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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마당] 하느님을 들먹거리기 전에 (한문덕)

목회마당

by 제3시대 2009. 10. 1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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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들먹거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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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각주:1]
(향린교회 부목사)

2008년 12월 30일 오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의 할머니는 1911년생이시다. 그러니까 자그만치 98년이나 사시다 하늘로 가셨다. 무학(無學)이기에 무지몽매하지만 악착같이 살았다. 그러나 인생 내내 가난은 면치 못했고, 토속신앙을 오래도록 간직하다가 암 걸린 셋째 딸의 눈물어린 전도로 여든 살이 훌쩍 넘은 말년에 교회에 다니셨던 할머니였다. 나는 귀한 맏손자였기에 할머니께 귀여움을 많이 받으며 자랐고, 또 할머니랑 친하게 얘기도 나누고 흰머리도 뽑아드리고 귀지도 파드리곤 했다.

할머니는 TV를 보시며 언제나 중얼거리셨다. “참 좋은 세상이다~ 방안에 앉아서 세상 팔도를 다 보니 말이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것들이 움직이냐”며 마냥 신기해 하셨다. 언젠가 한번은 어머니가 나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신다. 네 할머니는 너랑 친하니까 네가 잘 말씀드려보라고~. 밤새 콩을 고르시다가 12시가 넘어서야 주무시는 어머니가 한번은 일이 많아 늦게 자서 피곤하다고 할머니께 말씀하신 모양이다. 그러니까 할머니 왈 “겨울은 밤이 긴데 왜 피곤해~” 어머니 왈 “밤이 길어도 12시 넘어서 자면 잠을 잔 시간이 얼마 안 되니까 당연히 피곤하죠?” 할머니는 이해를 못하신다. “겨울은 밤이 긴데 왜 피곤하지? 겨울은 밤이 긴데 말이야.” 이런 할머니의 쇠뿔 같은 고집과 우격다짐으로 나의 어머니는 고된 시집살이를 하셨다. 또 한 번은 옆 동네에 마실 다녀오시고서는 한 마디 하신다. “한태네 집에 갔더니 시계에서 뻐꾸기가 나와서 울더라. 근데 뻐꾸긴 산에서 울어야지 집에서 우니까 영 이상하드라.”

화투 치는 것을 워낙 좋아하셔서, 삼태기를 찾으며 “사쿠라가 어디 갔냐?”라고 말씀 하시던 분! 네 장씩 짝을 맞추며 홍단 청단 비약 똥약 등등이 있는 ‘민화투’를 치시다가 ‘고스톱’이라는 것이 동네에 들어오자 혼자서 세 패를 만들어 놓고 고스톱을 연습하시던 분이셨다. 일제 시대에도 일본순사들과 둘러 앉아 화투를 치셨다고 얘기를 해 주시곤 했다. 한국 전쟁 난리통에 피난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 왔는데 이불 속에 총알이 여러 개 박혀 있었다는 이야기며, 중공군이 내려와서 무서워 방안으로 숨었는데 중공군은 부엌을 둘러보고 흐트러진 신발을 나란히 정리해 주고 떠났다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깨너머로 들은 풍월로 숙영낭자전을 외우셨고, 황국신민서사를 일본말로 하시던 기억도 난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일산 쪽으로 가다보면 마두(馬頭)역이 나온다. 할머니는 말머리 동네에서 태어나 거기서 사시다가 혼인하여 딸 둘을 얻고 남편과 사별한 후 나의 할아버지에게 재취를 하셨다. 우리 집은 교하니까 말머리에서 차를 타고 30분이면 오는 거리이다. 평생을 경기도 고양/파주의 한 지역에서 보내신 것이다. 9살에 3.1 독립만세 운동을 겪었을 것이고, 35살까지 일제치하에 살다가, 전쟁과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다 겪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배움이 없었기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전혀 모르고 그저 살기 위해 살았을 뿐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문덕이가 초등학교나 들어가는 것을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우리 문덕이가 대학가는 것이나 보고 죽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니 내가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아 증손자까지 보시고, 하늘이 주신 수명을 다하고 돌아가셨다. 교회를 나가던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 제사에서 절을 안 하자 “저 망할 놈이 나 죽어도 제사 한 번 안 지내 주겠구먼!” 하시던 분이 내가 목사가 돼서 차를 타고 가면 “하느님,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죠! 차에도 계시죠. 그저 우리 문덕이 우로 가나 좌로 가나 앉으나 서나 늘 함께 해 주십사” 하시며 옛날 무당 불러서 굿하면서 손을 빌던 그 모양 그대로 기도하시던 분이셨다. 큰 글자 찬송가를 하나 사 드렸는데 그것을 달달 외우시며 특히 502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를 좋아하셨던 할머니셨다. 그렇게 교인이 된 어느 날 할머니의 딸들-나에겐 고모님들-이 찾아와서 이것 저것 물으셨다. “교회에 나가니까 어떠냐? 좋냐?” “뭐라고 기도하냐?” 등등 그런데 할머니의 대답이 가관(可觀)이다. “기도하지. 늘 너희들 위해서 기도해. 하느님 들먹거리면서 말이야”

1911년부터 2008년까지 촌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남편에게 대접 못 받는 대신 며느리를 구박하며 삶을 살아냈던 한 여인의 인생에서 교회는 어떤 의미일까?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역사 속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름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지만 굴절되고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 세속사회로부터 칭찬이 아닌 비난을 함께 받아온 한국 교회는 이 땅의 민중의 삶에 무엇으로 기억되는 걸까? 방안에 앉아서 전 세계의 소식을 듣고, 숲 속의 뻐꾸기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과학시대에 종교는 무엇일까? 일제 식민지의 수치의 역사와 민족분단의 고통과 아픔 앞에서 그리스도교는 무엇이었나?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교회에서 교인들이 하느님 들먹거리며 기도하고 있다. 강단에서 목사들이 또 하느님 들먹거리며 열심히 외치고 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이시여!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들먹거릴 때 우리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어쩌면 하느님을 들먹거리기 전에 구구절절한 한 인간의 삶을 먼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구질구질 맞은 그 삶에서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아니 바로 거기서 그 자리에서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느님을 들먹거릴 때 과연 나의 신앙은 무엇일까? 한 인간의 삶과 죽음 앞에서, 그리고 나와 너 사이에서, 우리들의 신앙은 무엇일까?

마당에서 동네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시끄럽다며 물 한 바가지 퍼서 끼얹는 극성쟁이 할머니가 왠지 보고 싶다. 나지막하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덕아, 이리와 앉아라. 이 할미랑 얘기 좀 하자. 오늘이 며칠이냐? 초닷새라고? 으응~. 그래, 그래. 사람은 자기 얘기도 하고, 남 소리도 듣고 그러며 사는 게지. 이리 오렴~” ⓒ 웹진 <제3시대>

  1. 하느님 발길에 채여 산다는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있다. 하느님 발길에 채인 것이 자유라는 역설을 참으로 깨달을 날이 오기를 꿈꾼다. 하늘과 땅은 사랑하지 않는다(天地不仁)는 노자(老子)의 말과 한 걸음 물러나야 진정한 자기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退步就己)는 일본의 선승(禪僧)의 경구 그리고 전도서 5장 1절의 말씀 “하느님께 무엇인가 바치겠다고 너무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조급하게 입을 열지도 말라.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매일 중얼거리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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