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빈곤, 다름의 고통과 갈등: 나와 타자들의 공생을 넘어 상생을 위하여

 


김혜란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클래아몬트 대학 강의차 미국 로스앤젤레스 LA 에 지난주 갔다. LA 를 여러번 가 보았지만, LA 다운타운에 정착된 한인타운이 있는 곳을 제대로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LA에서 40년을 살았고, 그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 (이민상담, NGO 조직활동)을 한 목사님의 훌륭한 안내로 짧지만 굵게 LA 한인 사회를 보게 되었고, 그 관점으로 미국의 모습을 다시한번 보게 되었다. 그에 대한 미력한 생각을 이 지면을 통해 나누고 싶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LA는 한국을 빼놓고, 전 세계에서 가장 한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한인타운을 가면, 한인들이 세운 은행들도 몇 개가 되고, 큰 백화점 수준의 커다란 빌딩이 즐비해 있다. 소위 그 빌딩숲을 걷다보면, 여기가 한국, 아니 서울 대도시를 걷고 있는 착각을 하게 된다. 안내를 해 주신 그 목사님은 여기는 “서울시 LA, 나성구” 라고 사람들이 부른다고 알려주셨다. 홍익대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신세대 카페도 있고, 50년전 오픈한 오래된 음식점도 있다. 옛날과 오늘이 공존하는 이 곳, 한국 문화와 다양한 미국의 문화가 공존하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끔찍한 모습을 함께 보게 되었다.

이번 LA 방문에서 본 가장 충격적인 모습은 바로 텐트촌이다. 집과 일자리가 없는 흑인 (Afro-Americans)들이 도심에서 빌딩과 빌딩사이 골목안에 텐트를 치고 있었다. 수백개의 텐트가 화려한 빌딩, 아름답게 조경된 그 도시 구석 구석에 퍼져있음을 발견했다. 제대로된 잠자리는 커녕, 물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먹을 곳도 없는 그 곳에서 이들은 하루 하루 연명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지도 못했고 말을 해보지도 않았지만, 텐트에 사는 많은 이들의 얼굴 (아이와 노인, 젊은이, 어른들)은 삶의 고뇌, 생존을 위해 견디는 아픔으로 가득차 보였다.

밤에는 가면 위험한 곳이란다. 골목 사이에서 총기, 마약, 폭력, 매춘들이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살기위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텐트촌, 도저히 인간적인 삶으로 볼 수 없는, 거의 좀비에 가까운 모습, 묵시록에나 나올 법한 그 광경은, 그 텐트촌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에서 대안 하나를 제안했다. 이는 도심한복판에 이들을 위한 쉼터, 노숙자 센터를 마련하는 것이다. 어디에 노숙자 센터가 들어설까? 바로 한인타운이라고 한다.

한인타운 한 복판에 LA 시 소속 공영주차장이 있다. 나날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 그 도심에 쉼터 자리를 찾기가 어렵기에, 시에 속한 그 주차장을 쉼터로 세운다는 계획이다. 겉으로 보면, 지극히 합리적인 대안같다. 그런데, 이 대안이 LA에 사는 한인들을 불편하게 한다. 아니, 그 쉼터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왜?

LA 한인타운은 주거공간이라기보다 고용공간이다. 즉 그 타운에서 다양한 사업, 상업들이 이루어진다. 물론 은퇴한 한인들이 사는 시니어홈도 있다. 차가 없어도 대중교통, 도보로 필요한 것을 이용할 수 있고 그 안에 쇼핑몰, 식당, 병원, 은행, 공원, 교회들이 다 집중되어 모여있기에, 연로하신 한국분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한인타운을 찾는 분들은 소위 일을 보러 오는 것이다. 일을 하러, 일을 보러, 장을 보러… 그런데, 그 곳에 노숙자 쉼터가 들어서면, 사업, 상업에 지장이 있다고 한인타운에서 반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수백개의 한인교회들은 반대시위를 주일에 벌이고 있었다. 2018년 벌어지는 이 사건은 1992년 Rodney King LA 폭력사태, 한인타운에서 벌어진 흑인과 한국인 분쟁사건, 이른바 “사이구(429)” 사건을 연상케한다. 아니, 한인타운에서 그 사건을 겪은 이들에겐 트라우마가 재현되는 것이다.

