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공동과 각각의 언어인 공감, 고백 그리고 증언[각주:1]




엄기호

('인권연구소 창' / 연구활동가, 사회학)

 


이 영화에는 '공동'이 세 번 등장한다. 그리고 그 세번의 공동을 만들어내는 각각에 대응하는 언어가 있다. 이 글은 공동과 그 각각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보고 영화/글을 쓰고 읽는 우리는 각각의 처지에서 어떤 언어로 무엇의 장치가 되어 어떤 정치를 수행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용산 철거민들과 여기에 연대하러 온 다른 지역 철거민들 사이의 '공동'이 있다. 두 번째는 참사가 일어난 후 정부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 처벌하기 위해 붙인 죄목이자 이 영화의 제목인 '공동정범'의 그 '공동'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김석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경주 시내를 돌아다니는 영화의 주인공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그림자처럼 보이는 '공동'이다.

첫 번째의 '공동'을 보자. 이들은 '같은' 철거민으로서, '전철연'이라는 같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를 '동지'라고 부른다. 동지란 같은 운명을 공유한 사람이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공동의 운명을 나눈 사람들이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각자의 재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공동'의 행동을 취한다.

망루는 그 '공동'의 상징이다. 이 망루 자체가 공동의 '짓기'를 통해 만들어졌다. 전기를 아는 사람이, 용산 당사자가 아니지만 같은 철거민이고 같은 투쟁을 하는 동지로서 전기를 따오고, 또 누구는 다른 그 망루에 자기의 힘을 보탰다. 싸움은 용산에서 일어난 용산의 일이었지만, 그 용산의 일에 마음과 힘을 보태는 것은 철거민 모두의 '공동'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공동'은 정말 공동이었을까? 아니었다는 것이 중간 중간 철거민들의 인터뷰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말한다. 일이 그렇게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농성을 하는 계획도 몰랐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공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자신들에게도 투명하게 '공동'이 아니었다는 것을 참사 이후에 알게 된다.

여기서 이 '공동'의 허상이 드러난다. 운명을 공유하는 것으로서의 공동에는 핵심과 주변이 있을 수 없다. 공동의 생명은 위/아래도, 핵심/주변도 아닌 둥글게 마주 앉는 평등이다. 둥글게 마주 앉아 모든 것을 '같이' 결정했을 때 그 공동은 책임을 같이 지는 '공동'이 된다. 그 책임은 일을 같이 논의하고 결정했다는 의미에서 '공동' 책임이 되는 것이며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비로소 '공동'이 된다.

그럼 이번에는 이 공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자. 좋게 말하면 입장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해관계다. 철거민이라는 공동의 입장이 공동의 이해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용산과 다른 지역이라는 공간을 가로지르며 '공동'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이 '공동'은 간단하게 자동적으로 만들어진다. 이해관계가 같거나 혹은 입장이 같으면 이 영화에서도 반복적으로 서로를 부르는 말인 '동지'가 되고 이 동지들은 차이를 넘어 '연대'하게 된다.

입장과 연대 그리고 공감에 대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 중의 하나가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이 하신 '입장이 같다는 것은 비를 같이 맞는 것'이라는 말이다. 비를 같이 맞는 것은 말하지 않지만 같은 곳에 서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며 이게 연대라는 것이다. 이 말은 쉬운 말로 연대를 말하는 것을 경계하며 연대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상기시키는 말로 곧잘 인용되곤 한다.

이렇게 같은 입장이 되어 비로소 서로를 '동지'라고 부르고 '연대'할 수 있게 하는 언어는 무엇일까? '공감'이다. 이미 철거민들은 같은 망루에 서지 않더라도 같은 처지이다. 같이 비를 맞지 않더라도 이미 다른 곳에서 같은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서로의 처지를 너무 잘 알고 있고 그 처지에서 비를 같이 맞고 피하기 위해 망루를 짓고 함께 또 비를 맞는다. 그렇기에 같은 처지라는 입장의 동일함에서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이기려고 것으로서의 '공감'이 '공동'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이 '공감'을 확 쳐낸다. 같은 고통을 공유하고, 같은 처지에서 같은 비를 맞은 사람들이 모여 더 큰 비를 같이 맞으며 '같은' 고통을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동'이 만들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용산 참사 현장에 있던 이들을 통해 보여준다. 같은 아픔을 겪고 비를 같이 맞았다고 공감은커녕 반목과 불신만 생긴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기는커녕 그것을 더 공유할 수 없다는 것만 확인한다. 

그 결과 처지의 같음에서 연대하던 '공동'의 사람들은 낱개로 파편이 되어 밀려난다. 자신들의 공동이 허상이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자신들이 얼마나 고독으로 밀려났는지를 말이다. 사람을 믿을 수 없고,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고,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없다. 차라리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 신에게 귀의하는 것이 편하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 영혼에 파스를 바른 것처럼 시원하게 한다. 말도 못하지만 자기가 손을 주는 만큼 정직하게 잘 자라는 식물과 달팽이만이 위로가 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공감에 대한 반대편의 진실에 도달한다. 아픔에 대한 동참을 통해 연대를 만들어내는 공감은 같은 처지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할 때, 함께 아픔을 겪는 이들 사이에 공감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아픔을 같이 겪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나 '공감'은 가능하다. 같은 일을 겪으며 아파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절대 나눌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을 말이다.

고통의 나눔, 공감은 신과 달팽이, 그리고 식물하고 가능한 것이지 인간 사이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외로움 따위의 말이 아니다. 반대로 고통을 통한 공감, 고통을 통한 연대라는 것이 그 수사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 그 불가능을 직시하지 못할 때 얼마나 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누구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에 함께함을 통해 연대하고자 한다면 신처럼 되거나, 달팽이처럼 되거나 혹은 식물이 되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상찬하고 있는 이 영화의 '성취'가 여기에 있다. 고통과 연대, 공감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 그러 공감은 당신이 신/달팽이/식물이 되지 않는 이상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사람과 세상을 더 추하게 만들 뿐이다. 같은 운명의 사람들이, 같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니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픔을 통한 연대는 공감이 아니라 불신과 반복의 지옥도를 만들어낸다.

두 번째의 공동은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공동'이다. 용산 참사의 총책임을 맡아야하는 정부는 참사의 피해자인 이들에게 '공동정범'이라는 죄를 뒤집어 씌운다. 왜 하필 이들에게 부과한 죄목이 '공동정범'이었을까? 정부가 이들에게 '공동'의 혐의를 씌운 것은 영화에서 말하듯이 앞으로의 투쟁을 봉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앞으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투쟁에 나선 사람 모두에게 책임의 위계를 묻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 말이다. 이렇게 두 번째의 공동은 행위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공동이 아니라 행위자를 위협하기 위해서 정부로부터 만들어지는 강제된 범죄자로서의 '공동'이다.

또한 바로 이 '공동'으로부터 이미 연루되어 처벌을 받게 되는 사람들은 분열시키고 반목하게 하는 힘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첫 번째의 공동이 깨지면서 동시에 두 번째의 공동이 부과되면 연루되어진 사람들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왜 저 자와 똑같이 처벌받아야 하는가? 저 사람의 책임은 어디에 갔는가? 그가 먼저 자신의 책임을 고백한다면 그 이후에 나는 그와 함께 하겠다.  

이 영화가 묻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첫 번째의 공동이 깨어지고 두 번째의 공동이 강제될 때 공동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한마디로 공동은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 영화에는 그런 공동을 가능하게 하는 '영웅'도 등장하지 않으며 다른 이를 공동으로 엮어내는 '거룩한 희생자'도 없다. 다만 서로 반복하고 불신하며, 공동이라고 믿던 것이 공동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이야기들만 나온다.  

이 영화는 말한다. 공동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를 말이다. 그리 쉬웠던 공동이, 참사 이후에는 오히려 한 번 만나는 것조차 힘든 것이 된다. 한 쪽에서는 만나는 것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고 분노한다. 다른 쪽에서는 그렇게 만나는 것이 무슨 '공동'이냐고 묻는다. 한 쪽은 만나서 소주도 한 잔하고 서로 마음을 터놓아야 다시 공동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다른 쪽은 그런 공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만나는 그런 공동만이 진짜 공동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정권이 이 '공동'을 만들어내는 언어가 '고백'이다. 재판의 와중에 범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고백이다. 고백을 통해 먼저 자기의 죄를 털어놓아야 한다. 그런데 범죄인들이 자기의 죄, 즉 개별의 낱낱의 죄를 토해놓지 않는다. 그럴 때 그 낱낱을 묶어 한꺼번에 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공동정범'이라는 죄목이다. 앞의 공동이 허상이었다면 이 공동은 권력의 올가미다. 

그러나 영화에서 우리는 이 '고백'이 정권뿐만 아니라 참사의 당사자들에게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산에 연대하러 갔던 철거민들은 '진실'을 알고 싶다는 말로 고백을 요구한다. 그들은 누가 망루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는지, 누가 맨 먼저 뛰어내렸는지 등이다. 이를 통해 누군가가 이것이 내 책임이라고 말하고 시인한다면 그 고백에 기초해서 다시 공동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그 모든 일에 그저 휩쓸린 사람이기 때문에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질 사람이 입을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실이 고백되었을 때 비로소 '함께' 할 수 있고 '공동'은 복원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쪽에서는 절대 그것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용산 참사 현장에서 벌어진 '사실'에 대한 이야기일수는 있지만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피해자로서 모든 혐의를 부인한 것도 바로 그 이유라고 말한다. 자기가 책임이 있다고, 아니 더 큰 책임, 혹은 원초적인 책임이 있고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을 하는 순간 진짜 책임을 져야하는 권력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의 사람들이 말하는 진실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이며, 그 사실에 집착하는 한 진실은 빠져나가버린다며 완강히 거부한다. 그에게 고백은 진실로 나가는 문이 아니라 진실을 덮는 것일 뿐이다. 

진실과 사실, 혹은 한 쪽의 진실과 다른 쪽의 진실이 대립하고 그 간격이 커질 때 오리무중이 되는 것은 진실 그 자체다. 사실의 퍼즐들을 맞춘다고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고 진실이 사실 모두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사실과 진실이 대립하고 만남의 장이 사라지면서 사실을 조작하여 진실을 허구로 만들어낸 쪽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정권이다. 사실도 필요 없고 진실도 필요 없는 쪽이 이긴다. 그래서 이들은 오로지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정범으로서의 '공동'만 남는다.

진실을 통해 공동을 만들어내는 언어로서의 고백. 여기서 우리는 세 번째 고백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감독과 관객이다. 아마 한국의 다큐멘터리 대부분이 취하는 방법이 이것일 것이다. 카메라는 집요하게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고백'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카메라는 인터뷰를 할 때 항상 얼굴을 찍는다. 그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카메라는,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관객은 그 얼굴을 통해 가늠하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아마 많은 관객들은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의 눈동자와 표정을 살피며 그 고백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는 고백의 도구다. 우리 모두는 그들을 '취조'하는 형사, 즉 국가기관이다. 국가기관이 허접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국가를 대행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고백은 국가가, 동료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심 있는 우리 모두가 요구하며 모두를 국가로 만든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큰 상찬은 바로 이 고백을 강요하는 취조의 도구로서의 카메라이기를 그만둔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는 집요하게 인터뷰이를 몰아붙인다. 그래서 그들의 진실을 살핀다. 그러나 (정성일 평론가가 지적한 것처럼) 딱 한번을 제외하고는 그 진실을 고백하는 순간 - 즉 눈물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일부로 카메라를 돌리지는 않는다. 카메라는 고백의 장치가 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고백은 '죄인'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다. 흔히 토로라고도 말하는 고백은 인터뷰이를 '피해자'로 완성한다. 인터뷰이들이 최종적으로 카메라 앞에서 보이는 것은 자신이 겪은 아픔이 얼마나 고독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눈물'로 상징된다. 고통은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홀로 겪어야 하는 고통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을 통해 피해자는 피해자로 완성된다. 숭고한 피해자로 말이다.

대부분의 인터뷰-참여관찰을 통한 서사가 달려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를 고통은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고백을 하는 숭고한 피해자로서 재현/완성하는 것으로 서사는 숭고하게 끝난다. 피해자가 숭고해져야 서사도 숭고해진다. 서사가 숭고해져야 서사를 읽거나 보는 이도 숭고해진다. 이 숭고에 동참하는 것으로 '공감'이 발동하고 '공동'이 만들어진다.  

고백을 통해 용서할 수 없는 타락한 죄인과 누군가와 결코 나눌 수 없는 고통을 토로하는 숭고한 피해자가 만난다. 타락한 죄인과 숭고한 피해자는 한 쌍을 이룬다. 그 쌍을 만들어내는 언어가 바로 '고백'이다. 이 고백을 통해 이윤을 챙기는 것은 그들에게 진실을 강요하는 국가이며 그들의 얼굴을 통해 진실을 재판하는 관객이다. 고백은 국가와 관객을 하나로 묶는다.

그렇다면 공동은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관객은 이 영화의 끝에서 다시 새로운 공동의 그림자를 본다. 진상을 밝히기 위해 이들이 다시 둥글게 모여 앉는다. 첫 번째 모임은 고성과 반복으로 더 큰 상처만 남긴다. 그리고 두 번째 모임에서 이들은 비로소 둥글게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첫 번째에서는 서로에게 진실을 추궁하던 이들이 두 번째 모임에서는 사실을 가지고 조각을 맞추기 시작한다. 이때 이들은 머리를 맞댄다.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의 기억, 즉 각자의 사실이 전체에 대한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그 날의 전체, 즉 진실에 대해 목마른 사람들이 그들이기에 서로의 조각에 기대 각자의 조각을 내놓고 빠진 부분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공동'정범'을 부인하기 위해 말하지 않던 것과, '공동'정범임을 부인하기 위해 상대에게 추궁하던 것을 내려놓는다. 위와 아래, 안과 바깥이 아닌 둥근 공동의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김석기에 맞서기 위한 공동의 행동을 편다. 

여기서 우리는 허상으로서의 공감과 국가 장치로서의 고백을 넘어 서로를 만나게 하고 '공동'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언어를 만나게 된다. 나는 이것을 '증언'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흔히 증언을 자기가 경험한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자기의 증인이 되는 것, 그러나 나는 이미 자기가 자기를 증언할 때 이것을 국가처럼 보고 그 진실을 판단하려는 카메라와 관객이 개입하는 순간 증언이 증언이 아니라 국가 장치인 고백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앞에서 말했다. 

증언은 내가 나에 대해, 내가 겪은 것을 타자 앞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증언은 내가 아니라 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말미에 인권활동가 박래군과 함께 비로소 만난 참사의 당사자들이 하는 것은 서로의 기억을 맞추는 것을 통해 서로를 '폭로'하는 것도 서로에게 '고백'을 강요하는 것도, 자기를 '토로'하는 것도 아니라 서로에 대해 '증언'하며 서로의 기억을 북돋아주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증언이 당사자들에 대한 폭로나 당사자의 고백과 다른 지점이 여기에 있다.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게 하는 것, 그것을 나는 증언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 증언은 위태롭다. 고통을 공유한 사람들끼리도 타인에 대한 증언이 타인에 대한 폭로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또한 아무리 용기를 북돋는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마주 대하는 두려움은 증언을 거부하게 한다. 증언의 이름으로 거짓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진실을 향한 용기를 북돋는 증언은 매우 힘들고, 아주 희박하다. 증언은 폭로로, 고백으로 타락하기 딱 좋다. 당사자들에 의해서도 그렇지만, 진실을 기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물어야하는 것이 바로 기록하는 자, 영화라면 감독일 것이고 책이라고 하면 저자, 둘을 묶어낼 수 있는 전통적 언어로는 지식인/활동가일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돌고 돌아 민중 혹은 피해자 혹은 서발턴을 기록하는 자로서의 지식인/활동가의 언어, 지식인의 윤리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사르트르와 사이드, 그리고 스피박 등이 궁극적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 영화/글쓰기의 윤리, 아니 그 글쓰기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고백을 강요하는 국가 장치의 일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공감에 대한 환상을 유포하는 '사회'의 이데올로그가 될 것인가. 저 국가 정치를 거부하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무엇을 '증언'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고백과 공감의 정치를 거부하고 증언의 '장치'로서의 '정치'를 하고 있는가? 감독들은 관객에서 무엇을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 또 무엇을 증언할 것인가? 과연 증언의 '공동'은 만들어지고 있고, 만들어질 것인가?  

