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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생각의, 여름이었다(심정용)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20. 10. 2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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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여름이었다

심정용*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유머 중에 소위 ‘여름이었다 드립’이 있다. 대충 아무 말이나 써 놓고 끝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어쩐지 청춘 로맨스물의 영향을 받은 걸로 보이는 이 유머는 의외로 정말 잘 어울리곤 했다. 이를테면 ‘저녁밥은 간단하게 라면에 김 싸서 먹었다’ 같은 문장은 어쩐지 구질구질한 자취생의 누추한 일상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뒤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는 순간, 해가 채 지지 않고 바람이 살랑 불어오는 가운데 저 멀리 어디선가 쨍하지만 나지막이 들려오는 매미소리를 따라 산책이라도 나서는 듯한 풍경이 떠오른다.

아닌 것 같아도 어쩔 수 없다. 적어도 나에게 여름은 밑도 끝도 없이 강렬하고 푸르고 평화로운 나날로 상상되었고, 그 상상에 자주 배반당하면서도 결국 몇 안 되는 찬란한 날들만이 기억에 남았다. 그건 이번 여름도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친구와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육지에 쏟아지는 비를 절묘하게 피해 푸르른 제주도를 다녔고, 태풍이 올라오기 직전에 절묘하게 육지로 돌아왔다. 우리는 여기저기를 끊임없이 걸었고, 걷는 내내 무언가를 마셨다. 4년 전에 친해져 지금에 이른 우리는 둘 다 먹고 마시고, 끝도 없이 실없는 말장난을 주고받기를 좋아할뿐더러, 정치적 입장이나 취향까지 잘 통했다. 한라산을 넘어 제주와 서귀포를 오가며 숲길을 지날 때, 그 겹치는 취향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생각의 여름의 노래 ‘봄으로 달려나가는 다니야르’의 한 구절, ‘자작나무 숲을 어둠이 마셔도/이 길은 운전수의 것’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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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여름’은 싱어송라이터 박종현의 1인 프로젝트인데, 그 이름은 사춘기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생각의 봄 다음 시기, 그러니까 10대 이후의 평생을 의미하는 생각의 여름은 그 이름 때문인지 노래마다 얼마간 여름이 묻어 있다. ‘포크 근본주의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납득되는 분명한 이유가 없다면 사운드를 굳이 더하”지 않고 대부분의 노래를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채우며, 비슷한 이유에서 가사의 반복도 최소화한다. 한껏 덜고 덜어낸 생각의 여름의 노래에는 담박한 기타 연주와 삼삼한 목소리가 정갈하게 어우러져 있다. 거기에 더 이상 줄이지 못해 드러난 가사에는 풍성함이나 느끼함과는 거리가 먼, 단단하면서도 착지점이 명확한 도약 같은 은유가 돋보이는데, 그렇게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흡사 나무 소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그의 가장 최근 앨범인 <The Republic of Trees>는 나무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연작이다.

한편 생각의 여름의 음악에는 무심한 듯 신경 쓴 흔적이 산미 또는 향신료처럼 박혀 있다. 고향을 주제로 쓴 컨트리 곡 ‘대전’은 ‘모든 기찻길들이 등 보이며 사방으로 흘러나갔지’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며 교통의 중심지인 대전의 특징을 요약하는 한편, 마지막 문장에서는 ‘대간하고 지친 한덩이로 경부선을 거슬러가지’로 슬쩍 충청도 방언을 섞어 장소성을 완성한다. 말을 건네는 과정을 활 쏘기에 비유한 ‘양궁’은 소절의 끝마다 활시위를 당기고 놓듯 기타현을 튕긴다. 그런가 하면 앞서 말한 <The Republic of Trees>는 인간이 아닌 존재로서 나무의 낯선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 모든 가사가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생각의 여름은 기타 연주와 가사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빚어내는데, 목소리는 최소한의 개성만을 남겨둔 채 의미를 충실히 전달함으로써 형식과 내용의 긴밀한 결합에 기여한다.

