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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그대를 찾아서 2(강윤아)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6. 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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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찾아서 2

강윤아(청소년극 연구자)

이 연재는 1992년 경동교회 중고등부의 몸으로 드리는 예배인 “그대 버려졌나”의 참가자들, 지금은 성인이 된 그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시리즈의 두 번 째 내용이다. 이번에도 당시 청소년 참가자 K를 만나서 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고, 그것이 현재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질문하였다. K는 영화 조감독으로 오래 일했고, 현재는 영상 번역을 주업으로 하면서 짬짬이 자신의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대” 당시 고 1이었으며 잃어버린 양을 찾고 기뻐하는 양치기의 역할을 맡았었다. 

인터뷰는 4월 18일10시 서촌 복담에서 100여분에 걸쳐 진행하였다. 나는 인터뷰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꽤 오랜 기간 해외에 머무를 계획으로 출국해야 했기 때문에 그 무렵 인터뷰 시간을 마련하는 자체도 다소 무리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녹취, 편집 등의 작업은 부득이 천천히 할 생각이었는데, 인터뷰가 많이 흥미로웠던 탓에 놓치기 아까운 발상들을 메모하고자 만남 직후 근처 도서관으로 서둘러 갔다. 그런데 그 곳에서 하필 녹음 파일이 손상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K와 상의한 후 그 자리에서 기억 속 인터뷰 내용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아래 내용은 인터뷰 직후 필자의 기억을 토대로 이야기 내용을 정리하고 K가 감수해준 것이다.  

K는 “그대 버려졌나”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 

K는 중학교 시절부터 청년기에 이르는 십년 남짓의 기간 동안 대부분의 교회 행사와 축제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 90년대 이후 경동교회 축제가 예전만큼 성황을 이루지 않았고, 중고등부 출신 청년들의 경우 대학 입학 후 교회에 소홀해지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내 기억에도 K는 한결같이 활동했었다. 그런데, K에게 ‘그대’는 그가 참가했던 여러 행사 중 하나일 뿐, 그 공연에 대한 별다른 기억이나 관심은 없다고 하였다. K는 본 웹진의 필진이기 때문에 인터뷰 요청 전부터 본 연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대’에 관한 원고들을 ‘대충 읽다가 말았다’고 했다. K는 오히려 대학 시절 참가한 ‘가스펠’(1995년)이나 본인이 대학 시절 연출했던 중고등부 예술제(1998년)가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대’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주로 K가 교회 축제에 몸담았던 십년 남짓의 기간에 대한 기억을 거시적으로 돌아보는 가운데 드문 드문 들을 수 있었다.   

K에게 “그대 버려졌나”는 신앙 활동은 아니었다. 

K는 스스로가 여전히 신앙인이고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일할 때나 자녀를 양육할 때 성서에서 배운 것들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교회에는 출석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대’에 대해서도 신앙적으로 의미 부여하는 점은 많지 않다고 하였다. 그는 신앙 생활을 위해서는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과 일대 일로 마주하는 경험이 중요하며 그런 면에서 본인의 경우는 대학에 가서야 제대로 공부 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 성서를 수 차례 통독하면서 전체를 조망하는 가운데 세부적인 의미를 파악하려 노력했고, 실제 삶에 어떻게 적용할까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부에 비해서 중고등부 시절 일 주일에 한 번 단편적으로 성서 일화를 해석하던 공부는 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대’ 당시에도 예배라는 이름으로 성서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그것은 성서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극화한 것일 뿐 그 내용에 대해서 신앙적으로 대단한 이해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한편 K는 신앙의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은 신앙 보다 친구가 더 크게 보이고 모이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하였다. 이는 K의 기억 속에서 당시 ‘관계’나 ‘모임’이 중요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K의 경우 당시 우리가 모이거나 관계 맺은 것이 교회 혹은 하나님 안 에서였기 때문에 다르거나 특별했다고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K는 만약 당시 본인이 축구부 활동을 했더라도 ‘그대’를 위해서 혹은 중고등부에서 모인 것과 비슷하고 재미있게 친구들과 지냈을 것이라고 하였다. 

