기 이락과의 전쟁까지 미국의 모든 전쟁은 자유를 위한 전쟁이었다. 자유는 전쟁에 초월적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자유와 전쟁의 이념적 간극을 메워 근접할 수 없는 숭고한 신앙의 영역으로 만드는 역할을 성조기가 한다. 이를 초월적 신앙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투쟁의 영역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은 ‘총’이다. 미국의 많은 백인들에게 총은 성조기와 더불어 자유의 절대적 상징이다. 자유의 끝은 총으로 지켜야 하고, 그들이 믿는 성조기의 모든 것은 이를 증언한다고 믿는다. 미국처럼 일상에서 국기를 많이 접하게 되는 나라가 있을까. 고속도로를 차로 달리다 백인남자들이 선호하는 픽업트럭에 성조기가 차창에 부착돼 있는 모습을 가끔 본다. 불필요하고, 위협적이고, 기름 많이 먹는 트럭을 몰고 다니는 이유는 언젠가 긴요히 쓸 때가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내가 소유하는 모든 걸 싣고 떠나야 할 마지막 날을 위한 준비는 아닐까). 그런 트럭에 부착된 성조기에서 내가 읽는 의미는 ‘이 트럭 안에 총이 있을지도 모르니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의 전근대적인 총기사랑은 자유란 이념이 허용하는 군사문화와 병행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부분은 <총의 묵시록>이란 제목으로 차후에 다룰 생각이다). 


    미국의 군사문화를 내부에서 유지시키는 기능은 스포츠가 한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상처는 운동경기에서 되풀이 되는 전쟁의 본질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미국의 남자아이들은 야구와 풋볼 또 최근에는 축구를 통해 승리의 영광을 체득하고, 이를 위한 자기희생을 강요받으면서 싸움터의 가치를 내면화 한다. 모든 공식 스포츠 경기에서 부르는 미국의 국가는 이 문화를 초월적인 공동체의 가치로 수용하게 만든다. 미국의 대학 스포츠 중 특히 풋볼은 19세기 후반 이후 미국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그 문화는 명령과 복종과 승리를 절대가치로 그리고 패배를 치욕으로 받아들이는 군사문화의 규율이 만들어낸 것이다. 운동경기에서의 승리는 이기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전쟁에서의 승리는 진실이 승리했다는 주장을 낳는다. 미국만큼 자신의 전쟁이 진리와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 믿는 나라는 없다. 베트남 전쟁과 같이 반대가 심한 전쟁도 있었지만, 미국은 싸워서라도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도그마에 다수가 동의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여기서 미국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자유론’은 신앙의 영역에 속한다. 독립전쟁에서 남북전쟁, 세계대전에서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까지의 분쟁은 모두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다. 자유는 청교도 시대부터 부여받은 미국의 사명이자 운명이었고, 이 자유를 이 세상에서 완성시키는 사명은 종말론적 사명이었다. 역사를 종결시키는 종말의 사명 앞에 후퇴나 타협은 있을 수 없다. 핵무기 선제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거부했던 냉전시대의 전략과 이 시대 미국 밖의 다른 패권적 국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전략은 이런 종말의 사명을 배제하고 제대로 설명될 수 없다. 


    미국의 국가(國歌)는 국기(國旗)인 ‘성조기’를 노래하는 군가다. 가사는 밤새 적의 포탄 공격을 받고도 새벽녘에 변함없이 휘날리고 있는 성조기의 위상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1931년 의회에서 국가로 공인되기 이전에도 100년 넘게 군대의 행사나 국기를 게양할 때 연주되던 곡이었다. 미국의 군사문화는 성조기의 물신(物神)화로 유지된다. 그 문화를 일상의 일부로 만드는 건 성조기를 바라보면서 국가를 불러야만 시작하는 스포츠 경기다. 오래 전 기독교 평화주의 전통을 이어온 메노나이트 (Mennonite) 종파의 교인들이 세운 인디아나주에 있는 고션대학(Goshen College)에서 앞으로 운동경기 전에 미국국가를 부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각종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대학이 국기의 우상화와 군사문화에 참여하지 할 수 없겠다는 용기와 결단이 당시에도 놀라웠다. 미국의 국가만큼이나 성조기의 우상화와 군사문화의 고착에 역할을 한 것은 ‘국기에 대한 맹세’(Pledge of Allegiance)다. 최근에는 학생들에게 강제로 국기를 바라보며 가슴에 손을 얹고 충성을 맹세하도록 만드는 게 위헌이라는 논란이 많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허용하는 주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맹세는 지금도 일반적으로 미국의 초. 중. 고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규범이다. 최근에 이 맹세를 거부하는 운동이 ‘강제’와 ‘강요’를 문제 삼았다면, 예전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거부하곤 했었다. 


