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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서평: 말씀이 된 살덩이, 그리고 어떤 공동체 (김무영)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0. 3. 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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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김진호/동연/2009>

 

말씀이 된 살덩이, 그리고 어떤 공동체

 
 
김무영
(성공회대학교 M.Div. 과정 중,
마음이 따뜻한 사제가 되는 것이 꿈)

1. 들어가며.

권력의 힘은 시간을 되돌리기까지 하나보다. 그나마 조금 숨통이 트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권력자의 심기만 건드려도 ‘밥줄’마저 끊어버리는 폭력이 판을 치고, 가진 자들이 더 갖기 위해 없는 자들을 죽음의 벼랑 끝으로 사정없이 몰아세운다. 자유주의라는 말 자체가 ‘급진적’. ‘저항적’ 전제를 담고 있는데 거기다 굳이 또 ‘급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책이 나왔다. 시대가 험악할수록 저항도 거세지는 법이기 때문일까?

메가 처치, 대형교회 논란이 한창인 한국 교회는 이미 일개 사회조직을 넘어,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으로 권력화된 지 오래다. 이 조직의 근원이 일개 근동변방의 민족종교, 그 안에서도 또 비주류였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이러한 거대화된 모습은 (아무리 2000년의 시간차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뭔가 좀 어색해 보인다. 마치 민중을 위한 정당을 만든다고 거리에서 외치던 혁명가가 어느새 최고 권력자에게 빌붙어 최고급 양복을 입고 기름진 얼굴을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사극을 보면 반드시 지금 시대를 생각하게 된다는 말처럼,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지금 이 시대의 모습과 교회를 생각하게 만든다.
 
2. 혁명 이후의 두 갈래 길.

요한복음은 4복음서라는 범주에서도 나머지 3복음서가 오랫동안 ‘공관복음서’라고 불린데 반해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독특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 독특한 복음서가 ‘정경’의 반열에 들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요한복음>을 생산한 공동체는 이후 좌파와 우파로 분열되었는데, 좌파는 영지주의적 그리스도교 묵시운동과 연계되었고, 우파는 사도계 그리스도교와 연계되었다는 것이다.’ (책 29p) 그리고 그 분열의 시작점은 바로 요한복음 1장 14절이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이 구절의 핵심은 육신을 소마(몸)로 볼 것인가, 싸륵스(살덩이)로 볼 것인가에 있다. 즉, 주류였던 사도계 그리스도교는 육신을 소마로 해석하여 말씀이 승화된 몸, 곧 권위를 가진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고 본 반면, 요한계 공동체는 싸륵스, 즉 철저히 세속적인 몸, 살덩이로 해석하여 말씀이 된 살덩이, 즉 제도화되지 않고 자유로운 힘을 가진 영의 존재를 중시했다.

어느 혁명이든 혁명이 진행된 이후에는 분열이 일어난다. 혁명은 폭발적이지만 비지속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뒤집는 전환의 순간은 말 그대로 찰나적이다. 한번 혁명이 일어나고 나면, 다시 새로운 기반 위에서 제도화되고 조직화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 운동이 일어나고 난 후 그 공동체 또한 그렇게 분열되었다. 바로 ‘사랑받는 제자 대 베드로’로. ‘영의 정치 대 몸의 정치’로. 그리고 제도화된 주류 그리스도교는 빠르게 확산, 안정되어갔고, 비주류였던 요한계 공동체는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사라진 공동체의 후일담이 아니라 사라진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내용이었다.

3. 잊혀진 기억을 찾아.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버린 한 비주류 공동체가 간직했던 것. 놀랍게도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그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그저 공관복음서에 대해 풍부한 영적 수사로 보완해주는 존재인 줄 알았던 요한복음서가 실은 잊혀진 기억을 담고 있는 ‘블랙 박스’였던 것이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준다’는 예수의 평화는, 추상적인 개념의 평온함이 아닌, 폭력의 상황 속에서 간직하는 존재의 평온함(책 74p)이었다는 것.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승리의 선포가 세속적 성공에 만취하게 하는 승리주의적 진술이 아니라는 것(책 75p), 바로 요한복음서는 바람 같이 스며든 파라클레토스(보혜사)가 증언할 예수의 실천적 존재에 대한 목마름이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즉, 비주류로서 소외되고 추방당한 공동체의 상황을 떠올릴 때라야 우리가 수도 없이 마주했던 요한복음서의 구절들이 그 진상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게 읽은 이 ‘블랙 박스’의 내용들은 ‘오병이어 이야기’, ‘소경 이야기’,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 ‘죽음을 앞둔 시점의 예수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파헤치며 들어간다. 수도 없이 듣고 들었던 내용이건만, ‘읽는 시각’에 따라 그 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내용들이다. 요한복음서 말고 또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이렇게 사라져 버렸을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문득 성서의 ‘잊혀진 기억’들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4. 나가며: 다시 오늘 이 자리에.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것은 민중이지만 권력은 부르주아에게로 돌아갔고, 미국 혁명을 일으켜 싸운 것은 민중의 아들들이나 그 권력은 농장주와 무역상들이 차지했던 것처럼, 오늘도 여기저기서 혁명의 선동이 일어나지만 민중은 여전히 이용만 당할 뿐이다. 요한계 공동체처럼 자유를 갈망하고 ‘권력’에 저항하는 공동체는 언제나 다만 소멸될 따름 인 듯 하다. 그러나 권력이 다수를 짓누를 때 늘 그들은 다시 나타난다. 잊혀진 줄 알았던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의 기억을 되살려서.

ⓒ 웹진 <제3시대>


본 연구소가 기획한 <복음서와의 낯선 여행> 시리즈 첫 번째 책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 요한복음』이 출간됐습니다.

- 연구소가 기획하고 도서출판 동연이 펴내는 <복음서와의 낯선 여행>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출간됐습니다. 복음서에 대한 상투적 생각과 대면하고 이에 대한 '거리두기'에 안내하고자 기획한 이 시리즈는 요한복음을 새롭게 읽는 첫 번째 책에 이어 앞으로 다음과 같은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2권 『마태복음』(저자 : 김학철)
            3권 『마가복음』(저자 : 김창락)
            4권 『루가복음』(저자 : 민경식)




 

복음서와의 낯선 여행 1 - 요한복음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지은이_ 김진호
펴낸곳_ 도서출판 동연
펴낸날_ 2009년 12월 15일
쪽수_ 244쪽(본문 2도)
크기_ A5(148*210)
분야_ 인문/종교
값_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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