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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뻐카충(문재승)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11. 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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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카충

문재승 (가족신문 월간 제주살이 편집장)

“엄마 잠깐 타지 말아봐요. 저 버스카드 충전 좀 하고 올게요”

“옘뱅하고 있네, 육시럴놈. 어제 집에서 충전 안하고 뭣했냐?”

“아니, 그런게 아니라 돈으로 충전하는 거에요!”

“야 이놈아 집에 돈이 읍냐, 쌀이 읍냐? 저 셰끼 저거 하여간 게을러 터져서 저거...”

엄마와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내 말이 엄마의 달팽이관을 통과하면 내용이 무엇이든 엄마의 오장육부를 뒤틀리게 하는 모양이다. 서른 넘어 취직도 못하고 집에서 쌀만 축내는 내가 꼴보기 싫은게 틀림없다. 

오랜만에 시내에 나왔다. 일주일에 한번씩 스터디를 통해 세상을 접하는데, 이 대책없는 취준생들이 오늘은 대책없이 시국만 걱정하는데 아주 환장하겄다. 아니 지들이 왜 조국 걱정을 해. 왜, 유승준 국내 복귀가 무산된 것도 걱정해 주지 그래. 

“우리 이런 이야기는 우리가 모인 목적상 도움이 안될거 같은데요” 

답답함이 나도 모르게 말로 새어나와 버렸다. 

“요새 면접때 밀레니얼의 시선이라고, 이런것들에 대해 묻기도 한대요. 밀레니얼이니 90년생이니 우리한테 붙여진 정체성을 이렇게 한번 자연스럽게 다져보는 거죠 뭐.”

이런 옘뱅할...이럴땐 엄마 말대로 진짜 지랄이 풍년이다. 밀레니얼이 밀레니얼스러움을 훈련하는 스터디라니. 스터디를 바꿔볼까했지만 제1저자로 참여한 논문은 커녕 녹물만 줄줄 흘러내리는 내 스펙과 나이의 받아줄 곳이 또 있을까 싶어 꾹 참고 있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볼까도 생각했으나 후배가 너무 많다. 어째 밀레니얼들이 밥 사달라고 더 밀레든다. 민망한건 둘째고, 밥이라도 한번 뜯기고 나면 일주일 살아내기 막막해진다. 팔천원 짜리 밥 한끼를 앞에 두고 이 밥이 나의 알바 한시간과 맞바꿀 만한 맛인지 경건하게 고민하는 나에게, 두사람 몫의 밥값은 가당치 않다.

역시, 답은 집이다. 그냥 집에서 벌레처럼 웅크리고 있으련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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