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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호주가 타들어 가고 있다.(박여라)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20. 1. 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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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가 타들어가고 있다.

박여라*

여러 달 전에 본 인기 티브이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와인을 꽤 좋아한다고 알려진 분에게 다른 참여자들이 이 지방 와인이 왜 이렇게 유명하냐고 물었다. 그분이 첫째로 이 지역 물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와인을 만들 때는 물을 한 방울도 더하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물은 와인의 핵심 요소가 아니다. 

물론 와인 지역의 강수량은 중요하다. 비가 어느 정도 와야 한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와인 포도가 자란 지역의 속성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게 하기 위해 일부러 관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뭄이 너무 심하거나 묘목을 키울 때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가뭄이어도 관개는 포도나무의 성장을 촉진하지 않거나 수확량을 늘리지 않는 정도까지만 허용한다. 특히 과실이 익어 수확을 앞두고 관개는 물론 하늘이 내리는 비도 과실 맛을 싱겁게 만드니 전혀 반갑지 않다.  

와인 지역은 저마다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 과정에 관련한 규정이 많고 복잡하다. 대규모로 저렴한 와인을 생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포도밭에서 포도나무 분포와 작물량에 대한 규정과 함께 관개를 허용하냐 금지하냐에 관한 규정이 있다. 그 정도로 나무뿌리가 스스로 힘겹게 물을 찾는 것이 과실의 질, 결과물로서 와인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친다. 

호주가 불에 타고 있다.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엔 캘리포니아 산불처럼 건조한 계절에 생기는 자연현상이니 곧 지나갈 것이라 여겼다. (물론 캘리포니아 산불 계절도 근래 들어 가벼이 여길만하지 않다.) 지난해 9월 시작한 불은 1월 초 현재 서울 면적 130배에 달하는 지역을 태우고 있다. 사람은 24명이 목숨을 잃었고, 시드니대학교는 화마가 동물 8억 마리 이상을 삼켰다고 추정한다. 모두 알다시피 호주에만 사는 귀한 동물이 얼마나 여러 종류인가.  

무엇보다 지난 12주 동안 들불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호주가 1년 동안 배출하는 평균량의 2/3라고 한다. (방화 문제도 있다지만) 무엇보다도 40도를 넘나드는 폭염과 강풍, 그리고 지난해 극심한 가뭄이 꺼지지 않는 들불의 원인이라고 한다. 호주는 2019년 1900년 이후 최저 강수량을 기록했다. 평균 기온과 최고 기온이 2013년 세운 기록을 갈아치웠다. 전문가들은 이번 들불을 이상기후의 악순환으로 본다. 정말이지 무서운 속도와 강도로 엄습하고 있다.  

와인 지역은 직접적인 피해는 많이 입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워낙 전체 피해 정도와 규모가 심각하다. 아무리 사람이 만든 기술과 장치가 와인 포도 생산 조건을 낫게 만든다 해도 와인 산업은 포도 생산이 자연 제약에서 크게 벗어날 도리가 없다. 함박눈이었어야 할 비가 종일 장마처럼 내린 어제 그제 내도록 마음이 불편했다. 아, 이 비가 모두 들불로 타들어 가는 호주에 내렸으면!

*필자소개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썼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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