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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그대를 찾아서(강윤아)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8. 10. 1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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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찾아서



강윤아
(청소년극 연구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강)


서울 K교회에서는 해마다 예술제 (일명, 몸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이름의 청소년 축제가 열렸다. 나는 1991년 예술제에 참가한 일이 있다. 당시, 뮤지컬 스토리 텔링 맨(The Story Telling Man)을 각색해서 그대 버려졌나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렸다. 나는 그 축제를 함께 했던 청소년, 지금은 40 대가 된 이들을 찾아서 그 체험이 현재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묻고자 한다. 오늘 부터 시작하는 이 연재는 그 만남과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된 기억을 꺼내서 추억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간 혹은 함께 했던 사람들을 정겹게 기억하지만 그 중 무언가가 나의 노스탤지아를 자극해서 자판을 두드리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무엇으로 행복해지는지 알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그대 버려졌나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와 관련하여 몇 안 되는 원형적 기억을 만든 사건이다. 시간적 거리로 인해 당시 사건을 미화할 수 밖에 없는 한계는 있다. 하지만, 생생하게 몸에 남아 있는 감각은 당시 ‘스스로가 지금 당장 이미 충분한 존재’라고 느꼈다는 점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감각에 집중해왔고 그것은 그 때 이후 지금까지 줄곧 내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프레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령, 그대 버려졌나의 시간 속에서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하고 완성된 존재를 체험했다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무언가 계속해서 행복을 보류하며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되어가는 존재(becoming)로 살고 있는 현실에 몰입하기보다는 관찰하는 시선이 몸에 배는 식이었다.

나의 기억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해왔다. 우선, 그것은 특히 청소년기에 겪었던 사건이기 때문에 더 크고 강렬하지 않았나 한다.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민감하고 열정적으로 탐색하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어두움 앞에서 절망하는 일에도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는 일에도 더 깊게 몰입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그대 버려졌나는 드라마 공간에서 벌어졌다. 그 곳은 현실에 걸쳐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사이의 공간이다. 그로 인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드라마라는 진공 밖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뮤지컬을 구성하는 움직임, 소리, 빛의 언어로 인해서 사마리아인이 두들겨 맞는 순간의 심각함도 탕자가 돌아온 것을 기뻐하는 잔치의 희열도 나의 몸을 빠르고 깊게 파고 들었었다. 그리고 그대 버려졌나는 종교 체험이었다. 외로운 십자가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괜찮다, 충분하다’ 스스로와 서로에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위는 나의 기억을 청소년기, 드라마 그리고 종교 체험이라는 렌즈로 거칠게 들여다보았을 때 발견하는 단편들이다. 

그런데 당연히 그대 버렸졌나는 나 홀로 체험한 일이 아니다. 피날레에서 우리가 직접 라카로 칠한 수 많은 색색의 찜뽕공을 객석에 흩뿌리고, 고래 뱃속 같은 노출 콩크리트 예배당이 공중에서 들썩이는 공들로 가득 차던 순간, 우리는 살았고 그래서 기쁘다며 덩실거리던 수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 친구들이 지금 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곳에서 행복한 인간을 만났다는 것은 우선은 나의 스토리이다.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도 그대 버려졌나에서 체험한 행복한 인간에 관심이 있다. 당시 사건에 대한 기억도 그에 대한 해석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이를테면, 수년 전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어느 동생은 1991 공연은 아니지만 어느 해의 예술제 사진을 보다가 그 체험의 허구성에 환멸을 느껴서 사진을 모두 찢어버렸다고도 하였다. 그대 버려졌나에 대한 기억의 스펙트럼은 다양할 수 밖에 없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나에게는 여전히 생생한 ‘지금 이미 충분하다’는 감각, ‘살았다’는 감각을 혹시 기억하고 있을까? 혹은 잊었거나 전혀 다른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기억은 각자의 현재와 어떻게 만날까? 이제부터 그들의 기억과 현재를 찾아 떠나보고자 한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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