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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공명지조가 무슨 말이예요?(황용연)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12. 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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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지조가 무슨 말이예요?

황용연 (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박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객원연구원)

1.

어느 시사평론가가 한국 사회의 정치를 두고 "북한인과 일본인의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얼핏 무슨 말인가 쉽게 다가오지 않으신다면, 이렇게 말을 고치면 어떨까요. "종북과 토착왜구의 민주주의"

글을 쓰려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이맘때쯤 나오는 올해의 사자성어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공명지조(共命之鳥)라는 사자성어가 있다더군요. 몸은 하나인데 머리는 둘인 새. 한쪽 머리가 욕심 부려서 맛있는 거 많이 찾아 먹으니 다른 쪽 머리가 약 올라서 골려 줄려고 독을 삼켰다나 뭐라나요. 그러니 당연히 둘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거고. 

저 공명지조란 말이 교수님들이 올해의 한국 정치를 보면서 떠올린 사자성어라고 하니, 서두에 언급했던 "종북과 토착왜구의 민주주의"라는 말과도 연결될 만 하다 싶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외국인, 그것도 그냥 외국인도 아니고 침략자 취급을 하고 있는데, 정치라는 게 가능할 리가 없겠죠. 더 나아가면 '종북'의 눈에는 '토착왜구'들이 시해범으로 보일 테고, '토착왜구'들의 눈에는 '종북'들이 역적으로 보일 테고 말입니다. 그러니 전광훈 같은 인간(?)들이 "하나님도 까불면 죽어"라는 초특급 사고를 칠지언정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역적이 도리어 나라를 잡고 큰 소리치고 있는 상황일 터인데 말이지요.

'종북'과 '토착왜구' 중에 굳이 누가 더 잘못을 많이 하냐를 가린다면야, 외국인 취급을 먼저 시작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걸로 나라를 세웠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에는 대놓고 국회에 쳐들어와서 다른 사람들을 폭행하기까지 하는 '토착왜구' 쪽이긴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립관계에 대한 답은 대체로, 양쪽을 적당히 '절충'하거나, 혹은 잘못이 적은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라기보다, 양쪽 모두를 납득시킬 수 혹은 반박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방향에서 구해지는 법이겠지요. 

2.

생각을 이렇게 이어보다 보니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는데, 저 공명지조란 말 다음으로 2순위를 차지한게 어목혼주(魚目混珠)라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물고기 눈알과 진주가 뒤섞여서 구분할 수 없는 상태라나요. 이 말을 제안한 사람의 코멘트가 재미있었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현 검찰총장. 둘 다 현 대통령이 애정을 듬뿍 드러내면서 임명했던 사람들인데, 이 두 사람 중 누가 물고기 눈알이고 누가 진주인지, 혹은 둘 다 물고기 눈알이거나 둘 다 진주인지 현재로선 모른다 이런 뜻으로 제안한 거다라고 하더군요.

제 입장에서 보자면야, 조국이고 윤석열이고 둘 다 물고기 눈알이 아닐까 생각하긴 합니다만, 여기서 생각해 보고 싶은 건, 조국이 진주고 윤석열이 물고기 눈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자도, 처음에는 어쨌든 지금의 검사들 중에서 윤석열이 최상의 카드라고 여겼기에 그의 임명을 지지했었을 거라는 점입니다. 윤석열이 최상이라고 보일 만한 검사들의 풀을 탓하든, 그를 최상이라고 파악한 사람들의 안목을 탓하든 간에, 그 풀과 그 안목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건설해 온 합리성의 수준이 여기까지밖에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들이 아닐까요. 검사라는 제도의 차원에서, 그리고 그 제도를 개혁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인식의 차원에서, 양쪽 다에서 말입니다.

지금까지 정치 이야기만 쭉 해 왔는데, 사실 올해는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북조선과의 관계에서도, 많은 문제들이 드러났고 그것들 때문에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경우들이 많았지요.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지금까지 해 오던 것들을 상당히 많이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상황들이 많았구요. 

거기에 덧붙인다면, 정권을 시작할 때는 최저임금도 올린다, 아무리 많이 일해도 한 주에 52시간 이상은 안 하게 해 준다(여기서 한 가지 짚어 둘 것, 한국의 노동시간 제도는 엄연히 주'40시간'이지요. 주'52시간'이 아니라) 등등 그러더니, 올해는 줬다 뺐는다 싶은 순간들이 많기도 했구요. '도로공사'와 '김용희'라는 단어는 이 부분에선 확인사살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3.

그런데 여기서 다시 그 공명지조라는 말로 돌아가 본다면, 머리가 두 개인 건 그렇다 치는데, 몸통은 과연 뭘까요? 그 두 머리를 새 한 마리의 두 개의 머리로 만드는 몸통. 

요즘은 그 몸통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보통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종북'의 머리와 '토착왜구'의 머리는 저 두 개를 서로 한 가지씩 나눠 가졌다고 생각하고, 다른 쪽에도 은근히 욕심을 내지요. 그러니 역시 몸통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그러면 한 번 이렇게 물어 보지요. 이 새의 문제는 머리들끼리 싸우는 것, 그것 뿐일까요. 어쩌면 지금까지 적어왔던 올해의 많은 사건들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몸통이 이미, 어쩌면 처음부터, 병들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건 아닐런지.

이 글이 아마도 제가 미국에서 웹진 [제3시대]에 보내는 마지막 글이 될 것 같은데, 그 마지막 글을 쓰면서 아마 이런 질문을 안고 돌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몸통의 병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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