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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6년을 기다린 기억 (도임방주)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09. 5. 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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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을 기다린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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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임방주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

어디서 어떤 사람을 어떻게 만날지는 ‘하느님’도 모르는 것 같다. 만약 아신다면 안가르쳐 주시는 걸 꺼다. 모르시든 안가르쳐주시든 ‘나는 알수없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불교에서는 인연을 짓는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 의미는 상황이 끝난 후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 하느님과 부처님을 오가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만남의 의미는 꽤나 지나서나 아나부다~’라는 상식을 깨우쳐준 소중한 만남에 관한 것이다.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이하 KSCF)의 회원자격으로 태국의 버마이슈라는 곳에서 인턴이 되어 버마 민주화와 난민, 종족 갈등에 대해서 이런 저런 경험을 하고 있던 것이 2003년 여름의 일이다. 숙소에서 버마이슈 사무실까지 걸어서 3분, 아주 짧은 거리지만 그 사이에 식당이 2개, 이발소가 1개, 구멍가게가 1개 있을 정도로 빽빽한 주택가였다. 아침에 출근길에 아침인사와 목례를 하면 ‘Good Morning’이라고 답을 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정말 외국인으로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동네에서 눈에 띄는 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달 가까이 지내다 보니 머리가 많이 자라 지나면서 늘 인사하던 이발소에 들어가 머리를 손질(?)하게 되었다. 이발사 청년과 자연스럽게 짧은 영어로 가계조사와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게 되었다. 워낙 친절한 사람이라 나중에는 머리 깎지 않아도 서서 이야기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태국의 찜통 더위와 소나기를 경험한지 두달이 지날 무렵, 그 친절한 친구가 시간되면 저녁을 먹자고 했다. 가까운데 좋은 곳이 있으니 가자고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요리사’인데 곧 요리를 배우러 유럽에 가게 될지 모르니 가기 전에 식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오히려 현지인과 ‘민주와 인권, 투쟁’이 아닌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흔쾌히 ‘OK’하고 사무실로 들어와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기쁜 표정으로. 그런데 사무실에 일하는 친구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내가 모르는 정보와 느낌을 나누는 듯했지만 상관하지 않고 저녁식사를 하러 그 친구와 ‘룸비니 공원의 나이트 바자’를 갔다. 시끄럽게 공연과 흥정이 오가는 시장에서 조금 조용한 레스토랑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그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별로 할 말이 없어 주로 듣고 있었는데 식사 시간이 거의 끝날 즈음 그 친구가 나에게 “당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고 나는 “와~ 기대가 됩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런데 그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가 ‘커플이 되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생각이 확 스치면서 정확하게 무슨 이야기인지 물어보았다. “무슨~ 뜻이에요?” 돌아온 답은 “당신이 맘에 들어요, 좋아요~”. ‘앗! 이거였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뭐라 할말이 떠오르지 않는 긴장된 상황이 되어버렸다.

‘앗, 어떻하지? 거절해야 하는데, 뭐라고 하지, 어~ 이거 뭐라고 하지???’라며 머릿속을 굴리고 있는데 그 요리사가 꿈인 친구가 폼나게 거절할 미끼를 던져주었다. “내가 같이 살고 있는 친구가 있지만 내 마음을 이해해 줄 거예요”라고. ‘이거다. 이때다!!’ 나는 2.7초도 지나지 않는 순간에 “그러면 안되죠,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안되요, 당신의 친구가 불쌍하잖아요~~”라고  ‘웃으며’ 정당하고, 윤리적으로 거절하였다. 이후 이야기는 순풍에 돗단배처럼 술술 풀려갔다. 그 이발사가 비윤리적인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설득하고, 나중에 더 좋은 기회가 올거라고 달래며 택시를 태워보냈다. 그리고 생맥주 한잔......‘지금 뭔일이 있었는데, 아~~ 정리하고 싶지 않다.. 휴~~’ 한숨을 돌렸다.

한국에서 KSCF회원으로 민주와 통일, 인권, 소수자의 권리 운동에 음으로 양으로 관계를 맺어오면서 논리와 당위는 머릿속에 또라이1)를 틀고 있었지만, 그 권리의 주체가 [사람]이라는 생각은 없었던 것을 알아차린 것은 ‘그 인연’이 시발점이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자각하기까지 6년이란 시간동안 그 기억은 내 머리 한편에 독방에서 구금 당해 있었다.

기독교내의 동성애자가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도 어려운 상황임을 절실하게 알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이하 차세기연)의 활동이 6년전의 기억을 눈 앞으로 불러세웠다. 여전히 동성애인권을 말하는 내 입은 6년전 눈 앞에 있던 ‘요리사가 되고 싶은 이발사 친구’를 내가 동성애인권을 알게 해준 ‘은인’으로 조작하면서 차세기연에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내 위치를 돋보이게 하는 ‘지지자’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이 인연을 생각하게 되었다.

6년전 너무나 당당하게, 윤리적으로 설득했던 내 모습과 그 인연을 활용하여 동성애인권과 신앙과 신학을 말하는 내 모습 어디에도 ‘그 인연 속의 그 친구’는 없었다. [사람이 없었다]

6년을 기다린 그 기억의 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미안해~ 내 스타일이 아닌데~”

하느님도 부처님도 말해주지 않는 그 인연의 깊은 뜻은 뭘까?라고 다시 질문하는 내 머릿속에 또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
‘에이씨~ 이런 된장~~’

ⓒ 웹진 <제3시대>


1) 오타가 아닌 필자가 독자에게 던지는 30대 개그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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