첫 번째의 허상으로서의 공동, 두 번째의 올가미로서의 공동에 이은 이 세 번째 희미하게 등장하는 이 공동은 증언의 공동일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할 것이다.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사람들의 마음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김석기라는 '악'에 맞서기 위한 잠정적인 휴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을 서로 나누자고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을 소주의 힘을 빌려 빙빙 말할 수밖에 없는 이들과, 그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싸움이 반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공동'이 아닌 '고립'이 더 심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우리가 공동에 대해 그리 쉽게 첫 번째로 돌아갈 수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 영화 이후에 우리는 다시는 첫 번째의 공동을 공동으로 여길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쉽게 저들의 농간에 말려 두 번째의 공동을 받아들일 수도 없게 되었다. 첫 번째의 공동이 '동지'와 '연대'라는 이름의 공동이었다면 두 번째의 공동은 '우리 안의 박근혜'류 따위의 공동이다. 첫 번째의 공동은 언제나 위와 아래, 핵심과 주변으로 나눠진 공동이었으며 두 번째의 공동은 고상하고 성찰하는 척 하는 공동이었지만 그 공동은 언제나 저들에 의해 '정범'으로 묶이는 공동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의 공동은 무엇인가? 이 영화는 그림자처럼, 마지막에 지나가듯이 희미하게 보여주지만 그 공동은 뚜렷하다. 그 누구도 진실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그 소유하지 않은 진실은 누구에 의해 독점되며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가진 사실/진실의 파편들로 머리를 맞대고 퍼즐을 맞추며 나가야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가운데를 비우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진실을 향해 조각을 맞춰가는 것,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그것을 사회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주인공도 아니고 중심인물도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인물/운동이 있다. 그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정성일이 말한 것처럼 길이도 맞지 않고 서사도 일관되지 않은 여러 에피소드들의 조각들로 산만하게 흩어질 것이다. 다소 엉뚱하게 느껴지겠지만 영화의 말미에 반짝 등장하여 고백과 공감을 넘어 서로에 대해, 진실에 대해 용기를 내게 하는 인권활동(가 박래군)이다. 그가 이 과정에 대한 증언자로 되고, 희미하게나마 사람들을 증언자로 묶어내고 있었다. 여기가 인권활동의 자리가 아닐까.

나는 인권활동의 위태로움을 늘 경험하는 인권활동가 동료들이 우리의 언어가 무엇이고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하는지를 되묻기 위해 꼭 보았으면 한다. 우리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 웹진 <제3시대>



  1. http://khrrc.org/3536478#0 이 글은 '인권연구소 창' 홈페이지에도 동일한 제목으로 게재되었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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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의 철학’과 ‘철학의 형상화’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1962년 미국을 방문 중이던 함석헌은 필라델피아 근교 펜들힐이라는 퀘이커 수련원에 머물면서 “누에의 철학”이라는 짧은 글을 썼다. (그곳은 이후 “펜들힐의 명상”이라는 글의 배경이 될 정도로 함석헌에겐 의미 있는 곳이었다). 함석헌이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인 이름의 철학을 사용해 표현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는 한국과 미국의 거리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멀게 느껴지던 시절, 귀양살이를 하는 심정으로 미국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 글은 그가 미국 퀘이커들의 정신적 안식처였던 펜들힐에 묵으면서, 한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철학적 고민과 또 자신의 상황에 대한 성찰을 기록한 것이다. 빈곤한 시대에 글을 쓸 수 없는 심정을 토로하면서 시작하지만, 곧 자신의 사상을 누에와 비교하고 누에의 철학을 말했다. 함석헌은 <누에의 철학>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형상화 하고 한국의 철학을 모색한 것이라 읽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누에를 통한 철학의 자기반성까지 요구한 것으로도 볼 여지가 있다.




    <누에의 철학>은 함석헌의 글에서 가끔 보게 되는 글쓰기에 대한 망설임을 토로하면서 시작한다. 글보다는 말을 선호했고, 말의 근원을 (생명의) 소리로 이해했던 함석헌은 쓰자마자 과거형이 돼 버리는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언제나 반성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연설문이 아니어도 말로 들리는 경우가 많았고, 소리의 울림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자주 엿볼 수 있다. 망설임이나 주저함을 함석헌 글의 성향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의 글에서 철학적 이상과 정치적 현실 사이의 고민을 읽을 수 있고, 그 때문에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글에선 철학적 함의가 큰 ‘말씀의 집’과 같은 개념을 더 발전시키지 않은 것을 그 한 예라 하겠다. 함석헌이 <누에의 철학>에서 글쓰기에 대한 관찰을 하게 된 동기먼저 살펴보자.


    함석헌에게 당시 한국의 상황은 말이 말라버려 글이 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생각이 막힌 빈곤한 시대에 살림의 글이 나올 수 없었다. 그에게 생각은 살림 혹은 생활에서 나왔고, 말은 생각이 영근 상태였고, 글이란 말이 닦이어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 글이 있을 수 없는 나라의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건 거짓말을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 자체로 심판과 형벌이었다. 심판과 형벌은 생각이 막히고 말이 말라버린 시대가 지은 죄의 대가였다. 따라서 말이 말라버린 시대에 글을 쓰는 것은 저주받은 행위였고, 저주받은 글쓰기는 죄의 대가를 치르는 행위였다. 하지만 죄는 한 개인이 따로 짓는 게 아니었고, 그 대가의 짐도 전체가 지어야 했다. 20세기 중반 미국 정신사의 한 뿌리를 이어가는 곳에서 외로운 고민을 하면서 쓴 그의 글을 한국의 상황만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개인과 전체가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던 함석헌의 글에서 자기반성과 시대의 반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누에의 철학>은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거나, 한국이란 상황에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반성을 넘어 철학 그 자체에 대한 반성으로 볼 수 있다. 살림을 추구하지 못하고 말과 영혼이 빈곤해진 시대의 사유에 대한 그의 성찰로 볼 수 있다.


    생각이 막히고 말이 말라버린 시대와 누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함석헌에게 누에는 죽은 듯이 느리고 약한 비웃음의 존재였다. 누에는 비단의 영광을 위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권력과 도덕과 종교에 의해 희생된 씨알들의 상징이었다. 긴 잠을 자듯 ‘내일과 모래’를 먹으며 꿈지럭대는 누에는 결국 ‘죄의 몸’이란 허물을 벗고 끝내 나비로 솟아오른다. 함석헌은 자신의 모습을 변신을 위해 침묵하는 연약한 누에에 비유했고, 자신의 철학을 이런 누에에서 찾았다. 누에가 자신의 살을 뱉어내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죽고 또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함석헌은 말이 살아나는 모습으로 비유한다. 누에가 지은 집은 ‘말씀의 집’이었고, 그 집을 깨치는 것은 또다시 ‘내 입의 말씀’이었다. 죽어서 나비가 된 누에는 새 시대를 여는 말씀으로 다시 태어난다. 존재가 언어로 구성되었다는 뜻의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함석헌의 누에가 지은 말씀의 집은 존재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곳이 아니라, 존재를 변화시키기 위한, 죽음에까지 이르는 언어적 성찰의 공간이었고 새로운 존재와 새로운 언어를 탄생시키는 집이었다.


    함석헌의 누에 철학은 죽음을 준비하는 철학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루는 철학이었다. 나의 죽음이 아니라 약자의 죽음, 억압의 구조를 정당화하는 철학이 아니라, 신음하는 생명을 위한 고난과 생명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함석헌의 누에는 스스로 죽어야 살 수 있다. 누에가 몸을 뱉어내 집을 짓는 과정을 말을 뱉어내 말씀의 집을 짓는 것이라 했다. 말이 말라버린 시대에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죽음을 거치지 않으면 새로움을 맞을 수 없었다. 함석헌은 누에가 죽음을 통해 나비로 변신한 것을 새로운 말씀을 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말과 새로운 언어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저주받은 시대의 글쓰기가 아닐까. 여기서 마음에 칼질을 해 시를 썼다는 그의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철학의 형상화란 관점에서 ‘누에’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누에의 철학’이라는 말은 우선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누에라는 동물이 드러내는 철학적 습성이 있다는 의미와 철학 그 자체를 누에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누에를 통한 철학의 형상화는 후자를 말한다. 철학을 형상을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은 철학의 역사에서 꾸준히 볼 수 있다. 빛과 비전이나 지혜를 터득한 현인 또는 숫자나 기하학의 형상을 통해 철학의 본질을 드러내려 했던 철학의 역사는 길다. 비교적 최근에 프랑스의 뒬러즈는 ‘친구’와 ‘노인’으로 철학의 단면을 형상화시키기도 했다. 동물을 철학의 형상으로 제안한 예로는 헤겔의 글을 통해 널리 알려진 희랍신화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가 있다. 함석헌의 누에를 철학의 형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함석헌은 누에를 한국의 지형과 닮았다는 말을 했다. 누에는 한국 철학의 형상일 수 있을까?


    함석헌의 누에를 헤겔의 부엉이와 비교해보자. 헤겔의 부엉이는 황혼이 찾아와야 비로소 날개를 펼치고 날지만, 누에는 새벽에 고치를 뚫고 날아오른다. 부엉이가 밤에 활동하는 이유는 하루의 역사가 끝났지만 그에 적응하지 못한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다. 헤겔이 부엉이라는 철학의 형상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역사가 종결된 상태가 되어서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철학은 과거에 대한 사유가 된다. 그 사유는 밤에 나는 부엉이처럼 공격적이고 심판적인 것이었다. (함석헌과 헤겔의 비교가 가능하다면, 니체는 어떨까? 니체는 다가올 미래의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생명의 순환성과 역동성을 담아내는 미래의 철학을 ‘망치’로 형상화시켰다). 반면에 새벽에 날아오르는 누에는 미래지향적이고 예언적인 철학의 형상이었다. 나비는 누에라는 자아의 죽음을 뒤로 하고 날아오른다. 누에의 죽음은 부정이라는 변증법의 상징도 아니고, 동일한 것의 반복도 아닌, 죽음으로 생명을 이루는 순환적인 가치관을 반영한다. ‘내일’을 먹고 긴 잠을 자는 누에에게 시간이 빨리 끝나야 한다는 조바심은 없다. 누에의 철학은 사후의 사건이 아니라, 내일이 현재에 진행 중인 삶 그 자체였다. 한국을 누에와 같이 생겼다고 한 함석헌은 자신의 모습, 자신의 가능성을 누에를 통해 발견했다. 그리고 누에의 철학, 나비의 철학을 자신이 품었노라 선언했다. 함석헌에게 누에는 자신의 형상이었고, 한국의 형상이었고, 철학의 형상이었다 말할 수 있다.


    그 형상의 의미는 미래적인 것이었지만, 그 미래는 현재의 고난을 전제로 한다. 함석헌에게 누에는 민중의 고난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누에는 인간이 원하는 비단을 생산하기 위해 키워지는 생물이다. 누에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만든 ‘말씀의 집’은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고 파괴되고 만다. 그런 누에의 죽음은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 생산을 위한 희생이다. 바로 여기서 함석헌의 철학이 시작하지는 않을까. 바로 고난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말씀을 잉태하는 미래의 철학이다. 누에가 민중의 상징이라면 그의 철학은 고난 받는 민중의 미래와 가능성을 묻는 철학이었다. 함석헌에게 철학은 미래를 위해 필요했다. 그리고 철학의 미래는 이런 미래를 생각하고 질문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함석헌은 철학과 미래는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기에 한국에 미래가 있으려면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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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고통을 좀 더 잘 이해하려면 1



심범섭*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대표작 <레 미제라블>에 잠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한 나이 든 독신 여성이 있다. 쟝 발쟝이 운영하는 공장의 여성 작업장을 감독하는 이 여인에 대해 소설의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참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확고하고 공정하고 강직하며, 무엇을 주는 사랑으로 가득하지만 이해하고 용서하는 사랑은 그만큼 지니지 못했다.” 위고는 주기, 이해, 용서를 사랑의 종류, 또는 사랑이 구현되는 방식으로 보았다. 그리고 위고의 이 말에는 이 사람이 이해하고 용서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는 판단이 들어있다. 독자들도 이 사람을 답답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얼른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이 세 가지 덕목에 모두 부요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 남에게 무얼 잘 주는 덕목도 실천하기 어려우며, 남을 잘 이해하고 너그러이 용서하는 덕목은 더더욱 구현하기 어렵다.  

   사실 남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것을 넘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점을 받는 것이 불가능한 시험이라고 아예 공부를 안 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다. 다른 사람을 더 이해하면 그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가 더 쉬워지며, 만일 그와 인간관계가 있을 때 그 관계를 더 낫게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는 사회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려 할 때 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할 지도 모른다. 인간은 행복보다는 불행에 더 익숙한 존재인 것 같기 때문이다. “인생은 고해다”라는 어두운 선언이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밝은 선언보다 더 가깝게 다가오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몇 해 전 티브이에서 어느 의사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사람의 뇌에서 불안과 공포 등을 담당하는 부분이 더 안쪽에 있어 이런 부정적인 정서가 더 자연스럽게 일어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일부러 ‘불안해야지’ 안 해도 불안이 저절로 찾아오지요”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또 몇 해 전 어떤 계기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목록을 한번 인터넷에서 찾아본 적이 있다. 한 사이트에서 동양의 ‘희노애락애오욕’ 일곱 가지 범주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감정을 나열해 놓은 목록을 발견했다. 여기에는 전부 197가지 감정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긍정적인 것이 71 가지, 중립적인 것이 12 가지, 부정적인 것이 114 가지이다.[각주:1] 이런 분포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분 좋을 때보다는 안 좋을 때가 더 많음을 암시하는 듯 하다.

   히브리 성경 신명기 28장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할 때 받게 될 복과 순종하지 않을 때 받게 될 저주가 열거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저주가 복보다 월등히 더 많다는 것이다. 1-14절에서 복을 이야기하고, 15-68절에서 저주를 이야기하는데, (비록 엄밀하게 그 가짓수를 세는 것은 힘들지만) 대략 따져보면 저주의 종류가 복의 종류보다 세 배 정도 많은 것 같다. 이 차이를 해석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람이 인생에서 마주치는 일 가운데 나쁜 일이 좋은 일보다 확실히 더 많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우리 삶에는 기쁘고 즐거운 경험보다 괴롭고 힘든 경험이 분명히 더 많지 않은가?

   이렇게 익숙한 고통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느낌과 생각이 많이 태어나는 연원이 아닌가? 또 우리의 가장 큰 비밀이 잉태되는 이면이 아닌가? 또 우리의 성장과 성숙에 절실하게 도움을 주지 않는가? 또 우리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게 병들이지 않는가? 또 아름답고 유익한 창조의 결실을 가져오지 않는가? 그래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단언해도 억지스럽게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인문학이 인간을 이해하려는 공부라면 ‘인문학은 고통학이어야 한다’고 말하고도 싶어진다.

   그렇다면 개인도 사회도 덜 고통을 겪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면, 그 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정말 많겠지만, 나는 이 글의 남은 부분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나름대로 서투르게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다음 번 글에서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데 실패하는 경우들을 몇 가지 체계없이 이야기하고자 한다.

   고통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한다고 할 때, ‘이해’라는 말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의미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나는 “체험적 이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이 겪는 것과 같거나 비슷한 고통을 나 자신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이해이다. 여기에는 주관적이고 구체적인 느낌이나 정서가 (많은 경우 강하게) 동반한다.[각주:2] 우리 속담에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안다”라는 것이 있다. 배우자를 잃고 혼자 사는 여성의 어려움을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잘 이해하는 경우를 말한다.

   고통에 대한 또 다른 이해는 “상상적 이해”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으로서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이 어떤 것일까 상상할 때 얻게 되는 이해이다. 이때 우리는 자신의 직접 경험 가운데 주어진 고통과 가장 비슷한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럴 때 어떤 구체적인 느낌이나 정서가 따라온다. 예를 들어, 나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알지 못 한다. 그래서 이런 슬픔을 감히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경험했던 슬픔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부모를 잃은 고통도 이러한데 자식을 잃은 고통은 얼마나 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고통의 상상적 이해를 “고통 체험 번역”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번역은 대부분의 경우 어설픈 오역이지만 아예 번역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며 또 우리로 행동하게 하는 힘도 있다 할 수 있다.

   고통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은 “설명적 이해”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으로 고통의 성격을 지적으로 아는 것이다. 달리 말해, 고통의 원인, 양상, 해결 방안, 예방법 등을 지식으로 머리로 아는 것이다. 이런 지식은 많은 경우 구체적인 사례들을 관찰하고 분석한 것에 바탕하고, 따라서 일반론적이고 체계적인 성격을 띠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이해에는 주어진 고통을 자신에게 이입할 때 따라오는 구체적인 느낌이나 정서가 없어도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생로병사> 같은 방송에서 중이염의 원인과 증상과 치료법 등에 대해 들으면서 이를 그냥 지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때 나는 중이염에 대해 설명적 이해를 얻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통을 나에게 이입해 어떤 느낌이나 정서를 체험한다면 이는 동시에 상상적 이해가 될 것이다.)[각주:3]

   이 세 가지 이해가 관련하는 방식과 이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 가운데 중요한 것을 부분적으로나마 이야기하기 위해 ‘예비 아빠를 위한 임신체험’이라는 예를 살펴보고자 한다. 용인시 처인구 보건소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글에서 한 문단을 옮겨 본다.


예비 아빠는 주말 동안 6가지의 생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요. 임신 7개월에 해당하는 7.5k의 임신 체험복을 입은 채 집 안을 청소하거나 계단을 오르는 등 임산부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는 미션을 완료하고 미션 카드에 스티커를 붙여 표시합니다. 예비 아빠가 해야 하는 미션들은 사실 임산부가 매일매일 하는 일과들인데요. 임신 체험복을 입은 채로 미션을 수행하고 나면 아내의 마음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겠죠?[각주:4]


   우선 예비 아빠는 “임산부의 고충”을 체험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고, 상상적으로 또는 설명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각주:5] 그의 임신체험은 임신부의 어려움을 무엇보다도 상상적으로 더 잘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이 체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설명적 이해를 얻을 수도 있다.) 남성의 일상에서는 얻기 힘든, 임신부의 경험과 되도록 가깝게 설정된 직접 경험을 의도적으로 찾아나서는 것으로서, 되도록 체험적 이해에 가까운 상상적 이해를 얻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적극적인 고통 체험 번역을 위한 이러한 유사체험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참가하는 “24시간 기아체험”도 이런 예에 해당한다. 이러한 유사체험을 긍정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이왕이면 체험적인 이해를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제는 사실 아주 상식적인 믿음,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믿음이다. 달리 말해,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알겠는가?”하는 생각이 거의 모든 이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직접 경험이 없이 지식으로만 존재하는 이해, 곧 설명적 이해는 공허한 것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경우가 많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라는 속담, “귤이 어떤 맛이라고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한번 직접 먹어보는 것이 낫다” 같은 말이 이런 태도를 반영한다. 사실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마음을 공감을 통해 위로하거나 치유하는 데에는 체험적 이해가 가장 중요한 듯 하다. “상처받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소중한 개념이 된다.

