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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눈 : 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2] 푸코는 주체를 부정하는가? (허석헌)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16. 5. 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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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2]

푸코는 주체를 부정하는가?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미셀 푸코가 1984년에 사망하기 직전 남긴 가장 마지막 글은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단편 에세이였다. 이 에세이는 같은 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UC 버클리에서 개최된 ‘근대와 계몽’이라는 세미나에 보내졌는데, 이 세미나에는 하버마스, 찰스 테일러, 리차디 로티, 허버트 드레이푸스 그리고 폴 라비노우와 같은 세계적 석학들이 참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세미나는 푸코의 죽음으로 돌연 취소가 되었고 푸코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푸코의 이 마지막 에세이는 푸코가 계몽과 근대의 시대를 향해 남긴 일종의 유언장이 되고 말았다.[각주:1] 물론 이 에세이는 그가 죽음을 맞이한 병상에서 쓴 것이 아니라, 6년전에 발표한 강의의 글을 다시 구성한 것이기에 그의 최후의 유고작이라는 지나친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럼에도, 계몽에 대한 물음과 그의 답변은 푸코 자신의 철학의 근본적인 물음, 철학의 방법, 철학적 구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저작임에는 틀림없다.  

          1784년에 칸트가 받았던 질문을 스스로 자신에게 다시 던져놓고, 계몽과 근대를 향해 푸코가 하고 싶었던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는, 근대를 낳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로부터 2세기가 지난 즈음, 또한 포스트모던 혹은 탈근대라는 용어가 이미 시대를 풍미하는 시점에서 굳이 지난 유행어를 꺼내 든 것일까? 다소 의아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자문자답 안에는 어떤 의도가 배어 있는 것일까? 그는 칸트가 말한 계몽, 즉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성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 그러나 사적이지 않고 공적인 사용이라는 한계에서만 가능해지는 계몽의 의미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성의 비판적인 사용이라는 점에서만큼은 푸코가 의미부여하려 했던 계몽의 해석을 위한 출발점으로는 충분한 것으로 보았다. 푸코에게, 계몽은 시간의 차이로 구분되는 고전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 사이의 단순한 시차적 경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오늘의 역사안에 서있는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서, ‘계몽이란 현재에 대한 비판적 태도 혹은 혹은 철학적 에토스(Philosophical ethos)’라는 것이다. 푸코는 이렇게 계몽이라는 개념을 역사적 시대의 특정한 구획점으로 사용하지 않고, 인간이 구체적인 역사적 실재와 관계하는 역사 존재론적 그리고 역사 실천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를 탈근대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면, 포스모더니즘은 계몽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계몽을 푸코식대로 시대의 변화 안에서 영속하는 에피스테메를 발견하는 비판적 태도라고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반계몽적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계몽의 시대의 또다른 패러다임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푸코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는 전통적 권위를 타파하고 이성의 주체를 세울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확신이 이성을 합리주의적 세계로 향하는 목적을 완성시키려는 전체주의적인 도구로 절대화시켜버린 오류로 좌절되었던 경험으로부터 경계를 긋고 이로부터 벗어나 또다른 새로운 가치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와는 거리가 멀다. 계몽의 시대 이후로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 사고방식, 문화, 세계관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 오늘의 실재의 체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또다시 등장하게 된다면 이것은 가장 위험한 전통의 회귀만을 낳았던 과거의 경험을 반복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푸코가 계몽주의에서 발견해 내려고 했던 것은, 전근대와 근대, 근대와 탈근대를 특정짓는 사실적인 기준 같은 것이 아니며, 또한 그러한 시도는 전혀 무의미한 노력이다. 