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비평의 눈] 함석헌의 자리와 유영모의 허공(서보명)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19. 7. 1. 14:09

본문

함석헌의 자리와 유영모의 허공

서보명

함석헌의 ‘자리’를 그의 스승 유영모가 즐겨 찾던 ‘허공’에 대한 응답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은 무엇보다 먼저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함석헌이 유영모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을 발전시켜 자신의 사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지나간 역사의 일부가 아니라 아직도 가치 있는 한국이라는 사상적인 맥락의 자산으로 남아있다. 그 유산은 학문을 하는 자세에서 내용 그리고 그 근거가 되는 삶의 양식에 대한 이해까지를 포함하고 아직도 소모되지 않은, 아니 아직도 그 표면 밖에는 들여다보지 못한 정신적 자원이라 여겨진다. 

함석헌의 자리가 그를 이해하는데 의미 있는 개념이고 그 이해가 유영모의 허공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직관적인 판단에 불과할지라도 이런 작업이 그 유산을 해석의 대상으로 보는 예는 될 수 있겠다.  함석헌의 ‘자리’를 이해하기 위해 그보다 더 알려진 유영모의 ‘허공’과의 연관성을 살펴보자고 했지만 그 이해가 단순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여기서 그 이해를 그의 말을 속기로 기록한 <다석 유영모 어록>에 포함된 허공에 관한 그의 말을 통해서 구하고자 한다. 이 부분을 처음 읽고 들었던 생각은 함석헌을 이해하기 위해 유영모를 살펴볼 필요가 있듯이, 유영모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프랑스의 자크 데리다와 일본의 니시다 기타로다. 유영모의 ‘허공’이 지향했던 철학성은 서양철학 내부의 반성으로 20세기 내내 제기되어 왔던 존재론 중심의 사유에 대한 견제와 비판의 역사에서 비교 가능한 한 가지 예를 찾을 수 있고, 이미 20세기 일본에서 서양철학을 수용하기 위한 노력 끝에 도달한 문제의식과 맥락을 같이 한다. 구체적으로 공간을 뜻하는 데리다의 ‘코라’(Khora)와 니시다의 ‘장소’라는 개념을 간략하게나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니시다와 데리다를 유영모와 관련해 함께 떠올리는 것은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1980년대 데리다가 일본의 학자들과 교류했던 사실과 ‘코라’에 관한 그의 글이 같은 시기에 쓰인 사실 그리고 사적으로 알고 있는 정황들을 종합해 데리다의 ‘코라’가 니시다 또는 그의 후예들과의 사상적 대화 속에서 나오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니시다와 경도학파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그에 대한 연구가 이미 있는 지도 모른다). 니시다는 1926년 <장소>란 제목의 논문에서 플라톤의 코라를 지나가듯 언급했고, 그의 동양적인 장소의 논리가 서양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국주의 논란을 포함해 니시다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그가 서양근대철학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를 했고 그 결과를 불교적인 개념의 세계관 속에서 해석하려 했다는 사실은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니시다는 자신이 느꼈던 전통적인 서양철학의 문제를 극복할 개념으로 ‘장소의 논리’를 이해했고 사망하기 전 마지막 저술까지 이를 발전시킬 기회로 삼았을 정도로 그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 ‘허공’이란 개념은 서양의 존재론을 극복할 용어로 부각시킨 유영모도 같은 철학의 고민을 한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기존 철학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는 새로운 방식의 철학을 모색하고 철학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은 서양철학의 일상적인 행위에 속한다. 새로운 철학은 새롭게 되기 위해 철학의 역사가 마련해 준 경계 안에 머물 수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는 딜레마를 안게 된다. 그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은 전통 속에서 소외되었던 개념을 찾아 그 의미를 회복시켜 지배적인 전통의 절대성을 희석시키는 것이었다. 이성 중심의 서양 형이상학 전통을 비판하면서 해체라는 작용이 이미 철학의 행위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하는 데리다에게도 그런 작업은 필수적이었다. 