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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눈] 그대를 찾아서 2(강윤아)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19. 1. 1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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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찾아서 2



강윤아
(청소년극 연구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강)


이번 글에서는 연재의 중심을 이룰 인터뷰와 관련해서 구상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전에 독자들이 알면 도움이 되는 사실들이 몇 가지 있다.


경동교회와 축제


사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첫 글에서 K 교회라고 소개한 곳을 보다 친절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K 교회는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경동교회이다. 요즈음은 극장이 없는 교회가 없고 소위 문화 선교라는 말은 보편화되었지만, 70, 80, 90년대 초까지의 경동교회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유의 축제 문화가 존재했다. 가령, 연극 공부를 시작한 후 종종 중견 연극인들이 그 옛날 경동교회 연극을 인상 깊게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편, 내가 청년 시절까지만 해도 경동교회 연극에 대한 소문을 듣고 대본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경동 교회 축제는 교회 고유의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에 희곡 텍스트를 통해서 다른 공간에 전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경동교회 축제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노래 제목 처럼 “춤의 왕”이신 예수에 대해서 그 곳에서 어떻게 고백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이 세상이 창조되던 그 아침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춤의 왕은 예수를 춤의 왕이라는 은유로 표현한 흥겨운 노래로 교회에서 자주 부르던 곡 중 하나이다. 지면의 한계상 짧게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예수처럼 혹은 그를 기념하며 춤을 출 때의 코리오그라피가 다양할 수 있다면, 어떤 형태건 그것은 예수의 어떤 정체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고통이 제거된 비현실적 진공에 있는 듯한 움직임일 수도 있고, 확신에 찬 전투적이고 과장된 동작일 수도 있으며 하회탈을 쓰고 움직이는 듯한 걸죽한 움직임일 수 있다. 그 모든 움직임이 일종의 신앙 혹은 신학을 기반으로 한다고 했을 때, 경동교회의 크고 작은 축제에서 특유의 몸짓이 있다면 무엇이었고 그 배경이 된 신학이 무엇이었는지가 많이 궁금하다. 그와 같은 방법이 경동교회 축제 문화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탐색하는 하나의 길일 수 있다. 

미진한대로, 이 시점에서는 경동 교회 축제 문화의 형식적 조건 몇 가지를 예로 들어 그것을 소개할 수 밖에 없다. 주요한 그리고 다양한 조건 중 하나는, 경동교회 축제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70, 80년대 당시 목회자가 신앙 고백에 있어서 언어가 아닌 예술의 힘에 대한 믿음이 깊었으며 교회 밖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가를 사랑하고 지원하는 임프레사리오였다는 점이다. 그처럼 신학과 예술을 짝짓는 목회자의 패러다임이 있었다는 점이 축제와 예술이 교회 곳곳에 녹아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교회 내에도 그러한 뜻에 동참하는 예술가들이 많기도 하였지만, 주요 절기 때는 연출가들을 외부에서 초청하여 협업이 이루어지거나 하였다. 나아가서, 실험적 신앙 고백에 열정적으로 동참하는 공동체가 있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성장하는 경우 어린 시절부터 본당에서 일종의 관극 체험이 이루어졌고 청년기에 이르면 축제의 주역으로 예배단에 서기도 하였다. 아직도 초등학교 2학년 추수감사절 때 경동교회 노천 옥상에서 박동진 명창이 교회 축제를 위해서 작창한 판소리를 본 후 설레어서 꿈 속을 걷듯이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이를테면, 경동교회 축제의 단편적 정보를 소개하면 위와 같다.


중고등부 예술제


중고등부 예술제는 그러한 교회 문화 속에서 탄생한 중고등부의 축제이다. 중고등부는 여느 교회와 마찬가지로 경동교회에서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원할 경우 몸 담게 되는 부서이다. 예술제는 ‘몸으로 드리는 예배’로 공연의 형태로 예배를 드리는 개념의 행사였다. 그런데, 예술제 뿐 아니라, 수련회 그리고 매주 청소년들이 주도했던 자치 활동을 포함해서 중고등부 주요 행사에서 몸짓 혹은 소리는 공기처럼 늘 함께하는 매체였다. 모이기만 하면 다양한 음악을 직접 연주하며 불렀고 밤을 지새울 기회가 있을 때면 밤새 노래할 수 있을 만큼 레파토리는 풍성했다. 수련회에 가면 자작곡을 심심치 않게 발표하던 시절이 있었다. 예술제에서 뮤지컬을 올린 경우가 많았다면, 신앙 고백에 있어서 다양한 레파토리를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며 심지어 노래를 만들기도 하는 근육은 항상 형성이 되어 있었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낭독 공연, 무언극, 움직임극 등 다양한 형태의 연극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크고 작은 몸짓의 체험도 중고등부 생활을 겪으면서 축적되었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과의 앙상블도 돈독해지고 섬세해지는 식으로 진화하였다. 말하자면, 예술제는 이러한 중고등부 문화 속에서 꽃피는 예배였다. 꽤 큰 규모의 행사였는데도 때로는 대본 집필부터 대부분의 과정을 청소년이 주도하였고 어른인 교사들은 필요시 후원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대부분 토요일 저녁에 개최하였는데, 주일 예배 전날 본당 바닥 전체에 블록 수십 개를 옮기고 쌓아서 무대를 만들고 공연 후 다시 철거하는 수고를 감수하면서도 예술제를 본당에서 개최할 수 있었던 사실은 그 축제가 버젓하게 환영 받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그대 버려졌나?


