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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교회와 학교(도홍찬)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09. 2. 1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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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학교

도홍찬
(중학교 교사)


나에게 교회와 학교는 중요한 삶의 거점이다. 나는 고등학교 이후 군대기간을 빼곤 줄곧 교회를 다녔다. 그리고 의무교육기간을 포함해서 학사, 석사, 박사까지 소위 가방끈을 최대한 늘렸다. 나는 지금도 큰일 없으면 일요일 교회를 나가며, 평일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생업을 삼고 있다.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교회와 학교에 관계를 맺어 온 것은 분명 나의 ‘선택’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 문화에 소원한 가정에서 개신교를 선택하였고, 의무교육기간이 지나고서도 계속적인 진학을 선택하였다. 물론 이러한 선택은 순전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이것을 추동한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 교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교회가 제공하는 문화, 관계망 같은 것 때문이다. 계속적인 진학 역시 그것에 부여하는 사회의 인습적 가치가 크다. 순전한 신앙심과 배움의 열정만으로는 한 사람의 지속적 행위를 설명하기 역부족이다. 나의 행위는 사회적 행위이며, 제도를 통해서 영속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번쯤 뒤집어 생각해본다. 나의 신앙은 교회가 없다면 정말 지속될 수 없는 것인가. 배움이 학교 바깥에서 일어날 수는 없었던가. 신앙과 배움이 꼭 제도를 통해서 보증받아야 하는가. 제도와 인습을 넘어선 신앙과 배움이란 낭만에 불과한 것인가. 일찍이 이반 일리히(Ivan Illich)가 비판한 것과 같이 근대 사회에서 모든 인간적 가치들이 제도화되면서, 나의 의식과 행위를 제도를 통해서 검증받고, 그것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곧 나는 자발적으로 무엇을 찾고, 관계 맺고, 판단하고 행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나는 진보적 교회에 다니지만 예배를 빼먹으면 여전히 찜찜하다. 하느님한테 기복적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한테 학교는 꼭 나오라고 명령한다. 내 아이가 학교가 싫어서 그만두겠다고 하면 쉽게 허락할지 의문이다.

제도를 넘어선 신앙과 배움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징벌의 두려움, 사회적 배제의 공포감. 그리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안감. 이러한 두려움은 반대 감정인 즐거움을 통해서 상쇄될 수 있을 것이다. 받기보다 주었을 때의 기쁨, 욕망하였들 때보다 비웠을 때의 충만함, 많이 아는 것보다 간결하게 사는 것의 행복감...이런 것들을 어떻게 훈련하고 배울 수 있을까. 이것들은 체험하지 못하면 공염불인데, 이것의 실천 역시 또 다른 제도를 통해서나 가능한 것일까.

한국 교육 개혁 담론의 주류는 제도 개선의 담론이었다. 입시 제도, 고교 평준화, 학교 체제의 다양화, 교원 평가 등등 제도의 개선을 통한 교육의 정상화를 꿈꾸었다. 정부와 자본이 수월성과 경쟁의 논리로 제도 개선에 접근했다면, 진보 진영은 교육의 공공성과 평등주의를 지향하였다. 교육담론이 제도의 문제와 집요하게 대결하고 있는 동안, 학부모, 교사, 학생들은 오히려 제도를 심각하게 사고하지 않았다. 빈번한 제도의 부침 속에서는 공정한 사고가 들어서기 보다는 자기보존의 욕망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어떤 제도가 되든지, 나의 안정, 나의 상승이 보장되면 된다. 안되면 무리수를 사용해서도 되게 만들어라. 잠정적으로 타협된 제도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모두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제도는 다시 개선을 요청받는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제도 개선 담론의 현실이다.

졸업시즌이다. 이제 빛나는 졸업장은 없다. 성적 좋은 아이 몇 명이 상을 타고, 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간다. 학교에서 배움이 큰 축복이 될 때 졸업은 감개무량할 텐데, 다음 단계를 향한 의례적 요식 절차에 불과하니 졸업의 아쉬움과 기쁨은 사라졌다. 우리 시대에 과연 진정한 졸업이 있었던가. 한 단계 지나면, 또 다른 경쟁의 단계에 진입하지 않는가. 우리학교에 유일하게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는(못하는) 아이가 있다. 지병으로 진학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신체 활동이 점점 퇴화하는 병이란다. 1학년 때에는 꽤 밝은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훨씬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이 아이가 엄마와 함께 유일하게 식당에 와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갔다. 내가 이 아이만 진정한 졸업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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