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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오늘, '욥'을 묻다] 욥을 읽으며 떠올려본 몇 가지 기억들 (유경종)

특집

by 제3시대 2010. 2. 1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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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을 읽으며 떠올려본 몇 가지 기억들
 
 
유경종
(본 연구소 회원)

* 장면 1. 1985년 겨울
교회 청년 중에 대학 연극반에서 활동하던 누나가 한 분 있었다. 교육 환경이 열악하기 그지없던 경기도 변두리 교회 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패기있고 세련된 대학생의 기풍을 보여주며 동생들의 동경을 받던 선배였는데, 그 누님께서 어느날인가 방학을 맞아 심심해하는 내 또래의 중등부 친구들을 모으더니 연극을 한 편 만들자고 꼬드기는게 아닌가. 당시만 해도 교회를 들락거리며 뭔가를 꾸미는 일이 제일 재밌었던 시절인지라 우리들은 두 말 없이 누나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누나가 들고 온 작품은 <욥>이었다. 제목은 심플했지만 내용은 심각해서 욥의 고통과 좌절, 그리고 친구들과의 치열한 논쟁을 진지하게 그려낸 연극이었다. 누나가 대체 무슨 의도로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인생의 쓴 맛 단 맛 다 본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작품을 들이댔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잘 이해가 안가지만, 어쨌든 우리들은 내용도 잘 이해가 안 되는 연극을 완성하기 위해 한달여동안 꽤나 열심히 매달렸다. 하지만 곧 문제가 터졌다. 교회 어르신 몇 분이 우연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매우 언짢아 하셨고, 공연 자체를 막지는 않으셨지만 교회로부터 아무런 관심이나 협조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공연일이 되었지만 객석은 텅 비어있었다. 뭔가 막연히 폼나는 성취감을 꿈꿨던 우리들의 기대는 고스란히 상처가 되었다. 뜻하지 않게 연기인생의 데뷔 무대를(^^*) 언더그라운드로 시작하게 된 나는 그 일을 통해 어렴풋한 교훈 한 자락을 얻을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교회라는 동네에서 탈 없이 지내려면 욥이라는 양반이랑은 웬만하면 친하지 말아야겠구나, 라는 다짐 말이다.

* 장면 2. 몇 해 전 봄.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다짐의 흔적은 무뎌지고, 몇 년 전 또다시 나는 욥 아저씨 주변을 어정거리다가 두 번째 상처를 자초하고 만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선교회 모임에서 성경공부를 지도하게 되었는데, 세상과 교회의 돌아가는 꼴에 지긋지긋한 염증을 앓던 나는 뜬금없이 욥기를 다뤄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 즈음 나는 정병선 목사님이 쓰신 욥기 묵상집 <신앙의 마스터클래스>(대장간)를 꼼꼼히 읽으며 욥이 보여주는 새로운 차원의 신앙에 새롭게 눈 떠 가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하필 욥?’ 이라는 뜨악한 반응을 보였지만 맘에 안 들면 댁이 리더를 하시던지, 하는 심뽀로 무작정 밀어붙였다. 결과는 뻔했다. 구성원들의 열화와 같은 외면 속에 욥기 공부는 몇 주 만에 흐지부지 중단되었고 나는 교회 내에서 그나마도 근근하던 공신력에 적잖은 데미지를 보태야 했다. 역시나, 어릴 적 깨달은 교훈을 망각하는 인간 치고 잘 되는 인간 없다더니... 물론, 스터디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은 성급히 구성원들을 계도하고자 했던 나의 어쭙잖은 조급함에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하여튼 욥 이 분은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 교회의 주류 정서에서 여전히 왕따 신세를 못 면하는구나 생각하니 적잖이 씁쓸했다. 차라리 경륜있는 엘리바스나 근엄한 빌닷이나 열정적인 소발의 주옥같은 말씀(?)들을 적절히 발췌해서 신앙 강화 교재를 만든다면 한국 교회 성도들의 입맛에 딱 맞는 프로그램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자조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소위 잘 나가는 목사님들께서 성서속의 별별 요상한 인간상을 그럴듯한 학습 모델로 잘도 포장해내면서 이건 왜 안하는지 모를 일이다.

