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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길을 잃었던 날 맞닥뜨린 성화(박여라)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6. 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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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었던 날 맞닥뜨린 성화

박여라*

 또 길을 잘못 들었다.

차를 몰고 여행 다니면 놓치는 게 많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나만의 공간을 갖고 이동한다는 유혹은 떨치기 어렵다. 노래도 크게 부르고 맘 편하게 방귀도 뀐다. 짐을 들거나 매고 다니지 않으니 몸이 덜 축난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가려는 곳까지 대중교통이 너무 뜸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운전해서 가지만, 그런 데는 차를 빌리는 게 시간뿐 아니라 비용까지 적게들 때도 왕왕 있다.

그런데 일단 출발하고 나면 운전만 해야 하니 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가는 길에 마실 물과 간식을 챙겨 놓았어도 필요한 다른 무엇을 트렁크에 넣은 채 출발했을 수도 있고, 뭔가 떠올라 메모를 하려고 해도 -요샌 스마트폰이 제법 도와주긴 하지만- 만만치 않다. 차라리 차를 잠깐 세우는 게 나을 때도 생긴다. 그래서 혼자 다닐 땐 기차나 버스처럼 남이 나를 옮겨주는 운송수단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경치 구경하는 드라이브 자체가 목적인 경우를 빼고는, 결국 여행 가서 운전은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서 하지 그 과정 때문은 아니다.

그 과정이 이동 말고도 다른 의미를 담게 되는 때는 흘러가던 물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어떤 이유로든 흔들리거나 끊기는 때에 찾아온다. 일정한 속도로 몰고 다니던 차를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오면 드디어 생각 프로세스가 시작된다. 의식의 흐름이 멈추는 지점에서 정색하고(?) 의식 활동이 일어난다고나 할까. 길을 잃거나 갑자기 막히거나 했을 때다. 기억에 깊이 박힌 멈춤 지점이 연달아 생긴 날이 있었다.

스페인 리오하 와인지역에서였다. 이름도 긴 ‘산 비센테 델라 손시에라’ (San Vicente de la Sonsierra).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그 근처 브리오네스에 있는 와인 박물관으로 가고 있었는데 네비가 나를 이 읍내로 이끌었다. 목적지까지 아직 좀 더 가야 했다. 점점 좀 아닌 거 같아 마을 한가운데 조그만 광장에 차를 멈춰 세웠다. 이 길로 그대로 마을 반대쪽으로 나가면 목적지로 가는 길이 어찌 될지 모르니, 차라리 다시 큰길로 나가려고 차를 돌리는 중이었다.

낮에 여자들은 다 일하러 갔는지 집에서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조그만 광장은 남자들의 공간이었다. 길 가던 남자, 바깥에 앉아있던 남자, 음식점에서 일하던 남자들 죄 나왔다. 어디를 가냐, 차는 저쪽으로 여기까지 와서 저리 이렇게 돌려나가야 한다, 둘러서서 한마디씩 더한다. 이게 스페인 남자의 친절인가, 아님 혼자 다니는 외국 여자라고 구경 나왔나 헷갈렸지만, 그냥, 고맙다고, 나 절루 갈 거라고 하고 아디오스! 인사를 고했다. 거울로 보니 그들이 내가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들 있다. 그날 밤 지도에서 그 마을을 다시 찾아보았다. 동네 길이 무슨 덫도 아니고. 거미줄에 빨려 들어갔다가 풀려난 이 느낌은 뭐지.(사진 1)

목적지였던 와인박물관에 도착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규모도 크고 내용이 풍성했다. 2004년에 연 이 박물관은 그 지역 와인 만드는 방법과 토양, 옛날에 쓰던 와인 설비, 도구들과 변천사를 현대식으로 보기 좋게, 체험도 할 수 있게 전시하고 있다. 열심히 구경하고 있는데 직원이 다가왔다. 전시물이 굉장히 많이 남았으니 문 닫기 전에 다 볼 수 있게 속도를 좀 내란다. 아 그래요?

그리고 한 층 내려가 다른 전시실로 갔다. 와이너리 소유주 가족이 40년 동안 와인을 주제로 모은 예술품, 성배, 악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도구들이 가득 있다. 와인따개만 해도 수백 개였다. 아니 수천 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서둘러 보라는 거였구나. 전시규모를 파악하고는 시계를 봤다. 물 흐르듯이 진도 뽑아야겠네.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귀하고 아름답고 신기하고 진기한 것들이었다.

그러다 ‘신령한 포도압착기'라는 제목이 붙은 작자미상 17세기 유화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진행 리듬이 뚝 끊겨버렸다. 그림 옆에 해설과 그림도 붙였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이 이루어짐을 그린 그림이며 포도주의 화체로 성찬 때마다 그리스도의 피가 임재하심이 기억된다고. 아무리 알레고리여도 그렇지 이미지는 엽기적이다. 호러도 이런 호러가 없다.(사진 2)

작품 설명에는, 이 모티브는 이사야서 요한복음 등에 기초를 두고 12세기에 등장하여 중세에 널리 퍼졌으며, 와인상들도 와이너리 채플에 쓰는 이미지였다고 써있다. 간단한 그림으로 요소들에 이름을 붙였다. (십자가 끝에 앉아 십자가에 무게를 더하는 비둘기) 성령, (압착기를 돌리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 (고통받는) 성자, (버팀목) 십자가, (그리스도의 피를 담는) 성배. 친절하게 점자도 새겨있었다.

12세기에 이르러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리스도교 신앙이 이렇게 그려질 수 있나? 신앙은 물론이요, 와인 맛도 망치는 좋지 않은 예라고 치부해버렸지만, 지워지지 않고 머릿속에 성가시게 남아있다. 길도 잃고 무서운 성화도 만난 참 이상한 날이었다.

*필자소개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썼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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