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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용수 선생의 발언과 정의연] 특집호를 발행하며(정용택)

특집

by 제3시대 2020. 5. 2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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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호를 발행하며

정용택(본 연구소 연구실장)

최근 우리 사회에서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대하여, 이 단체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위안부 피해당사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이용수 선생이 제기하고 있는 비판과 폭로는 우리로 하여금 사회운동(또는 인권운동)에서 피해당사자와 활동가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쟁점을 다시 마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피해당사자의 고통을 증언하고 그의 회복을 돕는 운동에서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는 그 사람의 피해의 기억을 복원하면서 그를 ‘피해자’로 계속해서 고착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피해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아니 그것을 발 딛고 일어서서 그가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획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함께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으면서 그가 선택하고 행동하고 성취할 수 있는 기회의 집합을 최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조건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이리스 영과 아마티아 센과 마사 누스바움 등이 공유하는 이른바 역량 증진적 정의관입니다. 

이러한 정의관에서는 피해당사자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몫에만 관심을 한정하지 않고, 좀 더 적극적으로 피해당사자의 억압된 내적역량을 복원하고 거기에 다시 그가 성취할 수 있는 기능까지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상황 및 조건의 구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결국 역량 접근이 피해당사자에게 일어난 불의를 그가 물질적 재화나 사회적 지위, 권리, 소득, 권력, 기회, 자존감, 사회적 자본 등을 공정하게 분배받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영은 “분배의 비유를 비물질적인 사회적 재화에게까지 확장하게 되면, 분배의 개념은 비물질적인 재화들을 사회적 관계와 사회적 과정의 함수가 아니라 정태적인 사물인 것처럼 재현하게 된다”고 비판하며, 오히려 “행동과 행동의 결정을 포함하고, 나아가서 역량을 계발하고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수단들의 제공도 포함하는 보다 넓은 맥락의 정의 담론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용수 선생과 정의연의 갈등 역시 피해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만들어 온 위안부운동의 성과를 후자가 독점했고, 그 과정에서 피해당사자들은 물질적 차원에서든 비물질적 차원에서든 자신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받지 못하고 운동의 도구로 소외되었다는 불만에서 비롯된 인정투쟁의 일종으로 보는 단순한 관찰을 넘어, 이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이 운동이 과연 피해당사자들뿐만 아니라 활동가 자신들의 실질적 자유를 증진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해왔는가를 다시 성찰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더 나아가 이 운동을 분배적 정의관(‘이익과 부담의 올바른 배분’)에 기초하여 정당화하고 평가하고 지지하는 것을 넘어, 이 운동이 수행되는 과정 및 현장 그 자체도 끊임없이 ‘지배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목표가 응당 적용되어야 하는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것의 일부로 사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것은 피해당사자의 발화나 서사에서조차도 ‘말로 표현된 것’, 명백하게 드러난 것의 배후에 놓인 암묵적이며 ‘말해지지 않은 그 무엇’을 적극적으로 독해하는 것을 뜻하기에 말해진 것들을 가지고 어느 한 쪽을 손쉽게 지지하기보다는 이 사태 전반에서 드러난 문제의 본질을 좀 더 깊이 사유하는 지난한 과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웹진 제3시대>는, ‘피해자민족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우리 모두가 성찰해야 할 지점을 환기시키고 있는 신학자 조민아 선생의 글을 특집호의 형태로 독자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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