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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안경과 고양이(유하림)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8. 10. 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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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과 고양이



유하림*

 


안경을 처음 쓰게 된 것은 고삼 때이다. 사실 그 때 나는 학교를 안 다니고 있어서 고삼은 아니고 그냥 열아홉이기는 했는데, 대학을 준비하기는 했으니 고삼이 맞기도 했다. 수능은 볼 생각이 없었고 대학을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검정고시와 대학 수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열아홉까지 나는 눈이 참 좋았다. 눈이 참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좋지 않은 게 어떤 것인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눈은 서서히 나빠졌고, 어느 순간 날이 어두워져 해가 떨어졌구나 알아채듯이, 어느 순간 멀리 있는 글자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 그것을 깨달았다. 칠판을 보는데 아무래도 선생님이 글씨를 작게 쓰는 것 같아 잘 안 보인다고 했더니, 네 눈이 나쁜 건 아니니? 하는 것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내 눈이 나쁘다고? 나는 한 번도 눈이 나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와 같은 줄에 앉은 친구들에게 물어 본 결과, 칠판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건 나뿐이었으므로 내 문제가 아닌 줄 알았으나 내 문제였다. 그래서 그 때 처음으로 안경을 맞추게 되었다.


안경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내 왼쪽 눈의 시력은 0.5 오른 쪽 눈의 시력은 0.3이라 했다. 오른쪽 눈에 난시가 심한 편이라고도 했다. 안경을 쓰지 않아도 생활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수업을 듣거나 영화를 보러가거나 마트에서 장을 볼 때에 불편하다고 느껴질 만큼은 불편했다. 안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것도 안경을 써 본 다음 알게 된 사실이다. 처음 안경을 쓰고 안경점 밖을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늘 보던 풍경이 어마어마하게 선명했고, 그 느낌은 생경했다. 안경을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내가 보는 세계가 비정상적이고, 안경을 쓴 세계가 정상적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된 것은 고양이에 관한 것이다. 작년 11월에 집에서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기로 했다. 내가 가장 원해서 데려온 것이긴 하지만 가족들 모두 고양이를 좋아하게 됐다. 아빠는 종종 고양이에 관한 시를 보내왔고,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에 엄마는 길고양이들이 마음에 걸린다며 속상해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걸리게 된 순간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다 고양이 꼬리를 밟고는 한다. 앙칼진 소리를 내며 냅다 도망가는 고양이에게 고작 사람의 언어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못 봤어, 진짜 미안해 연거푸 사과한다. 그제야 겨우 고양이의 마음이 되어본다. 자기의 몸집보다 열배는 큰 생명체가 꼬리를 밟고는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주저리주저리 말을 할 때 고양이의 마음은 어떨까? 쟤는 나랑 사는 게 즐거울까? 눈이 오고, 비가 와도 바깥에서 친구들이랑 지내는 게 더 행복하진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눈물이 고인다.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로 몰랐을 일을 경험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되었다. 안경을 안 써도 되는 사람이었다면 신체적 장애에 대해서 가늠하지 못했을 것이고,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길에 고양이가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경험하지 않고는 절대로 모르는 일들을 평생 모르게 될까 두려워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자고 생각한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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