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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김밥천국은 김밥을 팝니다.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11. 2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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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은 김밥을 팝니다.

송기훈*

천국에 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자

천국의 재정상황이 어려워 지기 시작했다. 

천국에서는 오래된 성인들의 복지를 위해서 해마다 많은 헌금이 사용되었고

천국에 새로 전입해 온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서비스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천국 성도들의 불만이 고조되었고 

오랜 세월 보좌 위에서 평화롭게 천국을 통치하던 하느님은

역사상 최초로 통치의 위기를 느끼셨다. 

 

천국 장로회의 결과 천국전입자를 늘리는 방안이 검토되었고

능력이 있는 하느님이 직접 가시는 것이 어떠냐는 

베드로 수석 장로의 제안에 따라  

하느님의 지상행이 결정되었다.

 

천국의 환경과는 당연히 다를 것이라 생각했음에도

적응하기 힘든 환경과 시설들에 

생각보다 당황스러운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가장 십자가가 많은 지역을 골라 강림했지만

그 사실이 하느님을 안심시킬 수는 없었다. 

 

“1000명? 500명? 아니, 한명의 사람만 데리고 갈 수 있어도 

천국의 불안한 민심을 싹 쓸어버릴 수 있는데“ 생각하며

하느님은 길을 나섰다.  

 

비가 오던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지쳐버린 하느님은 

노원구 상계동의 어느 한 김밥천국에 들어갔다. 

   

바쁜 점심시간, 주문이 밀려있어 

한참을 기다려야했던 하느님은

다 식어버린 치즈 돈까스를 한 입 베어물고

뱃 속 깊은 곳에서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뚝뚝 끊기는 치즈 돈까스를 

꾸역꾸역 다 먹고

개운치 않은 입을 헹구려 

물을 한 잔 마셨는데 

물에서 쇠맛이 났다. 

 

김밥천국을 나온 하느님은 괜히 더부룩해진 배를 만지며 트림을 몇 번 한다. 

 

지나가던 한 사람이 불쾌한 눈빛으로 

하느님을 노려보며 지나간다.  

 

“쳇, 뭘 째려봐...”

괜히 머쓱해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도 어려웠고

천국에 가자는 소리는 우스갯소리로 여겨졌다.

 

우연히 마주친 어떤 사람은 천국은 실재가 아니라 

비유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하느님을 향해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과 

둘이 짝지어 전도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마저도 같은 말을 하지만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달랐다. 

 

결국 천국에 데려갈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머쓱하게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하느님은 누구도 천국에 데리고 갈 수 없었다. 

사람들의 천국행은 무능한 하느님 때문에 그렇게 무산되었다.

 

*필자소개

현재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고 있으며, 예수의 십자가를 우연히 졌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자신도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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