   하지만 설명적 이해에는 그 나름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우선 임신체험 같은 적극적 고통 체험 번역에도 설명적 이해가 중요하게 관여한다. 왜냐하면 예비 아빠가 구체적으로 어떤 고충을 경험해야 하는가는, 많은 임신부의 경험에서 추출한 일반론적인 지식, 곧 설명적 이해에 바탕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실증에 바탕한 설명적 이해는 예비 아빠에게 임신부의 고통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이유로 어떤 상황에서, 특히 고통을 예방, 경감, 제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아주 중요하며 이런 결과를 위해 복잡하고 정교한 지식이 필요한 경우, 사람들은 설명적 이해를 체험적 이해보다 더 신뢰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임신 여성들에게 건강한 임신 관리와 안전한 출산을 위해 ‘아이를 열 명을 낳아보았지만 의학교육은 받은 적이 없는 여인’과 ‘권위 있는 남자 산부인과 의사’ 가운데 누구를 찾아가겠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남자 의사를 선택하리라고 짐작한다. 때로 “백견이 불여일문이다”라는 말이 더 맞는 경우도 있다.

   결국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목적을 향해 행동을 취할 때 이 세 가지 고통 이해는 각각 그 역할과 자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생각할 때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하는 요소로서 ‘타인의 고통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맹자가 ‘측은지심’을 이야기하면서 드는 예가 한 예가 된다고 본다.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걸 볼 때 사람은 저절로 놀라움과 불쌍함을 느낀다고 맹자는 말한다. 이런 반사적인 반응 덕분에 우리는 이 아이를 구하려고 달려가게 되며, 따라서 이 측은지심은 고통이 더 적은 세상을 만드려는 노력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측은지심의 반응은 고통에 대한 한 이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답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이 즉각적이고 (거의) 본능적인 반응이 설명적 이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나에게 같은 경험이 없어도 일어나는 반응이므로 체험적 이해와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측은지심은 내가 제시한 세 가지 이해 가운데 상상적 이해와 가장 가까운 것 같다. 이 반응은 상상적 이해의 한 종류 또는 측면인가?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할 때 우리 머릿속에서는 순식간에 이 아이가 우물에 빠졌을 때 당할 고통에 대한 상상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때 내가 인식하는 아이의 고통은 ‘어떤 심한 고통의 존재 자체’이지 ‘그 고통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상상적 이해를 고통의 구체적인 내용을 내 나름대로 느끼는 (번역하는) 것으로 정의하므로, 나는 지금으로서는 측은지심이 고통 이해와는 다른 것이라고 상정하고 싶다. 고통의 세 가지 이해와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받는 ‘고통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직관’으로 규정하고 싶다. (이를 혹시, 거창한 용어를 빌려와 “고통의 전이해”라고도 이름할 수 있지도 않을까?)

   이 글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서투르고 체계없는 생각을 나누어 보았다.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이 적어도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하고,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이 어떤 근본적인 직관으로서 이 이해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 삶에서 흔히 일어나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데 실패하는 경우를 살펴보면서 고통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고방식과 감수성을 계발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 필자소개  

영어강사. Rice Univ 언어학 박사(Ph.D) 후에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과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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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출처: 주미의 미술치료 여행 http://ajmpt.blog.me/140208221758. [본문으로]
  2. 이 글에서 나는 ‘느낌’과 ‘정서’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느낌’은 “오싹한 느낌,” “어색한 느낌”처럼 우리가 보통 ‘감정’이라는 범주에 넣지 않는 내적 경험을 가리키고, ‘정서’는 “기쁨,” “우울함”처럼 어느 정도 폭(그것에 “빠져있다”는 느낌을 가능하게 하는)과 시간적 지속이 있으며 우리가 보통 ‘감정’으로 간주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3. 물론 이 세 가지 이해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을 모두 포괄하지는 못 한다. 여기에 들어오지 않는 예로서 무속인이 이른 바 “신기”를 통해 이해하는 것, 보통 사람이라도 때로 꿈이나 텔레파시 등을 통해 이해를 얻는 경우 등이 떠오른다. 이런 비전형적인 이해는 아직 내가 이야기할 준비가 되지 못했으므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 것으로 한다. [본문으로]
  4. 출처: http://sotongsamsung.com/1491. [본문으로]
  5. 인용문에 쓰인 “임산부”라는 표현은 임신한 여성과 산모를 포괄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임신 여성만을 가리키는 표현은 ‘임신부’라고 하므로 이 글에서는 임신 여성을 뜻할 때 ‘임신부’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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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이 이끄는 삶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내가 몸 담고 있는 교회에서는 각 교회학교 부서별로 제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간략히 설명하여 ‘제자학교’라 함은 일종의 교회 내 성인교육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제자 훈련의 교회학교 버전인 셈이다. 이 글에서는 이번에 ‘읽기와 쓰기’라는 주제 아래 초등학교 1, 2, 3학년 아이들과 활동을 진행하였는데, 흥미로운 결과가 있어 이 지면을 통해 공유하려 한다.


시를 쓰기가지 있었던 일


   우리는 ‘읽기와 쓰기’라는 주제 아래, 2주에 걸쳐 시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친구들에게 막연히 주제를 던져 시를 쓰게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나는 한 가지 특별한 방법을 써서 아주 ‘낯선 하루’를 경험해보기로 했다. 그 특별한 방법이란 하루의 활동을 미리 계획하지 않고, 일종의 룰렛 게임처럼 임의대로 1) 누가(주체), 2) 어디서(장소), 3) 어떻게(교통수단), 4) 무엇을(활동) 할 지 각 항목별로 여러 후보를 정해놓은 후 아이들이 다트를 던져 다트가 꽂히는대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우리가 준비한 다트판은 다음과 같았다.



1회차(171028) “모두 다 버스를 타고 월드컵 공원에서 자유시간을 가진다.”


   위 그림판을 이용해 다트를 던져 첫 날에 해야할 우리의 행동은 “1) 모두다 2) 월드컵 공원에서 3) 버스를 타고 4) 자유시간을 가진다.”로 정해졌다. 이 결과는 아이들이 원하는 결과와는 매우 달랐다. 아이들은 최근 개장한 ‘국내 최대 및 최신식’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만큼 대단히 화려한 종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을 가는 것이었고, 거기에 가장 편안한 방법인 자가용을 타고 맘껏 돈도 쓰고 시간도 쓰는 자유시간을 가지길 원했다. 하지만, 다트를 익숙하게 던지지 못하는 아이들은 실망스러운 결과를 손에 안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마지못해 월드컵 공원으로 향했다. 교사들과 나는 그 곳에도 아주 재미나게 놀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말해보았지만, 아이들은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는 그 곳으로 가는 첫 걸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한 번에 그 곳으로 가는 버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하철도 불광역에서 월드컵공원역을 가는 데에 한 번에 6호선으로 약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버스는 그렇지 못했다. 저학년이라 버스에 익숙하지 못한 친구들은 처음부터 힘들어했다. 어쩔 수 없이 연신내역 정거장까지 가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연신내역부터 월드컵 공원까지 가는 버스는 이미 우리가 타기 전부터 손님들로 꽉 찬 ‘만원버스’였다. 덩치가 작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틈바구니에 밀려 뒷좌석 쪽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앞에서 있는 대로 힘들어했다. 마침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해준 몇몇 친구들은 그나마 자리를 앉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여기저기 꽉 끼여서 ‘숨막힌’ 여정을 가야했다. 승객이 중간에 조금이라도 빠질 줄 알았지만,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많이 줄지 않았고, 겨우겨우 인파의 틈을 뚫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이들과 교사들은 모두 녹초가 되어 버렸다. 이제 우리는 힘든 길을 달려 가기로 한 곳에 도착했으니 그나마 다행히 어떤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시간을 가지’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배도 고프고 지쳐버린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이라 그런지 일단 넓은 곳에 도착하니 뛰어 놀고 싶은 눈빛이 살아나는 것 보였다. 게다가 공원에 와서 무슨 계획된 활동을 가지는 게 아니라 ‘자유시간’을 갖는 것이었으니 지친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 조금 걸어가서 편안해 보이는 장소를 찾고 편의점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정식 식당도 아니고 편의점이다보니 아이들은 그저 컵라면만 먹고 싶어했다. 힘들게 바깥 활동을 나와서 귀한 집 자식들에게 컵라면을 먹이려니 어른으로서 조금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마저도 배고팠던 아이들에게는 맛있게 느껴졌는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고마웠다. 그렇게 한참을 컵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50대 남자 한 분이 낮부터 거나하게 취하셔서 아이들이 먹고 있는 곳 주변으로 어슬렁거리셨다. 아이들은 힐끔힐끔 바라보았고 생각보다 무서움을 느끼던 그 때, 아저씨는 아이들을 향해서 소리를 쳤다. 아이들은 뭐라고 말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단히 공격적으로 소리를 질렀고, 어떤 한 아이의 말로는 ‘죽어버리라’는 말도 내뱉었다고 한다. 뜬금없는 아저씨의 소리지르는 모습에 먹던 컵라면도 더 이상 못 먹겠다며 아이들은 소스라치듯 놀랐고, 다행히 물리적 접촉은 없었지만 교사 중 한 명이 경찰에 신고를 하여 아저씨는 아이들 근처에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몇몇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어떤 아이들은 이 광경이 너무나 낯선 경험이라 많이 놀란 듯 보였다.


    식사 이후에 아이들은 마침 옆에 있는 놀이터를 발견하고 놀이터에서 놀게 되었다. 야외 놀이터 치고 월드컵 공원 내에 있는 ‘아기새 모험 놀이터’는 꽤 규모가 크고 평소에 일반 동네에 있는 놀이터보다 더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놀잇감들이 있었다.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흙바닥’ 놀이터에다가 아주 어린 유아들이 놀 수 있는 기구로부터 큰 아이들도 시시해 하지 않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크고 높은 놀이기구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아이들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놀았고, 시를 쓸 때에도 거침없이 하루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떠올리면서 써나갔다. 아이들이 쓴 시의 소재는 매우 다양했다. 어떤 아이들은 화창한 바깥 날씨에 대해서 썼고, 어떤 아이는 유난히 맛있었던 라면에 대해서, 어떤 아이는 놀이터에서 자신에게 버겁고 힘겨웠던 놀이기구에 대해서 썼다. 반짝 거리는 돌을 설명한 아이도 있었고, 지저귀는 새 소리에 대해서 쓴 아이들, 그리고 밥먹는데 다가와 죽어버리라고 소리친 대낮의 취객 아저씨에 대해서 쓴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루를 즐겁게 놀고 시를 쓰는 아이>


2회차(171104) “모두 다 지하철을 타고 스타필드 고양에서 자유시간을 가진다.”


    아이들은 그렇게 즐겁게 놀이터에서 놀았지만, 몸 안의 습속이란 그렇게까지 쉽게 변하지는 않는 법이다. 1주일이 지나 다시 다트판 앞에 선 아이들에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았더니 서슴없이 스타필드에서 자유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그 지난 주의 버스를 타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부모를 통해 들은 한 이야기로는 아이가 1주일 후에 다시 다트를 던진다는 생각에 1주일 내내 다트를 연습했다는 풍문도 있었다. 결국 아이들은 지난 주보다 훨씬 집중하여 다트를 던졌고, 본인들이 원하는 결과로 가장 가고 싶은 스타필드 고양을 편안하고 안락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여 자유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결정지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스타필드 고양을 들어선 순간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눈이 휘둥그레해질만큼 화려한 불빛들과 간판들을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들이 아이들의 눈을 쉴새없이 잡아 끌었지만 과연 그렇게 눈과 마음을 빼앗긴 채 시간이 흘러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이나 할 수 있을지, 그걸 가지고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가 참으로 의심스러웠다. 역시나 아이들은 실내로 들어서자 자기보다 몇 배나 크고 거대한 규모의 매장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도열하고 있는 곳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손에 잡히지 않는듯 신기해하기만 할 뿐, 정작 재미있게 자기들이 가진 ‘자유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알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나 또한 스타필드에 왔고 시간을 보내야 하니 어떻게든 발걸음을 옮기고는 있었지만, 무한정의 돈이 주어져 있지도 않은 우리로서는 무엇을 해야 여기서 ‘자유롭게’ 재미있게 놀 수 있을지 전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스타필드 고양의 중앙광장, 거대한 광고'기둥'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솟아 있다.>


    겨우 그 정처 없는 우리들의 발걸음의 방향을 이끌어 준 것은 그 곳에 와본 적이 있는 교사 한 명이었다. 그 교사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이 많이 있는 공간으로 가자고 했고, 아이들은 장난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그 곳에 가서 슬슬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산더미와 같은 장난감은 애초에 구매를 목표로 한 곳이었기 때문에 다 가지고 놀 수는 없었다. 그나마 몇 가지의 장난감 ‘상품’을 잠시 ‘체험’하는 의미로 갖고 놀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두었는데 아이들은 많고 체험하는 상품으로서의 장난감은 아주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양보의 압박을 받으며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정도의 시간만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어째 그렇게 ‘그림의 떡’들에 눈을 빼앗기고 있을 때쯤에 배가 고픈 시간이 되었고, 드디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커다란 피자와 탄산음료, 핫도그 등 아이들의 입맛에 최적화된 음식을 아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었다. 지난 주에 죽일듯이 노려보는 취객 아저씨와 어슬렁거리는 비둘기 무리 속에서 겨우 컵라면을 먹었던 것에 비하면 위험한 일도 없고, 비둘기도 없이 입맛에 딱딱 맞는 피자와 탄산음료를 먹는 일은 매우 행복한 일이었다.


    즐거운 식사가 끝난 뒤, 아이들은 포만감으로 가득한 채로, 다시 장난감 가게로 들어가 찔끔찔끔 노는 것이 싫었던 듯, 바깥으로 나가서 놀기를 제안했더니 좋다고 했다. 바깥은 11월 초여서 조금 춥고 바람이 많이 불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정도의 제약은 노는 데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넓은 공터에서 아이들은 술래잡기, 얼음 땡, 멀리뛰기 등을 하며 놀았고 특히 어른들과 함께 한 림보 게임을 하며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경직된 웃음에서 자기도 모르게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이 지은 시 비교


    하루는 월드컵 공원에서 하루는 스타필드에서 보내고 난 뒤에 아이들이 쓴 시를 비교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고, 과연 그 시들은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먼저 첫 날 월드컵 공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지은 아이들의 시를 보자.


낯선 하루 – 남00(2학년) 


파라솔 밑에서 라면을 먹었다, 

라면을 먹으면서 가을 풍경을 감상한다. 


짹짹짹 울부짖는 새소리. 

푸득푸득 비둘기 소리. 


가을이 온 것 같다. 


 한강시민공원 – 민00(3학년) 


 한강시민공원에 도착 

도착하자마자 후루룩쩝쩝 라면 먹는데 

어떤 아저씨가 욕을 많이 하네. 


 라면 다 먹고 나서 

아기새 모험 놀이터에 와서 재밌게 논다. 


 시끌벅적 웃음소리가 들린다.


    여기 아이들의 시에서는 풍경들이 등장한다. 주변이 한가하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라면을 먹어도 가을 풍경을 볼 수 있고, 재미있게 놀고 있다 해도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주변이 시끄럽지 않으니 라면을 먹어도 그 소리가 들리고, 새가 울어도, 그저 지나가기만 해도 짹짹짹거리는 새소리와 푸드득 거리는 새의 발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하루를 보내면서 주변과 만나고 있고,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음 시들을 보자.


기쁜 하루 – 선00(2학년) 


아기새 모험 놀이터에서 놀았다. 

어려운 것도 있었고 쉬운 것도 있었다.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초록봉 오르기였다. 

쉬운 것 중 하나는 정글짐이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바퀴타기이다. 


 이 시를 쓰려고 논 것이 아니었다. 

심심해서 논 것이었다. 


 낯선 하루 – 지00(1학년) 


 한강시민공원에 갔다. 

이 시를 쓰려고 여기에 왔다. 


다트도 했는데 롯데월드와 스타필드를 가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한 아저씨도 봤다. 


오늘은 참 낯선 하루다.


    두 시는 참 재미있게도 상반된 진술을 보이고 있다. 한 아이는 ‘이 시를 쓰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고 했고, 한 아이는 ‘이 시를 쓰려고 논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같은 하루를 보내고 같은 공간에서 놀았지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같은 시간과 공간을 보낸 사람들 간에도 상반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자신이 놀이터에서 잘 다루지 못하는 놀이기구가 있다는 것을 알기도 했으며, 이상한 아저씨가 자기에게 접근한 기록까지 남기고 있다. 공히 자기에게 어렵고 힘들고 어색한 경험이 머릿 속에 맴돌고 있고, 그 감정은 그닥 불쾌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고, 그것은 가치 판단의 이전 문제인 것이며, 자연스럽게 세상이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수용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면에, 1주일이 지나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스타필드 고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의 시를 살펴 보자.


