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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정의연 사태 이후의 ‘위안부’ 운동 (1부)

특집

by 제3시대 2020. 6. 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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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연 사태 이후의 ‘위안부’ 운동 (1부)

 

일시: 2020년 6월 1일 (월) / 장소: 해아서교

참석자: 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조교수, 기독교윤리 전공), 백승덕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엄기호 (문화연구자), 정용택 (본 연구소 연구실장 / 진행 및 정리)

편집자 주: 본 연구소는 지난 6월 1일, 정기 월례포럼을 대신하여 “정의연 사태 이후의 ‘위안부’ 운동”이라는 주제로 세 분의 연구자를 모시고 비공개 특별좌담회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녹취록을 이번 호부터 <웹진 제3시대>에 총 3회에 걸쳐 매주 게재할 예정입니다.

 

정용택: 오늘은 이렇게 세 분 선생님 모시고 비공개 좌담회 형식으로 제3시대 월례포럼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를 말씀드리자면, 지난 5월 26일에 저희 연구소의 <웹진 제3시대>는 ‘이용수 선생의 발언과 정의연’이라는 주제로 특집호를 발행하면서 조민아 선생님의 글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연구소 창립 이래 <웹진 제3시대>가 이렇게 많이 공유되고 이렇게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일 텐데요. 많은 지지와 공감도 얻었지만, 반론과 비판도 많이 제기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필자이신 조민아 선생님도 그렇고 기획을 한 저희도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에 일일이 답변을 하기 보다는 그 글을 통해서 제기된 토론의 과제를 추후에 다시 제대로 짚어봐야겠다 싶어서 이렇게 좌담회의 형태로 월례포럼을 기획하여 논의의 자리를 만든 것이고요. 그래서 먼저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리는 당사자가 아니라 당사자의 ‘곁’임을 강조해 오신 엄기호 선생님을 처음 섭외했고, 역사학 연구자로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글을 쓰신 바 있는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백승덕 선생님을 섭외했으며, 마지막으로 윤리학을 전공하는 여성신학자로서 이번 사안에 대해 페이스북에서 활발히 의견을 제시해주신 김혜령 선생님을 차례로 섭외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희가 한꺼번에 많은 주제를 다루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요. 가능하면 현재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우선 정대협/정의연의 운동방식을 비판할 때 자주 지적되고 있는 ‘민족주의’ 문제를 짚어 봤으면 합니다. 이어서 인권운동 또는 시민운동에서 피해당사자와 활동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은 이른바 피해자 중심주의’라 불리는 어떤 입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것이 도대체 운동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현재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의미부여하고 해석하면 좋을지 얘기해 보면 좋을 것 같고요. 말씀드린 것 외에도 선생님들 각자가 보시기에, 이번 사태가 드러낸 의미 있는 논점이나 생산적인 쟁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무엇인지 한두 가지 정도씩 제시해주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먼저 백승덕 선생님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주시죠. 

만일 민족을 경유하지 않았다면…?

백승덕: 제가 활동하고 있는 연구소에서도 성명서 발표 등에 관한 요구가 있었는데요. 내부에서 논의를 한 뒤로 입장 표명을 유보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결정이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역사학자들이 이 사태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역사학, 특히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구술 증언 등을 보조적인 사료로 보는 편이고 게다가 연구주제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연구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사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아니라 여성학 연구자들이나 인류학, 사회학자들이 더 많이 다뤄왔지요. 그런데 희한하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마치 역사학의 문제처럼 인식되어서 정의연 관련 논란에 대해서도 역사학자들에게 언론매체에서 코멘트를 부탁하는 등 마이크가 넘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의연 관련 논란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역사연구자가 없는데 역사연구자들에게 입장을 묻는 식으로 괴리가 발생하고 있는 게 처음엔 많이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역사학의 일일까? 역사연구자들은 정의연 관련 논란에 어떻게 개입하는 것이 적절할까?란 질문을 던지게 되었지요. 역사연구자들이 이 논란과 관련해서 자기 전문성에 기반을 두고서 어떤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이 현재 불가능하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정의연 관련 논란은 사회운동에 결합하고 있는 활동가들이나 혹은 사회운동론을 연구하고 있는 사회학자들이나 인류학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의연 관련 논란은 그 이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 불거진 논란들과도 성격이 다른데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이전까지의 논점은 “식민지 시기에 일본군 위안부 동원과 관련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증언하는 피해가 식민지 시기에 실제로 있었는가?”, “생존자들이 겪었다고 증언했던 경험들이 실증이 가능한 것인가?”처럼 1930~40년대의 경험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둘러싼 것들이었지요. 그런데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는 식민지 시기의 경험이 아니라 최근 20~30년간의 정대협/정의연 운동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의 논란들과 굉장히 결이 다릅니다. 지금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은 1980년대를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1990년대 이후의 사회운동에 대한 전문성은 전혀 없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엄기호: 이 문제가 벌어지고 난 다음에 그 우리가 돌아봐야 되고 하는 건 엄청나게 많죠. 첫번째로 아주 바닥에 깔려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3세계의 저항 운동이 민족을 경유하지 않고 가능하냐?”라는 질문입니다. 저는 지난번 <웹진 제3시대>에 실린 조민아 선생 글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 중에 하나가 그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 한국에 나타나는 경향 중의 하나가 이 민족을 절대시하던 지난 시대가 억압의 다차원성을 억압하던 것에 대한 성찰로서 탈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랑 민족이라고 하는 범주를 버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최근에는 아예 민족이라는 범주 자체가 억압적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경향들도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은 대단히 논쟁적인 부분입니다. 특히 제3세계 국가들은 거의 다 식민지의 경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식민지를 경험했던 사회에서 운동을 펼쳐 나가는 데 민족을 경유하지 않고 탈식민적 과제를 얘기한다는 게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다면 어떻게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지가 관건일 것입니다. 조민아 선생이 얘기하신 것처럼 민족을 경유했을 때 나타나는 위험이라고 하는 것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언제나 긴장관계에 있는 거죠.