생각의 여름의 노래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곡을 꼽자면 언제나 지체없이 그를 처음으로 접한 ‘다섯 여름이 지나고’를 떠올린다. ‘다섯 여름이 지나고’는 박종현이 러시아어를 배우던 중 떠올린 곡이다. 러시아어에서 햇수를 셀 때, 5년부터는 ‘여름’을 쓴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어 선생님은 ‘그만큼 러시아에서는 여름이 가장 짧고 아름답고 의미 있는 계절이기 때문 아닐까?’라고 물었다 한다. 20대 중반의 박종현은 다섯 여름 뒤 30대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되뇌었고, 이런 고민은 가사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다섯 여름이 지나고/나는 어디 있을까/다섯 여름이 지나고/나는 지금보다 아름다울까’로 운을 떼는 노래는 푸르름, 붉음, 창백함, 환함과 그늘짐, 흐릿함 가운데 어떤 색으로 짙어질지를 되뇌다 끝난다. 단순한 코드의 아르페지오에 실린 목소리는 이미 한껏 자라고 물든 숲을 떠올리게 한다. 하늘하늘한 잎이 흔들리는 가운데, 여름은 여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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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보면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흘러 있다. 그래도 그 면면을 돌아볼 수 있으니 다행일까. 어제를 떠올리기는 아직 어렵지 않지만, 변함없이 내일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생각의 여름을 처음 들은 건 군대를 제대하고 갓 복학하여 동아리에 들어갔을 때였다. 그로부터 다섯 여름이라면 작년 이맘때인데, 그동안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여 수료 직전 마지막 학기까지 보냈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싸우고 화해했다. 나조차 알지 못한 병을 발견했고, 추락과 상승을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1년, 그간 나는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되었으나 회사 사정상 곧 그만두어야 했는데, 이후 실업급여 신청을 할 새도 없이 또 다른 일을 시작했다. 최근의 화두는 근무환경 좋고 일이 즐겁고 사람들이 좋은 이 직장에서 성실하게 오래도록 일하며 배우는 것인데, 가능한 한 지속가능성은 물론이고 꾸준한 성장까지 열심히 바라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적어도, 앞으로의 다섯 여름이 지나면 짙어져 있기 바라는 어떤 색채가 생겼다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이 뿌리나 줄기 같은 삶의 태도이든, 잔가지 같은 세밀한 행동이든.

그런가 하면 나를 둘러싼 복된 만남들이 여전하고, 심지어 푸르러져서 잔잔하게 기쁘다. ‘긴 비가 그치고 모든 것이 한결’ 푸르고 선명한 가운데, 수많은 ‘우리’들의 계절과 풍경은 여전하다. 언제 갑작스레 연락이 닿아 만나든, 살아온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실없는 농담은 더욱 아무렇지 않게 오가며, 그런 의미와 무의미 모두를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는 관계. 서로의 어떠함을 충분히 알고, 그것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며, 그래서 결국 느슨하든 팽팽하든 ‘저번’과 ‘다음’을 부담 없이 이을 수 있는 관계. 즐겁게 먹고 마시고, 비슷하되 다르게 자라난 각자의 취향을 나누며, 그래서 여전하면서도 한결 각별한 관계 말이다. ‘두 나무’의 가사처럼, ‘나의 오랜 관객인’ 그들은 ‘익숙히 이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 (……) 견뎌지지 않을 시간들’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나무가 그렇듯 사람도 절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나 역시 그들에게 그런 사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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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섯 여름이 지나고’를 꾸준히 좋아하는 이유는 이처럼 시공간에 걸쳐 자연림처럼 자라온 이 궤적에 있다. 내가 지나온 다섯 여름들을 헤아릴 수 있다면, 그 가운데 무엇이 소중했는지, 그래서 나는 어떤 빛을 띠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지난 여름들을 헤아릴 수 있는 만큼, 선명하든 흐릿하든 다시 또 다른 다섯 여름을 내다볼 수 있다. 내다보는 다섯 여름은 여느 때에든 그로부터 다시 뻗어 나가는 다섯 여름이다.

때때로 우울과 분노가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그건 내 질환 때문일 수도 있고, 아직 소화하지 못한 여름 때문일 수도, 혹은 생각지도 못하게 닥쳐오는 태풍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러지지만 않는다면 어떻든 나이테는 새겨진다. 앞으로의 다섯 여름에는 내가 여물고 싶은 빛깔이 있고, 여전하면서도 더욱 선명해지기를 기대하는 관계가 있다. 그러니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어, 결국 찬란한 순간들을 꼽아 기억하고 또 바란다. 여전히, 여름이다.

 *필자소개 

비교문학은 대관절 뭘 공부하는 건가요? 늘 질문받지만 매번 잘 대답 못하고 나도 모르고 심지어 아무래도 계속 모를 것만 같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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