피자 – 우00(3학년) 


 나는 처음으로 먹물 피자를 먹었다. 

맛있었다. 다음에도 또 먹고 싶다. 

그리고 아이스크림도 맛있었다. 

또다시 오면 이걸 또 먹고 싶다. 


 아이스크림 – 전00(3학년) 


아이스크림이 입 안에서 사르르 아주 진하다. 

이런 아이스크림은 역시 스타필드 트레이더스 아이스크림이지!!!!!!


    일단 첫날 월드컵 공원에 가서 시를 쓴 것보다 훨씬 짧아진 것을 볼 수 있다. 아이들 머릿 속에는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시 속에 나타나 있지 않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첫날에 보여주었던 서정적이고 세계를 감상하며 자기의 언어로 사실을 기술하려고 애썼던 아이들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전혀 아무런 감흥 없이 자기의 욕망을 드러내거나 즉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렬하게 자극했던 피자와 아이스크림에 대한 혀의 반응을 기술할 뿐 과연 아이들이 자신들이 만났던 세계와 소통하고 있다고 보여지지 않을만큼 단순하게 기술하고 심지어 이 시 안에 있는 자아만큼은 홀로 있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틀 모두 참석한 아이 중 한 아이의 시를 비교해보면서 하루를 어떻게 다르게 느꼈는지를 살펴보자.


낯선 하루 – 황00(2학년) 


 파라솔 밑에 무서운 아저씨 

욕 쓰고 죽으라고 하며 

무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무서운 아저씨 

너무 무서운 점심 


모험 놀이터에서 재미있는 자유시간 

남자 화장실에 들어온 아줌마 

 아주 낯선 하루 


 스타필드의 날 – 황00(2학년) 


 스타필드에서 놀았다.


    이 두 시에 대해서는 이 시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의 시를 통해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다.


    여전히 아이들에 대한 교육방식과 방침에 대해서는 의견과 이론들이 분분하다. 한 쪽에서는 아이들의 의사와 아이들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여 충실히 그것을 성취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의견이 있고, 그 반대 쪽에는 여전히 아이들에 대해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무조건 자기의 의견대로 아이들을 이끌고자 하는 부모들의 행태도 더욱 극단적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간과하는 것은 아이들을 학대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어느 정도 진전된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두 번을 겪어본 결과, 아이들은, 더 나아가서 나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조차도 스스로 자기 속에 있는 진짜 욕망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나아가 수 년 전에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부터 오늘날까지 그 유사제품으로 유통되고 있는 ‘YOLO (You Only Live Once)’ 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기획하여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모든 패러다임에 대해서 적어도 이제는 기각을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은 결코 자기가 기획한 대로 선형적으로 진행되어 마지막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며, 순간순간 이루어지는 사소하지만 불현듯 도래하는 ‘만남’,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수용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적어도 이번 활동 안에서 아이들은 거대한 자본의 성전인 스타필드에서 ‘자유시간’을 가졌지만, 어떤 어색한 순간도, 어떤 낯선 순간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런 자유를 누리지 못했으며, 기껏해야 자기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피자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정신과 몸을 압도하는 자본의 에워쌈 속에서 ‘논 것’이 아닌, ‘놀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반면에 월드컵 공원에서 벌어지는 아주 사소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낯설고 어색한’ 순간들을 통해서 아이들은 세상과 만났고 소중한 자기를 확장했으며, 생의 통찰을 얻어냈다.


    물론, 모든 삶에 대한 기획을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끊임없이 그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지금도 몸부림을 치고 있으며,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해도 내일의, 1년 후의, 10년 후의 자기의 욕망을 점검하고, 방향을 짓는 일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룻밤의 벌이를 위해 메시아가 문 앞에서 두드리고 있는데도 매몰차게 방이 없다고 거절했던 여관의 주인들처럼 우리 또한 도래하고 있는 구원의 표지들을 놓치고 상습적인 욕망의 수레바퀴 안에서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 웹진 <제3시대>



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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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기독교와 우파 정치의 결합[각주:1] 

 



양권석

(본 연구소 소장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결합의 다양한 모습들


    먼저 이 글은 책에 포함된 다른 글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는 점을 밝혀 둔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보수 기독교 혹은 개신교우파로 명명되는 집단의 다양한 실천들 중 하나에 초점을 맞춘 분석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우파정치와 공모하고 있는지 밝히는 연구들이다. 하지만 이 글은 그와 같은 구체적인 연구들에 대한 일종의 메타비평적 평가다. 이 책에 실린 연구 논문들의 성과를 요약하고 평가하면서 향후 보다 발전적인 연구를 위한 과제들을 제시하려는 것이 글의 목적이다. 


    한국 개신교가 보수적 한국사회 형성에 기여하고 공모해 온 내용들을 다룬다는 큰 틀에 모두 포함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연구 주제 혹은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세 가지 범주로 구별해 볼 수 있다. 첫째 범주는 이 책의 기획 의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1980년대 이후 보수적 기독교와 우파정치가 결합하는 형태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이다. 개신교의 동성애 반대운동에 초점을 맞추면서 개신교 우파 혹은 개신교 뉴라이트의 정치적 등장을 분석하고 있는 김나미와 조민아, 그리고 개신교의 교육프로그램이 내세우는 아버지 표상을 분석함으로써 개신교가 우파 정치의 의제들과 결합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숙진의 글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한국형 대형 교회 안에서 실천되고 있는 교육, 선교, 사목 프로그램들을 분석하여 뉴라이트 정치경제 담론과 웰빙담론의 결합을 분석하고 있는 김진호의 글, 보수적 개신교 안에 일종의 개혁운동으로 전개되어 왔고, 비록 소수이긴 해도 보수 개신교 내에서 지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복음주의지식 담론’을 분석대상으로 삼고 있는 김현준의 글, 그리고 한국 개신교의 해외선교 동원담론인 ‘한국형 선교담론’을 분석대상으로 하고 있는 박설희의 글 역시 한국 개신교의 목회적, 교육적, 선교적, 신학적 실천들 안에서 보수 우파의 정치적 의제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둘째 범주는 박정희 시대의 복지정책 혹은 복지체제와 그 안에서 이루어진 기독교의 복지 실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유승태와 정용택의 글이 포함된다. 유승태는 박정희시대에 정부의 부랑아 정책의 실패와 그 결과로 외원단체들이 부랑아들을 위한 사회복지 책임을 감당하게 되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부랑아를 고아로 재명명하고, 이들을 위해 복지를 제공하던 기독교 외원단체들에 의해서, 부랑아를 위한 사회복지가 한국 보수주의의 형성에 기여해온 측면을 밝히고 있다. 정용택의 글은 사회복지적 측면에서 박정희 시대의 발전주의 복지체제론과 한국교회의 성장주의가 어떻게 공모해 왔는가를 보여줌으로서 한국사회의 보수주의 형성에 교회가 기여해온 측면, 그리고 한국교회가 보수적이고 우파적인 정체성을 형성해 온 측면을 설명해 보려고 한다.


    셋째 범주는 김흥수와 이진구의 글을 포함 할 수 있다. 우선 김흥수의 글은 한국기독교에 의해서 이단으로 취급받은 대표적인 종교운동인 통일교, 전도관, 용문산 기도원 운동을 분석하여 한국 개신교가 이들을 어떻게 타자화하고 이단시하였는지 보여준다. 한국 개신교와 우파정치가 구체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순수하게 종교적인 문제로 보이는 이단 논쟁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글이다. 이진구는 종교차별, 템플스테이, 땅밟기와 같은 사건들을 둘러싼 보수 개신교와 불교계 그리고 정부 사이의 갈등과 논쟁이 종교차별, 종교자유, 정교분리라는 헌법적 개념을 둘러싼 해석투쟁의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 역시 개신교가 우파정치와 결합에 구체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책의 기획의도와 관련해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성시화 운동이나 땅밟기 사건 등을 둘러싼 불교계의 반응은 오히려 보수 개신교와 보수정치의 결합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보수개신교가 우파정치와 결합하여 정치화하는 한 양상이 법적 개념들을 둘러싼 해석투쟁 혹은 담론투쟁의 형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다.


    이렇게 전체를 요약해 놓고 보면, 1980년대 이후 보수 개신교의 정치적 세력화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책의 기획 의도는 한국 개신교와 우파 정치의 결합 혹은 공모 관계를 밝히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연구 대상이나 연구 방법 면에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미 명시적으로 정치화된 실천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김진호와 이숙진이 교회 교육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삼고, 정용택과 유승태가 교회의 사회복지적 실천들을 대상으로 삼듯이, 교회의 대사회 활동이나 교계 활동은 물론이요, 교회의 다양한 목회적, 교육적, 선교적 실천 활동들이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의 방법 면에서도 훨씬 더 다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과거의 신학적 해석들이 보여주고 있던 한계를 많이 벗어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개신교의 보수성이나 배타성에 대한 연구는 근본주의 신학 전통과 식민주의적 선교역사라는 두 측면에서만 해석해 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보수성과 배타성에 대한 이미 정형화된 보편적 특성을 설명할 수는 있었다 해도, 한국의 특정한 시기 특정한 상황에서 다양한 행위 주체들과의 관계 속에서 교회의 보수성과 배타성이 발현되는 구체적인 현상을 설명해 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 포함된 연구들이 동원하고 있는 사회학적, 인류학적, 문화비평적 연구 방법들은 한국사회의 변화 과정 안에서 다양한 행위주체들과 교회의 상호작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진전을 이루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방법론적으로 훨씬 더 다양화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미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보여주듯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형태로 기독교적 실천이 우파 정치와 결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모습으로 정치화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신학적 교리적, 심리적,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측면들을 함께 고려해야 보다 충실한 설명이 가능할 것이고, 그래서 다양한 방법론이 서로 교차하면서 시도되고 적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결합의 사회적, 교회적 조건들


    우선 1980년대 말 이후 한국의 보수 개신교가 우파 정치와 결합하면서, ‘개신교우파’ 혹은 ‘기독교 뉴라이트’의 형태로 등장할 수 있게 한 사회적 혹은 교회적 조건들은 무엇일까?


    사회적 조건이라는 측면에서는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민주화 그리고 90년대의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 경제 지구화 과정으로의 편입이라는 변화의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김진호에 의하면 이 시기의 문제는 민주화가 다양한 행위 주체들 사이에 민주적 의사조정과 합의가 가능한 정치적 질서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그 부분적 성취마저도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천박한 상업적 자유와 결탁해 버린데 있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국민은 시민이 되었지만, 그 “시민은 시장화 되어버렸다”고 본다. 말하자면, 87민주화 이후에 진보진영은 민주적인 정치질서를 안정시키고 민주사회의 시민들을 위한 건강한 주체화 양식을 제공하는데 실패했고, 그 실패가 만들어낸 불안정한 상황이 보수우파들이 통합과 발전이라는 의제를 들고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고, 동시에 권위주의 시대를 향한 향수가 표출될 수 있게 했다는 뜻이 된다. 이 상황은 보수 우파 정치를 위해서는 과거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형식 혹은 주체화양식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개신교의 동성애 반대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김나미와 조민아는 90년대 동성애 인권운동과 이반운동의 등장을 중요한 사회조건의 변화로 보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젠더위계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 이숙진은 가부장적 젠더 질서를 살아 온 아들들이 민주화와 경제위기 과정을 통해서 아버지를 살해한 이후에 직면한 거세불안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다시 아버지를 소환하는 상황이라는 심리적 해석을 내 놓고 있다. 민주화와 경제위기는 권위주의 시대의 젠더위계질서를 흔들었고, 그래서 새로운 젠더질서를 향한 가능성을 열기도 했지만, 동시에 형식을 변화시켜서라도 가부장적 젠더위계질서를 유지하려는 힘을 결집시키는 계기도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과거의 독재적 권위주의적 질서를 극복하고 민주적 질서를 더욱 진전시켜야 하는 진보세력을 위해서도, 또 과거의 헤게모니를 회복하고 유지시키려는 보수 우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도 새로운 주체화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고, 이 새로운 주체화 전략은 당연히 새로운 타자화의 대상과 전략들을 필요로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 양측의 다양한 주체화 (혹은 타자화) 전략이 어느 쪽도 확실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서로 각축하던 상황이 바로 기독교를 포함한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보수 우파의 정치적 재등장 혹은 재 정치화과정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결합의 담론 전략: 주체화와 타자화 형식의 진화


    그렇다면 80년대 말 90년대 이후 교회는 어떤 변화와 위기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인가? 소위 말하는 개신교 우파의 강화된 정치적 실천은 물론이요 김현준이 관심하는 복음주의 지적 담론이나, 박설희가 관심하는 한국형선교담론의 등장을 가능하게 해준 교회내의 조건은 무엇인가? 김현준은 90년대 한국 개신교 상황을 성장의 정점에 달한 자신감과 동시에 성장의 정체로 인한 위기감이 교차하는 시기로 보고 있다. 조민아 역시 90년대는 한국교회가 성장 정체와 사회적 신뢰와 영향력의 약화라는 위기를 겪는 시기 이지만, 동시에 이 위기 앞에서 자기혁신을 수행하기 보다는 배타적 근본주의 신학을 강화하고 보수적 정치와 결함함으로써 돌파하려는 세력이 결집했던 시기라고 본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김진호, 이숙진, 김현주, 박설희는 한국개신교 내의 속사정을 보다 복잡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90년대를 단순히 개신교 반동의 시기로 보기 보다는,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를 주도해 온 근본주의 신학, 교회성장모델, 선교와 사목의 표현방식 등이 문제가 있음을 개신교 자신도 깨달아가는 과정이었고, 다시 과거의 헤게모니를 회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형식의 주체화 전략과 타자화 전략, 새로운 형식의 교회론과 신학을 만들기 위해서 보수 개신교가 능동적으로 노력했던 시기라고 보고 있다. 김현준의 ‘복음주의 지적 담론’이나, 박설희가 말하는 ‘한국형선교’라는 해외 선교 동원 담론 역시 그러한 개신교의 자구 노력의 산물이다. 뿐만 아니라, 김진호가 말하는 웰빙 우파의 생산기지로서 ‘후발 대형교회’나 이숙진이 말하는 한국 개신교의 교회적 국가적 위기 타개를 위한 새로운 아버지 표상 만들기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부다. 더 나아가 동성애 반대운동이 ‘종북게이’와 같은 개념을 만들어 혐오와 공포의 타자화 정치로 나가게 되는 것도, 과거 헤게모니를 회복하기 위한 개신교 자구 노력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단순히 무지나 시대착오로 보기 보다는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위한 용의주도한 노력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때문에 90년대 이후 한국 교회는 단순히 복고적으로 반동적 정치만을 강화한 시기가 아니라, 훨씬 더 세련되게 시민적 소비자적 감수성에 맞게 주체화 전략과 타자화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처럼 과거의 헤게모니를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는 노력 가운데 개신교 우파 혹은 기독교 뉴라이트라 불려지는 보수정치와 개신교의 결합체들이 등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 시대 특정한 정치형식 혹은 종교적 실천 형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회적 조건을 이와 같이 매우 동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에 속한 글들이 공유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장점이요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집단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각축 속에서 정치적 종교적 실천들과 그 실천과 관련된 담론들을 분석한다는 것은 종교학적 연구는 물론이요 신학적 연구를 위해서도 매우 의미 있는 방법론적 진전이라고 본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김진호, 이숙진, 김현주, 박설희는 한국개신교 내의 속사정을 보다 복잡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90년대를 단순히 개신교 반동의 시기로 보기 보다는,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를 주도해 온 근본주의 신학, 교회성장모델, 선교와 사목의 표현방식 등이 문제가 있음을 개신교 자신도 깨달아가는 과정이었고, 다시 과거의 헤게모니를 회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형식의 주체화 전략과 타자화 전략, 새로운 형식의 교회론과 신학을 만들기 위해서 보수 개신교가 능동적으로 노력했던 시기라고 보고 있다. 김현준의 ‘복음주의 지적 담론’이나, 박설희가 말하는 ‘한국형선교’라는 해외 선교 동원 담론 역시 그러한 개신교의 자구 노력의 산물이다. 뿐만 아니라, 김진호가 말하는 웰빙 우파의 생산기지로서 ‘후발 대형교회’나 이숙진이 말하는 한국 개신교의 교회적 국가적 위기 타개를 위한 새로운 아버지 표상 만들기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부다. 더 나아가 동성애 반대운동이 ‘종북게이’와 같은 개념을 만들어 혐오와 공포의 타자화 정치로 나가게 되는 것도, 과거 헤게모니를 회복하기 위한 개신교 자구 노력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단순히 무지나 시대착오로 보기 보다는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위한 용의주도한 노력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개신교 우파의 신학, 선교, 사목, 혹은 교육 담론들 안에서, 종교적이고 신학적이 의제들과 우파 정치적 의제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합되고 있는가? 민주화와 소비사회로의 변화 과정에서 보수 우파, 그 중에서도 특히 개신교 우파가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재생산하기 위해서 어떻게 국가와 교회와 시민 혹은 신자를 재정체화하거나 재주체화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를 위해 타자 만들기는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이 책에 포함된 연구들의 공통관심사다.