    미국의 국가만큼이나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미국의 혼을 잘 대변한다는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이라는 노래가 있다. 한국의 찬송가에도 ‘마귀들과 싸울지라.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가사는 좀 달라도 “Glory, Glory, Hallelujah” (영광, 영광, 할렐루야)라는 유명한 후렴은 동일하다. 미국에선 독립기념일이나 현충일과 같은 날엔 빠지지 않고 불리는 감동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곡이다. 그 가사와 작사가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 그 곡의 묵시적인 내용을 알게 된 후 노래를 들으면서 관찰은 했어도 따라서 불러본 적은 없다. 군인이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신의 진리를 이루기 위해 적을 짓밟겠다는 가사는 전쟁을 국가 간의 대립과 분쟁이 아니라 선악의 싸움으로 이해하고 마치 십자군의 성전을 연상케 만든다. 가사는 영광 속의 재림한 예수가 분노하여 적을 짓밟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그의 진리가 행진하는 병사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재림 예수의 진리를 위해 행진하는 군대는 마지막 심판과 최후의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다. 계시록의 언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가사에서 종말론적 사명을 전쟁터에서 이뤄내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가사를 쓴 줄리아 하우(Julia Howe(1819-1910)는 원래 묵시록의 언어보다는 에머슨과 소로우의 초월주의 언어에 더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당시로선 진보적인 시인이었고 여성운동을 펼친 작가였다. 칼빈주의의 억압적인 세계관을 포기하고 유니테리언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청교도 세계관의 묵시적 종말의식에서 벗어나 자연과 동화하고 자유를 노래하고자 했다. 하지만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행진을 목격하고, 북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노랫말을 쓸 때 그가 의존했던 것은 예언의 언어였고 묵시록의 세계관이었다. 그가 쓰고 남긴 것은 군가였고 동시에 적을 멸하는 신을 찬양하는 찬송가였다. 북군은 재림예수의 군대였고, 신의 분노를 사탄에게 드러낼 병사들이었다. 전쟁과 군대를 묵시록의 언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건 미국이란 나라의 정서적 무의식의 한계일까. 미국이 구원의 사명을 받았고 이를 실천하고 위해 강해야 한다는 인식은 현대 미국에서도 유효한 신념이다. 하우가 곡의 가사를 쓰게 되는 과정도 예사롭지 않다. 하우는 그날 새벽에 잠에서 깼다. 다시 잠들기 전에 가사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고 어둠 속에서 펜을 찾아 써내려갔다고 한다. 마치 예언을 기록하듯 쓴 것이다. 그 내용이 계시록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1871년 신미양요와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 체결의 빌미를 제공한 운양호 사건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기에 관한 것이다. 조선군의 선제 대포공격을 받은 미군은 이를 미국 국기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했다. 성조기가 해를 입지 않았지만 이를 미국 국기의 명예가 실추된 중대한 사건으로 규정짓고, 이에 상응하는 사과와 보상을 조선에 요구했다. 놀랄만한 논리의 비약이지만 이는 당시 미군 함대의 지휘관 Rodgers의 보고서에서도 등장하고, 전투에 참전했던 장교 Schley의 훗날 회고록에서도 같은 얘기를 한다. 이들은 조선군의 진지를 공격해 큰 인명피해를 입힌 것을 성조기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설명했다. (당시 미군함대의 병력은 최첨단의 무기로 무장했고, 남북전쟁에 참전해 실전경험을 쌓았던 병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선군의 구식무기로 당해낼 수는 없었다). 여기서 성조기는 단지 미국을 상징하는 깃발이 아니다. 그 자체로 어떤 주권을 행사하는 실제라 할 수 있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그 실제는 피와 제물의 제사를 통해서만 만족될 수 있는 신적인 존재, 아니 우상 또는 물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국기에 대한 신격화를 일본이 배운 것일까. 일본은 조선군의 포격이 운양호에 위협이 되지 못했지만 이를 일본국기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했다. 곧 보복 공격을 가해졌고 많은 조선 수비대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일본의 국기가 법으로 제정된 지 몇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와 같은 국기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 


