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선의 힘] 직업 음악가 김목인과 작은 한 사람(심정용)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7. 19. 19:02

본문

직업 음악가 김목인과 작은 한 사람

심정용

얼마 전 오랜만에 김목인의 음악이 생각나 다시금 들어보았고, 그가 꾸준히 나의 깨달음이자 위로였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며 갈피를 못 잡던 나에게”나도 그게 어떤 기분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모든 것의 뒷면은 아직 가려져 있고”라며, 막 상경한'지망생'의 설렘과 불안이 뒤섞인 읊조림을 안겨주었다. 인간관계에서“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은/그런 세계”를 마주했을 때에는 섣불리 타자라는 불가능한 거리에 절망하는 대신, 인종과 젠더 등 숱한 범주와 정체성을 떠난'개인의 순간'을 상상하고 품도록 해 주었다. 한창 길을 잃어 방황할 때에는'그가 들판에 나간 건'을 통해서“인생은 계속되고 있었고/(......)/새들은 노래하고 있”다는 야속한 겸허함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깨우쳤던 건 그의 음악에 짙게 배어 있는 음악가로서의 자의식이다.이는 일견 멀리 떨어져 보이는 두 가지 층위를 동시에 걸치고 있는데, ‘예술’을 한다는 사명감과‘노동’을 한다는 자각이 그것이다. 음악가로서 스스로의 모습을 이야기하는'작은 한 사람'에서“관심없는 일도 해야 하는 또 다른 일주일”은 “노래는 부풀어 오르고/잊혀진 것들이 살짝 날아오르”는 경험과 함께한다. 반주와 담담한 나레이션으로만 이루어진'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는 그런 음악가로서의 양가적인 긴장을 충실히 담아낸다. 이를테면 그가 말하는 음악가란”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져도 완전히 가격이 매겨지진 않을” 어떤 것을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직업'이란 테두리의 안팎을 넘나드는 음악가로서의 김목인은 한편으로, 자신의 에세이집<직업으로서의 음악가>에서 앨범 작업과 공연 및 음악가의 수익 구조에 관한 현실적이고도 실무적인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풀어놓은 바 있다.

이런 그의 노랫말들을 곱씹다 보면, 자본의 질서에서 살아남는 일과 어떤 고귀한 예술을 지키는 일이 흔히 생각하듯 서로를 얽매기만 하는 대척 관계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라는 자각은 개인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부담스러운 의미만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한편으로 ‘교환가치를 담보한 사회적 성격’을 가진다. 예술성, 혹은 미적 가치 같은 것은 음악가가“세상에 노래가 그렇게 많은데도/나의 짧은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며 생계와 사회적 교환가치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헤맬 때, 그 사이 어딘가에서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예술이 사회와 동떨어진 채 어떤 특별한 개인의 영감에서 생겨난다는 인식은 낭만주의에 이르러서야 생겨났다. 새뮤얼 테일러 코울리지와 함께<서정 가요집>을 펴낸 윌리엄 워즈워스는 시가'강력한 감정의 자발적 범람'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결국 그 감정을 느끼고 언어로 잡아내는 개인의 역할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그 낭만주의는 당시 가속화되던 도시화와 산업화에 대한 거부, 이전의 고전주의에 대한 염증, 프랑스 혁명의 영향, 개인주의의 발흥이라는 토대 위에서야 가능해졌다. 실제 사람들의'피와 살'로 된 언어로 시를 쓰겠다던 낭만주의의 기획은 도시가 아닌 자연과 시골의 언어, 추상적이지 않은 구체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그 자체로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이었으며, 세상이라는 문제의식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계속해서'사회와 동떨어진 개인'이라는 환상과 수사적 형식만을 고집하던 낭만주의는 그 사회적 의미를 점차 잃었으며, 오늘날 공허한 수사를 의미하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대학원생으로서 방황은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연구와 교환가치 사이를 곁눈질만 할 여유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최근 조금씩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에 수료까지 해버린 이상 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도 하다. 그러면서 내가 읽어놓은 것이 너무 없어 쓰고 싶은 주제도 안 정해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런 문제의식으로 이것저것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접한 문장들이 막연하게 흩어져 있는 주제를 점차 모아 주었다. 어떤 문장 앞에서는 거기에 담긴 밀도와 깊이, 그만큼의 시간이 느껴져 몇 분간 한숨만 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귀신같은 천재의 번뜩이는 작업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정말 단단하고 체계적으로 꾸준히, 읽고 생각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합당한 만큼의 경의가 들었을 뿐이다.

요새는 신비 없는 초월을 자주 생각한다. 어느 한 순간에 신비로운 도약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축적이 결과적으로 초월처럼 보일 뿐이다. ‘노동’이‘예술’과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노력’은‘영감’과 만날 것이다. 이런 생각에는 모종의 겸허함이나 느긋함, 책임 같은 것들이 함께 담겨 있다. 내가 하지 않은, 그러므로 지금 할 수 없는 것들을 함부로 바라지 않고 기다리는 일. 내가 읽고 아는 만큼만 약속하는 일. 이는 구체적으로 연구주제를 생각하면서 더욱 절실히 느낀다. 프로파간다와 연구는 다르다. 하지만 연구가 만들어내는 작은 인식론적 균열은 결국 어떤 정치적 효과에 기여한다. 그러므로 공허한‘연구의 효용성’을 되풀이해서 묻기만 하지 말고 답답한 부분에 해당하는 책을 다시 펼쳐드는 편이 더욱 낫다.

실은 여전히 조금만 한 눈을 팔아도 불확실성에 삼켜져 버릴 것만 같다. 지나고 나서 무엇이 남았나 생각해도 머뭇거림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막상 그 불확실성 안에서는 머뭇거림 외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얼마 전까지 허우적거리던 이 불안에 언제고 다시 빠질 수 있으며, 그랬을 때에 얼마나 더 헤매게 될지도 알 수 없다. 책을 읽다가 집에 돌아오는 밤, 지하철에서 무기력이 다시금 스멀스멀 차오를 때가 있다.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야속하게 적다. 그저 거기에 휘말리지 않으려 하면서 오늘, 내일 해야 하는 일들을 단단히 붙잡는 정도이다. 그렇게 나의 작은 확실함들을 차곡차곡 모아두고,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꾸준함을 지키며 버티어 나간다. 내가 지나왔고 지나는 이 시간들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김목인은 그 믿음이 조금이나마 더 믿음직하도록 만들어 준다. ''댄디'에서 노래하듯, “우리 비록 이렇게 낮은 곳을 걸어가도 아주 많은 것들 볼 수 있으니”.

 *필자소개 

비교문학은 대관절 뭘 공부하는 건가요? 늘 질문받지만 매번 잘 대답 못하고 나도 모르고 심지어 아무래도 계속 모를 것만 같은 대학원생.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