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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눈] 우리 기쁜 젊은 날(2018, 삼인) (김윤동)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18. 9. 2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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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쁜 젊은 날

(진회숙 저,2018, 삼인출판사)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이렇게 미워하면 나도 그처럼 될까?


나와 가까운 친구들은 어떤 한 텔레그램 채팅창에서 시시때때로 수다를 떤다. 고백하건대 수다를 떤다기보다 정확히 말해 대부분 누군가를 ‘까는’ 대화로 채팅은 점철된다. 우리에게 ‘까이는’ 대상은 바뀌기도 하지만, 저마다 까는 대상은 대부분 아주 가까이서 생활하고 있는 직장의 상급자인 경우가 많다. 그 상급자들은 우리와 몇 년 차이가 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 나름대로 자기들의 젊은 날을 치열하고 뜨겁게 보냈던 ‘꼰대’들이다. 몇몇 ‘단체’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까는 대상은 꼰대는 꼰대이나 정확히 말해 시쳇말로 ‘진보 꼰대’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름 그 젊은 날에 남들보다 앞서가는 시대 의식으로 모진 탄압에도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를 원한다’며 꿋꿋이 살았고, 그런 마음으로 지금도 여기저기서 ‘대장’노릇을 하며, 지금의 무력한 젊은이들을 향해 이기적이고 ‘속물’이라 칭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우리가 한참 채팅으로 여느 날처럼 ‘진보 꼰대’의 만행을 까다가 불현듯 한 친구가 씁쓸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나도 그 사람을 이렇게 미워하면 수십년이 지나 그 사람처럼 되어 있을까?”


그렇다. 그들은 서슬퍼런 시대의 아픔들을 직접 몸으로, 영혼으로 뚫어낸 사람들이라고 말하기에는 지금 그들의 모습이 그들이 말해왔던 드높은 이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응답하라 1975-1980

이 책은 부제 ‘응답하라 1975-80’가 말해 주듯이 1975년과 1980년 사이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사건과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다른 건 몰라도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박정희 독재정권과 “자식을 통해 한을 풀어보려는 부모 세대”(159)들의 광기가 한데 어우러져 폭풍처럼 몰아칠 무렵, 진실과 현실 간의 간격에 몸부림치며 그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민주적인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터를 닦고,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당시는 1980년대 대학생, 즉 서울의 봄이 지난 후의 대학생들처럼 대규모 집회를 열어 “밤을 새워 릴레이 농성”(116)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혁명과 해방의 이념과 방법에 관해 “치열한 노선 논쟁”(116)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체제경쟁 승리와 가난 탈출이라는 미명 아래 사람을 갈아 넣는 경제체제와 이를 방패 삼아 영구집권을 추진하고 사람을 마구 때리고 감시하고 죽이는 유신 정권의 만행을 민중에게 알리고,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 젊은 날을 함께 피땀흘려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저자 진회숙은 이러한 ‘대의’를 과도하게 포장하거나 미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는 해야만 했던 일이고, 처음부터 거창한 의도를 가지고 뛰어든 것도 아니었으며, 친한 사람들과의 친분으로 시작한 소소한 일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의 도리와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에 발언하는 행위들, 그런 보통 사람들의 결단과 헌신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 사회를 조금씩 앞으로 밀어올렸다고 담담하게 말해 준다. 개그맨 김제동의 서평에서 언급되었던 바, ‘폭발적으로 재미 있는’ 에피소드가 이 책에 단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가난하고 억압받더라도 서로가 진실한 마음과 행동으로 소소하게 재미난 일 하나하나를 만들던 그 때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질 때 결국 우리 모두가 즐겁고 신명나는 삶을 살 수 있는, 그 ‘폭발의 특이점’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는 이 책의 이야기에 나오는 1975-80 세대들이 제기했던 문제 덕에 역사상 가장 악랄하다는 ‘자본주의’의 탐욕을 직시하고 사회 공동의 이익과 민족의 대업을 아주 느리지만, 뚜벅뚜벅 성취해가고 있다. 1987년에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그에 이어 촛불혁명을 일궈낸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정치, 그리고 불평등과 양극화는 극심해졌지만 이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경제 민주화까지 외치고 있는 2018년 여름 현재, 과연 세상은 1975-80세대들이 살았던 그 세상으로부터 조금은 나아진 것도 같다.

하지만, 그들이 그 성취의 열매를 마냥 누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마냥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그룹으로 존경을 받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저자의 말처럼 역사를 밀어올렸던 사람들 중 일부는 “역사 발전의 불쏘시개로 쓰인 후 비참하게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124)쳐진 사람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사회의 중심 권력층에 편입하여 괴물을 대적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괴물이 된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기쁜 젊은 날”은 그 모든 사람들이 대중을 멋지게 휘어잡고 선동했던 위대한 ‘운동가’이기도 했지만, 그들 또한 한 명의 외로운 이들로서 나름대로의 애환이 있었고, 사랑도 있었으며, 삶의 고충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에필로그

지금 나는 저자 진회숙이 처음 세상의 부조리를 접했다고 고백하는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의 협동운동 파트에서 일하는 한 ‘청년활동가’이다. 저자가 투쟁했던 그 건물에서는 그 때처럼 야학이 진행되지도 않고, 밤새 유인물을 등사하는 사람들도 없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 이유가 없이 절차에 합당하지 않게 해고를 당하고,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법으로 아무 문제 없이 사람을 해고하여 그 고통을 호소하고자 굴뚝에 올라 있는 사람들도 있고, 거리를 떠돌며 밤의 찬 이슬을 맞으며 삭신이 쑤시는 밤을 보내는 사람들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 또한 이 시대에 비록 어른의 눈에 자기밖에 모르는 ‘개새끼’이지만, 터무니 없는 빚과 주거의 문제, 일자리 문제로 시달리는 ‘슬픈 젊은 날’들을 보내는 청년 또한 고통의 현장에 있다. 이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 있지만, 동시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으로 배회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우리의 ‘강도 만난 이웃’이다. 이 책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 모두 기쁜 젊은 날들을 회상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잠시 바라 보았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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