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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과학]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과학” (Scientia)의 개념 (유승현)

신앙과 과학

by 제3시대 2016. 9. 2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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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과학"(Scientia)의 개념



유승현

(GTU Ph.D Candidate)


   과학은 신학의 적인가, 동지인가? 신학과 과학의 올바른 관계성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과학”이라는 용어에 대한 현대 신학적 이해의 장단점 뿐만 아니라, 고대와 중세의 신학자들이 과학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의 신학에 적용했는가를 추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과학은 현대의 자연과학에 국한된 특정한 연구 영역이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에서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지식의 총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그들의 폭넓고 깊이 있는 과학이라는 용어 이해에 대한 관점이 오늘날 과학과 신학의 논의에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2회에 걸쳐서 고대와 중세의 대표적인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와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과학”의 개념에 관해 논의하려고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후의 논의는 다음 세가지 물음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1) 그들의 과학 개념을 형성한 철학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2) 그들은 과학과 신학의 관계성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3) 그들은 당시의 자연 과학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가?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과학' 개념의 철학적 배경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론적 지성 (speculative intellect)의 성격을 지혜 (wisdom), 과학 (science), 이해 (understanding)으로 세분화한다.[각주:1] “이해”는 그것 자신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는 진리인데 반해서 “지혜”와 “과학”은 다른 것들에 의해서 인식된다. 더 나아가 “지혜”는 본성에 의해 우선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들을 나타내는데 반해서, “과학”은 다양한 인식 가능한 질료 (matters)에 의해 인식된다. 그렇다면 지혜, 과학, 이해의 세 가지는 어떤 층위를 가지고 있는가? 토마스에 따르면, “과학은 보다 상위의 가치인 이해에 의존한다. 또한 이 둘은 최상위에 이르기 위해 지혜에 의존한다. 과학의 결론과 과학과 이해가 기반하고 있는 원리들 모두를 판단함으로써, 지혜는 그 하위에 이해와 과학을 포함한다.”[각주:2]

   토마스는 과학이 지혜 뿐만 아니라 제일원인인 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런 토마스의 기본적인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유산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대한 몇 가지 주석서들을 열정적으로 집필했다.[각주:3] 토마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광범위한 영향력은 단적으로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철학자” (the Philosopher)라고 지칭한 것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그의 영향력은 형식 논리학 (formal logic), 현실태와 가능태 (actuality and potentiality), 4원인설, 지식에 대한 이해, 형이상학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체계를 따라 아퀴나스는 명증적 삼단논법 (demonstrative syllogism)을 과학의 적절한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논리학과 수학에 국한된 명증적 삼단논법의 결과로서의 토마스의 scientia에 대한 설명이 과학의 적절한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토마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적 과학이 가능한가?

   이 문제에 관해서, 1912년에 출판된 The Catholic Encyclopedia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의 과학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정의를 제시해 준다: “과학은 자연과학이라는 제한적 의미로 이해되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용어의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해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을 증명에 의해 얻을 수 있는 확실하고 분명한 지식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그들의 원인들로부터 파생되는 사물들 (things)에 대한 지식으로서 토마스의 과학에 대한 정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각주:4]

   이 인용에서 나오는 토마스의 과학에 대한 정의는 그의 “이교도 대전” (Summa contra Gentiles)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토마스는 그의 과학에 대한 정의에 근거한 신에 대한 하나의 명제를 제시한다: “만약 과학이 그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한 지식이라면, 또한 신이 모든 원인들과 결과들의 순서를 안다면, 또한 그에 따라 개별자들의 적절한 원인을 안다면, 적절한 의미에서 그것은 신 안에 과학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각주:5] 이러한 추론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삼단논법의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만약 토마스가 신을 설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적용한다면, 신에 대한 과학은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추론과 증명을 사용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이성인가 믿음인가?


   앞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토마스의 체계에 내재되어 있는 이성과 믿음, 과학과 신학에 대한 관계성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토마스의 입장이 어거스틴과 다른 점은 어거스틴의 경우 과학과 이성의 모호성을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측면 모두에서 논의하는 반면에, 토마스의 철학은 믿음과 모순되지 않으며 더 나아가 그의 체계에 있어서 보다 필수적인 위치를 점유한다는데 있다. 토마스는 때때로 이성에 관한 어기스틴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그는 어거스틴의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 (On Christian Doctrine)에 나타난 철학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사용에 관해 인용한다.[각주:6] 그러나, 토마스는 어기스틴이 의도하는 것과 같은 철학의 신학적 전용을 의도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토마스에게 있어서 믿음과 이성은 각각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신성한 교리 (sacred doctrine)가 믿음의 빛에 기반하는 것처럼, 철학은 이성의 자연적 빛에 의존한다.”[각주:7] 이 점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신학과 신에 관한 지식은 오직 믿음의 빛에만 의존하는가? 토마스에게 있어서, 비록 이성이 철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철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신학에서 뿌리 깊은 역할” [각주:8](ineradicable role in theology)을 수행한다.

