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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기적을 믿는 것이 인간의 길 < 블레이드 러너 2049 (드니 빌뇌브, 2017)>(이희승)

영화 읽기

by 제3시대 2017. 11. 2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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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믿는 것이 인간의 길 

< 블레이드 러너 2049 (드니 빌뇌브, 2017)>




이희승*



  1982년 개봉했다가 소리도 없이 사라졌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19>는 ‘저주받은 명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극장판, 감독판, 최종판을 거듭 내놓으며 한 세대의 미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성비가 내리는 로스엔젤레스 시내. 밤낮을 구분할 수 없는 암울한 도시 전경을 더욱 음산하게 비추는 네온 불빛.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무덤같은 건물들. 미국과 소련이 양분한 세계가 냉전시대의 논리 아래 안정된 듯 보이던 1980년 초반, 스콧 감독이 스크린 위에 정교하게 빚어낸 미래는 살아 있는 인간들의 시간이라기보다는, 환경오염으로 벼랑끝에 내몰린 생존과 기술의 발달로 극대화된 기형적 쾌락 사이를 오가는 죽음의 시간에 가까워 보입니다. 극도로 자동화된 세상에서 노동의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자발적으로 운동성을 잃어버린 인류. 그 인류를 대체하는 복제인간들이 인간이라는 종(種)의 정체성을 질문하는 세상. 2019년이 2년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돌아 보면, 35년전 아날로그 기술로만 만들어진 이 SF영화가 제시하는 미래상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그럴싸한 이름표를 붙이고 이윤의 극대화라는 일관된 목표를 위해 쉼없이 개발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비판없이 수용하고 있는 현재 우리의 모습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가히 선구자적 비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무엇보다도 1982년 원작은 질문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인류에게 과학기술의 발달은 바로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던집니다. 복제인간 ‘로이(룻거 하우어)’는 인간보다 더 나은 능력을 지니고, 경험과 기억을 통해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지만 이미 프로그램된 4년이라는 수명으로 철저히 제한된 자신의 실존에 대한 질문을 품고 지구로 잠입합니다. 신모델 넥서스-6를 개발한 타이렐 박사를 만나지만, 로이가 창조주 혹은 아버지라고 여겼던 타이렐 박사와 개발자들은 더이상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이 의식있는 존재에 대한 질문과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재주많은 미숙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죠. 말할 수 없는 무상함에 괴로워하며, 자신을 제거하러 온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하던 로이는 건물꼭대기에 매달려 위태로운 데커드의 목숨을 구하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리고 주어진 수명을 마감합니다. 의식과 생명력을 지닌 복제인간을 자신들의 장난감인양 취급하고, 쓸모를 다하면 무자비하게 제거해 버리는 인간들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영웅적이기까지 한 로이의 죽음은 비가 눈물처럼 흐르고 시퍼런 새벽빛이 빗줄기 사이로 떠오르는 영화의 결말에서 데커드와 관객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듯 합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가?




