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여성혐오를 다루지 않고서는 


500주년 종교개혁을 논하지 말라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작은 것들의 신] (The God of Small Things)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는 “전통”과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로 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는 인도의 여성들이 어떻게 많은 투쟁을 이끌게 되었는지에 관한 인터뷰에서, 인도는 “여러 세기를 동시에 살고 있는 나라이다”라고 말한다.[각주:1] 인도란 나라에는 여성을 상대로 여러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반면에, 동시에 이런 폭력에 저항하는 강하고, 독립적이고, 급진적이며,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여성들도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국이란 나라도 지금 여러 세기를 동시에 살고 있다.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과거’에나 행해졌을 법한 여성들에 대한 차별, 혐오, 비하, 희롱, 폭력, 살해를 도심지에서, 동네 골목길에서, 섬에서, 산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병원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집안에서 서슴없이 행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물론, 이에 저항하는 여성들도 적지않다. 


    서른명의 학생들과 포르투갈에서 2주 단기 수업을 하는 동안 서울 강남역 근처의 공용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성살해 사건을 전해 들었다. 그 때 마침 포르투갈의 한 여성운동단체를 방문하여 포르투갈 여성들이 직면한 여러가지 이슈들에 관해서 듣고, 포르투갈에서도 ‘여성살해’ (femicide)가 얼마나 큰 사회적 문제인지, 또 여성들이 이에 어떻게 저항하는 지에 관해서 막 접한 터였다. 공용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성살해 사건이 너무나 끔직한 뉴스이긴 했지만, 사실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폭력, 살인, 성폭행, 성희롱, 성차별이 사회 전반에 너무나 만연해 있었기에 그 뉴스가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다르게’ 와 닿았던 것은 이번에 발생한 여성살해를 그저 ‘또 하나’의 ‘일상적’인 사건으로 지나쳐 버릴 수 없었던 여성들이 이 사건을 ‘여성혐오’ (misogyny) 사건으로 규정하고, 여성혐오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피해자를 공공장소에서 추모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그 뿌리가 깊고 넓은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없애야 할 사회악으로 보고 여성들이 그것에 저항했다는 것과, 그런 저항의 움직임을 받아 들일 수 없어하는 남성들이 그들을 비판하면서 공공연하게 여성혐오를 또 다시 드러냈다는 것이다. 한국도 인도처럼 여러 세기를 동시에 살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 지적했듯이 여성혐오란 용어가 한국에서 생소하다고 해서 여성혐오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여성혐오를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일상화’ 되어져 있고, 개개인의 사고방식과 행동 및 사회구조에 ‘자연스럽게’ 내재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여성혐오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여성혐오에 대한 해결책 또한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감시 카메라를 늘리고, 치안을 강화하고, 가해자에 대한 형량을 높이거나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 시키면, 몇 몇의 ‘이상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연관 없는 ‘사건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모두가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실로 대책없고 공허한 방안을 내놓는 사람들도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신학자 메리 헌트 (Mary Hunt)가 말하듯이, 폭력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각개의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의 “상황” (context)이다.[각주:2] 여성혐오, 성차별, 여성을 상대로 행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은 그저 어쩌다 일어나는 개별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기독교회와 신학이 외면해 온 여성들의 ‘치명적인 일상’인 것이다. 이렇듯 여성혐오를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인식한다해도 해결할 노력이나 의지가 없어 보이는 곳 중의 하나는 교회이다. 교회내의 ‘여성혐오’는 그 사례들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물론, 교회내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목소리와 운동은 지속되어져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소수의 저항으로 종종 무시 되어지거나, 저항의 주체들은 오히려 여성우월주의자들로, 또는 ‘남성혐오자’들로 매도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교회도 여러 세기를 동시에 살고 있다. 


