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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남편이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김난영)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6. 8. 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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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남편이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매번 눈치보느라 외식메뉴도 결정 못하는 사람인지라, 설마 하는 맘으로 "그래 해봐"하고 던진 말이 "8월 1일부터 1년 동안 휴직이야. 내가 우리 회사 육아휴직 남성 1호야"하는 답변으로 돌아왔다.  

     부부가 막연히 생각해오던 1년의 휴식이 예상보다 빨라져 당황스럽기도 하다. 출산과 육아로 5년을 집안에만 있던 나는 부랴부랴 구직사이트를 기웃거리고 묵은 이력들을 끌어모은다. 남편의 휴직동안 가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될까 싶었지만 경단녀는 내게도 현실이었다. 며칠을 혼자 끙끙 앓고 있으니, 남편이 함께 놀잔다. 고마웠다. 그래, 기왕 노는 거 네 식구 똘똘 뭉쳐 놀아야지. 은행에 당당히 빚내고 일년을 지내보기로 했다. 

     밥줄인 일터에 매여 저녁조차 없는 남편의 삶에 아침, 점심, 저녁이 생겼다. 현관문 열림과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질주하는 아이들의 등원길 내게 든든한 지원자가 생겼다. 한낮의 한적한 도서관을 이용할 수도 있고, 하루 한끼 정도는 아이들 눈치 안보고 부부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민할 수도 있다. 무작정 짐 싸서 여행길에 오를 수도 있겠다. 

     서른 넘은 우리 삶에 '쉼'이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1년에 한번 큰돈을 들여 휴양지에 몸을 늘어뜨려 놓는 것이 휴식과 충전이라고 말한다. 짧은 시간 알차게 놀아야 한다고 계획을 이리저리 세우다 머리가 빠질 것 같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눈 뜨자마자 놀 궁리를 시작하는 아이들은 신문지 한 장만 있어도 한 시간 넘도록 신나게 노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졌다. 그건 우리 어른들도 갖고 있던 능력일텐데, 기껏 그 능력을 계발한다는게 어째 세상이 더 재미없어진 것 같다. 게다가 아이들은 하루 낮잠 한 시간이면 휴식 끝! 충분한 수면이면 종일 방방 뛰고 놀아도 아침이면 에너지로 가득 차 이불 위로 튕기듯 일어나 또 놀 궁리를 시작한다. 아이들보다 더 강한 면역체계를 갖춘 어른이라면 저녁이 있는 삶만 보장해줘도 몰아쳐서 쉬기 위해 애쓸 일도, 삶의 피로로 어깨가 무거울 일도 없지 않을까. 

     남편은 며칠 전부터 항공권 사이트를 들락거린다. 그가 자꾸 '마지막'이라는 수식을 붙여 1년을 너무 계획성 있게 쓰려고 하는데 말려봐야겠다. 이제 막 발맞춰 걷기 시작한 아이들, 세상 신기한 것들로 가득찬 아이들의 손잡고 실컷 걸어나 볼까 싶다. 아이에게 삶의 놀이는 무엇이고 행복은 무엇인지 좀 배워봐야겠다. 그리고 내 욕심 한번 부려서 라면물만 겨우 맞춰 끓이는 남편에게 감히 살림을 가르쳐볼까 한다. 마지막이 아닌 우리 인생 첫번째 쉼이 되도록 한껏 궁리하고 놀아보는 일년이 되어야겠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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