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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예쁘지 않아도 돼(유하림)

페미&퀴어

by 제3시대 2016. 12. 19.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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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지 않아도 돼



유하림*

 


   예쁘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난 뒤로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말이다. 가느다란 팔 다리에 잘록한 허리, 커다란 가슴과 엉덩이. 큰 눈과 오똑한 코, 빨간 입술, 매끄러운 피부. 이런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예쁘지 않은걸까? 그럼 나는 예쁘지 않은거네. 근데 나는 꼭 예뻐야만 하는걸까? '예쁘다'는 것의 기준은 누가 만들고,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는 4kg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어딜가나 덩치가 큰 편이었고 덩치가 큰 사람들에겐 으레 따오르는 별명들이 내게 붙여졌다. 엄마는 소아당뇨나, 이른 초경을 걱정하며 더 이상 살이 찌지 않도록 먹던 밥을 빼앗아 버리기도 하고 큰 돈을 들여 다이어트 약을 사주기도 했다. 어쩌다가 옷을 사야 할 시간이 오면 꼭 우울해진 채로 집에 돌아왔다. 내가 입고 싶은 짧은 치마나 무늬가 화려한 옷들을 고르면 엄마는 ‘뚱뚱해 보인다’는 이유로 그 옷들을 사주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래도 사달라며 졸랐던 것 같은데 조금씩 머리가 크면서 이내 엄마 말에 수긍하게 됐다. 싸우기도 싫었을 뿐더러 엄마 말 처럼 뚱뚱해보이는 옷은 입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나의 선호와는 상관없이 무난하고, 덜 뚱뚱해 보이는, 그리고 사이즈가 맞는 옷을 찾아서 구매했다.   

   어린 시절은 내 몸에 대한 혐오와 덜 뚱뚱해 보이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있었다. 나는 예뻐지고 싶었고, 뚱뚱한 사람은 예쁘지 않으니까. 음식을 보고 식탐이 생길 때는 죄책감이 들었고, 입안 가득 달달한 음식을 먹을 때면 불안했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건 그나마 타고나게 낙관적인 구석이 있었다. 언젠가는 빠지겠지, 뭐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중학생 정도 되니 대놓고 ‘뚱뚱하다’고 놀리거나 면박을 주는 애들은 없었다. 그러나 예뻐지고 싶은 욕구는 날이 갈 수록 강해졌다. 사건이 하나 있었다. 전교생이 20명 남짓한 기숙형 대안학교에서 생활을 했는데, 남자와 여자가 각각 10명씩 있었다. 언제인가 그 10명의 남자애들끼리 모여 여자애들의 얼굴, 몸매, 성격 같은 것들로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고 했다. 여자애들은 화가 나서 다같이 남자애들에게도 똑같이 순위를 매기고, 칠판에다 그 순위를 적어놓았다. 나도 화가 나기는 했지만 실은 남자애들한테 왜 매력적으로 보이지 못할까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아마 그때 그 경험이 내가 내 몸을 더 혐오하는 계기이자, 예뻐지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한 동기가 되었던 듯 싶다. 

   겨우 중학교 2학년이 돼서야 혐오에서 아주 조금 벗어날 수가 있었는데, 그 때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그 애는 학교의 신입생이었고, 자신을 잘 챙겨주는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1년 정도 연애를 하며 뚱뚱하지만 매력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뚱뚱하진 않다는 말로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그래도’ 매력적이라는 말로 용기를 가졌다. 그러나 스스로 말을 건네는 동안에도 마음 속에는 날씬한 몸과 예쁜 얼굴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삶은 앞서 말했듯 태생적으로 낙관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성향 덕에 견뎌낼 수 있었던거지 실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내 몸을 계속해서 혐오하고 있었다. 정작 나는 내 몸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위 사람들은 자꾸만 내 몸에 대해 말했다. 통통하게 나온 배나, 친구들보다 한 사이즈 옷을 크게 입어야하는게 걱정스런 일이 된건 그런 주위사람들의 말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내게 해방이고 곧 구원이다. 세상이 만들어낸 ‘예쁨’의 기준 따위에 내가 나를 맞춰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물론 예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부터 갑자기 내 몸이 자랑스러워진 것은 아니다. 다만 혐오하지 않을 수 있을 뿐이지. 그러나 그 혐오하지 않음으로서 내 삶은 많이 바뀌었다. 더 이상 ‘사실’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많이 편해졌다.  

   뚱뚱함은 상대적인 기준이지만, 어쨌든 난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뚱뚱한 여자다. 근데, 뭐, 어쩌라고.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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