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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정보] 서남동의 "민중신학의 탐구" (김진호)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2. 5. 2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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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서남동(1918~1984)은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과 연세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민중신학자로 독제체제에 대해 저항하여 1975년에 대학교수직에서 해임되고, 1976년에는 투옥되었다. 1977년 말, 22개월 만에 가석방되었고, 1978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 원장에 취임하여 많은 민중교회의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는 생전에 글 모음집 형식의 단행본 저작을 단 두 권 남겼다. 『전환시대의 신학』(1976년. 이하 『전환』)과 『민중신학의 탐구』(1983년. 이하 『탐구』)가 그것이다. 그리고 사후에, 이 두 권에 수록되지 않은 글들을 모아 펴낸 『서남동 신학의 이삭줍기』(1999년. 이하 『이삭』)가 있다.

『이삭』은 제목처럼 흩어진 글들을 이삭줍기 하듯 모은 것이니 내용상의 특징을 담고 있지 못하다. 반면 생전에 편찬된 두 권은 분명하게 갈리는 특징을 갖는데, 1975년을 전후로 두 유형의 신학적 경향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 이전의 경향을 대표하는 『전환』은 전후 서구의 새로운 신학적 실험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재해석하는 데 열정을 다한 결과다. 특히 세속화신학, 샤르뎅과 과학신학, 화이트헤드와 과정신학 등, 당시로선 생소한 첨단신학 경향을 선구적으로 다루고 있다. 반면 『탐구』는 서구신학에 대한 탐구를 마감하고 한국에서 신학함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담고 있다. 바로 ‘민중신학’으로의 탐구이다.

『탐구』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마지막 제4부에 실린 5편은 1960년 전후에 쓴 실존주의적 성향의 저작들인데, 머리글에서 밝히고 있듯 편집자가 권유하여 덧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1~3부에 실린 20편의 글이 저자가 민중신학 묶음집으로 기획한 본래의 원고들인 셈이다.

독서 현상으로 본 『탐구』, 민중신학의 상징적 코드였다

이 책의 독서 현상에 관해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의 하나는 출판 시기가 1983년 말이라는 점이다. ‘신군부에 의한 독재정권’이 집권 이후 공포정치에서 유화정치로 이행하던 바로 그 직후에 출간되었다. 그 전 해인 1982년에는 민중신학자들의 주요 저작을 모은, 저 유명한 『민중과 한국신학』이 출간되었다. ‘민중신학’이라는 표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렵던 시절이어서 다소 변형시킨 제호다. 1975년 서남동 목사가 「민중의 신학」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1979년 아시아기독교협의회에서 한국 신학계에서의 이러한 경향을 ‘민중신학’이라고 명명한 바 있지만, 『민중과 한국신학』이 출간된 1982년까지도 ‘민중신학’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잡지에 수록된 글이나 강연 원고 혹은 비공식 유인물에서나 사용할 수 있었다. 1983년에 와서 유화정치로 전환되면서 비로소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고, 서남동의 『탐구』는 ‘민중신학’을 제호로 하여 출간된 첫 번째 책이 되었다. 

하지만 『탐구』의 출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출간 전에도 이 책에 수록된 많은 글들이 여러 버전의 복사본 책자로 제작되어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각 버전마다 각기 다르게 편찬되었지만, 서남동 외에, 안병무, 현영학, 문동환, 김용복, 서광선, 문희석 등의 글을 모운 것이다. 이중 가장 많이 수록된 글은 단연 서남동의 것이었다. 또한 독서대중의 가장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도 그의 글이었다. 해서 서남동은 민중신학을 알고자 열망했던 사람들에게 가장 대표적인 민중신학자였고, 이들 복사본들은 바로 서남동의 『탐구』, 바로 이 책의 전작(前作)이자 원작(原作)인 셈이다.

