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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마당] 내 생애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주례를 마치고 (임보라)

목회마당

by 제3시대 2009. 3. 19.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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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주례를 마치고

임보라
(향린교회 부목사)

1994년 함박눈이 내리던 3월24일 결혼을 했다.
내가 태어난 날도 하염없이 함박눈이 내리더니, 결혼하는 날에도 함박눈이 내린다고 '복이 많아서 그래' 하면서, 집안 어르신들이 덕담을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결혼을 결정한 이후의 과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누가 떠밀어서 한 결혼이 아니었건만,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겠다고 집안에 공표를 한 이후, 결혼은 당사자들의 몫이기보다는, 양가 부모님의 몫이 되었다. 
결혼예식을 할 장소 선정부터, 예단, 예물, 신접살림 마련 등, 학생이었던 두 사람은 이것저것 스스로 준비하고 마련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 경우 맏딸인지라, 집안의 첫 경사인 만큼, 내 중심이 아닌 부모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노래운동을 한다고 이곳저곳 지방 공연을 다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결혼을 누가 하는 거냐? 네 살림인데 관심 좀 가져라’라는 말씀을 부모님으로부터 들어야 했다.
거기에 덧붙여 그때 내가 얼마나 주체적이었으며, 또한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두 사람이 고민하며 토론했던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쉬울 수밖에....

2008년 가을, 내 평생 처음으로 “주례”라는 것을 부탁받았다.
목사가 된 이후, 장례를 비롯해서, 경조사를 집례할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결혼주례’ 만큼은 난생 처음인 나로서는 그 부탁이 생소하기도 하고, 버겁게 다가왔다.
게다가 난 부목사가 아닌가. 담임목사님이 자리를 비우신 것도 아닌데, 내가 교회 청년들의 주례를 선다는 것 역시 한켠 부담스러웠다.
이 부담스러움을 담임목사님과 나누니 ‘주례라는 것은 결혼하는 당사자들이 의미를 갖고 부탁을 한 것인 만큼, 내 목회의 일부로 여기세요.’라는 격려 담긴 답변이 돌아왔다.

언젠가는 주례를 해야겠지만, 나이도 아직 어린 것 같고, 또 여전히 여성 주례자가 희귀한 한국사회이기에 두 커플에게도 ‘부모님과도 상의했냐고?’ 몇 번씩이나 확인했다.
사실 부모님들은 결혼식 당일에서야 만나게 되는데, 예복가운을 입기 전, 인사를 드리면 아버님들의 경우, 매우 어색해 하고 당황스러워 하시는 모습을 대하게 된다. 하객들 역시도 준비를 위해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나를 향해, 다양한 느낌이 담긴 시선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수없이 보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여성, 그리고 여성목회자, 혹은 여성 주례자에게 갖는 좋게 말해 신선함, 사실은 생경함과 편견이 아직은 이 사회 가운데 여전히 남아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결혼주례도 그렇지만 장례집례는 때로는 더 깊은 편견이 드러나기도 한다. 내 스스로는 일정 정도 극복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인생주기 중, 결혼, 장례 등을 여성이 집례하는 것에 대해 터부시하는 관행이 사라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인지....          
    
이혼율이 높다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정작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제대로 묻지 않는 사회가 한국사회이다. 그저 겉으로만 보이는 현상에 대한 의례적인 진단을 내릴 뿐.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여성인권운동을 하고, 운동이 아니더라도 한국사회 내에 뿌리박혀있는 가부장제와 유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 뿌리 깊음을 확인해야만 하고, 거기에 박제화된 기독교의 교리까지 동원되어 고정된 여남의 역할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장소가 다름 아닌, 결혼식 때였다는 고백을 자주 듣곤 한다.
인구가 줄어가고 있으니 자식 많이 낳아라 신신당부하고-심지어 적어도 4명은 낳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여성의 마땅한 의무라고-, 결혼하는 당사자들의 성장과 만남의 과정은 쏙 빠진 채, 학력과 경력만을 나열하는 것에는, 나부터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이 식상할 뿐 아니라, 때로는 분노를 느낄 때도 있었을 것이다. 의례적인 주례는 차라리 없는 것이 좋겠다하여, 주례가 없는 결혼식도 많아지고 있다는데(한겨레 21, 727호) 여성의 눈으로 모든 것을 다시 보자고 부르짖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떻게 이 숙제를 풀 수 있을 것인지, 정말 많은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결혼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이 ‘결혼 후 재테크’관련이어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결혼의 의미가 두 사람의 재테크에 있다니, 아무리 물질 중심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라지만, 해도 너무한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풀어내는 책자들도 대부분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사실 앞뒤를 읽어보면 그 부분만 떼어낼 것이 아닌데 말이다-이라는 것이 주된 줄거리인 경우가 많았다.   

