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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바람이 불어오는 곳(박여라)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9. 8. 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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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오는 곳

박여라*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가을이다. 바람이 가을을 가져온 건지 가을이 바람을 가져왔는지 알 수 없다. 바람이 여름을 밀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여름이 바람을 남겨두고 떠나는 건지도. 

그때 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셰리 와인을 만드는 스페인 헤레스였다. 영어로 셰리(Sherry), 스페인 현지에선 헤레스(Jerez). 종류도 많고 만드는 과정, 숙성 과정 모두 복잡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궁금했다. 직접 만나면 어떤 느낌일지. 혹시 셰리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거기에서만 만드는 그 와인을 우리동네 스페인 와인 가게가 아니라 직접 가서 마시면 뭔가 그 와인의 수수께끼가 좀 풀리겠지 싶었다. 바람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와인 가운데 만들 때 증류주를 섞는 종류가 있다. 셰리(스페인), 포트(포르투갈), 마데이라(포르투갈 땅이나 아프리카 대륙 모로코에서 520km 떨어진 섬), 마살라(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처럼 해가 뜨거운 지역에서 만든다. 와인을 오래 보존할 방법으로 시작된 제조기술이다.

셰리는 ‘셰리 삼각지’라 부르는 세 도시(Jerez de la Frontera, El Puerto de Santa María, Sanlúcar de Barrameda)를 잇는 지역에서 만든다. 그 셋 다 왜 그리 이름이 긴지 모르겠다. 셰리 와인을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헤레스에서 여러 날 묵으면서 
산루카르 데 ‘바람'에다에 다녀왔다. 북캘리포니아에서 여러 해 살다 갔는데도 남 스페인에 가니 해가 너무 좋았다. 북쪽 유럽 사람들이 왜 스페인에 환장하나 십분 이해 갔다   
 
와인 이야기할 때 ‘떼루아'는 포도가 자라는 토양, 지형, 기후 같은 자연환경을 통칭한다. 바람은 대체로 온도조절을 하는 친구다. 서쪽에 바다가 있는 셰리 지역은 아열대다. 일년에 해가 나는 날이 300일이고, 나머지는 비가 오는데 늦은 가을에서 겨울(이라 부르는 계절)에 몰아서 온다. 한 650mm 정도. (우리나라는 연평균 강수량이 대략 1300~500mm) 

겨울에 비를 몰고 오는 것은 포니엔테(poniente, ‘서쪽’)라고 부르는 바닷바람이다. 대서양을 지나오며 물을 품고 와서 차고 축축하다. 밤에 습기를 뿜뿜 내뿜어 뜨거운 낮에 고생한 포도나무를 위로한다. 건조한 내륙 동남쪽 평원에서 불어오는 고온건조한 바람 레반테(levante, ‘동쪽')는 더위에 온도를 더 얹는 웬수. 그러나 포니엔테와 레반테가 번갈아가며 부는 덕에 헤레스에는 이곳 만의 독특한 효모를 보살핀다. 

바다를 맞대고 강 하구에 위치한 산루카르 데 ‘바람'에다 어디엔가는 이 두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 어느 바람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헤레스 지역에서도 이곳에서만 만들 수 있는 셰리가 있다. 만사니아 피노(manzanilla fino)라고 부르는 이 와인은 특유의 소금기를 느낄 수 있다. 바닷바람을 품었기 때문이란다. 과연 그곳 와인저장고들은 바다를 향해 큰 구멍을 냈다. 다시 헤레스로 돌아올 때엔 버스를 탔지만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있네

*필자소개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썼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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