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신학정보] 모세오경의 약자보호법 (김진양)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6. 9. 20. 09:48

본문


모세오경의 약자보호법





김진양

(Ph.D. 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the Old Testament))




  기업총수의 가석방 소식을 접하거나 불법 대선자금으로 기소된 정치인들이 솜방망이 처분을 받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허탈해 하면서 종종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법은 만인이 아니라 오직 만명에게만 평등하다.” 법이 부자와 권력자의 방패막이로 전락해 버린 안타까운 사회를 풍자한 말이다. 법이 보호해야 할 대상은 사실 다름 아닌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같은 무시무시한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부자나 권력자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약자나 가난한자의 눈을 상하게 하면 자신의 눈으로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사실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다. 또한 함무라비 법전은 최저임금을 제정하여 약자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등 인류 최초의 약자 인권 보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약자를 위한 인권 보호법은 함무라비 법전 서문에 잘 나와 있다: “백성의 복지와 안녕을 촉진하고, 정의가 온 땅에 충만하여 악을 멸하고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일이 없고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기 위해 법을 만든다.”[각주:1]


  모세오경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창조 이야기나 출애굽 사건이 아니라 함무라비가 정의의 신 세메쉬에게 법을 수여 받은 것처럼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 즉 법을 수여 받은 것이다. 모세가 받은 법은 출애굽 한 히브리인들이 더 이상 바로의 억압과 노예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배우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법은 인간실존인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모세오경은 함무라비 법전과 유사한 “계약 법전”(출애굽기 20-23)을 포함하고 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구체적인 방향을 보여준 “성결 법전” (레위기 17-26)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를 설정하는 “신명기 법전”(신명기 12-26)도 포함하고 있다. 모세오경을 하나의 법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세 법전이다. 세 법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것일까? 바로 레위기 19장 18절 말씀이다: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레위기의 이 말씀은 약자와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성서적인 복지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고 할 수 있다.


  너의 이웃은 누구인가? 이웃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레아”(רע)는 모세오경에서 “동료”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였고(출애굽기 2:13; 11:2; 21:14; 22:7; 레위기 20:10), 때로는 “약자”나 “가난한 자”를 이웃으로 규정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레위기 19:13, 16). “외국인” 혹은 “이방인”으로 번역될 수 있는 히브리어 “겔”(גר)은 창세기에 2번, 민수기와 출애굽기에 각각 9번, 레위기에 18번, 신명기에 21번 나온다. 모세오경의 다른 어떤 책보다 신명기는 가난한 외국인을 이웃으로 간주하여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법)임을 분명히 있다(신명기 24:10-18).


    신명기에는 추수기에 거두어들인 수확을 반드시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법이 있다. 추수하는 곡식을 가난한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와 나누고 올리브 나무 열매와 포도를 가난한 외국인과 과부와 고아와 함께 나누는 법이다(신명기 24:19-22).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하늘의 선물인 땅의 소산물을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눈다는 신앙고백이며, 우리 신앙인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법인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신명기 법전은 특별하다.


 모세오경의 법전의 약자 보호법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에서 온 것이다. 신명기 법전의 한 조문은 이를 잘 반영한다.


외국 사람과 고아의 소송을 맡아 억울하게 재판해서는 안된다. 과부의 옷을 저당 잡아서는 안된다. 너희가 애굽의 종살이하던 것과 주 하나님이 너희를 거기에서 속량하여 주신 것을 기억하라(신명기 24:17-18).


 계약법전도 약자 보호법을 같은 맥락에서 언급하고 있다.  


너희는 이방인을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된다. 너희도 애굽 땅에서 몸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너희는 과부와 고아를 괴롭히면 안 된다(출애굽기 22:21-22).   


 성경법전도 약자를 억압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출애굽 경험에서 소개하고 있다.


너희와 함께 사는 외국인 나그네를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기고 그를 너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너희도 애굽 땅에 살 때에는 외국인 나그네 신세였다(레위기 19:34).


 고대 이스라엘의 약자 보호법을 고난신학으로 해석하는 김이곤 교수는 신명기 법전의 약자 보호법을 “부르짖음-응답하심”이라는 신명기 사가의 역사관에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각주:2] 시편 미드라쉬의 주석에서, “가난한 자와 부자가 함께 재판을 받을 때 세상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는가? 부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가난한자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않으신다”고 하면서 가난한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찬송한다.[각주:3] 이 주석을 보완하기 위해 시편 미드라쉬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예증을 보여준다.


 어느 날 일천의 번제물을 가지고 온 아그리빠 왕이 대사제를 향하여 “오늘만은 나 외의 어느 누구의 번제물을 제단에 올리지 마시오!”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뒤이어 찾아 온 한 가난한 자가 두 마리의 비둘기를 내어 놓으며 번제로 드려 달라고 간청하게 되었는데 대사제는 왕명을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그때 그 가난한 자가 말하기를 자기는 매일 네 마리의 비둘기 밖에 잡는 것이 없는데 그 중 둘은 자기 식구가 먹고 나머지 둘은 번제로 드리는 것인데 만일 이것을 드려 주지 않으면 자기의 생계는 끝난다고 애원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 대사제는 가난한 자의 청을 들어 줄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 일이 있은 후 왕은 꿈의 계시를 통하여 가난한 자의 번제와 자기의 번제와 같은 날에 드려졌고 그의 하찮은 번제물이 자신의 일천 번제물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 번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대사제를 문책하게 된다. 그때 대사제는 사건의 전말을 왕에게 아뢰었다. 아그리빠 왕은 대사제를 치하하면서, “주께서는 가난한자의 비천함을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셨다”라고 했다.[각주:4]


 시편의 3분의 1이 약자나 가난한 자가 하늘의 도움을 요청하는 탄원시다. 탄원시의 기본적인 구조도 역시 신명기 사관의 역사관을 보여주고 있다: (1) 하나님을 찾음 ⇒ (2) 삶의 구체적인 고난 상황에 대한 탄식 ⇒ (3) 응답/구원. 이처럼 탄원시가 가지고 있는 삼부구조를 통해 인간실존은 하나님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없이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다.[각주:5]


 모세오경의 세 법전(계약법전, 성결법전, 신명기 법전)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이 관계정립에 있어서 모세오경의 법전은 강자나 권력자의 불의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약자와(과부와 고아) 가난한자의 손을 들어주는 정의를 실천하는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다.


* 필자소개

    현재 미 연합감리교회 북 일리노이 연회에서 목회,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에서 구약학 전공(Ph.D.),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 외래교수,  Wartburg College에서 강의


ⓒ 웹진 <제3시대>

  1. James Prichard,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5). p. 164. [본문으로]
  2. 김이곤, 『구약성서의 고난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9). 101-03쪽. [본문으로]
  3. The Midrash on Psalms, Trans. by W. G. Braude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9/1976), vol. 1:323. [본문으로]
  4. Ibid., pp. 323-324. [본문으로]
  5. C. Westermann, Praise and Lament in the Psalms (Atlanta: John Knox Press, 1981), p. 182. [본문으로]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