또 하나의 주제가 지금 정용택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피해자 혹은 당사자와 운동가 혹은 활동가의 관계입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비단 정의연만이 아닙니다. 지난 10년 정도 사이에 대부분의 사회운동에서 제기되고 벌어진 문제입니다. 물론 이것은 둘 사이의 관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 둘의 관계를 변화시킨 환경 전체를 살펴봐야 합니다. 미디어의 변화 등 구조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이 문제의 바닥에 깔려 있는 철학적인 문제는 스피박이 말했던 거 것처럼, 서발턴이 과연 말을 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에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지금까지 주로 집중한 것은 언어의 유무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말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청중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내가 아무리 말할 수 있어도 청중이 없으면, 그건 말을 한 게 아니죠. 서구적 관점 속에서 보면 말이죠. 그런데 그걸 뒤집어서 얘기하면 피해자가 말할 수 있냐 없냐의 얘기는 피해자에게는 청중이 없었고 청중을 만날 방법이 없었다는 얘기에요.

특히 공공의(public) 청중이라고 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 퍼블릭한 청중을 불러 모으거나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사실 연구자와 활동가였습니다. 학회를 통해서건 뭘 통해서건, 이런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미디어의 변화라고 하는 게 누구라도 단 한 명의 청중은 불러 모을 수 있는 세상이 됐잖아요. 내가 뭐 페이스북에다가 막 천인공노할 아무도 용납할 수 없는, 어떻게 인간이 이런 글을 쓸 수가 있냐라는 글을 써도 그걸 좋아요 누르는 사람, 지구 반대편에서라도 한두 명은 찾을 거예요. 이 한두 명이 모이는 순간, 이 사람은 말을 하게 되거든요. 이런 점에서 보면 스피박의 “Can the Subaltern Speak?”라고 하는 것의 사회적 전제 조건이 되는 어떤 한 축이 무너졌다고 보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의 질문은 도대체 그 증언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과정에서 생성되고 생산되는 담론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흔히 증언을 피해당사자가 한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제가 볼 때는 대부분의 증언은 운동의 산물이거든요. 증언에는 주인이 없어요. 운동이 주인입니다. 왜냐하면 피해당사자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 옆에 누가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가에 따라 내용이 많이 달라집니다. 이런 식으로 보면 증언은 그 증언 ‘운동’이 공동으로 창작한 공동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이게 최근 신자유주의적 경향과 맞물려 소유권 다툼 비슷하게 되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혜령: 저는 백승덕 선생님께서 선생님을 비롯해서 역사학자들에게 기자들이 최근에 많이 전화해서 정대협/정의연 운동에 대해 물어본다고 말씀하셨던 것에서 출발하고 싶어요. 실제로 한국사 연구에서는 소외되었던 영역인데 이제 와서 역사학자들에게 물어보는 심리가 뭘까 생각해 보고 싶어요. 아마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대협/정의연 운동에 대한 정당성과 ‘위안부’ 역사의 진위 여부를 역사학자들에게 명백하게 판단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했겠지요. 그러나 오히려 그런 태도야 말로 역사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빈곤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증주의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사실(fact)의 증거 차원으로 전제하면서 역사학자들이 그걸 다 알고 있을 것이고 재판할 수 있을 것처럼 사람들은 흔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역사라는 것 자체가 서사(narrative)이고, 내러티브라는 것은 어떻게 기술되느냐에 따라서 방향을 완전히 달라질 수가 있잖아요. 사실은 정대협/정의연이야말로 ‘위안부’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름의 역사 서술과 내러티브를 뚝심 있게 만들어 온 단체예요. 