다만, 구체적인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통해 주체를 구성하는 방식, 또는 우리가 역사적 실재와의 관계를 맺는 방식의 변화를 발견하고 이 변화안에 내재하는 철학적 에토스를 주체를 창조하는 원리로서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느냐가 철학이 관심가져야 할 물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몽에 대한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푸코는 결국 자신의 철학적 연구가 세가지 영역과 두개의 방법론을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려는 듯 하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푸코는 세가지 영역으로서, 지식, 권력, 그리고 윤리를 구분하는데, 지식은 사물에 대한 지배관계들을 파악하기 위한 영역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지식의 주체들로서 구성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답하기 위한 범주이다. 권력은 우리가 어떻게 권력 관계들을 행사하고 또 그것에 복종하는 주체들로서 구성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서, 타인들에 대한 행위의 관계를 다루는 영역을 말한다. 끝으로 윤리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들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즉, 우리는 어떻게 우리 행위의 도덕적 주체로서 구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답하기 위한 연구의 최종단계이다. 이들 세 영역의 철학적 연구의 범주들은 두가지의 방법론을 통해 검토된다. 하나는 고고학이며 다른 하나는 계보학이다. 모든 지식, 혹은 모든 가능한 도덕적 행동의 보편적 구조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행위를 설명해 주는 역사적 사건들이 드러내는 담론의 사례를 다룬다는 점에서 고고학적이어야 하며, 현재의 우리의 존재형식이 과거로부터 변형되어온 것 처럼, 앞으로의 변화를 현재로부터 구분해 내어야 한다는 점에서 계보학적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들 세 영역과 두 방법이 서로 완전히 독립되어 있거나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푸코의 구분에 따라 그의 철학적 방법론은 지식의 고고학, 권력의 계보학, 윤리의 계보학이라는 세 가지의 영역으로 최종 구분된다.

         이와 같은 푸코의 철학적 물음과 방법, 구조에 관한 포괄적인 진술은 그의 철학적 단절점들에 대한 그의 해명임과 동시에, 그의 철학적 노정을 일관된 틀안에 재정렬하려는 포괄적인 의도라고 보여진다. 다시 말해, 계몽 혹은 근대성이 이성을 통해 인간의 자유를 확장시켜온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주체성이 상실되어온 역사라는 그의 초기의 입장이 함축하는 인간의 자율성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태도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어떤 희망의 여지를 남겨보려는 변화된 의도가 감지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성의 역사 2권 ‘쾌락의 사용’과 , 3권 ‘자기의 배려’가 그의 마지막 해인 1984년에 출간되었을 때에, 그는 1권 ‘지식의 의지’에서 보여준 주체에 대한 회의적 태도로부터 물러나, 윤리적 주체로서의 삶의 가능한 방식을 개진하였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성의 역사 1권에서 성을 억압해온 역사라고 믿어왔던 억압적 권력의 실체가 허구임을 보여주며, 성에 관한 지식과 담론의 확대가 효과적으로 인간을 통제하는 권력의 방식이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던 푸코에게서 인간의 주체적 삶의 방식에 회의적인 태도는 역력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성의 역사 1권인 앎의 의지를 1976년에 출판한 후 8년 뒤 펴낸, 2, 3권 사이의 긴 공백은 푸코에게 전환의 시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푸코는 1권이 주체를 담론이나 권력의 효과로 간주함으로서 주체를 객체화 했다면, 2, 3권은 개인이 스스로를 성의 주체로 인식하고 경험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한마디로 말해 1권과 2,3권 사이에는 푸코 철학 내부의 일대 단절이라 일컬어지는 사색의 전환 즉, ‘앎, 권력, 담론’의 주제로부터 ‘자기와 윤리’의 주제로의 급전환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제 1권 ‘앎의 의지’와 2권 ‘쾌락의 활용’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1권에서 푸코는 성의 문제를 억압적인 패러다임으로 이해하는 ‘억압가설’에 회의적 태도를 보인다. 