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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그건 자필 사망신고야 (김창락)

시평

by 제3시대 2009. 3. 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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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자필 사망신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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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락
(본 연구소 소장)

“뭔가 다르겠지.” 이것은 세화여중 김영승 교사의 문제를 놓고 학교측의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동안에 애써 가져본 한 가닥 바람이었다. 그것은 결국 허망한 꿈이었다. 지난 2월 14일 김교사에게 송달된 것은 파면 통고서였다. 지난해 10월에 치른 전국적 초중고등학교 일제고사 사건과 관련하여 서울 지역의 공립학교 초ㆍ중등 교사 7명에게 파면 또는 해임이라는 중징계가 이미 내려졌던 터이지만 세화여중은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참된 교육기관이기를 자부하는 한, 교육청의 압력쯤은 버텨 낼 수 있으며 또 그러해야 마땅할 것이라고 우리는 희망적인 기대를 가져 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허황한 꿈으로 끝나버렸다.

교사에게 ‘파면’이라는 징계는 사형선고에 해당하는 셈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번 경우에 죽는 것은 어느 쪽인가? 김영승 교사가 잃는 것은 교단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일 따름이다. 그 대신에 학생들 앞에서 참된 스승으로서의 양심에 충실하였다는 그의 명예는 길이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죽는 것은 누구인가? 나의 눈에는 이 파면장의 이면에 씌어 있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것은 ‘사망 신고서’라는 제목 아래 “이렇게 하여 우리는 스스로 죽기로 결의하였음을 만천하에 공고하는 바입니다.” 라는 설명문이 뒤따르고 그 밑에 이 파면을 결의한 징계위원들의 명단과 함께 일주학원이라고 큼직하게 씌어 있었다.

“살아 있으나 죽었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본분을 상실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교육기관이 교육기관으로서의 본분을 내팽개치면 그 생명은 이미 상실한 것이다. 지난 2월 5일과 12일에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그 때마다 부당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런데 두 번 다 당사자인 세화여중 앞은 비워 둔 채  그 옆에 있는 반포여중 앞에서 해야 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세화여중 측에서 시위를 봉쇄하기 위하여 자기네 학교 앞 집회 신고를 미리 해서 허가를 받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속임수였다. 교육기관으로서 이러한 속임수를, 그것도 반복해서, 사용했다는 것은 교육기관임을 스스로 포기한 처사이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참된 인간을 육성하는 것 아닌가? ‘정직성’을 빼놓고 인격교육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2회에 걸친 징계위원회는 이러한 속임수 연막 속에서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그 결의는 원천무효이다.

학교가 단지 지식 전수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입시학원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아야 할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민주사회의 건전한 시민에 합당한 인격을 양성하는 것 아닌가. 비판이 없는 민주사회란 바람 없이 연을 날리는 것처럼 불가능하다. 비판하고 저항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는 결국 독재적인 암흑사회로 전락한다. 미친 소가 느닷없이 온 나라의 모든 교실에 나타나 날뛰고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학생들을 들이받고 교육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김영승 교사는 교육자적 양심의 눈으로 일제고사가 마치 이 미친 소처럼 우리나라 교육 자체를 황폐화시킨다는 것을 내다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이러한 미친 소의 횡포를 비켜갈 선택의 자유가 있음을 주지시키면서 온 몸으로 감히 이 미친 소의 고삐의 한 가닥을 잡아보려고 나섰던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그의 환상이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비판정신과 용기있는 저항은 상찬할 미덕일지언정 징계할 사유가 될 수 없다. 들판에 가 보면 두 종류의 웅덩이를 보게 된다. 하나는 맑은 물이 고인 웅덩이고 다른 하나는 썩은 물이 고인 웅덩이다. 맑은 물 웅덩이는 그 밑바닥에서 작은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것이고 썩은 물 웅덩이는 맑은 물의 공급이 차단된 것이다. 어느 단체나 기관이나 사회든지 밑바닥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비판의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면 결국에 썩고 만다.

일주학원은 지금이라도 김영승 교사의 징계가 부당했음을 자각하고 하루 속히 철회하는 것이 일주학원 자체의 실추된 명예와 질식당하는 이 나라 교육의 생명을 되살리는 길임을 깨달아 하루 속히 현명한 조치를 취하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과거의 거울 속에서 미래를 앞 당겨 바라보지 못하는 자들이 교육현장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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