그대 버려졌나?는 원 제목이 스토리 텔링 멘 (Story Telling Man)인 켄 메데마(Ken Medema)의 뮤지컬로 예수의 이야기들을 다룬 작품이다. 1943년생인 미국인 메데마는 선천적으로 시각 장애인인데 음악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해왔다. 1991년 예술제 이전에도 경동교회에서 스토리 텔링 맨을 공연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해당 공연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1991년 예술제 상연작 그대 버려졌나는 이전에 경동교회에서 공연했던 텍스트를 기반으로 당시 고2들이 연출과 함께 각색한 희곡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고2와 연출가의 정확한 역할 분담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 성인인 연출가가 연출을 맡고 청소년 배우들이 배우와 뮤지션을 맡아서 뮤지컬의 형태로 그 해 11월 경동교회 본당에서 1회 공연하였다. (한편, 이번 글에서 해당 공연의 영상을 근거로 퍼포먼스에 대해서 조금 더 상세하게 소개하고 싶었는데, 거의 30년 보관해온 비디오 테이프를 끝내 찾지 못하였다. 우연히 연락이 닿은 당시 공연 참가자가 비디오를 소장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는데 조만간 받아서 살펴볼 예정이다.)


다시, 왜 할 것인가?


덜컥 첫 글을 쓴 후,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보다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위해서 인터뷰를 어떻게 진행할 것이고 그 결과는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에 관한 계획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이 연재는 일종의 연구이다. 청소년기의 친구들과 재회하고 나의 감상을 마주하며 웹 상에서 홈커밍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일종의 질문을 탐색하고 싶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대 버려졌나’라는 사례가 현재의 나에게, 그리고 그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독자들에게도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사건을 회상하고 느끼는 이상의 것, 그 사건 너머에 있는 “인간”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말하자면, 이 사건을 토대로 인간에 대해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가 나의 궁극적 관심이다. 그래서, 그대 버려졌나의 청소년 참가자들이었던 이들이 당시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지금은 어른이 된 당시 청소년들을 만나서 다음의 질문에서 출발한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이다.


- 그대 버려졌나를 생각하면 당장 드는 생각은? 

- 연습 과정부터 공연에 이르는 과정 중 어떤 부분을 기억하고 왜 기억하는지? 

- “그대 버려졌나”라는 사건, 혹은 그를 통한 발견이 있다면? 

- 공연 이후의 삶을 요약한다면? 

- “그대 버려졌나”가 이후의 삶 혹은 현재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누구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


당시 청소년이었던 이들 중 일부는 경동교회에 아직 출석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떠났다. 91년 당시 중고등부를 구성하던 또래 전체의 모임은 별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대 버려졌나 팀의 행보는 다양하다. 가령, 캐릭터를 중심으로 회상해보면, 탕자의 아버지는 전주 어느 치과 병원에, 이야기꾼은 미국 어느 주에 있다고 들었다. 양치기는 얼마 전 우연히 서촌에서 마주쳤는데 영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밴드의 키보드는 서울에서 교사로 재직중이고 피아노 연주자는 독일 어느 오페라에서 노래하고 있다. 전체 작업을 총괄하다시피 했던 당시 고2 언니는 잘 알려진 담배곽을 디자인했으며 뉴욕 어딘가에 있다고 들었다. 그들을 소개할 때 편의상 직업부터 운운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당시 우리가 공유했던 서로에 대한 생각은 명함 한 장에 찍어내기에는 복잡한 것이었다.

그대 버려졌나에 참석했던 청소년이고 본 연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터뷰에 초청하고자 한다. 그 외에,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연령, 성별, 경동교회 출석 여부, 현재 신앙 생활 여부, 직업, 거주지 등 모든 면에서 다양한 이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대 버려졌나에 대한 기억과 그 영향에 대해서 가급적 입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직접 만나서 진행하되 부득이한 경우 전화로 진행할 예정이다. 인터뷰 분석 방법에 대해서는 차차 논의할 것이다. 다만, 되도록 나의 이야기를 배제하고자 했던 처음 생각과 달라진 점이 있는데, 오히려 본격적으로 나의 편향을 성찰하기로 하였다. 내가 이 연재에 애정을 갖는 오래된 이유가 있다. 연재가 끝날 때까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그에 대해서 정확하고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나의 시선이 이 연재에 어떻게 얼마만큼 영향을 끼치는지 투명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인터뷰?


지난 원고가 게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L에게서 연락이 왔다. L은 어느 섬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7년만의 소식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웹진에 실린 글을 읽고 연락을 준 줄로 오해하였다. 통화를 하면서 다른 용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나의 오해로 인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본 연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 그가 가끔씩 그대 버려졌나의 비디오를 틀어본다는 사실과, 심지어 그 작품이 본인에게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작품의 제목인 스토리 텔링 맨의 “스토리 스텔링”과 관련된 과정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대 버려졌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많이 놀랐다. 그리고 우리는 조만간 만나기로 하였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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