결혼 주례 어떻게 준비하나? 라는 책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 전후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아쉽게 생각했던 것들을 메모하는 것에서부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왜 하려는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결혼제도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두사람이 어떻게 다른지, 혹은 어떤 면이 같은지에 대한 테스트, 연애 시작의 과정, 연애 과정 중의 위기와 극복, 어린 시절의 이야기, 가족, 친구들에 대한 기억들, 신앙관, 결혼 후 닥칠 일상에 대한 점검 등등 두 사람이 미리 나누면 나눌수록 좋을 이야기 거리들과 함께, 두 사람의 특별한 날인 결혼예식을 그저 그런 순서로 진행할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은 물론 함께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축제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당사자들과 의논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갖기로 했다.

내 생애 첫 주례는 지영이와 상연이의 결혼식이었다.
독일 유학 중인 상연이가 한국에 있는 동안 결혼식을 올려야 했기에, 너무도 짧은 시간 모든 것이 결정되고 준비되었다.
오랜 기간, 연애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 이 두 사람과는 네 차례의 만남 시간 밖에 갖지 못했지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진지하게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그 가운데 한번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또 다른 커플, 영은이와 훈호와 함께 네 사람이 모여, 연애 이야기와 결혼 후, 일상에서 부딪힐 수 있는 여러 주제들을 놓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는데, 유쾌하면서도, 솔직담백했던 이야기들이 오고간 시간이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다.

지영이와 상연이의 결혼식은, 첫 경험이었기도 했거니와, 검찰청에 있는 강당에서 진행되다 보니, 그 주변 분위기로 인해 더 긴장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시간가량 진행된 긴 예식 내내 대부분의 하객들이 자리를 지켜주어 참 감사했다.
시종 여유있는 웃음을 잃지 않았던 지영이의 모습, 반면 긴장하여 지영 손도 잡지 않고 혼자 휙~하니 가버렸던 상연이의 모습이 생각난다. 뒤에서 얼마나 터지려는 웃음을 참았는지... 

영은이와 훈호는 결혼 준비기간이 여유가 있던 편이라, 만남의 횟수가 7번에 이르게 되었다. 여성인권 활동과 공부모임을 통해서도 평소 자주 속 얘기들과 생각들을 나눌 기회가 있어 왔지만, ‘결혼’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여러 차례 나누다보니, 어린 시절 상처가 되었던 기억을 나누는 더 깊은 단계로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영은이를 봤을 때부터 결혼 생각이 들었다는 훈호는 결혼식 시작 때부터 울고 싶었다더니, 결국 축복기도 할 때 쯤 눈물을 터트려 그 모습 지켜보던 나까지 울컥하게 했다.


두 커플과의 나눔 속에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삶에서 서로를 보듬어 가야하는지, 두 사람을 둘러싼 세상과 이웃 그리고 하느님과 어떻게 소통해 나가야 할런지의 문제는 비단 결혼을 준비하는 두 사람 뿐 만 아니라, 주례를 맡은 내 자신도 끊임없이 되짚어보아야 할 과제이니 말이다.

결혼식은 끝났지만, 우리에게 펼쳐질 시간이 더 많기에, 함께 나누고, 서약한 것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몇시간이고 마주 앉아 함께 나눌,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가 더 많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가 꿈꾸며 일구어 가고자 하는 하느님 나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나눔으로 또 나눈 바대로 살아내려는 우리의 삶 속에,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우리의 나눔 속에 이미 와 있다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 웹진 <제3시대>

* 향린교회 http://www.hyangl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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