    신미양요와 운양호 사건에서 국기와 관련된 주권의 전이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까. 미국만을 보자면 시민에서 국기로의 전이, 즉 미국 내부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시민의 주권에서 팽창주의를 전제하는 국기로의 전이를 말할 수 있다. 국기는 시민과 달리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의미는 이미 자유로 규정된 미국의 운명으로 드러나 있다. 미국의 운명이 자유이고 그 자유의 주권을 국기가 간직하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실제의 주권으로 국기는 섬김을 요구하고, 국기 앞에서 갖추어야 하는 모든 예의나 국기를 다룰 때 지켜야 하는 규칙은 모두 그런 행위에 속한다.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미군은 모두 자유를 위해 죽었다는 칭송을 듣는다. 주검이 실린 관은 성조기로 감싸 헛되지 않는 죽음을 위로한다. 한국에서 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는 ‘태극기 앞에서’의 맹세를 말하지만, 미국의 맹세에선 ‘성조기에게’ 충성과 맹세를 요구한다. 태극기는 맹세의 증인 역할을 하지만 성조기는 그 대상이 된다. 두 사건 일어나던 강화도에는 성조기와 일장기가 꽂혔다. 땅에 국기를 꽂는 것은 그 땅을 차지했음을 선언하는 행위다. 달에 꽂힌 성조기 사진이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달이라는 상징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이 그곳까지 자유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주권의식을 포기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태극기가 처음 제작된 것은 1882년 미국과의 통상조약을 준비할 때였다. 미국은 주권 국가들 사이의 조약에 국기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남북전쟁 이후 성조기라는 깃발을 중심으로 미국을 하나의 민족으로 만들고 제국주의의 꿈을 펼쳐나갈 때, 모든 국가가 그런 깃발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건 무리가 아니었고, 실제로 많은 국가들의 국기는 19세기 후반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특이한 것은 미국의 통상압력과 미국의 군사적 상징인 성조기에 맛서 내놓은 깃발이 도교의 우주관을 설명하는 태극기였다는 사실이다. 왕조시대 왕의 어기를 개조해 착안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의 군사적 팽창주의에 맛서 동양의 철학을 내세웠다는 상징적 저항을 읽을 수는 없을까. 미국의 각 주를 상징하는 하늘의 별이 새겨있고, 용맹과 순수를 나타내는 색깔이 장식된 성조기는 처음부터 군기로 제작되었고 지금까지 군사문화의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군사적 의례가 가능하다. 하지만 군사문화의 상징이 아닌 동양의 우주관이 담긴 깃발 앞에서 그런 경례와 맹세는 어색할 수밖에 없다. 국기계양식의 예를 지키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게 했던 군사정권은 태극기를 애국주의의 군기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1882년 조미통상수교에 미국을 대표해 서명을 했던 미 해군 장성 로버트 슈펠트(Shufeldt)는 1886년 선교사 아펜젤러를 일본에서 만나 그로부터 조선이 서구세계에 처음 문호를 개방할 당시의 정황을 글로 기록해 줄 것을 부탁 받는다. Korean Repository(1892)에 실린 슈펠트의 기록 마지막 문단에 흥미로운 정황이 묘사되어 있다. 슈펠트와 함께 배에서 내린 부하 병사들은 조약식을 위해 설치된 텐트 옆에 성조기를 ‘평화롭게’(Peacefully) 꽂았고, 조약식이 거행될 땐 Yankee Doodle이란 곡을 연주했다. 평화롭게 성조기를 꽂았다는 말은 성조기를 남의 나라에 꽂는 상황이 주로 평화적이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당시는 미국의 국가가 공식적으로 제정되기 전이었다. 1882년 미군이 제물포에서 연주한 Yankee Doodle이란 곡은 국가로 인정받지는 못했어도 비공식적인 국가란 얘기를 들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었다. 당연히 군가였다. 독립전쟁에서 남북전쟁 그리고 조선에서까지 적을 조롱하고 아군의 사기를 높이는 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군가라기보다는 동요와 민요로 일상의 의식 속에 남아있다. 미국의 국가나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이란 곡도 미국의 정신과 혼을 노래하는 곡일 뿐 군사주의를 찬양하는 군가로 보지 않는다. 이유는 미국정신의 발현은 늘 군사주의를 동반해 왔기 때문이다. 군사문화의 완성은 ‘군사’는 망각되고 ‘문화’만 기억되는 상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슈펠트에게 조선과의 조약은 서구문명의 영향 밖에 있던 마지막 국가, 즉 은자(Hermit)의 나라를 그 안으로 불러들이는 행위였다. 그는 이를 ‘콜럼버스의 달걀’만큼이나 쉬웠던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달걀은 인위적으로 깨져야만 누군가의 보편적 진리를 증명할 수 있다. 그날 제물포 텐트 옆 성조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평화롭다고 본 사람은 슈펠트 혼자였을 것이다. 


