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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정보] ‘자크 데리다’ 특별기고: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해체론적 독법 (I) (이상철)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0. 6. 1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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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 특별기고[각주:1]
: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해체론적 독법 (I)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한국의 천안함 침몰 발표

 

얼마 전  (2010 5 20) 저는 천안함 침몰에 대한 한국정부의 공식 발표를 인터넷을 통해 접했습니다. 천안함 침몰사고 원인을 조사해온 민군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 폭약 250kg 규모의 중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합조단은 북한 어뢰가 분명하다고 주장하며 '북한체 글씨 1'이 새겨진 어뢰 추진부 뒷부분을 결정적 증거물로 제시하더군요. 합조단은 또한 "100m 높이 물기둥 봤다...수병 얼굴에 물 튀었다"라고 하면서 천안함 침몰의 직접원인을 어뢰에 의한 폭발임을 재차 강조하였습니다. 곧이어 청와대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 군 통수권자로서 결연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 응분의 책임을 묻기 위한 단호한 (대북 제재) 조치를 곧 결심할 것이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

 

나는 대표적인 한국의 수구언론이라 알려진 조선일보의 반응이 궁금해졌습니다. 조선일보는 國論 하나로 모아 안보 비상 상황 넘자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사설을 달았습니다: “정부는 오늘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한다. 대한민국은 이 발표 위에 서서 국가적 차원의 비상(非常)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북한이 어뢰로 우리 군함을 두 동강 내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사실상 대한민국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런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훗날 더 큰 도발을 부를 수 있다.”[각주:2]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발표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일련의 한국정부와 한국사회의 대응을 접하면서 나는 몇 해전에 있었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오버랩되면서 머리끝이 쭈뼛해졌습니다. 2003년 봄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감행하며 내세운 명분은 이라크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숨겨져 있어야만 하는) ‘대량살상무기제거였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를 뒷바침하기 위해 부시는 2003 5월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합니다: “For those who say we haven’t found the banned manufacturing devices or banned weapons, they’re wrong, we found two trailers. Them being Iraq’s supposed mobile bio weapons labs”[각주:3] (금지된 생산장비나 금지된 무기를 찾지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틀렸습니다. 저희는 2대의 트레일러를 찾아냈습니다. 그것들은 이라크에서 이동화학실험실이라 알려졌던 것을 말합니다)

2006 4 12일자 워싱턴 포스트는[각주:4] 미 정보관리들이 당시 부시의 발표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전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관여했던 한 정보관리의 증언에 의하면 정보국에서 문제의 2대의 트레일러가 화학무기 제조와 상관이 없는 것임이 밝혀졌다는 보고를 부시에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은 이를 묵살하고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허위 발표를 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트레일러는 기상관측용 기구에 수소가스를 주입해 띄우는 시설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당시 조사관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 화장실(the biggest sand toilets in the world)’로 불렀던 사실로 미루어 분뇨탱크, 즉 똥차가 아니었을까 재치있게(?) 추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똥차였다면 코메디같은 일이죠. 아니 코메디보다 더 웃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평화 유지를 위한 지구방위대 미국이 이라크에 있는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위해 장엄하고 숭고하게 깃발을 올리고 진군을 하는데 그렇게 고대하던 대량살상무기가 고작 똥차 2대였다니……이건 정말이지 거침없이 지붕뚫고 하이킥보다 더 웃긴 시트콤 아닙니까?

 

물론 당시는 부시가 재임된 이후였고 후세인도 체포된 다음이었습니다. 차기 대선을 위한 공화.민주 양당의 밑그림이 그려질 무렵이었죠. ‘대량살상무기제거라는 이라크 침공에 대한 정당성은 이미 허구였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였으니 새삼 놀랍거나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부시와 그 일당들의 악랄함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던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이 그 엄청난 거짓을 가능케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처벌 내지 문제제기 없이 부시와 그 일당들은 어떻게 무사히 그 시기를 넘어갈 수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미국의 정치가들이 섹스스캔들 혹은 뇌물스캔들로 정치적 생명을 접는 경우가 허다한데, 수 백만명의 생명을 담보로 벌이는 전쟁의 명분을 거짓으로 조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부시는 무사할 수 있었을까?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힘이 있음을 직감케하는 대목입니다. 정녕, 부시를 지지했던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의 영발에 경의를 표해야 하는것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설명해 내야 합니다.

 

지젝에 묻다

 

합조단에서 발표한 어뢰 추진부 뒷부분에서 새겨져 있다는 북한체 글씨 1과 부시가 말하는 대량살상화학 무기를 탑재한 트레일러 2는 한국과 미국 사회에서 동일한 기표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요즘 뜨고 있는 슬라보예 지젝은 이데올로기와 기표 사이에 작동하는 함수관계를 폭로하면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의 초기작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1989)은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각주:5] 지젝에 의하면 기표란 단지 떠돌아 다니는 무엇입니다. 기표들이 풀려있다가 어떤 이데올로기적 매듭에 의해 통일된 장으로 구축된다는 것이죠.[각주:6] 그렇게 고정된 기표들의 세계를 라깡은 큰 타자라 부릅니다. ‘큰 타자는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상징적 질서의 권위가 우뚝 발기되어 있는 그 무엇입니다. 지젝은 그런 것은 없다고 하면서 조소를 날립니다.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예화를 들죠.