여기서 데리다의 ‘코라’를 그러한 의도로 플라톤의 후기 작품 <티메우스> (플라톤 철학의 본류에서 벗어난 신비와 신화와 신학의 형태를 띠었던 책) 에서 차용한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데리다의 <코라Khora>라는 글을 통해 코라는 당시 인문학에서 유행하는 개념이 되었다. 여러 인문학의 분야에서 그 학문이 근대적인 학문으로 발전하면서 갖게 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개념으로 코라의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었다. 코라는 데리다가 플라톤의 철학에서 찾아낸 해체의 개념이었다. 간단히 말해 코라는 공간을 뜻하는 고대 희랍의 개념이었지만, 그 의미는 희랍의 문화와 신화 속에서 복잡하고도 난해하게 흩어져 있다. 그때 이미 ‘코라’는 영원하고, 파괴될 수 없고, 있는 모든 것을 담는, 그러나 있다고 말하기 힘든 그런 곳/것이었다. 데리다는 ‘코라’를 있고 없고, 크고 작고, 좋고 나쁨의 구분 밖에 있는 그 무엇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코라’는 로고스/이성의 논리 밖의 논리, 즉 기존 서양 학문의 전통적인 논리 밖의 논리를 제공했고, 데리다 이후 ‘코라’는 무엇인가로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바깥의 존재 또는 타자성의 원형으로도 이해되었다. 주체와 객체라는 도식과 체계 밖에 있지만, ‘코라’라 불리는 공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담아내는 영원함, 따라서 우리가 알 수도 없고 다가갈 수도 없고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또 그렇기 때문에 믿기도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데리다는 그의 글 <Khora코라>의 첫 문장에서 ‘코라’가 우리에게 이름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그 이름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 이름은 그것이 지칭하는 것보다 더 큰, 이름 밖의 것, 바로 다름과 바깥의 타자성이 도래했음을 선포한다는 것이었다.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것의 이름, 즉 구분과 대립과 (긍정과 부정의) 모순을 벗어난 것의 이름, 서구철학의 기본 논리를 벗어난 것의 이름이 바로 ‘코라’였다. (데리다에게 ‘코라’는 신학적인 것으로 의심받는 레비나스의 타인과 타자의 개념의 철학적인 근거를 플라톤으로부터 받은 용어를 통해 구축하고자 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유영모의 ‘빈탕한데’를 ‘코라’로 부를 수 있을까? 아니 만약 데리다가 동양의 無와 空의 개념을 자신이 물려받은 지적 유산으로 생각했다면 플라톤의 ‘코라’가 아니라 無와 空을 통해 해채의 근거를 찾지 않았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모두 서양철학의 역사가 남긴 같은 문제를 고민했고, ‘빈탕한데’와 ‘코라’는 그에 대한 그들의 응답이었고 해결의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데리다가 그 문제를 서양철학의 내부에서 북아프리카 출신 유대인의  입장에서 체감했다면, 유영모는 근대서양의 세계관이 보편적인 관념으로 인정받던 시대에 그 문제의 총체적인 여파를 식민주의와 강요된 근대의 체제와 정신 속에서 더 힘겹게 느끼고 있었다. 유영모의 사상은 자신이 선택한 고전적이고 수행적인 삶의 양식 때문에 혹은 그 자신이 근대적 학문의 방법론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양적이고 대안적인 영성이나 신비주의적인 사유로 평가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서양철학의 기본적인 한계에 대한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고, 그의 삶과 학문의 방식은 그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빈탕한데’와 ‘코라’는 언어와 문화를 넘는 단순비교가 불가능하지만, 비교가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짧은 글에서 충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유영모는 서양의 모순과 대립의 가치와 논리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이를 타자나 다름의 신비주의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수행적인 자세로 내면의 훈련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서 분리된 것을 통합적으로 보자고 했다. 유영모가 문제 삼았던 서양의 철학은 분리와 대립에 근거한 것이었다. 믿음과 지식의 분리, 물질과 정신의 분리, 주관과 객관의 분리, 상대와 절대의 분리, 유와 무의 분리, 몸과 맘의 분리에 기초한 철학이었다. 그는 이미 이와 같은 분리와 대립의 사유가 보편적인 것으로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유영모에게 ‘빈탕한데’는 바로 그런 분리가 문제되지 않는 그 이전의 상태를 말했다. ‘빈탕한’ 허공은 어떻게 그런 곳으로 이해될 수 있을까? 

