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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마당] 새해맞이 단상: 고통과 희망, 안식선언서(김혜란)

목회마당

by 제3시대 2019. 1. 1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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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단상: 고통과 희망, 안식선언서

 


김혜란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지난 해 연말 귀한 지인으로부터 이해인 님의 시를 받았다. 새해를 여는 멋진 선물이었다. 기해년 2019년을 맞이하면서 독자 여러분과 이 시를 먼저 공유하고 짧은 단상을 하고자 한다.


희망에게 

이 해 인 


하얀 눈을 천상의 시詩처럼 이고 섰는 

겨울나무 속에서 빛나는 당신 

1월의 찬물로 세수를 하고 

새벽마다 당신을 맞습니다 


답답하고 목마를 때 깎아먹는 

한 조각 무 맛 같은 신선함 


당신은 내게 

잃었던 꿈을 찾아 줍니다 

다정한 눈길을 주지 못한 나의 일상에 

새 옷을 입혀 줍니다 


남이 내게 준 고통과 근심 

내가 만든 한숨과 눈물 속에도 

당신은 조용한 노래로 숨어 있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우리의 인사말 속에서도 당신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음으로 

또다시 당신을 맞는 기쁨 


종종 나의 불신과 고집으로 

당신에게 충실치 못했음을 용서하세요 


새해엔 더욱 청청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이해인님은 이 시를 통해 희망과 고통을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본다. 이 시를 읽으면서 양쪽 절구통을 어깨에 지고 가는 나 자신과 이웃을 연상한다. 우리 모두의 삶은 어찌보면 희망과 고통 이 두 절구통의 무게를 감내하고 사는 것 같다.

지난 해 어떤 교인이 내게 “힘들지만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던지는 소위 희망멘트도 일종의 폭력이라고 말해주었다. 힘들 땐 그냥 그 힘듬을 견디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고통이 지나가는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희망을 재촉한다고 그 고통이 없어지기 않기 때문이다. 내리는 눈이 무겁다고 내리는 눈을 오지 않게 할 수도 없고, 그 눈이 무거우니 빨리 녹으라고 재촉을 한다고 이미 온 눈이 빨리 녹아주지 않기 때문에, 그 눈의 무게를 이고 있는 나무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다.

한 해 중 제일 추운 달이 1월이다. 그 1월의 찬물은 그래서 유난히 차다. 그런데, 시인은 그 찬물로 세수를 하면서 그렇게 오는 새해, 오는 하루를 연다고 한다. 비록 오라고 오는 희망도 아니고, 가라고 가는 고통도 아니지만, 살을 에이는 추위, 손이 얼어버릴 만큼 차디찬 물로 다가오는 고통과 희망의 두 절구통을 피하지 않고 맞겠다는 당당함이 느껴진다.

스스로를 학대하고 일부러 고통을 만드는 매저키스트가 아닌한 어떤 이가 고통을 기쁘게 맞이할까? 그리고 대부분의 고통은 예고없이 찾아온다. 준비된 고통도 일단 닥치면 힘들다. 그런데, 준비되지 않고 찾아오는 고통은 훨씬 더 힘들다. 그래서 일상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인은 그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우리의 일상에 다정한 눈길을 주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가면서 잘 들리지 않는 소리를 기울일 때, 조용한 노래로 찾아오는 희망도 만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고통과 근심, 한숨과 눈물, 불신과 고집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런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궁극적으로 이 무게를 일상 속에서 감내하는 일 그것 자체가 희망적 삶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희망은 거창한 것이 아니나 충분히 고통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게 하는 힘이 있다고 역설하는 것 같다. 무는 거창한 음식이 아니나 갈증이 나고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배고픈 이에게 물보다 더 달고 주린 배를 달라주는 시원함을 주듯이 말이다. 이해인 시인은 무엇보다 살아있기에 희망이 있고, 살아있기에 고통을 감내한다고 삶을 말한다. 생명지닌 모든 이들을 향한 삶 속에 존엄함을 빛내는 것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새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우리는 생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다 존엄한 존재이다. 다정한 눈길을 받고 주는 존재, 따뜻한 인사를 나누는 존재, 청정한 마음을 담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이다.

이렇게 이해인 님의 아름다운 시를 곱씹으며 새해를 맞았다. 2019년도 다사다난한 일상의 삶으로 가득채워질 것이다. 그런 일상의 삶, 고통과 희망의 두 절구통을 제대로 지고 가는 삶을 위해 거창하지만 거창하지 않은 실천을 제안하면서 단상을 마친다. 이 제안서 역시 감사의 선물이다.

2018년을 맞이하던 지난해 이 맘때는 Sabbath Manifesto [각주:1]라는 선물이 찾아왔다. 이 선물을 받고 2018년 한 해동안 이 안식선언서를 식탁앞에 두고 우리 4명 가족과 함께 지키고자 했다. 물론 매 주 지키지는 못했지만 10가지 모든 계명을 다 지키지는 못했지만 도움이 되었다. 아니 10대 청소년을 둔 두 아이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셀폰 끄기를 독려하기가 쉬웠다. 매주 24시간 하루는 셀폰에 노예로 살고 있는 손을 쉬게하라는 잔소리를 많이 하지 않고도 이 선언서 덕분에 아이들은 원하지 않는 (?) 자유함을 경험했다고 말하면 엄마의 자위적 환각일까? 올 해 2019년도 이 선언문은 우리집 식탁위에 놓여 있다.

밑에 각주에 단 링크를 읽어보면 잘 나와 있지만, 이 선언서는 2010년 바쁘고 소비 중심 인터넷 중독에 가깝게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을 반성하면서 전원끄기 (unplug)라는 운동으로 유대교의 안식일 가르침을 21세기 상황에서 재조명한 일종의 십계명이다. 10가지 실천명은, 다음과 같다: 


1. 인터넷관련 (이멜, snap shot, chat, facebook, 카톡, 블로그) 피하기 

2. 사랑하는 이들과 (인터넷 대신) 연결하기 

3. 건강을 위해 독려하기 

4. 실내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기 

5. 소비하지 않기 

6. 초 켜기 

7. 와인 마시기 

8. 빵 먹기 

9. 침묵하기 

10. 받은 것 (가족, 친구, 이웃, 사회, 생태계) 돌려주기


물론 이 계명을 만든 이들은 10가지 사항을 기계적으로 지키라고 권면하지 않고, 각 자 문화와 상황에 맞게 그 취지를 살리면서 얼마든지 바꾸라고 제안하고 있다. 특히 7, 8번째 계명은 유대교인들, 빵과 와인이 일상적 음식인 문화에 사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 같다. 아마도 추측하건대, 그 취지는 불량식품, 패스트푸드, 같은 음식을 피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는 뜻이다.

21세기를 연지가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기해년 한 해, 일상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며, 고통과 희망의 절구통을 균형있게 잘 지고 가는 한 해를 살아보자. 이 균형있는 나의 삶이 두루 온 누리를 고르게 하는 평화의 삶으로 정의로운 삶으로 이어지게 되길 기도한다.


ⓒ 웹진 <제3시대>



  1. https://www.myjewishlearning.com/article/sabbath-manifesto/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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