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선의 힘] 추동성 (강선구)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8. 4. 11. 17:25

본문


추동성




강선구*

 


훤칠한 키에, 냉철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그는 말 그대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전문 통역사 이상의 동시통역으로 청중들에게 단순히 말을 전하는 감동 이상을 전해주는 그를 처음만났을 때, 나는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보았었다. 그의 카리스마와 냉철한 이미지는 쉽게 다가가 말을 걸기가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깊이있는 대답들을 전해줄 것만 같은 진중함과 단단함을 풍기는 사람으로 느껴졌기에 나도 모를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만난 그에 대한 첫 인상이다.

이후의 만남들을 통해 그는 기대이상으로 나를 비롯한 청년들에게 깊이있는 시각을 제공해주었고, 냉철한 사유 가운데에 흘러나오는 따스한 위로를 전해 주셨던 분이었다. 그는 내게 소중한 멘토이자 스승이었고 선배였다. 그리고 아쉽고 슬픈마음을 다 표현할 길 없게도 지난 3월 25일 마흔 여덟의 일기로 너무도 일찍 생을 마감하신 김동성 목사님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물론 그분을 많이 알지 못하고, 그분에 대한 기억의 아주 작은 한 조각만을 가지고있을 뿐이지만, 그분에게 받았던 감사한 가르침들을 글로 남기며 추모하고 싶다.



내가 동성 목사님을 두번 째로 만난 건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세계교회 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사무실이었다. 목사님은 WCC에서 디아코니아 및 아시아 국장을 맡고 계셨다. WCC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무엇이냐고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세계 1,2차 대전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악에 대해 저항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다양한 교단들이 함께 신앙으로 일치되고 협력하기 위한 운동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을 책으로만 배워와서 판타지만 가득했던 나는 그 곳에서 인턴을 하면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화려한 태동기와 부흥기만을 학습했던 내게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 가운데에 존재하는 현실의 모습은 적잖은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협의체로써 중재와 화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기관의 성격이 나는 소극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세계의 중심을 흔들만큼 큰 영향력을 미치는 힘을 갖기를 바랬었던 것 같다. 시민사회나 교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보편성의 담론을 주도하고 변화를 디자인해 내는 것이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믿고 싶었었다. 나는 ‘운동’이 너무 하고싶었던 나머지 에큐메니칼에 대한 더 깊고 다양한 정의들에 귀기울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의미에만 집중하며 인턴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인턴 중 참여했던 크고 작은 회의들에서는 주로 다양한 소속 교단이나 사회, 종교단체들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의견을 조율하고 시대를 통찰하는 선언문을 만들어내는 작업들을 많이 했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에서 시대가 요청하는 일들을 함께 성찰하고 화해의 장을 모색하는 대화의 과정들은 모두가 다 소중한 배움의 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더 현장성있는 실천적이고 가슴뛰는 운동이 하고싶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스스로 정의할 수 없으면서도 나는 나만의 잣대에 맞춰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평가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동성목사님을 찾아가 심각한 얼굴로 질문했다.

“저는 운동이 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는데, 내가 하는 대부분의 업무들은 행정일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하는 업무들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할 지 모르겠어요.”

물론, 당시 나의 주요 업무는 한국에서 열리는 13차 총회 준비에 관한 업무들이었기에, 행정일이 많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당시 개인적인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그동안 나름 꿈을 가지고 걸어왔던 신학의 길도 그만 두고 싶었던 참이기도 했었다. 그런 상황을 잘 아시는 목사님은 답해 주셨다.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추동성’이야. 사유를 멈추지 않고, 행동을 멈추지 않고, 연대를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추동성이야. 추동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죽은 운동이 되지. 살리는 운동은 생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함께 함을 살리게 되지만, 죽은 운동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해. 그리고 죽은 운동은 모든 것을 의미없게 만들지. 너가 있는 곳이 운동하는 현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추동성을 발견해보도록 노력해봐. 추동성은 어쩌면 한계에만 갖혀있던 내 생각이나 행동을 해방시키고 모두를 향한 운동으로 향하게 해 줄 수 있을꺼야. 그리고 어쩌면 그 작업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살리는 일이 될 수 있을꺼야.”


목사님의 조언은 내 삶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에 하나인 ‘추동성’을 발견하게 했다. 스스로 너무 당연한게 많아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나에게 목사님의 현명한 조언들은 큰 해방감을 주었다. 인턴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방황했던 내게 목사님은 우문현답으로 고난의 시간들을 의미있게 만들어주셨었다.

목사님은 한결같이 정직했고, 현명하셨고, 열정적이셨다. 그리고 나에게 에큐메니칼 운동이 곧 목회라는 것을 환기시켜주셨다.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소중한 에피소드 중 하나는 목회가 곧 현장을 사랑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보여준 목사님의 태도이다. 2013년 제13차 WCC세계총회에서 동성목사님은 맡은 직무와 더불어 총회 총괄을 하는 부서와 협력하면서 더욱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세계 각 교단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인종, 성별, 연령, 장애여부 등 반드시 한 집단의 사람들이 절대다수가 되지 않도록 골고루 대표단을 구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 에큐메니칼 운동의 소중한 원칙이다. 열흘간의 총회기간동안 다양한 주제로 회의가 열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모임들이 진행된다. 해외에서 약 3천여명이 참가하고, 국내에서도 많은 인원들이 참가하기에 크고 작은 사고들도 어쩔수 없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총회 기간 도중 해외참가자 중 장애를 가지셨던 한 분이 어지러움을 호소하시며 병원에 이송된 적이 있었다. 총회기간 내내 잠도 거의 못주무실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했던 동성목사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지에서 보호자 없이 홀로 두려움의 밤을 보내야할 뻔했던 그분의 병상 옆에서 밤새 함께 해주셨고 기도해주셨다. 다음날 있을 중요한 대표단 회의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대신 간호를 부탁하고 먼저 자리를 떠나셨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소중한 원칙인 모두를 귀하게 여기는 목사님의 삶의 태도는 내가 총회현장에서 경험한 사건들 중에 가장 목회적이었고 가장 에큐메니칼 적이었다. 덕분에 나에게 에큐메니칼 운동은 현장을 소중하게 돌보는 목회적 태도로 다가왔고, 그 태도를 잃지 않고 매순간 깨어있으려는 추동성이라는 값진 의미로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소중한 길잡이가 되주셨던 분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목사님을 애도하는 큰 슬픔들 가운데에서 그래도 그와 같은 시대를 살 수 있어서 많이 배웠고 행복했었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목사님이 세상에 남기시고 간 선한 흔적들이 아픔과 소외의 현장들을 위해 ‘함께 함’으로 추동되기를 소망해본다.


* 필자소개

현재 '목회적 삶'과 '목회자의 삶'의 경계에서 고민중에 있으며, 친구들에게는 네살 선구라 불리우고 있다.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목사수련생 과정을 밟고있는 중이다.


ⓒ 웹진 <제3시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