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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다시 돌아온 3월(김난영)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3. 1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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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3월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처음과 두 번째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작년 이맘때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적응을 지켜보며 교실과 학교 안의 여러 가지 상황에 덩달아 예민해지고, 결국엔 입학 한 달 만에 전학까지 감행한 찬란한 3월이었는데... 새 학기 첫 날인 오늘,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동네에서 제일 힙하다는 카페에 들려 1등 손님으로 커피를 홀짝인다. ‘그래, 이 맛이야. 아이 등교시키고 마시는 커피 맛!’ 새삼 지난 3월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입학 첫 주 금요일 하굣길이었다. “엄마, 학교에서 그림그리기 해서 1등하면 선생님이 선물 준대. 1등하면 무슨 선물을 줄까? 터닝메카드 주나? 히히, 신나! 엄마, 나 1등 할거야!” 좀처럼 학교 이야기를 안 하는 율이의 입이 재잘거린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 가방 안의 알림장을 확인하니, ‘과학상상그리기대회’를 한단다. 선물을 이야기하는걸 보니, 시상까지 하나보다. 그것도 1등만..


아이는 한창 적응 중이었다. 기껏 하루 4~5시간을 머무는 학교지만, 그 안에서의 새로운 모든 것들이 버거워 초저녁부터 초점 없는 멍한 눈으로 있다 저녁 8시도 안 되어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런 아이가 모처럼 눈을 반짝이며 그림 그릴 생각에 신 났다. 다음 주 화요일이 그림그리기 대회 날인데, 그 전에 대책을 세워야했다.


일단 율이가 받는다던 ‘선물’을 종이에 불과한 ‘상장’으로 정정해주고, 특별히 잘 그림 사람을 칭찬해 주는 의미로 주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그림에 등수를 매기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해주었다. 혹여 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너의 그림이 멋지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이미 ‘선물’에 홀린 율이의 귀에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듯했다. “과학상상”이라는 주제도 너무 난해했다. 아이에게 “과학상상”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공룡이 지구에 있다가 로봇을 만나서 싸우고 부수고, 자기는 뭔가를 발명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동안 봤던 만화가 총망라된 두서없는 이야기가 조잘조잘 계속된다. 내 국민학교 시절 기억도 얼핏 나면서, 요즘은 어떤 그림을 그리나 싶어 검색창에 주제어를 치니, 미술학원에서 대회 연습을 하는 그림들이 나온다. 국영수 뿐만 아니라 미술도 선행학습을 하는 시대인가보다. 더 이상 내가 손 쓸 수 있는 부분은 없는 듯 했다. 그래, 직접 부딪혀 보거라.


대회가 있던 날, 필통 속 연필 세 자루 모두 심이 닳아있었다. 한 시간 남짓 집중해서 그리고 또 그렸을 아이를 생각하니 대견하고 기뻐서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율아 정말 열심히 그렸구나. 이렇게 열심히 그린 그림이면, 엄마한텐 율이가 1등이야.” 

 “응, 엄마 선생님이 바탕을 색으로 다 채워서 그려야한대. 근데, 선물은 뭘 주는 걸까? 엄마 1등은 언제 알 수 있을까?”


떠듬떠듬 겨우 글을 읽어 내리기 시작한 1학년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한글 배우기에는 1도 관심이 없던 율이는 더욱이 말과 그림으로 대부분을 표현하던 아이였다. 아빠가 회사서 가져다주는 이면지를 쌓아놓고 그리는 아이였다. 여행에 앞서 나는 항상 색연필과 종이를 챙겼고, 율이는 낯선 레스토랑에 앉아 냅킨에 볼펜으로 조심조심 새로 타 본 비행기를 그렸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화방으로 이끌어 맘에 드는 펜을 사주었다. 아이는 무엇을 그릴까 머뭇거리지 않는다. 말을 하듯,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대로 화면에 드러난다. 비록 어른의 눈에 완전한 형태가 아닐지라도. 그런 아이가 더 이상 붓을 들지 않는다. 아이의 소통 창구가 막혔다.


대회 시상 후, 놀이터에서 같은 반에 쌍둥이를 보내는 엄마를 만나 그림그리기 대회 이야기를 했다. 담임 선생님이 혹시 시상을 해서 쌍둥이 두 아이 중 한 아이가 받으면 다른 아이가 마음 아파하는지 물어보았단다. 그런 배려가 왜 나머지 스물여섯의 아이들에겐 미치지 못 했을까. 안타까웠다. 아이들의 그림을 그들의 말로 풀어보는 시간을 갖기나 했을까. 어떤 기준으로 1등을 뽑았을까. 어지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한동안 아이를 달래고 위로했다.



학기 초 담임과 상담하며 교실 벽에 걸린 문제의 과학상상그림을 찍었다. 율이 그림이 한 눈에 보였다. 선생님께 시상의 목적과 과정을 묻고, 결과의 부당함을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초보학부모는 ‘아이가 기대를 많이 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많이 상심했다’고 전했을 뿐이다. 그래도 그림을 직접 보고 오니, 아이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이 더욱 선명해지는 듯했다.


그래, 너의 그림은 참 달라. 엄마는 너만의 그 느낌이 정말 좋아. 그래서 멀찍이 보아도 그 느낌을 금방 알 수 있지. 지금처럼 그렇게 널 지켜가길 바라. 엄마아빠는 율이 네가 가진 그 특별함, 오래 오래 지키고 살 길 바라.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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