    필자들은 권위주의 시대 보수 개신교와 군사정권의 관계는 발전과 개발과 성장을 위한 일종의 권위주의 동맹 관계라는 전제하에서 출발한다. 보수 개신교는 발전을 위한 총동원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필요했던 문화적 장치였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 동맹관계의 기본적인 특징은 김나미의 설명을 따르면 ‘과잉남성적 개발주의’다. 권위주의 시대 개신교 교회의 빠른 성장 역시 과잉남성적 개발주의가 생산하고 유지하는 젠더위계질서 위에서 이루어진 성장이다. 민주화와 소비사회의 진전, 그리고 동성애 인권운동과 이반운동 등장은 이 권위주의적 동맹체들에게 위기로 다가왔고, 특히 보수 개신교는 보다 강력한 혐오와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진화된 타자화 전략을 통해서 그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다. 이 진화한 타자화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어가 조민아에 의하면 ‘종북게이’라는 용어로 탄생이다.


    ‘종북게이’라는 신조어 안에는 반공주의와 호모포비아가 결합되어 되어있고, 종북과 동성애로부터 순수한 사랑과 가정과 군대와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우파의 애국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혐오와 배제의 새로운 구성을 통해서 배타적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타자화 전략과 주체화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투적이고 근본주의적이 방식의 정체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전략적이고 그래서 보다 문화적이고 미학적인 접근들도 있다.


    이숙진이 말하는 개신교의 아버지 교육프로그램이 만들어 내는 아버지 표상은, 민주화와 개인화된 시대의 감각에 맞는 부드럽고 자상한 아버지 상이다. 하지만 이 표상은 가부장적 가족 판타지를 강화하고, 권위주의 시대 젠더질서를 표현만 바꾸어 유지하고 있다. 아버지 교육은 차별적인 성별분업과 젠더위계질서를 기능적인 차이로 위장하고 은폐할 뿐만 아니라, 가족, 국가, 교회의 모든 문제를 아버지 품성의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가부장적 권위 질서를 유지시킬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 구조적 차원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한다. 김현준이 말하는 복음주의 지적 담론 역시 보수 개신교의 사회적 역할과 설득력을 강화하기 위해 변화된 시대에 맞는 보다 지적이고 문화적인 표현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하지만 근본주의적 문화코드를 포장만 달리해서 유지할 뿐만 아니라, 근본주의적 타자화 논리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박설희의 한국형선교라는 해외선교동원담론 역시, 민주화와 함께 신뢰와 사회적 역할을 잃고 있는 교회와 신자들의 재주체화 전략의 일부이며, 교회 밖의 문화와 사상의 공격으로부터 교회의 권위적인 질서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이며, 세계적 사명감을 강조함으로써 현재 교회의 문제를 은폐하면서 오히려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다. 국내에서 무슨 문제가 있든, 세계시장에서 먹히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으로, 또 지금까지의 성장의 성과를 세계와 나누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기업의 세계화담론과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총동원 담론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 한국형 선교담론이다. 그래서 다분히 우파 민족주의적으로 해석된 한국적 성취의 경험이 글로벌 스탠다드화 결합하고, 서구 선교사 전통과 신학, 친미와 반공주의, 그리고 한국교회의 경쟁적이고 개별 교회중심적인 성장주의가 절묘하게 결합하여 ‘한국형 선교’에서 한국형의 본질을 형성하고, 선교를 위한 해외동포를 포함하는 민족 총동원 담론이 된다.


    소망교회, 온누리교회, 사랑의 교회로 대표되는 후발대형교회의 목회와 교육 프로그램들을 분석하고 있는 김진호는 이들 교회들을 우파의 새로운 주체화 양식을 위해서 뉴라이트 담론과 웰빙 담론의 결합이 진행되는 실험 공간 혹은 인큐베이터처럼 보고 있다. 한편에는 신자유의 시대에 맞게 해석된 보수주의, 그래서 계급 편향성이 강하고, 약자와 실패자의 배제를 두려워하지 않는 보수주의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상품화와 시장화와 속도화에 지친 사람들의 웰빙의 욕구가 있다. 그리고 이 둘이 결합하여 향후 우파 정치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웰빙우파라는 주체를 생산한다. 그리고 이 주체 생산의 전진 기지 역할을 바로 후발대형교회가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성과와 과제


    다시 한 번 전체 연구의 의도와 목적을 정리하면, 먼저 보수 개신교와 보수 우파정치가 어떻게 결합해왔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 보수우파 형성에 개신교가 어떤 기여를 해 왔는지 밝히려는 큰 목표 하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80년대 후반의 민주화와 9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 이후라는 특정한 상황에서, 보수개신교와 우파정치가 결합하는 양상을 교회들의 명시적 정치적 실천뿐만 아니라, 종교적 담론적 혹은 교육적 실천들을 분석하여 파악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먼저 방법론 측면에서 전체 연구가 보여주는 특별한 기여에 대해서 평가해 본다. 첫째는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지역적이고 가장 특수한 현장 그 자체의 살아있는 움직임에 시선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김나미와 조민아는 미국 개신교우파들과 한국의 개신교우파들 사이에 많은 교류와 공감이 있음을 밝혀준다. 하지만 김나미는 보수 개신교의 보편적 혹은 지구적 현상으로만 문제를 바라보아서는 특별한 시기와 특별한 조건 하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결합 혹은 정치화 양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김나미의 주장은 지금까지 개신교의 근본주의적 경향이나, 반공주의적 경향, 혹은 문화적 종교적 배타성이나 공격성들을 평가해왔던 연구들에 대한 방법론적 비판과 관련된다. 이미 말했듯이 개신교의 근본주의적 배타성에 대한 비판은 주로 두 가지 비평적 틀에 의존해 왔다. 하나는 보편적 개신교 근본주의에 대한 신학적 혹은 심리적 비판의 틀이고, 다른 하나는 피식민지 교회가 서구와 선교 종주국과 맺고 있는 심리적, 문화적, 정치적 식민주의적 관계다. 이러한 보편적 접근이 개신교 우파 혹은 기독교 우파의 보편적 특성 혹은 과거 식민지에서 보수 기독교의 정치적 역할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보지만, 구체적인 문제를 탈맥락화하여 맥락과 무관한 진단과 해결책을 제시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런 점에서 구체적 현장에 집중하여 그 현장으로 부터 문제를 해석하려는 태도는 방법론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둘째로 구체적인 상황에 초점을 맞추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행위 주체들이 각기 자신들의 헤게모니 구축을 위해서 각축하면서, 개념이나 담론 혹은 다양한 정치적 실천을 둘러싸고 경쟁하고 갈등하는 상황을 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점이 중요한 이유는, 더 이상 문제의 원인을 심리적인 요소나 신학적인 요소로 환원시킬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개신교 우파들의 때로는 극우적이기까지 한 정치적 실천을 무지나 불안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교리적 원리를 향한 신앙적 헌신과 열정의 탓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위기에 직면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 각축하는 현장에서 재정체화 혹은 재주체화가 일어나고 새로운 형식의 정치적 표현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각주:2]

    셋째로 신학의 언어적 담론적 성격에 대해서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연구들은 헤게모니를 위한 담론 전쟁, 담론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으로부터 다양한 정치적 실천과 종교적 신앙적 개념들과 전통들이 해석되고, 또한 새로운 정치-종교적 실천으로 구축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개신교 우파의 신학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 현장은 바로 신학이 재해석되고 재전유될 뿐만 아니라 유통되어 어떤 효과를 산출해야 하는 그 현장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신학이 아무리 계시적 성격을 말한다 할지라도 그 계시는 우리 삶의 다른 측면과 관계 맺어야 한다. 때문에 그 계시를 언어적으로 성찰하고 재현하는 과정과 함께 신학은 비로소 시작된다.[각주:3] 그래서 신학은 필연적으로 언어적이고 담론적일 수밖에 없고, 하느님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언어적 재현의 문제 밖에 있지 않고, 필연적으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신학은 자신의 존재 이유는 물론이고 그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영향력마저도 언어적이고 담론적인 각축의 현장에 참여하여 담론의 변혁 혹은 문화의 변혁을 위한 효과로서 입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족함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새로운 과제를 발견하는 기쁨을 나누고 싶다. 개신교 우파, 혹은 기독교 뉴라이트의 담론들과 실천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그들의 주체화 전략 혹은 타자화 전략의 해명을 일차적 관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대상과 관심의 경계가 명료한 만큼이나, 배제되고 가려진 영역도 훨씬 선명해 보인다.


    정치화한 개신교 우파들의 정치적 행동들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재주체화된 웰빙우파나, 새시대의 부드러운 아버지상, 그리고 지성적인 복음주의자의 모습, 그리고 국가와 교회를 위한 충성심으로 가득한 선교사의 모습들 안에 깊이 도사린 우파 헤게모니 정치와의 공모관계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호크하이머의 말대로, 비평은 단순히 ‘설명적’이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현재의 사회적 실재를 설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 그 사회를 변화시킬 행위자들을 재정체화할 수 길을 찾는 노력이어야 한다.[각주:4] 그래서 담론 분석이나 비평은 단순히 유통가능하고 경쟁 가능한 담론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전초전 같은 것이 아니고, 변화와 변혁을 위한 구체적인 행위자들을 위해서 용기와 격려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배 질서의 틀을 설명하되 헤게모니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한 전략을 분석한다는 것에만 만족해서는 안 되고, 그 질서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고통과 억압의 조건으로 다가 온다는 사실을 보다 깊이 분석해 내야 할 것이다. 지배질서란 곧 사회적 약자들 앞에 펼쳐져 있는 생존투쟁의 환경 그 자체이며, 그들의 삶을 위해서 허용된 선택의 틀이면서 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각주:5] 그래서 우파 헤게모니 담론과 사회적 약자들이 결합하는 양상도 단순히 동원의 개념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감수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므로 민중적 삶의 조건의 일부로서 개신교 우파의 담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해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민중의 삶의 실상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삶 안에서 새로운 인간 정체 혹은 주체를 향한 희망을 찾고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진호의 표현대로 웰빙우파의 등장과 그로테스크한 민중의 등장이 함께 가고 있는 것이라면, 이제 다음 차례는 웰빙 우파의 주체화 전략을 넘어 변화된 조건들 속에서 이 시대의 민중들은 자신의 삶의 선택을 위해서 어떤 고통과 아픔을 감내하고 있는지 읽어야 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티스토리 블로그 '올빼미의 밥상'(http://owal.tistory.com/460)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본문으로]
  2. 우파 종교운동 혹은 정치적 기독교우파 운동이 나타나는 원인을 설명하는 방식이 계속 변화해 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Michael Lienesch, “Right-Wing Religion: Christian Conservatism as a Political Movement”, Political Science Quarterly, Vol.97, No. 3(Autumn, 1982), pp.403-425. [본문으로]
  3. 신학의 언어적 성격에 관해서는 영국 신학자 Graham Ward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밝혀둔다. 특별히 다음 책을 참고하라. Graham Ward, Theology and Contemporary Critical Theory (London: Macmillan Press, 2000). [본문으로]
  4. Bohman, J. (1996). “Critical theory and democracy”. In D. Rasmussen (Ed.), The handbook of critical theory (Oxford: Blackwell, 1996), p.190. [본문으로]
  5. 감정사회학자 Eva Illouz의 선택의 생태계와 구조에 대한 개념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다음을 참고하라, 에바 일루즈 지음, 김상희 역, 《사랑은 왜 아픈가:사랑의 사회》 (돌베게, 1979), 43-50을 보라. [본문으로]
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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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8]


지젝 (1) : 까다로운 주체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주체의 문제


      탈근대 철학의 이론의 장에서 벌어진 논쟁의 화두는 ‘주체의 죽음’을 중심으로 벌어져 왔다. 인식론적 전환점을 찍은 데카르트로부터 칸트와 헤겔을 넘어 후설의 현상학까지 경험의 주체를 실체론적인 형이상학에 의해 탈역사적으로 구성해온 부르주아 철학은 실존주의 철학(실존주의 역시 존재론적 시도의 한 형태이지만,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관념 체계를 탈피한다는 점에서 근대적 주체에 대한 비판의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맑스주의, 구조주의에 이어 이마저도 한발 더 넘어서려는 탈구조주의에 의해 반박되어져 왔다. 이들 철학이론들의 지형은 엄연히 자기고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의미에서 지지되어온 ‘주체’의 존립근거를 부정하는 전복적인 태도에서 만큼은 일치된 입장에 있다. 이로써, ‘주체의 죽음’은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가장 적합한 용어처럼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주체의 죽음이라는 탈근대를 향한 급진성이 유행처럼 지나간 이후에, 주체의 죽음이 인간의 자유를 위한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였는지에 대한 물음은 모호한채 남겨졌다. 물론, 이성이 되었든 존재가 되었든 주체를 최종 판단의 결정권자로서의 권한을 부여한 결과, 그로 인해 구성된 세계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지배구조를 초래하였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체가 제거된 이후의 세계는 달라졌을까? 주체가 사라졌으니 마음 놓고 자유를 만끽하라고 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면, 주체의 죽음을 확신케 함으로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권력을 향유하려는 고도의 전략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컨대 바디우는 오늘날의 차이와 다양성의 문화가 얼마나 위선적인 것인가를 강조한다. 즉 차이와 타자성이라는 말은 매혹적이지만 이들 용어들은 자본주의의 탐욕만을 충족시켜줄 뿐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바디우는 주체의 죽음이라는 급진적 현상이 다양성과 차이만을 강조한 채 사회적 갈등과 적대를 포스트모던의 풍토 안으로 일시에 흡수해 버리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자와 차이의 존중이라는 그럴듯한 주장을 앞세워 헤게모니를 영속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지배전략이 주체의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적으로 수용되는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런 문제인식 위에서, 이 글은 먼저 지젝의 주체이론이 기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칸트적 헤겔 또는 헤겔적 칸트의 이해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근대적 주체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지 않고 오히려 근대철학의 주체성 논의에서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를 어떻게 찾아가는지 살펴볼 것이다. 두번째는, 데카르트부터 칸트, 헤겔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연결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라캉의 이론적인 토대로 기능하게 되는지를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결합이 라캉의 실재개념 안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리고 현실 정치의 변혁적 주체로서의 가능성이 어떻게 발견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데카르트의 유령


    지젝의 철학적 사유는 주체의 죽음이 공언된 이 시대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은 여전히 유효한지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주체를 부정함으로서 혁명의 가능성마저 제거해 버린 탈구조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뒤에는 결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묵인하고 존속시키는 탈이데올로기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음을 경계한다. 따라서, 지젝에게 철학적 문제는 근대적인 주체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혁명의 주체의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주체의 가능성을 찾는 데 있다.


    지젝이 선택한 길은 두가지 방향에서 파악될 수 있는데, 하나는 맑스-레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분석학이다. 맑스-레닌주의와 정신분석학의 결합은 생소하게 보일진 몰라도, 맑스주의가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에 맑스주의를 부활시키기 위해 외부로부터 이론적 보완을 시도했던 경험은 역사적 선례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맑스주의에 도입한 경우가 그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사회주의 운동이 왜곡되어 국가사회주의라는 파시즘으로 흘러간 경위를 프로이드를 통해 밝혀내고자 하였다. 한편으로, 맑스주의를 실존주의적으로 수용하면서 맑스주의가 휴머니즘적으로 탈바꿈 할 때에, 알튀세르는 이러한 시도들을 수정주의로 파악하고 인식론적인 개입을 제거한 순수한 맑스주의 해석을 들고 나온 사례를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젝의 교착상태를 돌파하기 위한 맑스주의와 정신분석철학의 결합은 형식의 측면에서는 전혀 새로운 시도라고 보기 어렵다. 지젝의 프로젝트를 이전의 사례들과 구별짓는 데에는 형식적인 특별함이 아니라, 맑스-레닌주의에서 결여되었던 주체를 재구성하기 위해 라캉의 정신분석철학의 관점에서 데카르트, 칸트, 헤겔을 논쟁의 장으로 끌어온다는 점에 있다. 이 글이 지젝에게 주목하는 점도 여기에 있다. 지젝의 철학은 주체 문제와 연관된 탈근대적인 해체주의의 성과를 전면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근대적 주체를 해방적인 역량으로 전유할 수 있는 이론적 시도를 과감하게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근대와 탈근대의 단절을 그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시키는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특색은,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1999)’의 서문에서 쉽게 발견된다. 지젝은 주체를 재구성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뉴에이지 반계몽주의자, 해체주의자, 하이데거적 지지자, 생태론자, 비판적 맑스주의자와 여성주의자까지 이어져온 ‘데카르트적 주체라는 유령’의 ‘성스러운 사냥’을 위한 ‘학술권력’들의 동맹에서 찾는다. 지젝은 주체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였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데카르트의 주체가 여전히 유령처럼 출몰해 왔음에 주목하며, 주체의 유령에 대한 반 데카르트적 동맹이 지시하는 바는 역설적으로 데카르트적 주체성이 강력한 지적 전통으로 인정받아 왔음을 보여준다고 보았다. 이처럼 지젝은 대세가 되어버린 주체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 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데카르트의 주체를 저마다 희생양으로 삼아 학술권력을 지배해왔던 진보적 담론들과 대결을 벌인다.


초월론적 주체


    그러나 지젝이 부활시키고자 한 주체는 실체론적-존재론적인 데카르트식 주체 개념이 아니다. 지젝은 코기토를 시점으로 칸트로부터 인간의 이해에 적용되었던 초월적(선험적) 관념주의 철학에 의해 확인되는 것은, 사유하는 ‘나’는 인정되지만, 그것이 존재하는 ‘나’를 보증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있다고 보았다. 즉, 칸트는 데카르트의 인식론적 전환으로서 코기토를 자기 초월론적 철학의 출발점으로 수용하지만, 세계를 인식하는 투명한 자기확증적인 주체로서 인간을 규정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식되어진 현상과 객관적인 대상(물 자체 thing-in-itself)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사유와 존재, 지각과 대상, 표상과 실재는 일치하지 않으며 양극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여기서 자기 동일적인 주체성이 설 여지는 없다. 이성이 알 수 있는 지식의 범위는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영역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인간의 이성이 알 수 없는 것은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을 초월한 영역이다. 칸트가 설정한 ‘물자체’는 우리의 경험을 초월한 영역, 초월적이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비대상성에 속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현상이지 물자체가 아니다. 현상은 실재의 그림자이다. 실재로부터 유출되어 나오지만, 실재의 모사일 뿐이다.