지극히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 LA 시의 쉼터제안이 왜 사이구사건의 트라우마를 재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사이구 사건으로 돌아가야한다. 사이구사건은 흑인 운전수Rodney King에게 폭력을 가한 백인 경찰이 무죄 선고를 받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부정의한 재판결과에 분노한 흑인들의 백인 공권력에 관한 폭동이 1992년 사이구사건의 원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흑인의 폭력이 행해진 곳이 한인타운이었다는 점이다. 왜 백인공권력에 대한 분노가 한인들에게 향해졌을까? 4월 29일부터 약 1주일간 벌어진 이 폭동으로 90% 한인타운이 파괴되었다. 거의 전쟁에 가까웠다. 60명이 살해되었고 1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폭동이 시작되자 마자 미국 백인 언론방송은 한인에 의해 희생당한 흑인소녀이야기를 집중 보도함으로써, 흑인들의 백인공권력에 대한 분노를 한인들에게 가도록 파행적으로 보도했다. 백인우월주의 (수구주의)에 입각한 언론조작이었다. 경찰은 흑인들의 분노가 백인들, 부자들이 사는 베버리 힐스와 할리우드에 가지 않도록 이들만을 지켰다고 한다. 백인특권층을 보호하기 위해 한인과 흑인이 서로 총을 겨누고 싸우는 것을 방기한 것이다. 이것이 백인우월주의와 공권력이 만난 제국의 모습이다. 그 제국의 폭력 (방기)에 소수 인종들이 희생당한 것이다. 그렇게 한인들이 흑인-백인 인종갈등의 희생양이 되었다.

물론, 한인들과 흑인 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흑인들에 대한 한인들의 폄하, 선입견, 무시가 있었다. 한인들의 이주와 사업으로 많은 흑인들이 집터, 일터를 잃은 것도 사실이다. 약자였던 흑인들은 성공하는 한인들에게 질투와 시기가 있었고, 백인들에게는 못하는 폭력을 소수인종인 한인들에게 행했다. 그 점에서 보면,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한국이민자들은 그 사회 특권층이요, 흑인들의 피땀으로 세워진 나라의 혜택을 보는 자들이다. 그러나, 한인들의 미국 이주와 흑인들의 열악한 삶의 현실은 식민주의 (노예제도 포함)와 미국 문화 제국주의, 신자유자본주의, 국제화의 문제와 동떨어져 사고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억압과 이슈의 교차성 (인종, 식민주의, 계급, 문화, 이주)의 한 가운데, 텐트촌이 있다. 텐트촌의 발생, 증가는 결국, 인종, 빈곤, 계급 간 양극화와 다름의 갈등이자 식민주의, 자본주의, 인종차별주의의 산물이다. 그리고, 약자인 소수 인종을 가르게 하고 그리하여 백인특권층의 이해를 보호하는 정책이다 (divide and conquer). 사이구사건을 분석한 신학자 조원희는 이를 두고, 파이하나를 두고, 한국인과 흑인들이 그 파이 조각을 먹기위해 갖기 위해 서로 싸우고 갈등하는데 몰입하는 동안, 그 파이를 구운 자들 (경제적 자본주의 엘리트, 시공무원 간부, 권력을 가진 정책입안자)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고, 한인-흑인의 갈등을 통해 이들이 얻을 이익, 이들의 무책임을 우리도 모르게 방조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각주:1]

그런 점에서 텐트촌의 현실, 한인타운에 세워질 노숙자 쉼터의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바로 이 쉼터 제안을 준비할 때, 파이구운자들이 (시청 직원들, 정치인들) 한인타운협회와의 상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곳을 일터로 집터로 삼고 살고 있는 한국이민자들의 공간에 대한 기본 존중과 인식이 있었다면, 적어도 그들의 동의를 얻기위해 한인들과의 조정과 의사소통을 해야했을 것이다. 아니 해야한다. 만약 이 곳이 한인타운이 아니고 백인특권층이 사는 곳이었다면 아무 상의와 동의없이 쉼터를 세우겠다고 시가 선언했을까?

텐트촌에서 죽음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100% 흑인이다. 이 텐트촌은 미국 흑인-백인 인종갈등의 연속선상에서 벌어지는 폭력이자 부정의의 얼굴이다. 흑인노예제도를 미국의 원죄로 말한 신학자 Larry Rasmussen의 주장처럼, 이 원죄는 과거의 일로 끝나지 않고 현대판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이어진다. 텐트촌에 사는 이들은 소위 과거의 노예는 아니지만, 노예처럼 살아가기 때문이다. 거기서 한인들도 고통을 겪고 있다. 동시에 한인들도 이들의 고통으로 혜택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나 (한인)와 타자 (비한인, 소수인종, 그리고 백인) 가 공생하기 위해, 서로 총을 겨누고, 파이를 먹기 위해, 땅따먹는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해, 한인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인종차별 의식, 편견과 무지를 깰 필요가 있다. 동시에, 가르고 정복하기 (divide and conquer) 논리에 빠지지 말고, 그 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백인 우월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다른 이들과 함께 연대할 필요가 있다. 서로를 알기 위해 만나고, 서로의 고통과 상반된 이해관계를 들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힘을 길러, 공권력, 백인특권층 세력에게 문제제기를 하고, 또다시 사이구와 같은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공생 (단순히 함께 사는 일)을 넘어 상생 (서로에게 의존하고 삶을 나누는)의 길로 가길 기원한다. 아니 각자 우리의 삶의 공간을 그렇게 만들어보자. 이 공간을 위해 내가 받은 혜택, 기득권, 또는 희생이 무엇인지 성찰해보자. 그 성찰 후 상생의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해야할 일을 정리해서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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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onhee Anne Joh, Heart of the Cross: A Postcolonial Christology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2006), 4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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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용철
    2018.06.22 11:2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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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 수업을 통해 배우고 이렇게 글을 통해 다시 뵙게 되니 기쁘네요. 공생을 넘어 상생, 기억하며 실천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감사하고 건강하세요~^^