  리들리 스콧 감독은 개정판을 거듭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은 듯, <그을린 사랑>, <시카리오>, <컨텍트> 로 한창 연출력을 인정받고 있는 캐나다 출신의 드니 빌뇌브 감독과 손을 잡고 <블레이드 러너 2049>를 기획합니다. 젊은 감독의 비전을 존중하면서도 제작자로써 지원을 아끼지 않은 스콧 감독의 노력에, 원작의 과중한 무게나 장르적 요구에 매이지 않으려는 빌뇌브 감독의 고뇌가 더해져 만들어진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더이상 재갈을 물릴 수 없는 기술만능주의의 폭주에 대항하여 인간이 어떤 존재로 미래를 맞아야 하는가에 대한 메세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압도적인 카메라 워크의 공중쇼트로 미래도시의 전경을 스크린 가득 채운 원작의 출발과는 달리 희뿌연 하늘아래 보이는 살풍경한 도시외곽을 훑어 지나갑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유전자 합성작물 농장을 지나, 어느 농가에 내려 앉은 경찰 비행선에서 내린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은 간신히 와이어로 여기저기를 지탱해 놓은 죽은 고목 옆을 지나 아무도 없는 집안으로 들어갑니다. 이 곳은 30년전에 뿔뿔이 흩어진, 수명기한이 없는 복제인간 넥서스-8 중 하나가 숨어 사는 곳이지요. 농장에서 일하고 집안으로 돌아온 초로의 리플리칸트 새퍼는 K를 발견하고 자신의 운명을 직감합니다. ‘제거’되기 직전, 그는 K에게 묻습니다. 동족을 제거하는 블레이드 러너로 사는게 어떠냐고. 그리고는 너는 기적을 체험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노예같은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노라고… 이 뜬금없는 퍼즐 조각은 순종형 복제인간이자 맡은 일을 성실히 잘하는 ‘착한’ 블레이드 러너인 K의 뇌회로에 불길한 바이러스를 심어 놓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유사한 존재들을 생산, 폐기하는 것이 일상인 이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적’의 존재에 혼란스러워진 K의 내면을 반영하듯, 영화는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고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을 이윤과 편리, 그리고 찰나의 쾌락을 위해 헌신짝처럼 버린 2049년에도 꿈꿀 수 있는 기적을 형상화됩니다. 어려운 임무 수행으로 받은 보너스로 K는 가상애인인 홀로그램 ‘조이’ (아나 디 아르마스)에게 휴대용 홀로그램 장치를 선물합니다. K 의 배려로 바깥 세상 구경을 하게된 이 아름다운 홀로그램 애인은, 내리는 빗방울을 전자파장으로 느끼며 디지털 신호로 구성된 자신의 존재를 넘어서서 세상과 조우하는 흥분과 경이를 고스란히 기억으로 저장하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K 또한 30년전 데커드와 함께 사라진 레이첼(숀 영)이라는 복제인간이 임신과 출산을 했었다는 단서를 찾아내 추적하는 동안, 자신이 유전공학적으로 대량생산된 보통의 복제인간과는 달리, 부모의 사랑을 통해 탄생한 기적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제 그는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이 될 수 없었던 자신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합니다. 이 기적과도 같은 체험을 통해 K는 제도와 시대에 순응하던 조용한 일상을 송두리채 내던져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위험한 여정을 시작하죠.


    도주하는 복제인간을 제거하는 임무 수행을 위해 생명체라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죽음의 평야를 자동비행모드로 가로지르며, 눈을 감고 졸던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한 복제인간 블레이드 러너 K는 이제 상상하지도 못했던 모험, 목숨을 위협하는 고난, 유일성 (singularity)라는 인간 정체성의 핵심을 공유하는 존재이고픈 강렬한 욕망,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 상실의 고통, 환상과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는 절망, 이대로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만큼의 허무, 그리고 그 속에서도 자아의 영역을 초월한 어떤 결단을 해야 하는 윤리적 체험을 차례로 통과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K는 만신창이가 된 채로, 소복히 내리는 눈송이를 향해 손을 뻗습니다. 마치 자신을 사랑했던 홀로그램 조이가 처음 빗줄기에 손을 내밀던 그 순간을 기억하려는 듯 말이죠. 자신이 사랑과 소망을 통해 탄생한 기적과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믿음으로, 확신으로 바꿔 주었던 조이. 그녀와 함께 뛰어든 혁명같은 삶의 소용돌이에 모든 것을 내던진 후에야 찾아온 휴식같은 죽음을 맞이하는 K는 기적을 믿는 것만이 기적을 체험하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그토록 찾던 인간의 길임을, 그리고 기적의 체험을 통해 또다른 기적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 2049>는 35년전 원작의 결말이 그러했듯,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가? 라는 어려운 질문을 다시한번 꺼내 놓고 끝을 맺습니다.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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