우선, 푸코는 성의 역사를 억압 증대의 역사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가설에 정면 도전한다. 대신, 성에 대한 담론은 권력 자체가 행사되는 장에서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17세기 부르주아 사회는 성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고 검열, 통제하였던 시대였음은 분명하지만, 담론과 담론의 질서라는 차원에서는 성에 관한 담론, 형식과 대상에 따라 서로 다른 특수한 담론들이 끊임없이 확산되었음을 밝혀낸다. 푸코는 이러한 성의 담론의 확산의 진원지를 기독교 정신 및 고백의 교리 안에서 찾으려 했다. 기독교의 고해성사는 육체적 성행위에 대해 절제된 언어로 숨김없이 말하도록 강제함으로서 성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고 분석한다. 나아가 성의 담론이 중세에는 육신과 고해성사의 실천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단일한 담론의 형식을 띠었다면, 최근의 여러 세기 동안에는 정신분석학을 비롯한 인구통계학, 생물학, 의학, 심리학, 윤리학, 교육학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성에 관한 담론이 생산되고, 담론의 형태가 다양화되며, 담론 연결망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의 역사 1권은 성생활에 관해 말함으로써 유발된 권력효과는 무엇이고, 이러한 담론, 권력효과들에 의해 둘러싸인 쾌락 사이의 관계, 거기로부터 발생된 지식이 무엇인지를 묻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푸코의 연구는 성에 관한 전반적 담론현상과 담론화를 고찰하는 것, 담론을 따라 발생하는 권력이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의 다형적 기술, 그리고 담론의 생산에서 매체와 동시에 수단의 구실을 하는 지식의 의지를 도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 금세기까지 서구인의 섹슈얼리티는 개인의 쾌락이나 자기 발견과는 무관한 권력기제로 작용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은 연구에서 푸코가 전제한 것은 주체가 자기에 관한 진실을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권력-지식의 치밀한 관계망을 통해 구축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근대의 주체는 개인의 신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통치체제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푸코의 관점은 인간의 주체는 지식과 담론, 권력에 의해 예속된 무기력한 존재라는 비관적인 결론으로 이끌고 가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푸코의 이러한 관점은 2권으로 이어지는 그의 책에서 윤리적 주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인간 주체에 대한 회의로부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성의 역사 2권에서 푸코는 1권과는 다른 논조로 성에 관해 접근한다. 그는 2권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변화된 관점을 진술한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서구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스스로를 ‘성’의 주체로 인식하게 되는 이러한 경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관점은 연구의 과제를 설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1권에서 권력-지식-쾌락체제의 작동과 존재이유를 결정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라면, 2권은 성과 관계된 지식의 형성, 그것의 실천을 규제하는 권력체계, 그리고 개인이 그 안에서 스스로를 이 성의 주체로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해야만 하는 형태들 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변화된 것이다. 처음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이미 1권과 동일한 연장선에 있지만, ‘개인이 성의 주체로 인식’하게 된 방식을 계보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새롭게 추가된 것은 푸코의 변화된 관점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는 욕망과 욕망하는 주체에 관한 역사적, 비평적 작업을 통해 개인들이 욕망의 주체로 되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해왔는지를 분석하려 했고, 이 같은 실천을 통해 개인들은 자신들 사이에 어떤 관계를 작동시킴으로써 그들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을 해독하고 자신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욕망의 주체라 고백하게 되었음을 밝히려 했다. 즉, 개인은 자기와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주체로 세우고 주체로 인식하게 되는데, 이같은 자기와의 관계가 어떤 형태와 양태들을 취하는지 탐구해야 했던 것이다.