또한 『탐구』가 출간된 이후에도 복사본의 종수나 분량은 결코 줄지 않았다. 수차례, 아니 수십 차례 재복사되어, 해독이 어려울 만큼 흐릿하고 거무죽죽하게 인쇄된 책들이 1980년대 내내 수백만 명의 청년독자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 복사본들은 『탐구』의 후작(後作)이자 위작(僞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탐구』가 민중신학을 대표하는 공식출판물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원작과 위작들에 대한 열정적인 독서운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서남동은 『탐구』 자체가 아니라 원작과 위작들을 통해 민중신학 자체를 상징하는 담론적 코드로서 존재했다. 『탐구』는 단지 그 효과이고, 그 숨겨진 담론 현상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출판물에 다름 아니다. 곧 1980년대적 담론 현상의 관점에서 보면 서남동이 곧 『탐구』이고 『탐구』가 곧 서남동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민중신학은 서남동이고 서남동이 민중신학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는 민중신학의 상징적 코드였다.

내용으로 본 『탐구』, 지역학적 신학의 진수를 담다

책의 내용을 보면 이런 열광적 담론 현상의 이유가 드러난다. 우선 한국신학의 해석학적 범례를 보여주는 가장 독창적인 모형으로 『탐구』에서 시도된 서남동의 ‘합류의 해석학’이 꼽힌다. ‘한국의 민중전통과 성서의 민중전통의 합류’라는 논점은, 그에 의하면, 공시적(synchronic) 문제틀이다. 곧 시간적 대화가 아니라 공간적 대화다. 그것을 그는 ‘성령적’이라는 레토릭으로 재기술한다. 곧 그것은 그리스도교 중심적인 형상의 해체다. 하여 그것은 정체성에 대한 집착 없이 서로 만나고 얽히고 함께 꿈꾸는 것을 해석학적 이미지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 중심에 민중이 있다. 민중은 마치 신과 인간 사이의 매개로 육화된 신, 곧 그리스도가 있는 것처럼, 민중은 두 민중전통 사이를 매개하는 그리스도적 함의를 갖는다. 이때 그리스도의 역할은, 서남동과 민중신학자들에 의하면, 신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전형적인 수직적 그리스도론이 아니라 인간과 신을 동시에 구원한다는, 아니 인간과 신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떼어놓을 수 없는 구원의 상호성으로 얽히게 되었다는, 그런 점에서 인간의 구원이 신의 구원이고 신의 구원이 인간의 구원이라는, 마치 힌두교의 ‘범아일여’와 같은 상호적 그리스도론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서남동의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서구에서 발전한 신학전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서 있는 삶의 지평이다. 이것을 구체화하는 방법론적 틀을 모색하면서 그는 ‘계시의 하부구조’라는 건축학적 이미지를 사용한다. 계시가 존재의 토대가 아니라 존재가 계시의 토대라는 신학적 반전의 어법이다. 그리고 ‘사회사적 해석’이나 ‘물질주의적 해석’ 혹은 ‘사회경제사적이고 문학사회학적 해석’이라는 사회이론적 용어를 통해 계시의 하부구조에 대한 탐구 방식을 구체화한다.

한편으로 이것은 학제간(interdisciplinary) 논의를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론 혹은 학문의 현장화(localization)를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현장이란 민중의 일상이 일어나는 공간(locale)을 말한다. ‘이야기신학’ 혹은 ‘민담의 신학’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한 문제틀이다. 서남동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고통’을 묘사하는 데 있어 핵심용어인 ‘한(恨)’이 담론화되는 공간 또한 바로 여기다. 한은 (지배적) 언어에서 소외되어 언표화되는 데 끊임없이 실패하지만, 고통을 체현하는 민중의 일상적 이야기 속에 내재되어 있고, 심지어는 한숨, 화병 같은 몸의 언어를 통해서 표출되는 ‘비언어적 언어’다.

『탐구』가 보여주는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이처럼 실험적이고 도발적이다. 그의 책은 추상적인 신학적 이론으로서의 보편학이 아니라 삶이 체화된 학문으로서 지역학적 신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대안적 이론틀로서 한국신학과 그밖의 여러 지역학적 신학의 고전 중의 고전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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