    미국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성조기 사진은 아마도 1945년 2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영토였던 이오지마 섬에서 성조기를 매단 깃대를 세워 올리는 병사들의 사진일 것이다. 사진가 조셉 로즌솔(Joseph Rosenthal)은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시간도 없이 급하게 셔터를 눌러 역사에 남을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곧 성조기의 본질을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로즌솔은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그 사진은 몇 개월 후 우표에도 실리게 될 정도로 빠르게 명성을 쌓아갔다. 사진 속에서 깃대를 세우던 6명의 병사 중 3명이 그 후 전사했다는 사실은 죽음으로 지킨 성조기, 목숨과 바꾼 성조기의 신화적 의미를 그 사진에 부여했다. 로즌솔의 사진이 성조기의 어떤 본질을 담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조기의 상징과 실제가 군대의 병사들에 의해 세워진 성조기 그리고 그들의 희생과 죽음이라는 현실 속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마치 빼앗은 땅에 꽂은 성조기가 전쟁의 상처가 남은 자리를 성스러운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처럼. 마치 그 성조기가 죄를 씻는 영세의 징표 또는 은혜의 징표인 것처럼. 그 사진을 처음 받아 본 미국연합통신의 편집인 John Bodkin은 “Here's one for all time!"(영원할 사진)이라고 외쳤다. 사진을 직업적으로 다루는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아본 건 아니었다. 미국정부는 살아남은 병사 3명을 영웅으로 만들어 군사주의와 성조기를 동일화 시키는 군사문화의 확산에 앞장섰다. 




ⓒ 웹진 <제3시대>



    (참고) 


    아펜젤러가 자신의 이름으로 실은 슈펠트의 기록은 "The Opening of Korea: Admiral Shufeldt's Account of It"이라 제목으로 The Korean Repository (1892)에 실렸다. 신미양요에 참전했던 Winfield Schley의 회고록은 Forty-Five Years Under the Flag이었다. 모두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미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The Pledge of Allegiance) 전문: 

    "I pledge allegiance to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o the republic for which it stands, one nation under God, indivisible, with liberty and justice for all." 의 1절 가사는 다음과 같다. 

    "Mine eyes have seen the glory of the coming of the Lord; 

    He is trampling out the vintage where the grapes of wrath are stored; 

    He hath loosed the fateful lightning of His terrible swift sword: 

    His truth is marching on. 

    Glory, glory, hallelujah! 

    Glory, glory, hallelujah! 

    Glory, glory, hallelujah! 

    His truth is marching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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