데리다의 ‘코라’와 마찬가지로 유영모에게 ‘허공’은 모든 존재의 조건이었다. 주된 차이는 ‘허공’ 유영모에게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야 깨달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절대적인 것은 허공 밖에 없었다. 그 허공은 테두리가 없는, 무엇이라 정의내릴 수 없는 곳이었다. 만일 테두리가 있다는 그것은 물질에 불과했고, 물질의 테두리 역시도 허공이 만들어준 허공의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허공 없이 실존이나 진실이 있을 수 없었고, 더 나아가 하나라고 할 만한 것은 허공 밖에 없었다. 서양에서 즐겨 찾는 ‘존재’는 오히려 있는 것들을 너무 쉽게 이해하는 것으로, 허공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는 무한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허공을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부재의 상징으로 보는데 익숙하다. 유영모는 바로 여기서 철학의 출발을 찾았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생각하는데서 철학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나오고 무에서 유가 나왔다면 본래 없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본래 없는 것은 없이 계신 하느님’이었다. 그러나 ‘본래 없다’는 것이나 ‘없이 있다’는 것 등의 의미를 ‘종교’나 ‘학문’을 통해 알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유영모는 이를 깨닫기 위해 빈탕한 허공으로 가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서 구경하고 그에 맞춰 놀아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물론 그 뜻은 허공을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야 찾아가 그에 합당한 비움의 삶을 실천해야 그 의미를 기쁨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영모의 말과 삶은 바로 그런 실천의 길잡이 역할을 하자는 것으로 여겨진다. 

 

유영모의 사상을 서양의 문화와 사상이 보편성을 넘어 절대화 되던 시기에 그에 대한 반성과 대안을 모색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그 중요성은 반복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의 사상이 수행적인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그가 고집했던 걷는 삶은 가장 오래된 수행의 방법 중 하나였다. 유영모는 철학이 논리와 논문으로만 평가받던 시대에 글이 아니라 말로 진리를 증언하고자 했다. 서양 사상에 대한 대안으로 동양 사상에 기초한 개념을 등장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그 개념의 경험적인 근거를 찾아 한국말로 바꾸고자 노력했다. 일상을 추구하던 20세기의 철학이 언어를 분석하는데 그친 것에 비해 그는 먹고 사는 일상을 성찰과 수행의 과정으로 삼았다. 그의 사상은 동양적이고 신비적인 영성이 아니라 비판적인 철학의 실천으로 보아야 그 의미의 깊이에 다가갈 수 있다. 

유영모는 자신이 허공을 ‘빈탕한데’라는 말로 번역한 것을 마치 그 자체로 성과인 듯 선언했다. 왜 허공을 순수한 한국말로 바꾸어 쓰는 게 그에게 그렇게 중요했을까? 이미 허공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빈탕한데’라는 말이 매우 생소한 것임을 그도 잘 알고 있었을 터이다. ‘빈탕한데’라는 말로 밖에는 담아내지 못할 어떤 한국적인 경험 혹은 개념적인 이해가 있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한 더 분명한 설명이 앞으로 유영모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데리다의 ‘코라’가 없이 있는 가능성, 있음의 이성 밖의 이성, 주체와 객체의 구분 밖의 가능성, 긍정과 부정의 모순을 넘어서는 가능성의 이름이라고 했다. 유영모의 ‘빈탕한데’가 주체와 객체, 믿음과 지식, 몸과 마음, 있음과 없음의 분리를 극복할 논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왔다면, 데리다의 ‘코라’와의 연관성 아니면 최소한 서로를 연상시켜 이해할 근거는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서양문명의 벽돌담’ 밖에서의 사유를 추구했다. ‘코라’와는 달리 유영모가 ‘빈탕한데’를 갈 수 있는 곳으로 본 배경에는 그의 수행적이고 실천적인 세계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유영모와 데리다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 기회엔 니시다의 ‘장소’란 개념을 추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유영모의 허공과 함석헌의 자리에 대한 논의는 그 후로 미룬다. 

(참고도서에 관하여)

니시다의 1926년 글 <장소>의 영문 번역은 Place and Dialectic: Two Essays by Nishida Kitaro는 (Oxford University Press, 2018)에서 볼 수 있다.  <다석 유영모 어록>은 2002년 출판된 두레 출판사의 판본을 참고했다. 데리다의 <Khora>는 On the Name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5)에 실려 있다. 


ⓒ 웹진 <제3시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