         푸코는 이 같은 그의 문제설정이 우리 사회에서 분명 대단한 중요성을 지녔던 실천들의 총체, 존재의 기술이라 불릴 수 있을 그런 실천들의 총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이 존재의 기술, 자아의 기법이 기독교의 사목적 권력행사에 통합되면서, 그리고 나중에는 교육적, 의학적, 혹은 심리학적 유형의 실천들에 통합되면서 그 중요성과 자율성을 어느 정도 상실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의 사목권력을 성에대한 담론의 확산 주체로 보았던 1권과는 다른 입장이다. 1권의 입장에서 개인은 기독교, 정신분석학, 의학, 교육학 과 같은 많은 담론형성의 주체에 의해 예속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았던 반면, 2권은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온 개인의 존재의 미학과 자아의 기법의 자율성과 중요성이 역사 속에서 어떤 변화를 거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둠으로써 개인이 ‘존재의 미학’의 기준을 작동시키면서, 자기의 실천을 통해 어떻게 주체화되어 왔는지에 역점을 두고 있다.이제 푸코에게 성은 담론. 권력의 통제를 받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개인이 쾌락을 도덕적으로 활용하는 매개체이자, 스스로의 도덕규범을 만들고 지키는 능동적 주체라고 그의 입장을 전환한다. 푸코에 따르면, 주체의 형성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푸코는 그것을 '자기의 테크놀로지' 혹은'자기의 배려'라고 부른다.

         이렇게 푸코가 제 1권과 제 2.3권 사이에 전개시킨 논리의 변화를 모순 혹은 단절로 보아야 할것인가? 푸코 그 자신이 자본주의적인 억압적 질서안에서 무저항적 태도를 부추기는 투항주의라는 비난을 의식했던 하지 않았던 간에, 그 안에서 벌어진 틈새를 메워야 할 필요가 있었음은 추측 가능하다. 결국, 계몽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합리주의적 전통에 남아있거나, 계몽을 비판하고 합리성의 원리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양자택일적인 부정적 입장을 모두 배격하고 실천적인 비판으로 돌아서려는 긍정적인 이해를 통해 ‘자기의 배려’라는 인간의 자율적인 주체의 가능성으로 그의 결론은 다다르게 된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그를 향한 의심어린 시선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푸코의 윤리적 주체란 자기에로의 테크놀로지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만큼 사회적 권력과 담론으로부터 서있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개인의 높은 수준의 능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언론과 정치적 눈속임에 쉽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다수에게 푸코의 주장은 엘리트주의적인 것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자기의 배려, 자기의 테크놀로지는 주체의 가능성을 결국 개인의 내부적 문제로 축소환원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그가 받아야할 비판중 하나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비판은 전통적인 저항의 형태를 전제할 때만 타당하다. 푸코는 전통적인 주체로서의 고정적인 실체를 거부하고 새로운 형태의 저항의 주체를 생산해야 할 시점이라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와 권력’에서 다음과 같은 푸코의 진술은 이러한 그의 입장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 “오늘날 아마도 주요한 목표는 우리들이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현재의 존재방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개별화함과 동시에 전체화하는 근대적 권력구조의 이런 종류의 ‘이중적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우리들이 누구일 수 있을까를 상상하고 구축할 필요가 있다. 결론으로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정치적, 윤리적, 사회적, 철학적 과제는 국가나 제도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에 결부되어 있는 개별화 방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푸코에게, 저항의 대상은 억압적인 시스템을 콘트롤하는 외부적 실체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저항의 대상은 부재하며, 설령 존재하는 저항의 대상이 제거되는 것으로 인간의 억압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저항의 거점이다. 저항의 거점으로서 자아는 자신에게 관련된 권력관계를 능동적으로 맺어나가 는 주체의 존재 방식 혹은 자아의 형성기술을 통해 마침내 윤리적 주체로서 저항의 실천적 삶으로 진입하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에 대한 타인의 지배 테크놀로지에서 자신이 자신 스스로에게 행사하는 지배 테크놀로지로 우리의 시선이 옮겨질 때에,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목표에 다가설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주체에 대한 푸코의 진술이 여전히 자율적인 주체가 실재와 관계하는 방식의 변화를 선언적으로 요구하는데서 멈춰버린 듯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 웹진 <제3시대>

  1. 이 에세이는 1978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한 강연회에서 있었던 푸코의 ‘비판이란 무엇인가? :비판과 계몽”이라는 강연에서 먼저 발표된 것이었고, 그 후 1983년에 ‘계몽에 관한 칸트의 에세이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칸트의 태도에 관한 비평’이라는프랑스 칼리지에서의 오프닝 강의로 다시 발표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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