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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정보] 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성서 해석학과 정치학 (김진양)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09. 9. 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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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성서 해석학과 정치학

김진양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에서 구약학 Ph.D. 과정중)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은 과히 지난 20세기 성서 해석학에서 가장 중심된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서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한 해석적 담론을 지속적으로 쏟아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였고, 그리고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이 성서학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끈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차원에서 이야기 될 수 있다. 첫째, 고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성서의 자체의 진술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 11:16-17) 이스라엘이 가나안 도시를 단번에 완전히 정복하였다는 (all-at-once) 것을 서술하는 반면, 사사기서는 (사사기 1:9) 이스라엘이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도시와 몇몇 영역들을 서술하고 있다. 성서학자들은 이런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서의 모순된 진술에 대한 답을 소위 객관적(?) 증거를 제공하는 고고학에서 찾고자 노력하였다. 둘째, 고대 이스라엘 기원이라는 과거 역사의 재구성은 오늘날 현실 정치에 깊숙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지난 100년동안 성서학자들의 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해석학은 팔레스타인 땅의 권리를 둘러싼 이민자 이스라엘과 토착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이라는 현실 정치의 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에세이에서 성서 해석학과 현실 정치와의 관련성을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이라는 주제를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1996년 키쓰 와이트럼(Keith Whitelam) 이라는 구약 성서학자는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e History (「날조된 고대 이스라엘: 침묵의 팔레스타인의 역사」)라는 도발적인 책을 출판하였고, 그리고 이 책은 성서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와이트럼은 “이스라엘 역사는 근대성에 근거한 성서 해석학의 결과물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지난 20세기 성서해석의 담론을 일축한다. 지난 세기 성서 학자들의 주된 정치적 이념은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권리를 옹호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권리에는 침묵하였다. 다시 말하면, 성서 학자들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는 근대 이스라엘 건국의 성서적/이념적/정치적 합법성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 책은 성서 해석과 현실 정치의 연관성을 날카롭게 보여준 대작임에 틀림없다. 와이트럼은 20세기의 고대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세가지 전통적인 모델- (1) 평화 이주설, (2) 정복설, 그리고 (3) 민중 봉기설- 을 탈 근대의 담론으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1) 평화 이주설
평화 이주설은 알브레이트 알트(Albrecht Alt)의 1925년 논문 (“Die Landnahme Der Israeliten in Palästina”)에서 출발한다. 이 가설은 고대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으로 (당시 가나안 사람의 땅) 평화롭게 이주한 것이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이라고 것이다. 평화 이주설은 구약성서 사사기서가 서술하는 이스라엘의 기원에 가장 가까운 가설이다. 그러나 와이트럼은 “[평화 이주설]은 조작적 과거의 재구성으로서 1920 년대 급증했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시오니즘을 반영한다”고 비판한다 (와이트럼 1996, 74). 평화 이주설은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들과 매우 유사한 상관관계가 있다. 알트의 논문과 당시 시대적 상황이 1920년대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와이트럼의 비판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평화 이주설의 핵심적 내용은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은 타자의 소유지를 빼앗은 폭력적 행위가 아니라, “비어있는 땅”(uninhabited land)에 평화롭게 이주하였다는 것이다 (Weippert 1971, 6).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비어있는 땅”의 의미는 무엇인가? 과연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때 그 땅의 주인은 없었을까? 성서 어디에도 “비어있는 땅”으로의 이주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비어있는 땅”이라는 해석적 관점과 1930년대의 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의 팔레스타인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비교하면 더욱 흥미롭다. 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은 1930년대 팔레스타인 사회는 내부적으로 와해된 국가라는 조직이 불가능한 소위 “비어있는 땅”과도 같다고 여겼다. 따라서 평화 이주설을 주장하는 학자나 이스라엘 역사학자들은 월등한(주체) 이스라엘인이 열등한(타자) 팔레스타인을 대치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2) 정복설
정복설은 윌리암 팍스웰 올브라이트(W. F. Albright)가 처음으로 주장한 가설이다. 올브라이트는 구약성서 여호수아서가 진술하는 고대 이스라엘인의 가나안 도시 정벌이라는 성서의 기록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올브라이트는 소위 근대정신의 중심된 담론인 성서 기록에 대한 “객관적(?) 사실과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가 믿었던 객관적(?)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어떻게 읽어 내는냐에 따라서 다른 결론을 얻을수 있다는 도전을 받고 있다. 와이트럼은 올브라이트의 정복설을 결국 폭력으로 팔레스타인의 “땅”을 차지한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한다.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사실은 올브라이트는 결코 토착민 팔레스타인의 땅에 대한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팔레스타인을 멸종의 대상인 “타자”로 규정하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올브라이트는 유대인들이 중동에서 유럽문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와이트럼은 “정복설은 이주민/상위계층/서구인이 토착인/하위계층/동양인(중동인)을 학살하는데 대한 성서적 혹은 객관적(?) 정당성을 부여하였다”고 비판한다 (와이트럼 1996, 84-85). 와이트럼은 정복설의 정치적 이념은 “[서양의] 기독교가 열등한 [토착] 종교를 대치한 것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3) 민중 봉기설
조지 멘덴홀 (George Mendenhall)은 1962년 “The Hebrew Conquest of Palestine” 이라는 논문에서 고대 이스라엘은 사회 정치적 측면에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문에서 멘덴홀은 고대 이스라엘은 타락한 토착 가나안의 정치/사회적 체계에 대항한 사회적 약자 연대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고대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하부계층과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연대하여 혁명의 (혹은 농민봉기) 결과라는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로서 The Amarna Letters에서 “하비루 (Habiru)”라는 하부계층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민중 봉기설이 초기 시오니즘의 유럽 국가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 민중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미국, 유럽,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다른 인종들이었지만, 동일한 사회적 억압을 경험한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멘덴홀의 가설을 더욱 발전시킨 갓월드는 (The Tribes of Yahweh, 1979) 자신의 책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을 서술하면서 반 베트남 전쟁을 역설하였다. 갓월드와 멘덴홀은 이스라엘을 단일 인종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고대 이스라엘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배경에서 온 사회계층의 동일한 정치적 경험의 담지자들이 가나안 지배층에 대항 강력한 도전과 봉기가 이스라엘의 기원이라는 가설이다 (Gottwald The Tribes of Yahweh, 215). 갓월드는 민중 봉기설을 주장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을 옹호하였지만, 그러나 근대 팔레스트인의 “땅”에 대한 권리에는 철저히 침묵하였다.