 

두 남자가 기차에 앉아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저기 짐칸에 있는 꾸러미가 뭡니까?”

, . 그것은 맥거핀(MacGuffin)입니다.”

맥거핀은 뭐죠?”

그건 스코트랜드 고원지대에서 사자 잡을 때 쓰는 연장입니다.”

하지만, 스코트랜드 고원지대에는 사자가 없는걸요.”

그래요, 그럼 그건 맥거핀이 아닌가 보네요. 아님, 말구!”[각주:7]

 

맥거핀 (스코트랜드 고원지대에서 사자 잡을 때 쓰는 연장), 북한체 글씨 1 (천안함을 침몰시킨 북어뢰 추진부 뒷부분에 새겨져 있었다는 문자), 대형 트레일러 2 (대량살상화학 무기를 탑재한 이라크의 테러 및 전쟁을 위한 장비)는 각각 괄호 안의 상징적 질서 안에 묶여 있는 기표들입니다. 실재계(the Real)에서는 존재치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 체제의 이름으로, 이데올로기의 폭압으로, 사회화라는 명목으로 그 기표들은 강력한 영향력을 우리들에게 행사합니다. 서울시청 광장에 모인 해병전우회, 재향군인회, 한기총이 집단으로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미국을 찬양하고 좌파척결을 다짐하는 푸닥거리가 한국사회에 만연한 대표적인 상징계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죠. 지젝은 기표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오직 일련의 효과들 속에서 항상 왜곡되고 빗나간 방향으로만 현존하는 원인[각주:8]의 역할을 한다고 꼬집은 후 상징적 체계의 권위를 지워버립니다. 그렇다면 그 비워진 공간 (탈 중심화된)은 무엇으로 매워야 할까요? 우리의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데리다는 2004년에 세상을 세상을 떴습니다. 이번 달과 다음 달 웹진을 통해 2회에 걸쳐 ‘자크 데리다 특별기고’란 제목으로 글이 연재됩니다. 물론, 졸고는 가상입니다. 데리다의 시선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천안함 침몰 사이에 있는 상동성을 밝히는 것이 이번 달 웹진내용이라면, 다음 호 에서는 실재에 대한, 아니 우리가 실재라고 믿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데리다의 해체론적 독법이 갖는 함의에 대해 다룹니다. [본문으로]
  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19/2010051902551.html [본문으로]
  3. http://www.bushwatch.com/bushlies.htm [본문으로]
  4.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6/04/11/AR2006041101888.html ;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graphic/2006/04/12/GR2006041200165.html [본문으로]
  5. 작년도 웹진 9월호(http://minjungtheology.tistory.com/118)에 지젝과 관련하여 신학적으로 의미 있는 책이 미국에서 출판되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지젝에 관심있는 분을 위해 다시 한번 옮겨 적습니다: “한국에서도 지젝에 대한 열풍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지젝은 미국에서도 광범위한 메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답니다. 지젝의 글쓰기는 가히 인문학의 종합선물세트라 불립니다. 저와 함께 시카고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작년(2009년) 5월에 Ph.D 학위를 받은 Adam Kotsko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가 재 작년에 미국에서 진보적 신학책을 출판하기로 유명한 t&t clark출판사에서 Zizek and theology (2008)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Adam Kotsko는 시카고 신학교를 대표하는 학자라 할 수 있는 Reading Derrida/Thinking Paul (2006)의 저자 Ted Jennings 교수의 제자로서, 작년에 Zizek and theology 출판을 계기로 미국 진보신학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책은 지젝 사유를 정초했다고 평가받는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1989), The Ticklish Subject (1999) , The Fragile Absolute (2000) 에서부터 신학관련 주제를 논술한 The Puppet and the Dwarf (2003) 까지 지젝이 지닌 사유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신학적 물음과 대답, 그리고 비판을 던지고 있습니다. 물론, 지젝을 이해하려면 많은 총알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칸트와 헤겔을 읽어야 하고, 프로이트와 라깡을 정복해야 하며, 맑스의 기운까지 느끼고 있어야 그때 비로소 지젝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사람들이 겁을 줍니다. Adam Kotsko가 쓴 Zizek and theology는 저와 같이 지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빙빙 지젝 주변을 서성이기만 했던 사람들에게 지젝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재작년 후반기에 이 책의 안내를 받은 후 지젝의 처녀작인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를 읽었습니다. 라깡에 대한 전이해가 있어야 되는 책이었는데, 지젝 사유 전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되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래에 Adam Kotsk가 쓴 Zizek and theology에 대한 책 소개를 링크합니다. http://www.amazon.com/Zizek-Theology-Philosophy-Adam-Kotsko/dp/0567032442 /ref =sr_1 _ 1? ie=UTF8&s=books&qid=1244730560&sr=8-1” [본문으로]
  6. Slavoj. Ziz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New York: Verso, 1989), 87. [본문으로]
  7. Ibid., 163. [본문으로]
  8. Ibi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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