처음에 내러티브가 형성되기 시작하였을 때에는 아무래도 민족주의적 입장이 강했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오늘날 젠더적 관점에서 볼 때 지난 운동이 “순결한 우리민족의 누이, ‘위안부’ 소녀”라는 순결주의 이미지에 의존하였겠지요. 사람들이 이점을 많이 비판하는데, 사실 국가가 ‘위안부’의 역사 서술에 공식적으로 거의 나서지 않았던 상황에서 그나마 민족주의나 순결주의를 거치지 않았다면, ‘위안부’ 역사서술이 우리에게 존재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선은 인정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가 민족주의를 ‘문제’라고 여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잖아요. 붉은악마가 온 광장을 점령하며 ‘대한민국’을 외쳤던 2002년에는 ‘한민족’(韓民族)이라는 말이 대중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말이었지, 촌스럽거나 문제적인 관념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정대협/정의연한테 왜 민족주의적 운동으로 방향을 잡아왔냐고 현재적 관점에서 비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있다고 봐요. 물론 저도 이제 와서 좀 살펴보니, ‘위안부’ 생존자 구술에 참여했던 일부 여성학자들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내부적으로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미 있어 왔더라구요. 그러나 결국 연구자들은 연구에 그쳤을 뿐 ‘위안부’ 할머니들의 곁에서 삶을 보살피고 운동을 펼쳤던 것은 정대협/정의연 운동가들의 전적인 몫이자 책임으로 방기된 측면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대협/정의연 운동이 정말로 민족주의나 순결주의에 매몰된, 심각한 문제적 운동이었다면 그만큼 연구자들과 운동가들이 내부적 투쟁을 끈질기게 해냈어야 했겠죠. 내부적 문제제기가 힘이 약했다면, 그것 역시 정대협/정의연 외부의 연구자들이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것이겠지요. 운동의 헤게모니를 꽉 쥐고 있었던 것이 정대협/정의연이니 현재 펼쳐진 운동 방향에 대한 모든 논란의 원인과 책임도 모두 두 단체에게, 특히 문미향 전대표에게 있다고 모두 뒤집어씌우는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사실 정대협이나 정의연의 관점에서 볼 때 민족주의나 순결주의로 지난 30여년의 운동을 폄하하는 것도 억울한 측면이 있잖아요. 정대협은 2016년 ‘나비기금’을 조성하여 전시성폭력 피해자 구제에 힘쓴 이들을 격려하는 ‘김복동 나비평화상’을 제정하는데, 그 첫 번째 상을 주한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운동을 펼친 단체들에게 나누어 주었거든요. 또한  베트남전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들과 콩고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부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진행해 오기도 하면서, ‘위안부’ 운동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었던 민족주의를 탈피하려고 하는 반성적 성찰과 국제적 연대로 최근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었음을 의미 있게 평가해야 한다고 보아요.  

역사서술은 완료가 없고 역사를 기록하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보완·변경되는 공동체적 작업이자 공동체적 유산이에요. 그러니 ‘위안부’ 운동 역시 시대를 거치며 당연히 시대의 정신성에 맞게 새롭게 추가되기도 하고, 비판받거나 수정되기도 해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특성을 잊고, 과거의 시대정신의 한계에서 이루어진 ‘위안부’ 운동과 역사서술을 현재적 시점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라거나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역사서술에 대한 몰이해지요. 

정용택: 지금 벌써 세 가지 정도의 논점을 제기해주셨는데요. 사실 모두 연결되는 문제들이죠.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우선 백승덕 선생님은 역사학계의 성명서 사건을 예로 드셔서 결국 이것은 최근 2~30년간의 운동, ‘위안부’를 중심적으로 다루는 또는 대상으로 한 그 어떤 특정 운동에 관한 논쟁이다, 그러니까 일단 역사학계가 개입해서 판단을 내리거나 입장을 낼 문제는 아니라고 보신다는 것이지요?

백승덕: 흔히 “이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니까 역사문제이고 그래서 역사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고 기대하는 통념과 역사학자들이 실제로 다루는 연구주제나 방법론 사이에는 너무 큰 괴리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많이 느꼈죠.