    칸트의 초월론적 인식론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두가지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하나는 한계로서 이성의 지위이다. 이성은 객관을 직시할 수 없다. 언어, 표상, 감각, 기호, 말 등은 실재 즉 객관적인 대상, 본질 그 자체를 지향할 뿐,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계는 현상과 본질의 질적 차이를 의미한다 . 그러나 이성의 한계가 실재와의 완전한 단절만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사고는 사고로서 스스로 가질 수 없는 의미를 요구하기 마련인데, 그 의미는반드시 초월적인 로고스와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두번째로 지적되어야 할 점과 연관 되어 있다. 현상은 실재와 반성적(reflective)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성에 의해 파악된 세계는 실재의 존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물자체는 지각에 의해 경험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재하다고 할 수 없다. 실재가 없이는 상징계의 질서 또한 부재하기 때문이다. 한계로서의 이성은 이처럼 실재와 현상의 불일치 뿐 아니라, 실재의 존재를 확증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이처럼, 한계와 초월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칸트의 초월론에는 이성과 실재사이의 관계가 잠정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초월적인 실재의 영역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은 주어져 있지 않다는 특징 또한 포함하고 있다.


까다로운 주체


    칸트의 초월론적 방식은 인간의 인식이 도달할 수 없는 물자체를 상정해야만 성립할 수 있었다. 인식은 단지 감각을 통해 주어지는 현상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객관와 주관 사이의 메워질 수 없는 간격을 말한다. 주관은 객관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사실상 칸트의 핵심이다. 그러나, 헤겔은 이렇게 잠정적으로 가정된 초월적 통각 영역 너머의 물자체를 진리로서 수용할 수 없었다. 헤겔이 보기에 철학이 객관적 진리를 알 수없고 한계안에서 제약된 상대적 현상만을 파악할 수있다는 것은 철학의 무능을 자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에 헤겔은 칸트의 초월철학에 손질을 가한다.


    헤겔은 칸트와 달리 이성을 객관적인 것으로 본다. 객관성을 갖는 칸트의 오성 또는 초월적 통각은 이미 헤겔에서 이성으로 동일시된다. 헤겔은 칸트가 분리한 오성과 이성을 다시 이성안으로 통합시킨다. 이렇게 통합된 이성은 객관을 타당하게 인식할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실체론적으로 긍정하는 칸트와 달리 헤겔은 가정된 초월적 물자체를 부정한다. 칸트에게서 있을 것으로 가정된 물자체는 매우 약한 고리로 이성과 잠정적인 관계로 남아있었지만, 헤겔은 물자체를 가시적인 이성의 현실 영역으로 끌어온다. 현상은 객관에 대립하는 주관의 구성물이 아니라 바로 사물자체의 규정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체로서 현상의 피안으로 분리시키지 않고, 오히려 현상계의 끝을 물자체라고 본 것이다. 물자체란 현상 세계의 너머에 있는 실체가 아닌, 현상계의 종착점이 바로 물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헤겔은 칸트가 끝까지 남겨 놓은 물자체마저도 주관의 영역으로 옮겨놓음으로써 절대적 주체성을 복원한다. 이로써 현상과 실재 사이의 거리는 제거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반대로 잠정적이었던 틈새는 보다 확정적인 것이 되었다. 지젝에게 있어서 헤겔은 칸트철학의 극복자라기보다는 현상계와 물자체의 갈라진 틈새를 보다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 가시화시킨 장본인으로 이해되는 이유이다. 이점은 헤겔이 칸트과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며 전통적인 이성과 그로 인한 결과인 형이상학을 복권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온 일반적인 헤겔에 대한 해석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젝의 헤겔에 대한 독창적 해석법은 여기에 있다. 지젝은 ‘나눌수 없는 잔여(1996)’에서, 헤겔이 효과적으로 수행한 것은 “주체는 알수 없다는 칸트의 생각을 사변적으로 역전시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물자체로서 “주체의 ‘알 수 없음’은 주체가 비실정적 공백이라는 사실을 오성이 잘못 인지하는 방식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칸트가 주체는 알 수 없는 텅빈 X라고 말하는 곳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런 인식론적 규정에 존재론적 위상을 부여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즉 주체는 순수 자기정립적인 ‘없음nothing’이라는 것이다. 초월적 통각의 너머에 물자체를 인정하는 칸트와 달리, 헤겔에게 주체는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에 대한 부정성의 담지자이며, 지젝은 이러한 부정성의 담지자를 “까다로운 주체”라고 부른다. 부정성에는 주체뿐 아니라, 대타자로 기능해온 물자체역시 부정성의 대상이 된다. 언제나 감각 너머이 있을 것으로 가정되어 온 물자체는 ‘그곳’에 없다. 이로써 대타자도 역시 ‘그 곳’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헤겔이 물자체를 이성의 범주로 소환하였듯이, 지젝에게 대타자는 상징계 안으로 진입한다. 


   여기에서 지젝은 헤겔의 부정의 변증법에 대한 해석을 칸트주의와 연결시킨다. 칸트에게 확인되는 것은 초월적 통각에 의해 종합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이 아니라, 이성과 물자체 사이가 서로 대립과 긴장 속에서 근본적인 상호부정성을 내포하고 있듯이, 헤겔의 변증법은 정과 반의 긍정적 종합으로서 합이 아니라, 부정의 근본화, 즉 부정을 더욱 철저히 부정하는 변증법이다. 변증법을 부정의 부정이라는 운동을 부정의 근본화시키는 것으로 읽어내고 그로부터 ‘비어 있는 텅 빈 무’로서의 주체를 발견하려고 하는지젝은 헤겔을 반칸트주의가 아닌, 반대로 급진적인 칸트주의자로 해석한다.  


라캉과의 만남


    지젝의 해겔에 대한 독특한 독법은 헤겔의 철학을 타자를 주체로 환원시키고 차이를 동일성으로 통합시킨 형이상학적 철학의 토대로 이해해왔던 기존의 통념에서 한발 물러나 다른 시각에서 주체를 재구성할 여지를 남겨준다. 그러나 지젝이 다시 읽어낸 헤겔과 칸트만으로는 정치적 주체의 가능성을 논하고, 현실정치 안에서 주체를 재구성의 대안으로 삼기에는 아직 이르다. 칸트와 헤겔의 해석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만나야 한다. 지젝은 칸트의 초월적 통각과 물자체의 개념을 라캉의 인식체계를 선취하는 모형으로 보았다. 라캉은 이를 상징계와 실재계로 구분하였다. 지젝이 데카르트로부터 칸트, 헤겔, 하이데거 등을 읽어가는 관점은 이처럼 라캉의 개념과 맞물려 있는데, 이제 우리는 지젝이 해석한 칸트와 헤겔이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어떻게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게 되는지 볼 차례이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지젝이 그의 주체 이론이 현실적으로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지도 검토하기로 한다. (다음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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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2



심범섭*



들어가는 말


   지난 번 글에서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나오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라는 구절을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이때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번 글에서 마저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노래”라는 표현에 담을 수 있는 의미 전달 및 통합의 뜻과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라는 표현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본문


   먼저 의미 전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의미’라는 말에는 적어도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모든 단어에는 의미가 있다”라는 말에서처럼 그 내용이 무엇이든 어떤 ‘뜻’이라는 뜻이며, 다른 하나는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할 때처럼 ‘가치’, ‘목적’과 상통하는 뜻이다. 노래에는 언어로 이루어진 노랫말이 있으므로 노래가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전달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노래는 특정한 리듬과 가락이 현저하게 감지되는 음악적인 성격 때문에 노랫말의 의미를 더 효율적으로 더 호소력있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별을 노래하는”라는 표현에서 “별”이 숭고하고 보편적인 이상이라고 이해한다면 이 별을 노래하는 노래는 당연히 중요하고 진지한 의미를 담는다고 할 수 있다. 시에서 ‘노래’라는 말에 이렇게 무거운 의미가 담기는 예를 우리는 가끔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한용운 시인이 쓴“님의 침묵”의 마지막 행을 떠올려 보자.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여기에서 “사랑의 노래”는 님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진 절실한 경험에서 얻어진 어떤 깊은 의미를 전달한다고 이해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예는 이육사 시인의“광야”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 시의 4연은 다음과 같다.“지금 눈 나리고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여기에서“노래”에 미래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소망에 해당하는 어떤 의미를 담는 것은 자연스러운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무거운 의미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의 생명력을 증진시키면서 우리의 존재를 더 고결한 경지로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에게 이러한 자극을 주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인 참과 좋음과 아름다움, 곧 진선미가 그 답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국민윤리 과목을 맡으셨던 조영수 선생님은 등단한 시인이셨는데 첫 시간에 자기 소개를 하시면서 “내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시 한 편을 쓰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분에게는 시라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의미였다고 이해하게 된다. 참과 좋음과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속하는 구체적인 의미들은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의 삶의 일부 또는 전체를 통일성 있게 규정할 수 있으며, 의미에 이끌림은 개인의 유한한 존재를 넘어서는 영속에 이끌림의 한 중요한 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어떤 의미에 헌신하는 것은 인간에게 내재한, 나보다 큰 것에 소속되고 싶어하는 근본적인 욕망의 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의미의 특성을 규정하는 방식은 여럿이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의미가 생물학적인 필요라는 생각을 한번 제시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우선 신약성경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가 광야에서 시험 받는 이야기 가운데 일부를 언급하고 싶다.


시험하는 자가 …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3-4절)



   여기에서 예수가 떡과 대비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물학적 생존과 안락과 대비되는 고결한 ‘의미’라고 이해해도 될 것이다. 예수는 사람이 이런 의미를 추구하지 않으면 보람 있게 살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의미를 떡, 곧 먹는 음식과 대비시킴으로써 의미라는 것도 먹는 것이라는 행위와 관련시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런 생각은 제일 먼저 같은 신약성경 안에 등장하는,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성찬의례를 떠올리게 한다. 예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말 ‘의미(意味)’에서 ‘미’가 ‘맛 미(味)’자라는 사실에도 주목하게 된다. ‘의미’라는 말을 만든 옛날 사람들이 왜 ‘味’ 자를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도 혹시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를 먹는 것으로, 살기 위해서 먹어야만 하는 것으로 상상했던 것은 아닐까? 예수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 그리고 ‘의미(意味)’라는 말을 만들었던 옛 동양 사람들 모두 의미를 먹는 것으로 은유하여 인식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 아닐까?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 이상 “의미(意味)는 의미(意米)다”라는 말장난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등 수용소 네 곳에서 생활하면서도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랑클(Victor Frankl)은 자신의 극한적 경험에 바탕하여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썼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할 때에만 충일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책에서, 프랑클은 인간이 의미를 찾을 때 기준으로 삼는 가치 체계의 근거가 생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달리 말해, 인간은 진화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가치들을 위계화했는데, 이런 가치들은 생물학적 차원에서 내재화되어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우리 자체가 되어) 어떤 상황을 평가하는데 무의식적으로 동원된다는 견해이다. 무엇이 의미 있다는 판단을 이루는 가치 판단의 기저에 진화 과정이 반영된 생물학적 요구가 있다면, 의미를 먹는 것으로 표상하는 것은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바꾸어 말해, 인간이 의미를 찾는 것은 음식을 찾는 것처럼 본능적인 충동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의미를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밥처럼 일상적인 것으로서 날마다 신경 쓰고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을 살펴볼 때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의미 있음이나 없음 자체를 마주치기보다는 의미 있거나 없는 구체적 대상을 마주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의미 있다거나 없다는 판단은 의식의 표면에 잘 떠오르지 않고 과연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가 의미 있다고 판단하는 대상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그 자체로는 의미 있다고 하기 어렵지만 우리에게 가치 있는 목표를 성취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이다. 특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거나 고통을 견딜 때 이런 의미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 위내시경 촬영은 고통스럽고 그 자체로서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건강 증진이라는 의미 있는 목표 때문에 이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견디어 낸다. 하지만 어떤 경험은 그 자체로서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 좋은 자연 경관을 바라보는 것,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긍정적인 신비감이 있는 인물을 만나는 것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 자체로서 반갑고 소중하다. 그 자체로서 내 안에 있는 생명력을 확장시키고 내 존재를 고양시키는 느낌을 준다. 물론 많은 경우 동일한 대상에 이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부여될 수 있다. 그 자체로서 소중한 일이 가치 있는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삶에서 마주치는 대상 가운데에는 이 두 가지 의미 범주 밖에 머무는 예, 곧 아예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를 살면서 내가 마주친 수 많은 낯선 사람들과 조금만 아는 사람들에게 나는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의미 없는 대상들을 의미 있는 대상, 특히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대상이 되게 하는 것이 종교의 한 중요한 목표 아닌가? 때로 지금까지 나에게 의미 없었던 사람이 문득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험, 더 정확히 말해, 아직 의미 없는 대상과 의미 있지만 그 자체로서는 의미 있지 않은 대상 가운데에서 (전부는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많은 것이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대상이 되도록 인식을 바꾸는 것이 종교가 추구하는 한 중요한 목표가 아닌가? 그리고 이런 목표에 담긴 의식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에 담긴 의미 의식과도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별을 노래”하는 것에 포함될 수 있는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 두서없이 생각을 늘어놓은 다음, 이제 노래가 지니는 통합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노래가 부르거나 듣는 사람을 하나되게 하는 데에는 적어도 리듬과 가락과 노랫말이 역할을 한다고 이해된다. 이 가운데 리듬 자체가 지닌 통일하고 통합하는 힘에 대해서 마이클 드레이크(Michael Drake)는 무속인(shaman)의 북 연주를 이야기하는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유려하게 말한다.


우리 각 사람의 심장 안에는 우리를 역동적이고 서로 이어진 우주 전체로 연결하는 완벽한 리듬이 조용히 박동한다. 북소리는 무속인과 모든 생명체를 하나의 존재, 하나의 심장박동으로 연합한다. 북소리는 자연의 모든 구별되고 불일치하는 면을 화해시킨다. 북소리는 개인과 행성의 울림을 촉진하며 조화와 균형을 회복시킨다.[각주:1]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런저런 리듬을 구현하면서 그 존재를 영위한다고 할 때, 그리고 생명 있는 존재에게는 자신을 싣는 리듬을 바꾸는 것이 가능할 때, 노래의 리듬처럼 쉽게 인지되고 호소력 있는 리듬이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한 리듬을 따르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노랫말의 경우 여기에 담긴 언어적 내용이 통합하는 힘을 발휘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내용이 여러 사람에게 같은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같은 감동을 줄 때 이는 가능한데, 특히 노랫말이 위에서 이야기한 ‘무거운 의미’를 전할 때, 이런 근본적인 의미에는 강한 보편성이 있으므로, 노래 부르거나 듣는 사람을 하나되게 하는 힘이 그만큼 커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노래 가운데 “그대는 저 사람들이 노래하는 것을 듣는가 (Do You Hear the People Sing)?”라는 곡이 있는데, 첫 부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대는 저 사람들이 노래하는 것을 듣는가? 

분노한 사람들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그것은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을 사람들의 음악. 

그대의 심장이 저 북소리에 맞추어 뛸 때에 

내일과 함께 곧 새로운 삶이 시작되리라.


   이 가사는 노래에 사람들을 하나되게 하는 힘이 있으며, 이 하나됨이 운동이 되어 크고 중요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호소력 있게 예시한다.“분노한 사람들의 노래”라는 표현에는 노랫말의 내용에 대한 암시가 있다. 그리고 맥락상 이 내용은 사회정의실현이라는 무거운 의미를 담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대의 심장이 저 북소리에 맞추어 뛸 때에”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같은 리듬 아래 하나됨을 말하고 있다.


   노래의 통합하는 힘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먼저 어떤 때 어떤 곳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사람들의 하나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통합은 이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나라는 사람의 내적 통합, 과거의 나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통합, 미래의 나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통합도 생각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과거 또는 미래 사람들과의 통합을 생각하는 것은 어떤 역사 의식이라고 이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통합을 노래와 관련지어 생각할 때 앞에서도 언급한 이육사 시인의 작품 “광야”의 4, 5연이 떠오른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여기에서 시인은 현재에 뿌린 노래의 씨앗이 성장하여 미래에 우렁찬 노래가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것을 노래를 통한 현재와 미래의 통합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과 통합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를 잘 공부하고 보편적 가치를 잘 탐구하면 훨씬 더 쉬워질지도 모른다. 미래를 향해 자라나 나중에 오늘과 미래를 하나되게 할 노래의 씨앗을 구하는 것이 오늘을 책임 있게 사는 한 중요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끝으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로 시작되는 문장과 밀접하게 이어지는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문장에서 화자는 그가 자신을 넘어선 존재(작품 안에서 이름을 찾자면 “하늘”이라고 할 수 있을)로부터 삶의 소명을 부여 받았으며 이 소명을 따르겠다는 뜻을 표현한다. 이 내용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은데, 하나는 이러한 소명의 길은 그 주체에게 근본적으로 홀로 가는 길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내가 갈 길이 무엇임을,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임을 정확히 알았을 때 사람에게는 좋은 의미의 고독감이 찾아오는 듯 하다. 20세기 인도의 신비주의자 성인인 푼자(Poonja)는 자신이 가는 길을 “너무도 좁아 두 사람이 나란히 갈 수 없는 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진정한 소명은 원시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말과 잘 어울린다.


