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신학정보] 다시 보는 "히브리 민중사" (김진양)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6. 1. 22. 10:53

본문


다시 보는 히브리 민중사” 





김진양

(Ph.D. 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the Old Testament))




    시카고 신학대학원 내에 소재한 한국신학연구원(CSKC) 주관으로 지난 2011년 문익환 목사의 책 『히브리 민중사』로 가을 독서모임을 했다. 독서모임의 목적은 한국 성서학자의 저서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것이다. 수많은 성서 개론서와 해설서 중 문 목사의 책을 선정한 이유는 이렇다. 번역서나 여러 논문들을 짜깁기 한 책들이 난무한 한국의 성서학계에서 문 목사의 책은 한국인의 눈으로 구약성서를 해석한 책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성서 개론서는 아니지만 민중의 시각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재구성 하였다는 점에서 학문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책의 부제가 표명하듯(문익환 이야기마당) 문 목사는 구약성서를 이야기 식으로 풀어썼다. 구약성서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주나 인용은 달지 않았지만 수많은 책을 읽고 연구한 흔적이 분명하다.


   『히브리 민중사』는 필자에게 구약성서를 민중의 역사관으로 꿰뚫는 눈을 뜨게 해 주었고 내 삶에 큰 변화를 주었다. 그저 연구와 집필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에 동참해야 함을 배웠다. 


   『히브리 민중사』는 문익환 목사가 안양교도소에 수감생활 중 생활성서에 연재하였던 히브리 민중사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1985년 시작된 네 번째 징역생활로 한번 중단 되었고 또다시 중단된 채 미완성인 히브리 민중사를 삼민사가 출판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느헤미야와 에스라 같은 포로 이후 성전 공동체의 문헌을 민중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분석한 부분이 없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와서 다시 『히브리 민중사』를 읽는 이유는 이렇다. 구약성서를 민중의 눈으로 읽는 문 목사의 책은 탈식민주의 성서비평 방법론의 아주 좋은 예가 된다는 생각에서다. 문 목사의 히브리 민중사는 창세기가 아닌 출애굽기에서 시작한다. 출애굽기의 중심주제는 당시 고대 근동의 맹주 애굽[각주:1] 제국의 억압과 착취에 당당히 맞서 승리한 하비루의 신 야훼의 승리라는 것이다. 출애굽기의 하나님은 애굽의 지배자의 신과는 달리 억압과 착취에서 고통당하는 히브리인들의 하나님 이라는 것과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해방절 이라고 부르는 점은 민중의 시각으로 출애굽기를 보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해방신학자들이 출애굽기 해석에만 집중한 반면, 민중의 시각으로 성서를 읽는 문 목사의 해석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여호수아서를 읽는 독자는 애굽에서 탈출한 해방군이 가나안을 점령한 침략군이 되는 기록을 보면서 의아해 한다. 하지만 문 목사는 히브리인들을 침략군이 아니라 해방군이라고 부른다. 문 목사에 의하면, 여호수아의 하비루 부대는 반 애굽 기치를 들고 일어선 농민 해방군과 출애굽 한 농민 해방군이 합세하여 애굽의 지배를 추방하는 해방전쟁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애굽 지배자들의 앞잡이가 되어 있는 도시국가들을 타도하는 일이다. 여호수아가 보낸 두 명의 정탐꾼을 숨겨준 창녀 라합과의 동맹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여호수아 2:1, 3; 6:17, 23).


    여호수아 6-7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리고 성 함락은 해방전쟁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사기는 200년간 이루어진 해방전쟁을 기록하고 있고 특별히 사사기 5장은 해방전쟁의 승전을 노래하고 있다고 한다. 문 목사는 히브리인 다윗이 블레셋을 굴복시킴으로 농민해방 전쟁이 대단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삼상 29:3).[각주:2]  


   여호수아서와 사사기를 해방전쟁으로 보는 관점은 조지 맨덴홀(George Mendenhall)의 논문 “히브리인의 팔레스타인 정복”(The Hebrew Conquest of Palestine, 1962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맨덴홀은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은 타락한 토착 가나안의 정치 사회적 체계에 대항한 사회적 약자 연대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대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하부계층과 출애굽 한 히브리인들이 연대한 농민봉기의 결과라는 것이다. 맨덴홀은 아마르나 편지가 농민봉기의 고고학적 자료라고 주장한다. 후에 노만 갓월드(Norman Golttwald)는 자신의 책 “야훼의 족속들”(The Tribes of Yahweh, 1979)에서 이스라엘의 기원을 농민봉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다시 주장하였다. 성서학자 브루거만도 갓월드의 영향을 받아 사회학적 방법론으로 성서를 해석한다. 문 목사의 『히브리 민중사』도 맨덴홀, 갓월드, 브루거만과 같은 맥락의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성서를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히브리 민중사』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상당히 많은 지면을 민중의 시각으로 예언자의 메시지를 해석하는데 할애한다. 이는 타락한 이스라엘 왕조에 대항하여 “해방신 신앙을 되살리려는 신앙운동이 예언 운동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각주:3] 문 목사는 이스라엘의 예언운동을 하비루 농민 해방군 전통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온 엄청난 물줄기라고 주장한다(아모스 5:24).[각주:4] 


    사울을 왕으로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는 설화는 사무엘이 이끄는 예언운동이 출애굽 해방전쟁의 연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에게서 구해 낼 것이다. 내 백성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사무엘상 9:16). 문 목사는 사무엘이 출애굽 민중 해방운동을 이어나갔다는 점에서 사무엘을 제2의 모세라고 부른다.[각주:5]   


    문 목사는 예언자 사무엘의 뒤를 이은 엘리야도 8세기 예언자들도(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출애굽 해방전통을 이어간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 목사에게는 예언운동은 당시 최대 강국인 앗시리아 제국의 비호아래 악행과 억압적 정책을 저지르는 북 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 왕국의 지도층과 부유층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재야의 목소리”라고 주장한다.[각주:6]  


    히브리 민중사는 출애굽 해방정신과 그 정신을 이어가는 예언전승이다. 구약성서는 제국의 억압과 폭정에 굴하지 않고 해방정신을 이어갔던 히브리 민중의 신앙과 삶을 기록한 민중의 책이다.  



* 필자소개

    현재 미 연합감리교회 북 일리노이 연회에서 목회,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에서 구약학 전공(Ph.D.), Wartburg College에서 강의


ⓒ 웹진 <제3시대>

  1. 필자는 고대 이집트를 현대 이집트와 구분하기 위해 히브리어 미츠라임을 이집트라고 번역하지 않고 애굽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본문으로]
  2. 문익환, 『히브리 민중사』 (서울: 삼민사, 1990), 35-73쪽. [본문으로]
  3. Ibid., 129쪽. [본문으로]
  4. Ibid., 134쪽. [본문으로]
  5. Ibid., 143쪽. [본문으로]
  6. Ibid., 154쪽. [본문으로]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