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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의 급작스런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권오윤)

영화 읽기

by 제3시대 2020. 9. 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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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반대' 운동가의 급작스런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

권오윤**

미국 사회의 인종적 편견과 차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특히 흑인을 상대로 한 공권력 남용 사건은 비일비재해서, 평범한 흑인 가정에서도 사춘기에 들어선 자녀들에게 경찰을 상대할 때 오해받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전국적인 인종 차별 반대 시위로 번진 것은 그만큼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 정서를 인식하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이런 문제를 오래전부터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저항할 것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1950,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 지도자 맬컴 X입니다. 이슬람 종교 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대표적인 활동가였던 그는 백인 우월주의에 굴하지 말고 흑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것을 설파했습니다. 흑인의 피부색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편견을 조장하는 백인들에게 맞서야 한다고요. 그의 메시지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해명되지 못한 죽음의 진실을 찾아서 

넷플릭스가 선보인 오리지널 시리즈 <누가 맬컴 X를 죽였나>는 맬컴 X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작품입니다. 맬컴 X는 만 40세가 되던 해인1965년, 강연장에서 무장 괴한들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암살에 관해서는 아직도 불명확한 것이 많습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들 중 일부가 살인죄로 복역을 마친 후에도 결백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암살자들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해설사로 일하는 아마추어 역사학자 압두르라흐만 무함마드는 젊은 시절부터 맬컴 X의 지지자였습니다. 어린 시절 옆집 백인 소녀와 놀다가 어디선가 나타난 백인 경찰들에게 끌려갔던 경험이 있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맬컴 X의 주장은 복음과도 같았습니다. 

"흑인을 상대로 하는 경찰 폭행 사건은

전부 패턴이 똑같습니다.

경찰이 먼저 공격해서 말도 못 하게 두들겨 팬 뒤

법정에 데려가 폭행으로 기소하죠

그게 무슨 민주주의입니까?"

- 넷플릭스 시리즈 <누가 맬컴 X를 죽였나> 중에서

압두르라흐만은 일평생 맬컴 X의 뜻을 이어받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맬컴 X의 죽음과 관련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것은 필생의 과업이었죠. 진범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오랜 세월 광범위한 조사를 해왔습니다. 과연 압두르라흐만의 추적은 결실을 볼 수 있을까요? 

강직한 성품의 명연설가가 맞은 비극적 운명

<누가 맬컴 X를 죽였나>는 압두르라흐만의 추적 과정을 따라가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훌륭한 역사 교재 역할을 합니다.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맬컴 X의 생애와 활동, 사상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뉴스릴을 비롯한 맬컴 X가 나온 영상물, 증인들의 기억, 수사 기록 등을 통해 생생함을 더했습니다. 스파이크 리가 감독하고 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극영화 <말콤 X>(1992)가 재현한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죠.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타고난 명연설가였던 맬컴 X의 모습입니다. 듣는 이의 심장을 파고들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화법과 단어 선택이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데, 평생 백인들의 차별적인 시선을 받고 살아온 당대 미국 흑인들은 그야말로 가슴에 불이 확 당겨지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당시에 맬컴 X를 접하고 소년에서 남자가 된 흑인 남성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저절로 수긍이 될 정도입니다. 

맬컴 X의 소탈하고 강직한 성품도 잘 드러납니다. 키 크고 잘생긴 호남에 말도 시원시원하게 잘했던 사람이지만, 사생활에서는 가정에 충실하고 독실한 신앙인의 길을 갔습니다. 비록 젊은 시절에 잘못된 생각을 품고 범죄자의 길을 걸었지만, 감옥에서 이슬람 신앙을 접한 후로는 자신을 다잡고 신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맬컴 X의 이런 뛰어난 면모는 비극의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그를 껄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니까요. 맬컴 X의 주 활동 무대였던 뉴욕시 경찰국은 그를 늘 불편해했습니다. 백인 경찰의 공권력 남용 사건이 있을 때마다 맬컴 X가 항의하는 데 앞장섰으니까요. FBI 역시 그를 주시했습니다. 당시 FBI 국장이었던 에드거 J. 후버가 보기에 맬컴 X는 대단한 선동가로서 요주의 인물이었죠. 맬컴 X가 몸담았던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다른 간부들 역시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고 타협을 모르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저작권자: NETFLIX

사라지지 않은 인종 차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 사회는 노예 제도 폐지 이후에도 흑인들의 실질적인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는 지역이 많았습니다. 흑인에 대한 폭력, 방화, 살인은 비일비재했으며, 일상에서도 흑백 분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죠. 50, 60년대에 일어난 흑인 민권 운동은 이런 불합리에 반대하고 법적, 제도적 평등을 끌어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맬컴 X는 마틴 루서 킹과 함께 그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여러 면에서 두 사람은 대조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마틴 루서 킹이 비폭력 저항 운동을 이끌었던 남부 지역의 기독교 목사였다면, 맬컴 X는 백인에게 당당하게 맞설 것을 주장하며 북부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슬람 활동가였죠.

비극적인 암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공통점 외엔 사후의 평가도 달랐습니다. 마틴 루서 킹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미국에는 그를 기리는 국가 공휴일까지 있을 정도지만, 맬컴 X는 흔히 폭력을 선동한 사람이자 흑인의 우월성을 주장한 분열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비극적 죽음마저 진실이 밝혀지기를 꺼리는 사람들에 의해 묻혀 있었죠.

이제 미국에서는 법적, 제도적으로 인종 차별은 없어졌습니다. 흑인 대통령이 나올 정도가 됐으니까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차별은 여전합니다. 사회 경제적 격차가 맞물리면서 흑백 거주 구역의 분리는 어느 때보다 공고해졌고, 백인 경찰이 흑인 시민에게 자행하는 폭력은 잦아들 줄을 모릅니다. 심지어 트럼프 집권 후에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공공연히 그릇된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마틴 루서 킹의 비폭력 정신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불의에 당당히 저항하라는 맬컴 X의 메시지는 뒤로 미뤄두었던 미국 주류 사회의 태도가 낳은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덮어두고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 바랐기 때문에 문제가 반복된 것은 아닐까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남지 않고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2020년 6월 28일 자 기사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의 급작스런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652045)로 게재된 글입니다"   

** 필자소개

<발레교습소> <삼거리극장> <화차>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현재 연출 데뷔작을 준비 중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물 [권오윤의 더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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