   두 번째로 “그리고 나한테…”라는 이 문장을 내 나름대로 앞 문장과 연관 지어보고 싶다. 이 문장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앞 문장과 표면적으로는 “그리고”라는 순접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두 문장의 내용이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그런데 두 문장이 모두 화자의 삶의 내용을 다루므로 이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순차적’ 해석은 적절하지 않고, 두 문장의 내용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때 두 가지 동시 상황 사이에 더 구체적인 의미 관계를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이 둘 사이에 둘째 문장이 첫째 문장을 수단으로써 수식하는 관계를 상정하고 싶다. 다시 말해,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감으로써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이해를 시도하고 싶다. 보편적인 사랑을 자신만의 고유한 소명의 길, 사실 철저히 혼자 가는 길을 가는 가운데 실천하고 싶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그만의 독특한 사명이 있으며, 이 사명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것이라고 전제할 때 이런 해석은 자연스럽다. 보편적 이상을 가장 잘 실현하는 길은 각 사람이 고유한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그 이상을 추구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더불어 이런 해석은 시적 의미를 형성하는 차원에서도 보편성과 특수성이 만나 긴장을 이루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맺음말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라는 대목을 두고 앞뒤 없이 어설픈 생각을 늘어놓았다. 내가 한 이야기를 되돌아 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생각의 틀은 역시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인 듯 하다. “별”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보편을 향하지만 “나한테 주어진 길”은 특수에 관련된다. “노래”라는 것은 구체적인 역사 사회 문화적 환경에서 태어나므로 특수한 것이지만 그 통합하는 기능으로써 보편으로 향한다. 보편과 특수의 상호보완과 대립의 역학은 한 사람의 삶과 사회 전체의 움직임을 생각할 때 반드시 탐구해야 할 주제가 아닐까 한다. 나도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면서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얻었으면 좋겠다.


    * 필자소개  

영어강사. Rice Univ 언어학 박사(Ph.D) 후에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과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 웹진 <제3시대>



  1. Michael Drake,The Shamanic Drum: A Guide to Sacred Drumming, Talking Drum Publications, 2010, p.13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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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후마니타스(Homo-Humanitas)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인문학 위기의 요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유학 10년을 마치고 돌아온 고국은 놀라우리만큼 변해 있었다. 우선 표면적으로 정권이 바뀐 것이 가장 큰 낯섦이었다. 미국으로 갈 때는 노무현 정권이었는데 돌아와보니 이명박을 거쳐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이 연거푸 집권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정권들 아래에서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본고장인 미국보다 훨씬 더 철저하고 착실하게 신자유주의를 이행하는 신자유주의의 실험장 같았다. 구조조정이 상식이 되어버렸고, 계약직과 비정규직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갑/을 관계의 냉엄함과 잔혹함은 하늘을 찌른다. 연일 신문지상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선사하는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민중들의 비관 자살보도가 넘쳐나고, 20.30대들 사이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가 등장했다. 그야말로 10년 만에 돌아온 조국은 디스토피아 그 자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발견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열풍이다.

   “무한경쟁”, “누구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마누라와 자식들 빼고는 다 바꿔라”... 이상은 신자유주의가 휘몰아치던 1990년대 광고카피들이었다. 무한경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기억되지 않는 2등을 면하기 위하여,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한국인들은 열심히 일을 했다. 한국의 인문학 열풍을 체험하면서 나는 신자유주의가 지니는 파토스와 인문학 사이에 모종의 결탁이 이루어 진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신자유주의적인 논리와 질서 속으로 인문학이 녹아들어 가면서 신자유주의화 된 인문학, 신자유주의를 위해 봉사하고 협력하는 인문학이 한국 땅에서 돌연변이로 탄생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인문학이 신자유주의 이론을 축조하고 견고하게 하는데 일조했다는 말이 아니다. 인문학이 신자유주의 논리를 학습하고 내재화했다는 말이다. 실례로 현재 한국의 지식사회는 인문학이라는 말을 빼놓고는 논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인문학의 위상이 막강하다. 각종 인문학 프로젝트들과 인문학 강좌들은 홍수를 이루고 있고, 서점을 둘러보면 온통 제목에 인문학字 붙은 책들이다. 10년 동안 국외자의 입장에 있다가 내부자의 시선으로 이런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처음에는 흥미로왔다. 그간에 고양된 한국인들의 인문학을 대하는 자세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불편해지더니 요즘은 한국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열풍이 모욕적이고 심지어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과연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일까.


스펙(Spec) 우선주의


   지금까지 살펴본 바, 현재 진행 중인 인문학열풍은 한국인들에게 잠재해 있는 두 가지 욕망과 모종의 연관이 있어 보인다. 하나는 스팩(Spec) 우선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힐링(Healing) 지상주의다. 『세상을 지배하는 0.1%의 인문고전 독서법』, 『동서양 천재들의 사색공부법』,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CEO가 읽는 인문학』 같은 제목의 책들이 인문학 관련 서적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높은 순위에 등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의 인문학 풍토에서 스펙 우선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부가가치가 높고 효율적인 스팩을 쌓은 사람을 신자유주의형 인간이라고 했을 때, 인문학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최적화된 인간을 양성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강철과도 같은 의지를 지닌 불패의 정신으로 무장된 주체를 이 시대로 다시 소환하자는 말은 아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와 더불어 등장한 21세기형 주체는 너무나도 무력하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의 ‘액체근대’[각주:1]를 패러디하여 21세기 신자유주의형 인간을 ‘액체화된 주체’라고 명명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난 시대 우리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 공동체, 대의, 국가, 체제 등과 같은 굳건했던 숭고함들은 전 지구적으로 몰아닥친 자본의 열풍에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져 버렸다. 바우만의 ‘액체화된 근대’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 이후 변화된 세상의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하였다.

    액체화된 시대 속에서 강철과도 같은 의지과 날카로운 이성으로 무장된 근대적 주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액체화된 시대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전과 같은 공동체 의식 혹은 투철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삶의 무게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 되었고, 그것에 대한 결과 역시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다. 우주와 세상 앞에서 개인은 홀로 이 모든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그런 개인인 내가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런 개인인 내가 세상을 지배하는 0.1%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서울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잘 나가는 CEO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인문학이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인문학은 더 이상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체제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묻지 않는다. 전체 안에 깃들어 있는 부조리의 문제를 한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문제로 치환시키거나, 젊은 시절 감내해야만 하는 통과의례적인 과정 혹은 개인의 자기계발의 문제로 전환시키면서, 시스템의 균열과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는 눈을 감게 만든다. 대신에 아프니까 청춘이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것이다, 라는 말로 우리를 우롱하고, 아직 2%가 부족하다, 열심히 살다보면 내일의 태양의 뜰테니 ... 그러니 열심히 뺑이쳐라. 그러면 대박 날지도 모른다, 라는 말로 희망을 고문한다. 이것이 오늘의 인문학이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속삭임이고, 그러면서 인문학은 시장의 언어가 되었다.


힐링(Healing) 지상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고 말하였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균형, 신앙과 이성 사이의 긴장, 믿음과 논리 사이의 간극을 강조한 말이라 하겠다. 바르트의 말을 빌어 한국의 인문학 열풍을 풍자하자면, 현재 한국인의 손에는 한 쪽에는 Spec, 다른 한 손에는 Healing 관련 서적이 쥐여져 있다. 아침 출근길에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쟁취하고 다시 도전하고 마침내 승리한다는 내용의 책을 읽고, 저녁 퇴근길에는 상처받고 좌절당한 몸과 마음의 평안을 위해 힐링 관련 서적을 읽는다. 이것이 한국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풍속의 단상이라 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앞서 언급했던 Spec 우선순위와 더불어 한국 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열풍을 담당하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은 Healing 지상주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상처극복 시리즈, 분노와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둘러싼 내면 강화시리즈, 희망과 행복을 상상하고 꿈꾸게 하는 환타지 같은 성격의 책들이 대표적인 힐링 관련 서적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한국인들은 Healing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위로 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한국의 힐링 열풍은 지나친 과잉이다. 어쩌다 우리사회가 힐링을 갈망하고 욕망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물론, 한국사회 전체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해 아프고, 1등이 못되어서 좌절하고,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아 아프고,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에서 실업자로 추락하는 바람에 우리는 아프다. 그래서 모든 감기 증상들을 단번에 달려버리는 종합 감기약처럼, 우리 역시 모든 슬픔을 모아 단번에 달려버리는 종합처방전이 필요하다. 그것이 힐링지상주의의 요체라 한다면 너무나 과문한 진단일까.

    연대하는 공동체, 굳건한 이데올로기가 녹아내려 액체로 화한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은 액체로 된 세상 속에서 홀로 외로이 유영하면서 자기경영에 매진해야 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허락한 문법이고 그곳의 개인은 한번 몰락하면 재기 불가능하다. 존재 전체를 걸고 전력투구를 해야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간은 항상 불안과 공황과 우울의 상황과 직면해 있다. 힐링은 대타자 신자유주의의 추하고 타락한 몰골을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시키려는 체제의 전략이고, 또한 그것은 자본의 문제를 저격하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자본이 저지른 만행을 최대한 감추고 그것을 한 개인의 몫으로 전가시키려는 신자유주의가 고안한 간교한 계략이다.

    이것은 마치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교통사고로 인해 응급외상센터로 후송된 중환자에게 외상(外傷)은 크지 않아 네 마음이 그것을 아프다고 느끼는 것이 문제야, 라고 속삭이면서 몰핀을 계속 투여한다면 환자는 어떻게 될까. 여기서 교통사고를 신자유주의로, 환자를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민으로, 몰핀을 힐링담론으로 치환하면 정확한 우리의 현실이 된다. 힐링은 쌓이고 쌓인 자본의 문제를 개인 내면의 문제로 변질시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술책이다. 힐링이 본래 지니고 있었던 숭고하고 따뜻했던 의도와는 별개로 신자유주의 시대 힐링 열풍의 이면에는 이러한 음모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인문학의 기원, 혹은 전통


   그렇다면 우리는 스팩과 힐링에 갇혀버린 인문학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에 대한 답을 르네상스시대에 부활한 인문정신을 복기하면서 찾고자 한다. 십자군 원정의 패배와 패스트의 창궐로 인해 중세유럽을 지배했던 교회의 권력은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하였고, 그러는 가운데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에 대한 요청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르네상스다. 신과 교회의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서 피어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인간성에 대한 재발견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대두되면서 유럽은 중세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 근대를 향한 발돋움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발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십자군 원정으로 인한 동서무역로가 확보되면서 지중해무역권이 형성되었고 그 통로에 위치했던 이탈리아의 도시들, 예를 들면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도시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특히 동로마제국이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게 멸망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을 이어받았던 동로마의 학자들이 대거 이탈리아로 유입되었고, 동서문화가 다시 한번 대융합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고대 그리스 고전에 대한 복기가 시작되었다.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은 로마시대의 자유학문(liberal arts)을 복원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필요를 수용하면서 새롭게 학문체계를 재구성하였다. 중세 대학은 고대 로마의 9 자유학문(문법, 수사학, 논리학,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이론, 의학, 건축학)에서 의학과 건축을 제외한 7과목을 삼학(문법, 수사학, 논리학)과 사학(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으로 구성하였다.[각주:2] 이러한 학문분류는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로 상징되는 이탈리아 휴머니스트들에 의해 studia humanitatis(인문학)라는 이름 아래 재편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의 논리학이 위축되었고 수사학은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그리고 역사학, 시학, 윤리학, 정치학 같은 학문들이 새롭게 부상하였으며 라틴어와 헬라어 원전에 대한 독해가 요구되어졌다.

    이 대목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 르네상스의 모토로 알려진 ‘고전으로의 복귀’가 미래를 향한 도전이라기 보다는 과거의 전통(경험)으로 돌아가다는 복고주의가 아닌가, 라는 의혹이 그것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의 생각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고대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하여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서, 신화적 이야기를 현재를 위한 창조적 상상의 원천으로 소급하기 위해서 르네상스는‘고전으로의 복귀’를 주장했던 것이다. 변화된 세계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상상력을 시대는 요청하였고,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그 변화의 동력을 고대 그리스로의 복귀를 통해 탐색하였던 셈이다.

    이는 인문학의 위기론 속에서 인문학의 갈 바를 몰라 방황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선사한다. 인문학이 스팩과 힐링, 즉 현실정복과 현실도피의 도구로 전락한 한국사회에서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이 우리들에게 주는 충고는 인문학이란 상상력과 관계한다는 점이다. 현실에 대한 매몰과 현실에 대한 적응에 목적을 두는 인문학이 아니라, 현실과의 거리두기, 현실에 대한 낯설게 하기를 통해 현실에 대한 변혁을 꿈꿨던 사람들이 르네상스 시절 휴머니스트들이었고, 그들로 인해 유럽은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인문(人文), 인간의 무늬


    이 글은 스팩과 힐링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인문학 풍속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시작되었다. 천문(天文)이 ‘하늘의 무늬’이고, 인문(人文)을 ‘인간의 무늬’라고 할 때[각주:3],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배려를 기본으로 한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스팩 강화와 자아의 상처 극복을 테마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인문학 열풍은 동시대 한국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욕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는 점에서 인문학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에 마냥 호의적일 수는 없다.

    인문을 인간들이 이루는 무늬라고 했을 때, 인문학은 그 무늬를 연구하는 학문이 된다. 무늬를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고 전체를 봐야 무늬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리므로 ‘인간의 무늬’라는 말 안에는 인간은 복잡다단하여서 두부모를 자르듯 인간에 대해 재단할 수 없다, 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인간을 쉽게 판단할 수 없듯이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인문학은 사회 속에서 쉽게 환호 받으며 유통되고 소비되다 폐기되는 개념과 풍조에 대해 어김없이 삐딱한 태도로 회의하고 그것을 응시하면서 넌 누구니, 넌 어디서 왔니, 라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볼 때 현재 한국사회에서 스팩과 힐링으로 포장되어 열렬히 환호받으며 유통되는 인문학 풍속도는 인문학적으로 마땅히 비판의 대상이 된다. 모든 사안과 문제 앞에 인문학이란 단어가 차고 넘치지만 실상은 인문학적 태도가 전무한 한국의 인문학 열풍, 그 속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인문정신은 없다. 비행기 타고 서울 시내를 내려다 볼 때 보이는 빨간 십자가의 풍년이 오히려 한국 개신교의 타락과 부패를 상징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의 인문학 열풍 또한 그런 처지로 타락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우리사회가 인문학은 인간의 무늬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그러다가 실업자로 전락하면서 울분을 품고 살다 고공농성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삶을 외면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 사회가 인문학, 즉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중시하는 열풍에 빠져있었다면 어린 학생들이 물에 빠져 죽어간 세월호에 사건에 대해 그리 무능한 대처와 무책임한 행보를 보여서는 안 되었다. 이 땅의 학부모들이 진정 인문학적이라면 인문학적 상상력 대신 점수따기식 학습과 수량화된 현재 학생 평가 시스템 안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밀어넣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무늬를 존중하는 인문학은 인간 현존 하나하나의 삶과 호흡에 관여하고 그 아우성과 몸짓에 일일이 반응하면서 최대한 성심껏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공동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시, 인문학이다


    결론적으로 인문학이란 어떻게 하면 내가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강박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나의 아픔을 치유받을 수 있을까를 둘러싼 집착도 아니다. 오히려,“세상이 이렇게 불합리 한데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이것은 죄악이 아닐까?”를 묻는 것이 인문학이고, 타인의 불행과 나의 행복사이에 있는 함수와 변수를 계산하여 내 행복의 정체를 의심하고 타인의 불행에 대해 면목없어해 하는 마음이 인문학이다. 물론, 인문학은 나의 아레테를 발견하고 계발하여 널리 인간을 복되게 하는 긍정의 정신이고, 고통과 슬픔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그것으로 인한 상처로 부터의 회복을 바라는 희망의 변증법을 포함하겠지만, 더 근본적인 인문학적 의제는 우리시대 고통과 슬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함께 힘을 모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비참과 탄식을 극복할 방도를 모색하는 비판의 정신이어야 맞다. 그 마음으로 신자유주의가 선사하는 불편한 진실과 타협하지 말고 우리 시대 가장 비천한 이들과의 연대에 동참하는 것, 우리사회 속에서 잊혀지고 가려지는 진실들을 외면하지 않고 들춰내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 그 하나하나의 과정이 진정한 우리의 스팩이고, 그 순간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힐링을 맛보게 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일수 옮김, 『액체근대』 (서울: 강, 2009). [본문으로]
  2. 서보명 지음, 『대학의 몰락』 (서울: 동연, 2011). 65-81 [본문으로]
  3. 『周易』 「賁卦」. “觀乎天文以察時變 觀乎人文以化成天下_ 천문을 살펴서 시간의 변화를 관찰하고, 인문을 살펴서 천하를 화성한다.”- 이승환,“동양의 학문과 인문정신”, 『인문정신과 인문학』(한국학술협의회 편, 아카넷, 2007), 29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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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생각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함석헌 생각”이란 제목은 함석헌의 생각과 그에 대한 나의 생각만이 아니라 ‘생각’을 함석헌 사상의 독특한 면을 담아내는 개념 또는 고유명사로 보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함석헌에게 생각은 지적인 작용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가 아니라, 자신의 사상의 지향성과 방법론까지 드러내는 개념적인 용어로 볼 수 있다. ‘생각’만이 아니라 함석헌의 글에서 등장하는 몇 개의 단어들을 부각시켜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폭넓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여기서 다룰 단어들은 함석헌의 글을 읽으면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철학,’ ‘소리’, ‘자리’, ‘생각’ 등이다. 이와 관련해 내가 이해하는 함석헌은 20세기 한국의 굴곡진 고난의 역사에 참여했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특히 4.19 혁명 이후 한국을 위한 사상과 철학의 전통을 유산으로 남기려 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함석헌에 대한 많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산이 제대로 다음 세대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느낌도 이 글의 또 다른 출발점이다. 따라서 나의 관심은 함석헌 사상의 현대성을 모색하고 그의 사상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하는데 있다.