김혜령: 요즘 페이스북을 보면 박유하 교수의 과거 주장을 다시금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 났더라구요.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 이상적 피해자와는 다른 삶의 궤적을 지닌 매우 다양한 피해자들의 피해자성을 강조하고, 국가폭력보다는 제국의 폭력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인데. 그러한 주장들을 이제 와서 들어보니,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어요. 그러나 저는 피해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나 전시 상황의 제국적 폭력을 인지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점에 수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다보면 전쟁범죄의 책임을 법정에서 가리고 역사에 기록해서 기억하겠다는 사회운동의 의지를 약화시키게 될 수 있는 문제로 봉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같이 이제는 더 이상 ‘앵벌이’처럼 누군가의 역사서술의 이용되지 않고 싶다라는 용감한 선언이 개인의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가 안 되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됐을 때 문제점이 뭐냐 하면 전쟁 시에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사기 혹은 납치나 감금, 성폭력이나 강제 성매매 등과 같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증언하고 기록하며 형법상의 죄를 묻고, 나아가 그 일체를 기억함으로써 앞으로 이런 일이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역사적 교훈과 방지 제도들을 만드는 일에 힘이 빠지게 되요.   

과거의 피해자들에게 보상이든 배상이든 신속히 피해에 대한 손실을 최대한 빨리 보존해 드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더 이상 여성들이 전시 성폭력에 노출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거잖아요. 후세대 측면에서는 그 후자가 더 중요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불행히도 피해자 개인은 그런 새로운 구조와 상관없을 수 있거든요. 내 고통이 너무 커서 내 고통에서 만큼은 얼른 벗어나고 싶은 측면이 인간 누구에게나 분명히 있고, 그래서 우리도 그걸 존중해줘야 되는 측면이 있지요. 어쨌든 피해자 개인의 고통을 풀어주는 것이 운동의 출발인 것은 분명하지만, 거기에 머물 수 없는 것 또한 우리가 분명히 인지해야하는 점이예요. 여기에만 머문다면 국제 사법재판소가 모두 담당하여 처리하면 될 뿐이지요.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미래 세대에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역사적 교훈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아무리 이것이 중요하더라도 피해자들 모두가 이러한 운동의 미래에 동의하고 참여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 운동의 현실이기도 하구요. 

실제로 이번 정의연과 나눔의 집에 대한 기사에 달리는 무수히 많은 댓글들을 보아도, 시민들의 상당수가 ‘위안부’ 운동을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나 복지차원의 활동으로 좁게 이해하고 있어요. 이 분들의 고통스러운 과거 경험이 동아시아와 세계 역사에서 여성 성폭력의 범죄를 끊을 수 있도록 하는 국제적-사회적 구조를 만들어 내야한다는 의식은 거의 갖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 대부분 돈 문제에 시선을 집중하고, 그 문제를 정의연 사태의 본질로 몰아가고 있어요. 그 와중에 평생을 헌신해 온 ‘위안부’ 운동가들은 세상에도 없는 파렴치한들이 되어버렸어요.  

백승덕: 민족 문제에 관한 여러 지적들과 관련해서 고민이 좀 있습니다. 아까 엄기호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야기와 조민아, 정희진 선생 등이 지적하신 문제는 성격이 다른 것 같습니다. 민족을 하나의 정체성 범주로 보고 그것이 젠더권력이나 식민주의 혹은 군사주의 등과 얽히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룰 때 필수적입니다. 특히 탈식민 과정을 거친 제3세계의 역사에 접근할 때 그렇겠지요. 그런데 정희진 선생이나 조민아 선생의 칼럼은 일종의 발전도식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를 넘어서 이제 여성주의 등의 보편주의로 나아가야 할 때 정대협/정의연이 그러한 이행을 하지 못해서 이 사태가 발생했다’라는 식의 발전도식이지요. 그러한 지적이 일면 타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불거진 논란에 집중해서 보면, 이용수님이 지금 제기한 문제들이 조민아, 정희진 선생의 지적과 연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용수님의 말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그러한 어긋남과 관련해서 정대협/정의연 운동에 관계한 사람들은 억울할 수 있겠고요. 실제로 지금 몇몇 분들이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러한 억울함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2000년 여성국제법정 전후로 역사학을 전공하거나 혹은 역사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이 우에노 치즈코의 내셔널리즘과 젠더에 대한 비판적 서평을 연달아 썼었어요. 우에노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여성 문제로만 이야기함으로서 민족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사상(捨象)시킨 것이 또 하나의 획일성으로 귀결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미 20년 전부터 이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민족과 젠더 등의 교차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던 것이지요. 윤미향씨가 이번에 총선에 출마하면서 한쪽에서는 ‘이번 선거는 한일전이다’ 같은 선전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회에 가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과 연대하는 의정활동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언급은 그의 관점을 단순히 민족주의로만 보기 어렵게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연대해온 어떤 과제와 성과를 자신이 국회의원으로서 이어가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윤미향씨가 의식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얽힌 권력을 교차적으로 보고 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반면에 이번에 이용수님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지적한 문제들에서 여성주의나 보편주의 등에 관한 문제의식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금 사태에서 정대협/정의연 운동을 비판하면서 여성주의 전환이 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분들의 지적은 이용수님을 내세우면서도 이용수님의 이야기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용수님은 기자회견에서 ‘세계의 모든 여성들에게 내가 미안하다’라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어요. 하지만 기자회견을 통해 전한 이야기는 윤미향씨가 사유화한 운동을 자신이 다시 제대로 가져다 놓겠다는 말씀이 주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희진, 조민아 선생의 비판 대상은 오히려 윤미향이 아니라 어쩌면 이용수님이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비판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를 대상으로 과연 할 수 있을까요? 이 사태를 두고 오가는 말들을 보면서 그런 고민이 듭니다.