K에게 ‘그대’와 관련된 모든 경험은 일종의 “문화 활동”이었다. 

위처럼 K는 ‘그대’를 포함한 교회 축제를 기억함에 있어서 신앙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대’와 교회 축제의 문화활동으로서의 측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선 K는 청소년기 문화 활동인 ‘그대’를 통해서 자기 발견을 할 수 있었고 진로를 찾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협력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문화 예술 분야에 줄곧 몸담게 되었기 때문이다. K는 ‘그대’ 당시 그처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 지금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을 키워보니 요즈음도 상황은 비슷하다고 했다. K는 당시 여럿이 협업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각자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고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점이 좋았다고 했다. K 스스로의 경우, 협력해서 더 좋은 것을 얻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크리에이티브 -연출적 입장에서 창의적인 시선을 필요로 하는 일’ 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더 나아가서 그렇게 자신이 협력과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일과 잘 맞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화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K는 줄곧 영화계에서 일해왔는데, 오래도록 한 역할의 하나가 조감독의 일이다. 조감독은 영화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을 파악한 후 여러 파트가 원활하게 협업할 수 있도록 콘트롤타워의 실무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협력과 크리에이티브와 직결된 역할이라고 한다. 더불어 K는 본인의 영화도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특히 협력이 즐거웠고 여전히 즐겁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반면, K는 연륜이 쌓이면서 협력이나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분야는 영화를 포함한 문화 예술계 바깥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꼭 영화계로 갔어야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청소년기 청년기에 교회에서 문화 예술과 관련된 활동을 많이 접하면서 그 분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한편, K는 교회 활동과 교회 밖 문화 활동을 나란히 놓고 다양한 차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문화 혹은 예술이라는 공통 요소가 있어도 교회 안과 밖 활동은 범주나 취지가 다르기 때문에 두 가지를 직접 비교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러한 시선이 낯설면서도 새로웠다. K는 오랜 기간 교회에서 활동하면서 교회 안 문화 활동은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무엇보다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인데, 가장 큰 이유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잘 하고자 하는 마음 보다는 화목하고자 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에 비해서 이를테면 영화 현장에서는 주로 잘 하기 위해서 소통한다고 하였다. 또한, K는 창작과정에서 영화 분야처럼 노동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있을 때의 장점과 시너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몇 년 전부터 영화 스태프들의 경우 막내들은 최저 임금에 맞게, 경력이 있는 스태프는 그에 맞는 보수를 받고 있는데, 충분한 보상을 받고 몰입할 수 있을 때 작업자의 인권, 만족도 등 모든 것이 나아지고 협업 면에서도 오히려 불합리한 것이 사라졌다고 하였다. K가 처음 영화 일을 시작했을 때 월급이 막내 40만원, 조감독 200만원 수준이었다면 3, 4년 전부터 막내 180만원 조감독 450만원 선으로 맞춰졌다고도 하였다. 이번 정부 들어와서는 주 52시간 노동도 지켜지고 있는데 그것은 영화 산업 노조가 오랫동안 싸워온 결과라고도 하였다. 그에 비해서 교회에서의 활동은 일이 아니라 봉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참여자의 내적 기쁨 외에는 노동에 대한 보상이 전무하기 때문에, 신학생이나 목회자가 아닌 이상 소진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70, 80년대에는 교회가 아니면 문화 활동을 할 출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활동에 대한 만족감 자체가 보상었다면, 90년대 부터는 교회 밖에 신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교회 안에서 문화 활동을 하는 것의 장점이 줄었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서 K는 교회에서 더 이상 문화 예술 공연을 해서는 안 된다고도 하였다. BTS의 경우 처럼, 교회 밖 훌륭한 작업들이 많고 문화적으로 너무 풍족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수준이 높은 작업을 할 것도 아니면서 굳이 공연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끝-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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