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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과학] 성만찬: 신앙과 과학의 랑데부! (민기욱)

신앙과 과학

by 제3시대 2016. 10. 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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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만찬 : 신앙과 과학의 랑데부!



 

민기욱
(GTU 조직신학 박사과정)


 


       1. “과학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란 무엇일까? 현대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상이 변했다는데 그리스도인의 믿음에도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걸까?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우리의 믿음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바뀌기라도 한다는 건가? 

       2. 우리는 날마다 “과학”과 “기술”이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변화가 너무 빨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됐지만 예전에 퍼스널 컴퓨터의 사용이 쉽지 않아 아예 포기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는데 훗날 필자도 언젠가 그렇게 될까봐 다소 두렵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3. 7월이 되면 생각나는게 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위치한 로고스 교회에서 “신앙과 과학” 연속 특강에서 소개한 바 있다.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버즈 올드린 등의 우주비행사들이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를 발사해 7월 20일 달에 처음 착륙한 이후 2년이 지난 1971년 7월 30일 아폴로 15호가 다시 달에 착륙했는데 이 때 한 실험 중 “해머와 깃털의 낙하 실험”이란게 있다. 일명, “갈릴레이 실험”의 확증이었는데 이는 “등가원리”를 증명해보이려는 것이었다. 실험의 이름 그대로 지구에서는 해머와 깃털을 떨어뜨리면 당연히 해머가 먼저 땅에 떨어진다. 왜? 그것은 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갈릴레이는 중력에 의한 질량의 가속도 실험으로 물체가 가속되는 양은 질량과는 상관없음을 최초로 보였다. 그러나 갈릴레이 당시에 실험이 쉬웠을리가 없다. 이에 아폴로 유인우주선이 가져다 준 선물은 달 표면이었고 그곳은 공기가 매우 희박하기 때문에 갈릴레이의 낙하 실험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4. 여기서 잠깐! 등가원리(equivalence principle)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자. 등가원리란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본 원리로서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이 같음을 다룬다. 중력 질량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힘을 작용하는 양이고, 관성 질량은 운동 제2법칙에 의해 정의되는 가속에 대한 저항이다. 이 둘이 선험적으로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들이 놀랍게도 아주 똑같은 값을 갖는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이 둘을 완전히 같은 물리적 개념이라는 논리로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큰 산을 넘어보려는 갈릴레이의 노력이 결국 몇 세기를 너머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졌고 1907년 등가원리라는 이름으로 확립되었으며, 관성 질량과 중력 질량이 같다는 중력 이론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 과학적 증명을 아폴로 15호의 데이빗 스캇이 다시 재현했던 것이다.[각주:1] 그런데, 이와 같은 때는 아니었지만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의 그 촌각을 다루는 엄밀한 과학기술의 홍수 속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5.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 중 한 사람인 올드린이 혼자서 성찬식을 달 표면에서 했던 것이다! 그 당시 NASA는 그리스도인인 우주비행사가 아폴로 8호로 달의 궤도를 돌고 있을 때 “창세기”를 낭독했던 것으로 인해 무신론자로부터 고소를 당한 상태였다. 즉, 우주에 있는 동안 우주비행사는 종교 활동을 금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올드린은 달에서 성찬식을 한다는 자신의 계획을 아내한테도 미리 말하지 않았고, 나중에 지구로 귀환한 후에도 당분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나중에 올드린에게 성찬도구를 제공했던 휴스턴의 장로교회는 그 때 사용한 잔을 그로부터 받아서 매년 7월 20일에 가장 가까운 일요일을 '달의 만찬의 날'로서 기념하게 되었다. 성찬식 장면을 지구로 송출하려는 원래의 계획을 포기했지만, “라디오 방송이 끊어진 상태에서 빵과 포도주가 들어 있는 조그만 플라스틱 꾸러미를 개봉했다. 나는 교회에서 준 성배에 포도주를 부었다. 중력이 지구의 1/6밖에 안 되는 달에서 포도주는 느리게 물결 치면서 컵의 가장자리를 타고 올라왔다. 이어서 나는 성경 구절을 읽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라고 올드린은 1970년 가이드포스트 잡지에 기고했으며 NASA는 그 날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http://history.nasa.gov/SP-350/ch-8-4.html (NASA)  

       6.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과학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기독교 윤리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말했던가? "기독교인의 삶은 답 없이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물론 유명 학술 저널이나 논문을 쓸 때야 논리와 논증 등의 치밀한 학문적 전개와 설득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쩌면 올드린의 행동처럼 누가 보기에 따라 무모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7. 필자는 유학생이자 목회자로서 작은 교회에서 꽤 긴 시간동안 목회한 적이 있다. 교회를 개척하고 10여년 목회했던 선배 목회자를 존중하고 교회의 전통을 지키고자 애쓰는 교우들을 배려해서 예배 예전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며 7-8년 동안 사임할 때까지 지켜낸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학위 과정 중이라 한 주에도 수없이 많은 논문과 책과 씨름하면서도 교회에 가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묵묵히 매주 성만찬을 집례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차갑고도 냉철한 학문의 세계 속에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살과 피를 교우들과 서로 나눌 때 나 스스로에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작업을 했던 것이리라. 그렇다고 이중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8. 버즈 올드린의 신앙이 어떠했는지 솔직히 잘 모른다. 텍사스 휴스턴의 장로교회의 장로로서, 그는 MIT에서 궤도상 랑데부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NASA 우주비행사로 뽑힌 수재였다. 또한 당시 그가 쓴 궤도역학 논문이 이후 궤도상 랑데부 연구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주비행사뿐만 아니라 우주개발사에 남긴 영향이 큰 것 또한 사실이다. 다시 말해, 과학자로서 꽤 영향력있는 사람인건 분명하다. 그런데, 그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착륙해서 한 일이 “성만찬”이었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매우 고무적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서 혹시 이 역사적인 순간의 일을 처음 접하셨다면 이 일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라 생각한다. 유명한 과학자가 특별한 역사적 순간에 한 엉뚱하고도 위대한 일! 성만찬! 이보다 더 멋진 “신앙과 과학”의 랑데부가 또 어디 있을까? 



ⓒ 웹진 <제3시대>

  1. http://web.hallym.ac.kr/~physics/course/grcm/pisa.htm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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