위의 세 전통적 가설과는 달리 와이트럼은 팔레스타인의 “땅”에 대한 권리를 옹호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이라는 “타자”를 위한 성서 해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잔 콜린스의 지적처럼, 근대 아랍 팔레스타인은 기원 후에 등장한 인종으로서 고대 가나안인과는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인종임을 와이트럼은 간과하고 있다 (Collins 2005, 42).

위에서 살펴본대로, 근대정신에 바탕한 성서 해석학은 현실 정치와 깊숙히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와이트럼이 보여준 비판적 해석처럼 성서를 해석하고 과거를 제구성하는 가치관의 재고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혹자는 종종 이러한 해석적 담론을 “탈 근대주의” 또는 “탈 식민주의”라고 부른다.

아래의 사진은 필자가 지난 2005년 1월 팔레스타인(현 이스라엘)로 Travel Seminar 갔을 때 찍은 예루살렘 장벽 사진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의 테러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세운 단절의 벽이다. 당시 저 무시무시한 벽을 세우는 성서적/정치적 정당성을 성서학자들의 해석적 담론이 제공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름이 끼치는 전율을 느낀 일이 생각난다.


참고문헌

Collins, John J. Encounter with Biblical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5.

Weippert, M. The Settlement of the Israelite Tribes in Palestine. A Critical Survey of Recent Scholarly Debate. London: SCM, 1971.

Whitelam, Keith.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e History. London; New York: Routiedge, 1996.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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