   과학에 있어서 이러한 철학의 확장된 기능은 토마스가 “신성한 지식” (scientia divina)과 “신에 관한 지식” (scientia dei)을 구분한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신성한 지식”은 신적인 문제들에 관련된 모든 영역들, 예를 들면 제일철학, 형이상학, 철학적 신학, 자연신학을 포괄한다. 반면에 “신에 관한 지식”은 계시의 영역에 제한된다.[각주:9] 중요한 점은 토마스가 계시에 의해서 드러난 지식까지도 과학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토마스에게 있어서 과학의 영역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인식의 차이점들에 기인한다. 만약 자연과학과 자연철학이 인식의 차이점들에 의해서 다르게 인식된다면, 신적인 계시에 기반한 또다른 과학이 인간의 이성의 빛에서 이해되는 것이 가능하다.[각주:10]

   이성에 대한 토마스의 강조는 믿음의 기능에 대한 약화로 잘못 이해되어질 수 있다. 그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는 이성의 궁극적인 과제는 단지 “믿음의 머리말”[각주:11] (the preambles of the faith)이라고 말함으로써 믿음이 이성에 의해서 완전하게 입증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신성한 교리가 인간의 이성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이성은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위해서 사용될 수는 없다. 그것은 믿음의 가치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성은 이 교리 안에 놓여진 다른 것들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사용된다.”[각주:12] 따라서, 토마스의 체계 안에서 신학적 추론이 가진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모든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 


과학의 영역들에 대한 토마스의 입장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과학에 대한 토마스의 개념은 논리학, 수학, 기하학과 같은 자연 세계로부터 분리된 선험적 진리들에 치우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토마스에게 있어서 그러한 전형적 과학 (paradigmatic science)의 영역들은 사실적 증명들이 필요한 비전형적이고 (non-paradigmatic) 종속적인 과학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왜 대상들에 대한 비전형적인 인식들은 절대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과학”에 미치지 못하는가? 비전형적인 인식들이 우발성에 의해 지배되는 자연 세계에 있는 물질적인 대상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그것들의 보편적인 특성 때문에 과학의 범주로 이해된다. 이런 의미에서 토마스는 특수성과 보편성, 감각적 인식과 신학적 추론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자연 과학에 대한 토마스의 이해에 있어서 그는 과학의 영역을 단지 인식론으로 제한하지 않고, 세계의 물질적인 모든 대상들로 확대한다.

   이 짧은 글에서 필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적 체계 속에서 그가 제시한 과학의 개념과 함께 이성과 믿음의 관계성에 관해 간략하게 고찰했다. 그가 철학적 추론의 신학적 전용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는 철학과 이성을 단지 신학과 믿음을 위한 시녀로 이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성의 철학적 사용, 믿음의 신학적 사용을 구분해서 언급함으로써 과학과 신학이 평행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서 이해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과학은 신학의 적인가, 아니면 동지인가? 이 둘의 관계성을 정립하기 위해서 수 세기 전의 신학자들의 글을 읽는 것은 때로는 무의미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에 국한된 현대적 이해로는 모든 인식의 영역을 “과학”이라 지칭하는 그들의 입장은 너무나 포괄적이고 막연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스의 scientia에 대한 관점은 과학과 신학 사이의 대결 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개념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1. Aquinas, Summa Theologica Ia-IIae, q.57, a.2. 앞으로 제시된 신학대전의 모든 인용은 영문판 http://www.ccel.org/ccel/aquinas/summa.toc.html 의 개인적인 번역임을 밝힌다. [본문으로]
  2. Ibid., Ia-IIae, q.57, a.2, r.2. [본문으로]
  3.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에 대한 토마스의 주석서들의 목록은 to Ian. A. Aertsen, “Aquinas’s Philosophy in Its Historical Setting,”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Aquinas, ed. Norman Kretzmann and Eleonore Stump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21. 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4. Charles G. Herbermann and others, ed., The Catholic Encyclopedia: An International Work of Reference on the Constitution, Doctrine, Discipline, and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 vol. XIII (New York: Robert Appleton Company, 1912), 598. [본문으로]
  5. Aquinas, Summa contra Gentiles, 1, 94. [본문으로]
  6. Augustine, On Christian Doctrine, II, 40, 60, quoted in Thomas Aquinas, Faith, Reason, and Theology: Questions I-IV of His Commentary on the De Trinitate of Boethius, trans. Armand Maurer (Toronto: Pontifical Institute of Mediaeval Studies, 1987), 48; cf. Summa Theologica, I,1,8 and II-II,1,a.5, ad 2 and 3; Summa contra Gentiles 1,2 and 9. [본문으로]
  7. Ibid; cf. Summa Contra Gentiles, II, 4. “신자와 철학자는 피조물들을 다른 방식으로 고찰한다. 철학자는 피조물들의 적절한 본성에 속한 것들을 고찰하는데 반해서, 신자는 오직 피조물들이 신에 관계되는 한에서, 예를 들면 피조물들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에게 종속된다는 것과 같은 진리에 대해서 고찰한다.” [본문으로]
  8. Denis J. M. Bradley, Aquinas on the Twofold Human Good: Reason and Human Happiness in Aquinas’s Moral Sciences (Washington, D.C.: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97), 78. [본문으로]
  9. Aquinas, Summa Theologica, II-II, 1, a.5. [본문으로]
  10. Ibid., Ia, 1, 1, ad 2; cf. scientia의 세가지 범주에 대한 토마스의 구분에 관해서는 Ia. 85. 1, ad 2. 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11. Aquinas, Summa contra Gentiles, I, 9, 3. [본문으로]
  12. Aquinas, Summa Theologica, I, 1, a.8, ad 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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