사진출처 : KBS뉴스 http://mn.kbs.co.kr/mobile/news/view.do?ncd=4251090

피해당사자와 활동가, 그 긴장 관계의 의미

정용택: 방금 백승덕 선생님이 민족 문제에 더하여 민족과 젠더 등의 교차성의 문제를 짚어 주셨고, 덧붙여 정대협/정의연 운동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분들이 이용수님의 관점을 비판의 입지점으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이용수님의 이야기가 갖는 난점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셨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피해당사자의 목소리 혹은 말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 생각을 먼저 말씀드리면요. 민중신학자들이 늘 고민하는 것이 바로 민중과 민중신학자의 관계인데요. 저는 이 사태를 계기로 그 문제를 다시 성찰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도 짧게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이를테면 예수는 예수운동에서 활동가였는가 당사자였는가 하는 것이지요. 제가 보기에 예수는 당사자이면서 활동가이거든요. 정확히는 그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었던 인물인데요. 그런데 지금은 어쨌든 피해당사자와 활동가 또는 운동단체 사이에 매우 날카로운 긴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중신학을 하는 저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다가왔습니다. 

김혜령: 이용수 할머니의 첫 번째 인터뷰였나 두 번째 인터뷰였나. 할머니께서 ‘정신대’‘위안부’는 다르다는 점을 매우 강조하셨어요. 사실 이 발언은 위험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고 봐요. 일제 치하에서 다양한 피해자들이 존재했었잖아요. 할머니가 억울해 하시는 ‘정신대’라는 말은 노동으로 착취당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위안부’ 운동 초창기부터 사정상 ‘정신대’라는 말이 ‘위안부’를 함께 지칭해 왔었던 건 이제 다 알려진 사실이고. 그런데 실제로 이 두 집단이 서로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근로 정신대는 경우는 정조 관념이 아무래도 지배하던 사회에서 ‘위안부’랑 같이 취급되는 것이 싫었던 것 같고, ‘위안부’는 근로 정신대의 피해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피해를 받은 자들로 스스로를 인지해 오셨던 것 같아요. 사실 다 피해 받은 사람들이고, 다 같이 나라 잃은 처지에서 당했던 일인데. 인간은 자기 고통에 기반하여 세계를 이해하기에 아무래도 다른 피해자들을 돌아보는 힘이 충분히 있기 어렵겠지요. 아쉬운 것은 인터뷰에서만 보자면, 이용수 할머니께서 스스로를 인권운동가로 칭하시면서도 인권의 문제가 단순히 피해의 정도와 심각성으로 분류할 수 없는 인류 보편의 문제임을 충분히 이해하시지 못한 거 같아요. 사실 그 점이 일부에서 이용수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를 비교하는 지점이기도 하구요. 결론적으로, 피해 사실을 역사적으로 풀어가는 데 있어서 피해자의 말에 어떠한 권위를 얼마만큼 부여할 것이냐의 문제가 중요하거든요. 이 점은 엄기호 선생님의 책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에서 많이 다뤄진 것 같아요.

엄기호: 제 생각에는 이게 그런 것이죠. 피해당사자에서 활동가가 될 때 주어도 같이 바뀝니다. 고통이 사회성을 획득하는 순간부터 나의 고통에서 우리의 고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나’는 그 ‘우리’의 일부입니다. 물론 여기서 ‘나’는 ‘우리’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존재일 수도 있고 이 때문에 헤게모니 투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우리도 완전히 동질적인 우리일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한 개인이 피해당사자에서 활동가로 그 위상이 바뀐다는 의미에서 ‘변위’ 또는 ‘전위’할 때 필연적으로 갈등이 일어나며 그 갈등은 운동 과정에서 조정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그 조정이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요. 