    내년에 종교개혁 500 주년 (1517-2017)을 맞이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마틴 루터의 고향인 독일을 비롯하여 종교개혁과 관련이 있는 유럽국가들로 ‘순례’를 계획하고 있고, 개신교회들도 한국교회의 미래와 교회개혁을 논의하는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무엇을 준비하고 논의를 할 것인가? 주로 논의 되는 주제들은 “한국 교회에 만연한 물질 만능주의와 성장주의, 배타주의”[각주:3]라고 한다. 모두 중요하고 절실한 주제들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를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물질 만능주의, 성장주의, 그리고 배타주의의 원동력이 되어온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혐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여러 형태의 혐오들에 관한 논의는 누가, 어디서 할 것인가? 


    성차별과 여성혐오, 그리고 다른 형태의 차별과 혐오들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서는 “한국 교회에 만연한 물질 만능주의와 성장주의, 배타주의”를 제대로 논의 할 수 없다. 그러니 진정한 교회 개혁은 있을 수 없고,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여성혐오를 없앤다는 명목하에 다른 혐오를 정당화하는 과오를 저지르는 일 없이 한국 교회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장애인혐오, 이주노동자혐오, 이슬람혐오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저항인’ (Protestant) 들이 되지 않는다면 500년을 또 기다려도 ‘개혁’은 없을 것이다. 교회는 그저 계속해서 여러 세기를 동시에 살게 될 뿐이다.  


    한국교회의 미래와 교회개혁을 진정으로 논의할 의지가 있다면, 500년 전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종교개혁가들의 사상과 행동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던 여성혐오와, 지금까지 지속되는 여성혐오적이고 차별적인 신학, 성서해석, 의례, 예배 형식, 언어, 교회 조직, 활동들을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다.  


    500 여년 전, 당시의 부패했던 교회에 ‘저항’의 목소리를 내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이었지만, 여성신학자들이 지적해 왔듯이 그 시대 그 공간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삶과 그 이후 세대의 여성들에게 부정적으로 미친 종교개혁의 영향은 비판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조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가부장적 성서해석으로 가정과, 교회, 사회에서 여성들의 종속적인 위치를 확실하게 못박았고, 야곱의 딸 디나의 납치와 강간은 그녀가 자초한 일이라면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성서해석을 내놓았으며, 성과 관련해서 남녀에게 적용된 이중잣대를 정당화 시켰던 마틴 루터나 존 칼빈의 남성중심적 성서해석과 신학이 아직도 어떻게 교회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묻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각주:4] 동시에 여성혐오를 사회에서 견고히 하는 데 한국의 개신교회가 어떻게 앞장서 왔는지를 반성하면서, 같은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실천을 통해서 보여주는 방법 밖엔 없다.  

   

   교회의 진정한 개혁을 논의하고 변화를 가져오려면, 교회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장애인혐오, 이주노동자혐오, 이슬람혐오에 저항하라. 그런 저항으로 말미암아 변하기를 거부하는 기존 교회와 사회로 부터 설사 ‘이단자’로 불린다 할지라도 말이다. 마치 500여년전 ‘이단자’로 불렸던 종교개혁가들처럼. 그러나, ‘이단자’로 불릴 각오와 결심이 없다면 500주년 종교개혁의 이름으로 교회의 미래와 개혁을 논하지 말라. 변화없는 교회의 ‘미래’란 과거와 과거가 되어 버렸을 지금의 현재가 여전히 뒤엉켜서 존재하는, 그래서 “여러 세기가 공존”하는 맞이 하고 싶지 않은 ‘미래’일 뿐이다.

  

ⓒ 웹진 <제3시대>



  1. http://www.outlookindia.com/magazine/story/i-dont-believe-there-are-only-two-genders-i-see-gender-as-a-spectrum-and-im/295061 (accessed 09/10/15). [본문으로]
  2. Carol J. Adams and Marie M. Fortune, “Preface,” in Violence against Women and Children: A Christian Theological Sourcebook, ed., Carol J. Adams and Marie M. Fortune (New York: The Continuum Publishing Company, 1995), 12. [본문으로]
  3.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0/22/0200000000AKR20151022143000005.HTML (accessed 11/30/2015); http://www.koreatimes.com/article/879912 (accessed 10/18/2014). [본문으로]
  4. Denise Lardner Carmody, Women and World Religions (Prentice Hall, 198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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