* 장면 3. 몇 해 전 가을.
송 권사님은 우리 교회의 할머니 권사님들 중에서도 가장 몸집이 작은 분이다. 그 작은 몸으로 한평생을 종종종, 교회와 집과 일터를 오가며 살아오신 분. 몸집만큼이나 성품도 온화하여 기도도 조용조용, 봉사도 사근사근, 한번도 누구랑 말싸움이라도 댓거리를 하는 걸 보질 못했다.
어느 저녁, 차량 운행을 하는데 마침 차에 타신 권사님들의 화제가 하나님에게 복받은 이야기로 이어졌다. 다들 은혜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름대로의 주신 복을 카운트하고들 계신데, 아무 말씀 없이 듣기만 하시던 송권사님이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쉬더니 혼잣말처럼 이렇게 내뱉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정말 하나님이 나에겐 뭔 복을 주셨는지 모르겠어... 정말 나에게도 뭘 주시긴 주셨나...?"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어느 분이 아따, 송권사는 무슨 말을 그리 복없이 한댜? 라고 눙을 치자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뭐, 하며 허허 웃으셨다.
그저 흘러가듯이 하신 말씀이지만 그 고백이 내 마음에 한참동안이나 무겁게 남았다. 아마도 그건 권사님께서 평생을 두고 곱씹어 온 물음이었을 것이다. 전처의 자식이 있는 집에 시집을 와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시며, 그나마 바깥양반을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시며, 혼자 몸으로 남겨진 삼남매를 키워내시며, 진득이 집에 붙어있지도 못하고 이리 저리 떠도는 막내 아들 때문에 속을 태우시며, 얼마 전에야 병석의 시어머니 수발을 놓으시며, 고단에 겨워 눈거풀이 무겁고 마음이 시려 무릎이 꺾일 때마다 아마도 권사님은 같은 물음을 묻고 또 묻지나 않았을까.
하나님이 나에겐 뭔 복을 주셨을까나...? 교회서는 늘 믿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배웠는데, 그럼 내 평생의 믿음은 대체 뭘까...? 

* 다시 욥을 읽으며...
작년 말부터 편의점 야간 근무를 하는 터라 짬짬이 책을 읽기에 좋은 시간이 주어졌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주로 슬렁슬렁 읽히는 잡지며 소설류를 읽곤 하는데, 요즘에는 가장 여유로운 시간을 챙겨 최형묵 목사님께서 쓰신 <반전의 희망, 욥>을 하루에 몇 페이지씩 천천히 알뜰하게 읽고 있다. 고즈넉한 새벽녘에 최 목사님의 웅숭깊은 글을 읽는 맛이야 새삼 말해 무엇하랴. 
어릴적 선배 누나를 통해, 몇 년전 정병선 목사님의 책을 통해, 그리고 또 다시 최형묵 목사님의 목소리를 빌어 욥은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논쟁할 때 알아봤지만 참 끈질긴 양반이다. 이쯤되면 나도 욥이 걸어오는 말에 진지하게 대답을 준비할 때가 된 듯도 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대답을 나는 송권사님 같은 분과 나누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오랜 고민을 거쳐 건져 올린 대답이 송권사님 같은 분과 소통할 수 있을만큼 낮아진 목소리였으면 좋겠다는 바램 때문이다.
누군가는 역사의 격랑을 끌어안고, 어떤 이는 시대의 아픔을 짊어진다. 각자의 십자가를 감내하며 나가는 이들에게 욥은 역설적 희망의 지표가 되어준다. 그런가하면 송권사님처럼 그저 소박하게 가족과, 이웃과, 교회와 성도와 목회자를 섬기는 일을 자신의 십자가려니 여기고 살아가는 분들도 많다. 그게 그 분들이 알고 있는, 또한 살아낼 수 있는 신앙적 삶의 유일한, 그리고 최선의 방식이었기 때문일게다. 욥이 던져주는 반전의 희망은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을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장삼이사의 필부들에게도, 심지어는 나처럼 한 인생 대충 방기하며 살아가는 무책임한 게으름뱅이에게도 평등하게 유효하리라. 대체 어떤 언어로 그 희망을 함께 나눌지는, 책을 마저 읽고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

ⓒ 웹진 <제3시대>




연구소가 기획하고 도서출판 동연이 펴내는 <성서_현대를 읽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출간됐습니다. 성서와 더불어서 현대를 살고 있는 나를 살피고, 오늘의 인간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이 시리즈는 욥기를 새롭게 읽는 첫 번째 책에 이어 앞으로 다음과 같은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2권 『무덤에서 모태로 - 생명을 살리는 성서의 지혜』(저자 : 구미정)
            3권 『다니엘과 함께』(저자 : 김응교)
            4권 『구약에서 영성 읽기』(저자 : 김은규)
            5권 『'나는 누구인가' - 성서에서 이웃에 관한 질문들』(저자 : 정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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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개 : 성서_현대를 읽다 1

『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지은이_ 최형묵
펴낸곳_ 도서출판 동연
펴낸날_ 2009년 9월 6일
쪽수_ 272쪽
크기_ 148×210mm
장르_ 종교 / 기독교신학 / 구약학
값_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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