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선의 힘] 한 해직교사의 '삶의 고백' (김영승)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1. 2. 23. 14:20

본문

한 해직교사의 '삶의 고백'


김영승
(한백교회 교인)

 

지난 월요일은 해직된 지 만 2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어느새?' 싶을 정도로 빨리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최소한 훨씬 덤덤한 마음으로 삶의 고백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은 지났나 봅니다.

2008년의 교육감 선거 관련 형사소송은 대법원에, 1차 파면무효 민사소송도 작년 12월 승소해서 대법원에, 2차 파면은 이제 3월에 행정소송 1심이 시작됩니다.

법원에서 날아오는 여러 우편물이 어떤 것들은 뜯기지도 않은 채 탁자 위에, 신발장 위에 , 피아노 위에,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쌓일 정도로 이젠 아내와 아이들한테까지도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들로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해직 1년차에는 해고의 부당성과 일제고사 등 이명박 정부의 경쟁강화 교육정책을 규탄하는데 쓰이느라 농성도 많이 하고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2년차에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해고는 너무 심했기에 무효다라는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내용적으로는 교육의 문제를 교육적 관점에서 제대로 판단해줄 리 없는 이명박 정부의 사법부에게 패소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재판 열심히 준비하여 복직을 위해 노력하는 것과 전교조 업무를 하나 맡아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해직 3년차.
학교에 있으면 아이들, 동료교사들과 있으면서 자연스레 휴식과 충전도 되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이기에 혼자 알아서 쉬고 알아서 충전해야 하는 터라 조금 뺀질거리면서 숨을 고르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봐도 큰 변화입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변명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볼 생각도 않고, 버거운 일은 과감히 내 역할과 일이 아니라며 도망쳐버립니다. 12월말부터 한달반 가까이 쉬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소설책도 빌려보고, 클래식기타도 하나 사서 틈나는대로 만져봅니다. 설 연휴 마치고 사무실에 출근하면서는 8km 다되는 길을 그냥 걸어서 갑니다. 자꾸 나오는 뱃살도 뺄 겸 그냥 운동 삼아 또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지며 걷기도 합니다.

지나온 2년은 13년쯤 열심히 살아서 주어진 휴가였고, 앞으로의 시간은 이제 복직하면 또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미리 당겨주는 휴가일거라고, 그래도 이런 휴가라도 받는 나는 참 운 좋은 놈이라고 생각하기로하고, 그렇게 걷습니다.

사실은 좀더 뺀질거리면서 출근을 늦추려고 했는데 얼마 전 신우와 의견충돌이 있은 후 일부러 아빠 들으라고 그랬는지 엄마에게 "아빠는 도대체 언제 출근해?"라고 신우가 소리지르는 것을 듣고는 그 다음 날도 집에서 빈둥거릴 수는 없었습니다.

둘째 선우는 아빠의 해직이 자기와 더 많은 시간 놀아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나 봅니다. 그래서 아빠는 왜 학교도 안나가면서 나와 놀아주지 않느냐고 따질 땐 아빠는 그것으로 자기에게 미안함을 대신해야한다고 항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큰녀석 신우는 아빠가 자기 삶에 너무 간섭하는게 싫습니다. 부모로부터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은 사춘기에 아빠는 자기에게 많은 불안 요소를 주었을 뿐 아니라 남는 시간으로 자기 삶에 간섭하니 그 불만이 엄청납니다.

제 주변 사람들에게 신우의 별명은 '우리 신우'입니다. 나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기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을 떠버리더니 아이를 낳고 나서는 "우리 신우가요...","우리 신우는요..."하고 아이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산다고 주변 사람들이 붙여 준 별명입니다. 신우는 제게 그런 딸이었습니다.

선우가 소년과학동아를 보고 싶다며 정기구독시켜달라고 할 때 "너 조.중.동.이 뭔지 알아? 조선, 중앙, 동아의 줄인 말인데 소년과학동아의 동아가 바로 그 동아야. 아빠 학교에서 쫓겨난거 당연하다고 하는 신문. 너 그런데도 그책 봐야겠어?"라며 동생을 철없다고 해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너무 알게한 건 아닌지,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하고 싶지 않은데도 고집을 부려 대견하기보다 미안한 마음까지 들게 했던 그런 딸입니다.

근데 그 딸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옳은 것 그른 것, 바람직한 것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보다는 맘에 드는 것 그렇지 않은 것, 친구들이 많이 하는 것 그렇지 않은 것, 귀찮은 것 그렇지 않은 것으로만 세상을 구분하는 것처럼만 보여 대의와 합리성을 고집하는 소심한 아빠와 갈등이 심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한테는 져주고 기다려주면서 왜 내 딸한테 그렇지는 못할까 내 딸이라 그런가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2차 파면 당했을 때 "나 중학생 되기 전엔 복직한다더니 중학교 졸업 전에도 복직 못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해, 안심시키려고 지나가는 말로 했던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사실에 놀라며 한참 민감할 나이에 아빠의 해직이 많은 아픔이 되었을 아이에게 잘해주고 싶은데, 아빠의 그런 마음을 이용할 줄도 아는 영악함에 놀라 경계를 하게도 합니다.

인생 쉽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2년의 해직생활이 주는 깨달음입니다.

쉽지 않지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 웹진 <제3시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