이런 점에서 본다면 활동가가 된다는 것은 ‘나’를 떠나는 과정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아무리 나의 고통이 크고 어떻다 하더라도 주어가 계속 ‘나’로 머물러 있는 사람은 활동가로 변위되었다고 보기 힘듭니다. 이것은 적어도 저에게는 너무 명확한 이야기거든요. 근데 이게 지금 한국 사회운동에 한 10~20년 전부터 나타나는 경향인데, 마치 매우 겸손하고 겸양을 하는 것처럼 “우리가 뭐 하나요? 당사자들이 하는 것이죠. 당사자들이 곧 활동가이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야기가 팽배해 왔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여전히 역할을 다 짊어지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피해당사자들이 어느 날 자의식을 가지고 활동가들과 ‘다른’ 말을 하게 되면 당황하며 갈등이 첨예화되고요. 저는 이 폐해도 컸다고 생각하거든요.

김혜령: 과거에는 미디어가 적으니까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 전형적인 ‘위대한’ 인물의 목소리만이 들렸었죠. 대중 역시 그런 목소리만 듣기 원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미디어나 개인적인 발언 활동이 매우 활발해 지면서 심미자 할머니와 같은 정대협/정의연 운동과는 결이 달랐던 피해자의 목소리나 입장이 존재했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모든 분들의 목소리가 이 사태를 맞이하여서는 갑자기 전부 동질적인 권위를 부여받게 되거나,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까운 목소리로 강조되고 있어요. 사실 윤리적으로 봤을 때는 층위가 다른 건데, 근데 그게 또 어쩔 수 없이 탈윤리의 시대에 포스트모던한 어떤 한계인 것 같아요. 그게 또 장점이 있겠죠. 어떤 면에서는 그런데… 

엄기호: 저는 그 점과 관련하여, 김혜령 선생님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이게 저는 정대협에서 정의연으로 오는 과정 속에서 불가피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저는 김복동 할머니를 모범 혹은 전형으로 삼은 것이 끼친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김복동 할머니 같은 분을 모범으로 삼아 버리면 나머지는 다 떨어지거든요.

김혜령: 그 지점은 윤리학자인 저로서도 매우 중요한 질문이거든요. 그게 연결될지는 모르겠지만. 

엄기호: 네. 그러니까 윤리적인 측면에서 그 부분을 다루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김혜령: 저는 개신교 신학자이고 제가 좋아하는 학자들은 레비나스, 데리다, 리쾨르 이런 학자들이에요.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이런 학자들은 좌파 지식인들과 또 다르게 ‘무한의 윤리’ 혹은 ‘극한의 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즉, 무조건적 사랑과 희생을 가르치는 종교 윤리와 비슷한 걸 주장하는 사람들이에요. 인물로 치면 김복동 할머니나 예수와 같은 분들. 자기희생을 온전히 치르고서라도, 이웃에게, 인류에게 유익을 남겨야만 하겠다는 꺾이지 않는 영혼의 힘을 가지신 분들. 그러나 말씀하셨듯이 그런 분들의 윤리가 대중 운동의 표상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하신다면, 저는 여전히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피해 사실에 대해 배상만 해주면 우선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피해자들만으로 어떤 사회 운동이 펼쳐진다면, 결국 그것은 자기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만 멈추게 될 위험이 있잖아요. 권리 운동은 또 다른 권리 운동과 당연히 갈등하고 대치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우리’로 불리는 ‘특정 피해자 집단’을 넘어서는 보편 운동으로서 연대를 하지 못하게 되거든요. 운동에 참여하는 다수는 당연히 자기가 피해본 문제에 대한 해결을 얻고자 하는 데에 목표를 두겠으나, 그 운동을 이끄는 사람은 피해자 집단너머 인류 보편의 고통에 연결시키는 자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김복동 할머니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처럼 안 됐다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일부 민주 세력에서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하여 심미순 할머니까지 비난하고, 김복동 할머니와 비교하며 비판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자기 고통이 가장 클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비극적 실존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빈약한 데에서 초래된 것이라고 보아요. 지금 와서는 이 모든 것이 반성할 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엄기호: 최근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들도 그렇잖아요? 페미니즘 쪽도 그렇지요?