함석헌과 철학 (1)


    2008년 세계철학대회가 한국에서 열렸다. 1900년에 처음 개최되어 4년마다 열리는 국제적인 철학대회였지만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렸다. 개최 국가의 철학적 전통을 소개하는 특별한 분과모임에선 함석헌과 유영모의 철학을 주제로 한 논문들이 발표됐다. ‘현대철학의 재고’라는 그 대회의 주제가 철학을 서양이라는 개념의 영토를 벗어나 이해하자는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면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 함석헌과 유영모를 다룬 논문들은 대게 두 사상가의 학문에 담긴 철학성을 전제한 상태에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 이전에도 이 두 사람의 학문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저술은 많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결국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면이 있었다. 철학이 무엇이고 또 무엇에 관한 것이어야 하는 질문은 지금도 묻게 되는 철학사의 기본적인 질문이다. 철학에 대한 다양한 새로운 정의와 이해가 현재까지 생산되고 있지만, 다양성이 철학적인 작업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국제적인 철학대회가 철학성을 증명하거나 대신할 수도 없다. 이 부분을 면밀히 다루지 않으면 철학적인 가능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여기서 철학이란 일반적으로 그 용어로 지칭되는 서구 사상의 전통을 말한다. 그 전제 하에 함석헌이 철학에 대해 갖고 있었던 생각과 자신의 사상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이해했는지, 그리고 함석헌 사상의 철학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고 또 그의 글을 어떻게 철학적 행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개괄적인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20세기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함석헌의 사상은 학문적인 근거지가 없었다. 철학이라 하기엔 엄밀함이 떨어졌고, 신학이라 하기엔 다원주의적인 종교학 측면이 강했고, 역사학이라 하기엔 추상적이었다는 게 흔히 듣는 이유였다. 나름 근거가 있는 이유들이지만, 그 근거는 전공 중심적인 학문의 이해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함석헌이 추구했던 학문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함석헌이 이루어놓은 학문적 업적은 오히려 근대적인 대학에서 전공을 중심으로 공부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 전공 분야의 방법론에 고립시키는 학위를 취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아야 한다. 함석헌은 근대 학문의 인위적인 경계에 갇혀있지 않았고 거기서 출발한 방법론으로 세상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함석헌은 종교적으로는 다원론을 견지하면서도 형이상학적인 일원론을 지향하고, 사실의 증거에 충실하면서도 영적인 증언의 진리를 믿었고, 현실정치의 변혁을 위한 운동가의 역할과 예언적인 지식인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었다.


    함석헌과 철학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어디서부터 할까. 이 질문이 쉽지 않은 이유는 함석헌이 자신이 철학을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유명한 철학자들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말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석헌의 이런 입장은 그 자체로 철학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부정한 것은 철학적 자아만이 아니라, 그 어떤 학문의 지식인이나 전문가로서 규정되길 거부했다. 이런 소크라테스적인 자기부정은 함석헌과 철학의 문제를 철학적 자아의 관점에서 접근할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주목해야할 것은 함석헌의 글 속에 ‘철학’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가 1960년대에 쓴 글 가운데 철학이라는 단어가 제목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은 함석헌 자신이 때때로 철학을 한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최소한 철학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는 것은 분명하다. 1960년대 초반은 그의 사상이 학문적으로 (철학적으로) 가장 무르익었던 시기였다. <생활철학>과 <누에의 철학>이 그 시기의 글이었고, <저항철학>은 몇 년 뒤 1968년에 쓴 에세이였다. 60년대 초반에 쓴 또 다른 의미 있는 글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개정판에 쓴 서문이다. 1965년에 출판된 4차 개정판을 내기로 결정하고 본문을 수정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이었다. 당시 그의 완숙해진 사상적 직관의 능력이 그 개정판의 구성에 잘 투영되어 있다. 철학이란 단어가 제목에 없지만 철학적인 의미와 비중이 있는 글로 “한국의 발견”과 “우리민족의 이상” 등을 꼽을 수 있다. 모두 함석헌을 철학적인 사상가로 재발견할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글들이다. 앞으로 더 자세히 다룰 계획이지만 그가 1960년대 초반에 그런 글들을 쓰게 된 것은 4.19 혁명을 한국 역사의 분기점으로 이해하고 새로운 한국을 위한 철학을 만들고 실천하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시기 함석헌이 이루고자 했던 학문적 성과는 미국의 에머슨이 19세기 미국의 정신적 독립을 주장하고 미국의 학문을 제창했던 것과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앞으로 다룰 예정이다.


    <생활철학>은 1961년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의 국토건설단에 선발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 함석헌은 그 글에서 당시 서구 철학에 대한 그의 인상이 담겨 있고, 철학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단순하게나마 정리하고 있다. 현대의 철학이 분열적이고 논쟁적인 것으로 변한 것에 대한 비판도 했다. 철학의 과학주의가 철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서구 문명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도 파악했다. 함석헌은 철학이 분석과 대립을 넘어서 지혜와 생활과 삶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그에게 과학주의는 인간의 정신을 약화시키는 기술적인 사고의 지배와 과학에 대한 믿음이었지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철학으로 등장했을 때 그것은 힘의 철학과 폭력의 정치로 변모하게 된다고 했다. 자연의 법칙만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뜻과 정신과 절대를 이야기 했지만, 철학적으로 그 입장은 반-자연주의(Anti-Naturalism)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이 다루지 못하는 철학과 종교의 영역을 ‘맛봄’이라는 미학의 경지로 이해했고, 함석헌에게 그것은 통합의 경지였다. (“나도 인생이야”라는 시에서 등장하는 “혀 아래 맛으로 듣는다”라는 생각을 멈추게 하는 예리한 관찰력은 - 이 후에 다루겠지만 - 그의 사상이 추구했던 통합을 미적인 감각으로 이해한 예라 할 수 있다). 종교는 철학이 상실한 삶과 통합의 지향성을 지적해주고 일깨워주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함석헌은 철학과 종교가 이성과 믿음으로 나뉘고 절대적으로 다른 방법론의 학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철학을 논하는 자리에서도 끝없이 믿음을 얘기했던 이유는 그런 학문적 경향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적인 사유가 만든 정신적 혼란과 냉전의 위기로부터 세상을 건져낼 희망은 믿음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철학이 회의와 불신을 설명하는 이론이 되어가는 경향에 맛서 그가 제시한 믿음은 맹목적으로 선언된 믿음이 아니라 그의 사상의 과제이자 방법론이기까지 했다. 


철학과 한국


    함석헌이 요구한 한국 역사에 대한 반성은 철학적 반성까지 포함했다. 그에게 한국은 철학이 없는 민족, 아니 철학적 자기표현을 하지 못했고 그 의지를 상실한 민족이었다. 중국의 고전과 언어로는 한국의 정신을 드러내는 그런 자기표현을 할 수 없었다. 영어로도 한문으로도 다가갈 수 없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만든 민족의 혼이 있었다. 서구의 학문도 불교와 유교도 한국의 지적인 전통이 되기에 충분치 못했던 이유는 한국의 언어로 생각해서 만들어진 사유와 전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1963년 영국의 한 퀘이커 대학에서 했던 <우리 민족의 이상>이라는 강연에서 60년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철학의 문제라고까지 했다. 그리고 중국과 서양의 개념으로 한국 역사의 경험을 설명하려는 지적인 종속과 나태함을 질타했다. 사상의 빈곤은 수입된 개념과 모방을 통해 지식을 권력으로 행사하고 이득을 취하려는 지식인들 때문이었다. 한문의 사유를 아직도 하고 있고, 영어가 등장해 지배적인 언어가 된 역사는 한국 민중들의 고난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았다. 억압은 정치적인 무력행위만이 아니라 지식과 개념으로도 가능했다. 그 결과 민중들은 높은 뜻을 추구할 의지가 꺾인 채 숙명적인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함석헌에게 한국에 철학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미래도 없었다. 어제, 그제, 오늘, 모레는 있지만 ‘내일(來日)’은 한자이고 고유한 한국말이 없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표현이었다. 철학 없는 숙명적인 세계관으로 사는 것과 ‘내일’이 없다는 것을 동일한 현상으로 본 것이다. 철학이 없는 게 아니라 철학을 잃어버린 것처럼, 내일이란 말을 상실한 것이었다. 함석헌에게 <한국의 발견>은 철학적 자기발견을 의미했고, 한국의 미래는 한국에서의 철학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에게 철학이 없는 민족은 내일이 없는 민족이었다. 그가 찾았고 구현하고자 했던 새로운 한국은 내일이 있고 철학이 있는 한국이었다. 이 과정은 그에게 한국의 사상을 표현할 언어를 재발견하고 한국인의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함석헌에게 민중의 언어와 민중의 방식으로 할 수 없는 철학은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철학의 가치는 인간의 자기이해와 자기표현에 있었고, 이는 민중의 현실과 경험의 한 축이었던 그들의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찾을 수 없었다. 함석헌에게 60년대 초반 한국에서 필요했던 것은 경제적 발전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혼이 담긴 언어로 구성된 새로운 철학이 필요했다. 함석헌은 된 자신의 강연과 글을 통해 그런 문제를 진단만 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새로운 철학을 예시하고 있었다 할 수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철학을 하기 위해 동양과 서양의 고전 연구도 필요했다. 특히 한국인에게 적합한 자기 이해를 위해서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서양의 가르침이 아니라 동양의 고전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양의 고전이 한국의 고전이 될 수는 없었다. 여기서 함석헌은 고전에 대한 색다른 이해를 내놓는다. 한국의 고전은 한국인 자신이었고 한국인의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이후 서구 사상사에서 많은 고전에 대한 정의가 등장했지만, 함석헌의 내면의 고전이란 개념은 고전을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다. 마음속 혼에 있는 고전을 조명하여 발견하는 것이 자아의 발견이었고 영혼을 돌보는 행위였다. 자아나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은 철학의 고전적인 의미에 속한다. 영혼의 돌봄은 다른 민족의 말과 개념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에, 민족 고유의 언어를 찾고 다듬는 것은 그 자체로 영혼을 돌보는 철학의 행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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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말고 동무 II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나 정말 괜찮은 사람인 거 맞지?’


    지난 글에서 필자는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세계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낼 수 없어 쉼을 누리지 못하여 세계의 흐름에 반대되는 고정되고 틀에 박힌, 그래서 안정적인 나와 세계를 찾고자 ‘친구’라는 허위로 도망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밝혀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안심, 안정, 안돈’이라는 감정의 돌을 꼭 껴안은 채 침몰해 가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다시 의문을 품자면, 왜 사람들은 안심, 안정, 안돈에 훨씬 더 많은 가치를 두며 살아갈까? 2년도 채 되지 않아 우리 ‘바깥’과 창구역할을 하는 휴대폰을 바꾸고, 2년이 지나면 삶의 터전인 집을 옮겨 다녀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대학 신입생이 배운 지식이 4년 후 졸업할 즈음에는 ‘헌 지식’이 되어 있고, 공학기술자가 지닌 지식의 수명은 5년이 되지 않아 폐기/신설되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데도 평균수명은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에 육박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정초해야 할 기초가 사라지며, 뿌리내려야 할 지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마음 둘 곳이 없어지니 그야말로 고립무원이다. 고로 이 초고속시대에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동색(同色)이었던 친구를 갈구하고, 내 몸에 흐르는 피가 자동적으로 가리키는 혈통으로 회귀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찌할 도리 없고, 피할 수 없는 세상 풍파를 어떻게든 면해 보고자 친구와 가족으로 퇴각하는 개개인들의 회귀를 침몰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불러야만 하는가? 김영민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온갖 연줄로 얽혀든 사회 속의 우리는 ‘남’이 되지 못했으므로 ‘나’가 되지 못한 채, 공동의 침체를 도덕이라고 부르고, 공동의 나태를 평화라고 부르며, 공동의 타락을 질서라고 부르’게(198) 된다고 말이다. 즉,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눈빛으로 두려움을 읽고 눈빛으로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 어떤 유령처럼 존재하는 그 ‘군중(또는 대중)’의 무리에서 자칫 떨어져 도태될까봐 두려워하는 공포를 말이다. 한 번도 ‘남’이 되어보지 못한 존재들이란 바로 그런 존재들이다. 이는 일종의 유아들이 겪는 분리불안 증세와도 그 종류가 비슷한 것일텐데 부모로부터 몸은 떨어졌으나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기 두 발로 서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폐적인 퇴각’(204)이나 ‘모든 종류의 실천과 연대를 방해하고 금가게 하는 냉소’(200)만으로 언제까지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가상의 현실 안에서 자기를 확장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김영민이 제안하는 동무는 다음의 특징을 가진다.


동무, 듣는 관계


    친구라는 동색(同色)으로 향하는 자폐적인 퇴각을 막고 서늘하고 버텨 서서 같은 것(同)이 없음(無)을 통해 세세한 버릇의 양태를 서로 고치고 서로 성장시키는 동무적인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듣기’가 필요하다.

    여기서의 듣기란 ‘타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잘 듣는 수동적 듣기’(210)를 말하지 않는다. 먼저 우리는 친구, 연인들간의 듣기는 매우 수동적인 듣기 방식이란 것을 우리는 알아채야 한다. 친구와 연인끼리는 별 공을 들이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있다. 그저 하던 말을 하면 되고, 서로간에 조율된 ‘선’ – 여기의 선이란 ‘경계(Line, 또는 Borderline)’라는 의미와 선(Good, 또는 Virtue)’ 양 의미를 포함한다 – 에 의지하여 말하면 된다. 굳이 내 의지를 다해 미간을 좁히며 자세히 듣지 않더라도 맘놓고 떠들고 들어도 되는 듣기다. 김영민은 특별히 이런 말하기와 듣기의 풍경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자리로 ‘술자리’를 많이 언급하는 편인데 대체로 아래의 사진의 분위기와 거기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상상해보면 된다. 아래와 같은 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을 김영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술자리가 얹힌 ‘기운(Stimmung)’, 혹은 어떤 ‘두께’ 속에서 해반주그레하게 피어오르는 낭만주의, 그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 올라오는 대화적 휴머니즘은, 결국은 바로 그 기운 탓에 실없이 부풀어 오른 개인의 자잘한 자기도취에 기대고 있다. (380)


    이러한 ‘자잘한 자기도취’가 왜 문제인가? 바로 일상적으로 계속되는 버릇, 혹은 그 버릇의 지향과 지형이 되먹여져 재생산될 기존 세계의 언어 수행, 생활의 양식 때문이다. 고로, 김영민이 제안하는 동무 간의 듣기는 능동적이고 생산적이고 창조적(210)인 듣기이다. 시공간의 동질성에 근거한 추억과 의리의 과거적 관계는 ‘듣지 않고’(211)도 말할 수 있지만 동무 간의 듣기는 섬세하고도 서늘한 듣기, 즉 ‘버텨듣기’를 말한다. ‘사사화된 정리의 늪 속으로, 그 한 패거리의 움직임 속으로, 축축하고 뜨겁게 저락하는 ‘친구’를 불러 세우고 일견 메마르고 서늘한 행위(211) 속에서 동무 간의 듣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동무는 거기서 태어나는 것이다.


듣기의 본적(本籍), 침묵


    우리가 서로 만나 성장하는 사이가 되려면 실로 보낸 시간과 경험과 추억의 가짓수를 늘려서 되는 게 아니라, 단순한 작업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돌보고 수행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은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그 방법을 한 번에 깨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삶의 양식과 ‘버릇’의 문제로 귀결된다. 곧, 다시 지적한 바대로 ‘일상의 만남/사귐의 구태를 번연히 고수한 채 새 이름의 기치 아래 재집결해서 서푼어치 인식의 확장을 꾀하거나 각오를 다진다고 대체 무슨 변화가 있을 것인가?’(205)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우리가 입을 모으고 마음을 모아 능동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동무 간의 듣기를 하기 위해서는 ‘긴절한 침묵(209)’이 절실히 요청된다. 꺼지지 않는 카톡 대화방 알림 속에서 잡담과 수다와 고백을 일삼으며 과거의 공유된 기억을 회집(209)하는 게 ‘사귐과 교제’가 될 수 없다. 타자의 말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그의 말이 성성하게 살아 있는 그대로 응대하고 말의 표준화, 정식화, 그리고 축약화를 철저히 경계하는 것(210), 그저 듣기라는 행위가 하나의 ‘풍경’이나 ‘배경장치’가 아니라 관계맺음의 전면적이고 절대적인 행위임을 아는 것, 거기서 바로 동무 간의 듣기는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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