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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공간의 상품화가 빚는 비극(유승태)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09. 2. 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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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상품화가 빚는 비극

유승태 (본 연구소 상임 연구원)


참혹한 사고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용산참사를 보고 ‘기시감’을 말한다. 그리고 ‘그때’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서울의 ‘새로움’을 재현하는 대표적인 공간에서 시간의 역행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니, 역설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뉴(new)-’ 또는 ‘재-’라는 접두사는 ‘부자 되는 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는데, 이번 사고를 통해 서울의 도시공간을 재구성하는 ‘뉴타운’, ‘재개발’ 등의 달콤한 단어들이 사실은 공간의 상품화를 더욱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이 재확인된 것이다. 그리고 그 상품화 과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는 부자 되는 꿈을 꿀 자격을 갖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예 그 공간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함도 다시 확인하게 됐다. 용산참사는, 상품화 기획에 거치적거리는 모든 대상을 곱게 갈아 새로운 존재로 만드는(또는 존재의 자리에서 내쫓아버리는) ‘악마의 맷돌’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튼튼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용산4구역은 도시환경정비사업지역으로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하, 도촉법)의 적용을 받는 곳이다. 이 법은 2006년 7월부터 시행되기 시작해, ‘뉴타운 열풍’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주목해 봐야 할 점은 이 법의 시행이 ‘재개발’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더 강력한 공간의 상품화 패러다임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재개발’ 하면 오래된 주택들 헐어 새 아파트 짓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도촉법은, 기존의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소규모 블록을 개발 단위로 보았던 데 비해, 광역 단위 또는 복합 자족도시 단위를 개발의 범주로 설정하고 있다. 도촉법은 개발 권역 내의 주거, 상업, 업무 등 생활권을 하나의 세트로 묶어 개발 계획을 먼저 세우고 개발을 진행하게 된다. 도촉법의 적용을 받는 지역은 중소형 아파트 건설의무가 완화되며, 건폐율과 용적률 제한도 대폭 완화된다. 건폐율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건폐율이 높을수록 건물을 넓게 지을 수 있다. 따라서 건폐율 완화는 땅값을 올리는 유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연면적 비율을 말하는데, 용적률이 높을수록 고층건물을 지을 수 있고, 그만큼 건물주의 이득이 커진다. 정리하면, 도촉법 적용 지역, 그중에서도 용산4구역과 같이 도시환경정비사업지역으로 선정된 곳은 이윤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초고층 그리고 중대형 평형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 공화국』에서 한국에서 건폐율 및 용적률의 변화와 사회 공간의 차별화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초고층 아파트 단지 건설에 따른 지역의 조밀화는 도시 형태에 변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조밀화로 전체 가구 수는 소폭 증가하나 가구당 가족 수가 감소해 단지의 전체 인구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아파트 평수가 커지고 전세가가 급등하면서 기존 거주자 중 극히 일부만 단지에 남고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전 거주자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우며 상층 중산층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용산4구역에는 40층 이상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도촉법을 통해 건폐율, 용적률, 중소형 아파트 건설의무 ‘규제’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용산4구역은 줄레조가 말한 것과 같은 도시 형태 변화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 인터넷 언론에 따르면, 삼성물산-국민연금 컨소시엄이 개발사업자로 국제업무지구(용산4구역은 그 배후단지 중 하나다.)를 개발하는데, 총 사업비가 28조 원이며, 이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사업비 15조 원의 배에 달한다. 이러한 막대한 사업 추진의 결과, 이전에 비해 이 지역 땅값이 10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오마이뉴스 2009.01.23) 이쯤 되면, 이미 평범한 개인, 중산층 의식을 갖고 있으나 그 경제력은 중산층 기준에 미달하는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용산4구역은 들어가기를 상상하는 것조차 과분한 ‘부자들의 꿈’을 재현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이 초호화 주상복합건물의 현관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 자족성을 갖는 광역 단위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도촉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용산참사는 공간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기획 속에서 ‘부자 되는 꿈’이 좌절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주는 비극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공간의 상품화가 한 단계 마무리되고 난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강남을 비롯한 서울의 여러 아파트 단지들과 서울 주변 신도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가난한 거주자를 폭력으로 몰아내고 거기에 번듯한 건물들을 세우는 역사는 이미 수차례 반복돼 왔다. 어쩌면 진짜 비극의 원인은 이렇게 수도 없이 반복돼 온 폭력의 구조를, 그 구조가 생산한 상품을 아무 느낌 없이, 아니 오히려 즐겁게 소비하는 우리의 심성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악마의 맷돌’은, 상품화의 구조는 우리의 무감각 덕에 그렇게 튼튼하게 작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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