김혜령: 네, 저도 같은 맥락이라고 바요. 지금 여성주의가 사실은. 제가 학교에서 지금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게 레비나스도 가르치고 있는데 안 먹혀요. 이건 너무 큰 윤리, 제가 볼 때는 여태까지 나왔던 철학 윤리에서는 큰 윤리거든요. 신학 빼고. 그런데 현실인들은 이런 걸 말도 안 된다고 접어두는 것인데. 데리다는 레비나스의 제자라서 레비나스식으로 말하면 안 먹힌다는 걸 안 거에요. 그런데 굉장히 중요한 말을 하는 것 같다. 그걸 또 현실적으로 풀거든요. 그때 나온 개념이 관용과 환대에요. 그래서 이제 환대 개념 자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지향을 말하는 것이고 관용을 할 수 있는 만큼의 어떤 상호적 상호호혜적인 관계잖아요. 근데 운동에 있어서 이 두 지점은 다 필요하거든요. 실제로는 관용밖에 못 하면서 환대를 한다고 사기를 쳐도 안 되고. 환대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용만 하자, 그러면 우리 안에, 오직 어떤 집단 안에 갇히고, 이게 둘이 같이 가야 되는 거죠. 그래서 저한테 물으신다면 한계는 있지만 김복동 할머니라는 이름은 지켜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그래야 전체적으로 끌어주는 게 있으니까.

엄기호: 저 역시 윤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방금 말씀이 저에게 큰 울림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김복동 할머니같은 분은 인간됨의 극한을 보여주는 분들입니다. 그 극한의 초극을 보여주는 분들이신 거죠. 휴머니티라고 하는 인간다움의 어떤 그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 이걸 보여주는 분들 있잖아요. 그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람이 그걸 넘어서면 그게 정말 윤리적이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걸 보여주는 분을 우리가 기념해야 하죠. 문제는 이걸 국가가 회수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분을 기념하는 것 자체가 국가주의적 기념에 저항하는 것이지요. 이런 분의 삶은 항상 그 너머를 보여주니까요. 이런 점에서 김복동이라는 인물을 누가 어떻게 기리는가 하는 것은 정말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죠.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에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운동이 이런 윤리적 극한을 넘어선 부분을 가능성이 아니라 표준으로 삼아서 이야기를 할 경우에 발생하는 위험성입니다. 이렇게 되면 윤리적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을 가지고 반(反)윤리적인 운동을 하게 됩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나머지 할머니 다 떨어져 버리거든요.

김혜령: 맞아요. 그래서 극한의 윤리는 언제나 조심스럽고도 겸손하게 가르쳐 져야 해요. 박유하 교수 인터뷰 보니까, 일본어 통역으로 꽤 오래전부터 할머니들과 라뽀(rapport)가 있었더라구요. 그런데 박교수가 정대협/정의연 위주의 ‘위안부’ 운동에 못 낀 이유는 초창기에 그 운동의 주력 멤버가 민주화 세대·이화여대·기독교인이라는 세 개의 정체성을 지닌 자들 중심으로 펼쳐졌는데, 자신은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해서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저도 이번 사태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제가 이대 출신이고 기독교인인데, 정대협을 창설한 주요 멤버들에 여성신학회 가면 뵙던 할머니 선배님들이 계셨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요. 그분들이 쌈짓돈을 어렵게 모아서 헌신적으로 해 오신 걸아니까. 그래서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어요. 혹시 이번 사태가 기독교인들이 펼친 운동의 현실적 한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극한의 윤리로서 이웃사랑이라는 가르침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고통 받는 자에게 곁에서 손 잡아주는 일을 우리의 당연한 책무로 여기는데, 실제로 누군가를 돕는 일은 현실적으로 권력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거든요. 시간과 물질을 나누는데, 그것을 한쪽은 주기만하고 다른 한쪽은 받기만 한다면, 아무리 그것이 ‘사랑’이라는 말로 일어나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도움을 받는 사람 측면에서는 ‘힘’으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인들은 이웃사랑을 행하면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실제로 하는 현실의 이웃사랑의 권력적 측면을 잊고 예수님의 순결무결한 사랑을 따라 실천하는 것으로 쉽게 착각할 위험이 있어요. 이웃을 돕는 일을 예수님을 따르는 가장 큰 사랑이라고 확신하며 우리는 누군가를 돕지만, 실제로 도움을 받는 사람의 측면에서는 그 도움이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권력’이나 ‘힘’으로 인지되는 거지요. ‘위안부’ 할머니들 중 일부가 윤미향 대표를 무서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기사로 보았는데, 아마 그런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기독교의 헌신적인 이웃사랑의 순수성이 상호 대등한 권리를 우선시하는 현대시민사회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실제로 물의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도 이번 사태에서 가슴 아프게 얻은 교훈이 아닐까 싶어요.      

엄기호: 불가능해보이는 윤리적인 가능성을 보이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면 큰 문제가 벌어집니다. 나머지 분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대협/정의연 운동이 돌아봐야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할머니들을 잘 돌보고 함께 하고 하는 것과 별개로 의도하지 않게 나타날 수 있는 이런 부분에 대한 점검입니다. 

저는 할머니들 일부가 "무서워했다"고 말했다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일이 벌어지면 모범으로 만들어 생각하고 있었던 그 경험에서 벗어났던 경험이나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서워집니다. 욕망을 드러내서도 안되고요. 이건 정대협이나 정의연이 의도적으로 자르건 자르지 않건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외되고 억눌렸던 이야기, 감정이 기회가 되면 한꺼번에 터져 나옵니다. 

예수의 길을 가는 것을 우리가 굉장히 숭고하게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만, 그것을 표준화하면 안 되거든요. 아까 김혜령 선생님이 얘기한 것처럼 모두가 다 가야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떨어져나갑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래야 되겠지만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내가 믿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하겠습니까?

김혜령: 시민사회의 피해당사자 곁에 있어주는 게 기독교인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웃사랑이거든요. 근데 이웃사랑의 어려운 점이 있어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이 사람은 사랑으로 성장이 돼야 해요. 아까 말씀드린 김복동 할머니처럼. 이웃사랑의 올바른 실천가에게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제 무기력한 피해자의 상태에서 탈피하여 그도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소위 ‘윤리적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고 기대를 한 몸에 받죠. 말씀하시는 것처럼 선량한 피해자로 정형화되는 거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예수처럼 그렇게 어떤 권력도 부리지 않는 이웃사랑의 실천가도 없을 뿐더러,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마땅히 아름답게 성장하는 것도 아니구요.  

정용택: 그렇다면 김복동 할머니 같은 분의 출현이 운동 전체와 관련하여 어떤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김혜령: 모두가 김복동 할머니 같을 수는 없어요. 2020년의 이용수 할머니가 대표적으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피해자 유형이라고 말해야 할 거예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성장해주지 않는 사람. 스스로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새롭게 말하는 피해자. 많은 사람들이 이용수 할머니가 자신을 ‘인권운동가’라고 지칭하였을 때, 의아해 하거나 비웃었던 이유는 도움을 받았던 자로서 ‘겸손하고’ ‘염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지닌 ‘선한’ 피해자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무차별한 공격을 역으로 받게 되신 거고. 그러나 여기서 확실하게 말해야 할 것은, 정말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고통 받는 자의 곁에 서길 원한다면, 그 고통 받는 자가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만 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예요. 피해자에서 주체로 세우는 일인데, 주체가 누군가가 기대하는 방식 그대로만 세워진다면 그러한 주체는 진정한 주체가 아니겠지요.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었던 사람의 관점에서는 섭섭하고, 심지어 배신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자기만의 목소리와 행동을 하게 되는 것. 사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그 운동이 성공했다는 증표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나 분명히 가슴 아픈 일이지요.

정용택: 네. 일단 여기까지 논의하고, 잠시 쉬었다가 계속 이어가려고 하는데요.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 가운데서 처음에 엄기호 선생님이 언급하셨던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틀에 비추어 이용수님의 발언을 생각할 때 저에게 계속 드는 고민은 이용수 선생의 발언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스피박이 던진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은 서발턴이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즉 공론장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언어 자체가 서발턴의 경험을 담아내기엔 불충분하거나 부적절하기 때문에, 서발턴은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이미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다른 이들에겐 제대로 들릴 수 없다는 문제제기를 함축한다고 봅니다. 요점은 “서발턴의 말은 서발턴이 아닌 이들에게 그 자체로 들릴 수 있는가?”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용수 선생이 두 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제기한 문제들 역시 우리가 단순히 세심하게 귀를 기울인다고 해서, 혹은 그분에게 말할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준다고 해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용수님의 문제제기를 그분이 정대협/정의연 운동에 동참하면서 공유해왔던 운동적 언어 자체의 한계 속에서, 나아가 우리가 수행하는 의사소통의 토대가 무조건 언어적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님을 유념하면서, 오히려 그분의 신체적 제스처‧몸짓‧한숨‧울분‧절규 심지어는 침묵까지, 그야말로 명료하게 언어로 분절되지 않은 날것의 목소리 그 자체를 통해 표현되고 있는 어떤 불만이나 인정에 대한 기대를, 그것에 대한 가치평가는 일단 유보하고서,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관련하여 계속 토론을 이어가보면 좋겠습니다.

(2부에서 계속)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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