함석헌의 소리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함석헌은 글보다 말을 선호했지만 그에게 말보다 더 근원적인 생명의 현상은 소리였다. 그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소리가 있다고 보았고, 모든 소리에서 생명의 소리를 듣고자 했다. 말씀은 생각의 소리였고, 생명의 소리는 말씀이었다. 생명의 소리는 무엇보다 먼저 고통의 소리였고, 고통의 소리는 모든 소리의 시작이었다. 소리의 원형이자, 모든 소리의 첫소리는 ‘아’라고 했다. 이는 고통과 감탄의 소리였고 또 깊은 생각이 남기는 소리였다. 그에게 인간은 소리를 듣고 소리를 내는 존재였다. 함석헌의 사상을 소리의 발견과 연결 지을 수 있을까? 그가 소리를 통해 발견한 것은 자기 소리를 낼 수 없는 민중이었지만, 여기서 그의 철학적인 비판과 방법론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함석헌의 글에서 ‘소리’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먼저 그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문장의 문법적 의미를 구성하는데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소리’라는 단어가 쓰이곤 한다. 어느 순간 함석헌의 의도가 소리의 회복 내지는 소리의 사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난 받는 민중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소리가 나올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은 그가 언급하는 의도였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자연의 생명을 소리로 이해해서 등한시 되었던 생명이해의 한 축을 보강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쉽게 드러난다. 그의 글에서 ‘소리’의 또 다른 의도는 익명성 뒤에 숨어 있는 난해한 개념이나 논리를 누군가의 소리로 그 뜻을 이해하려 한 것이라 본다. 이를 철학적 비판의 예로 삼는다면, 철학이 삼인칭의 학문이 되었다는 비판과도 연결이 된다. 철학이 개념과 논리의 작업이 되면서 일인칭의 소리가 배제되어 왔기에 철학의 자전적 목소리를 되찾자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생각의 첫소리가 ‘나’라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철학의 소리가 모든 사람의 소리를 대신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하는 말이기도 했다.


    20세기 서양에서 철학을 소리의 차원으로 이해하려 했던 사람은 임마누엘 레비나스였다. 레비나스가 소리에 주목했던 이유는 타인과의 관계라는 그의 철학의 중심적이 주제가 시각중심적인 기존 철학의 개념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생각이나 사유 또는 이해와 같이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고 나누는 개념으로 타인을 대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에게 타인과의 만남은 인식이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차원의 문제였다. 듣는 행위에 대한 철학적 관찰은 찾기 어려웠다. 레비나스는 서구 사상의 관점에서 타인이 내 시선의 대상이 될 때, 그 사람은 나의 대상이나 나의 일부로밖에 판단되어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레비나스는 나의 이해나 의도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나의 비전에 가둬둘 수 없는 타인의 얼굴에서 소리를 들었다. 그 얼굴은 우리가 보고 이해해야 할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이었다. 그 첫 소리는 함석헌이 동의할 만한 “나를 죽이지 말라’는 생명의 외침이자 요구였다. 그에게 윤리는 그 소리를 듣는데서 시작했다. 만약 윤리가 소리를 듣는 것과 연관이 있고, 윤리가 첫 번째 철학이라면 철학 자체도 소리로 재구성될 수 있어야 했다. 그는 타인의 소리에 의해 일깨워지는 자아, 이성의 빛이 아니라 침묵을 강요받는 존재의 울림과 떨림을 들으면서 시작되는 사유를 펼치면서, 빛에 이끌린 생각을 거부하고 소리에 의지한 철학의 근거를 추구했다. 이런 레비나스의 철학에 대해 자크 데리다는 소리를 빛보다 위에 두고,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을 우선시 했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레비나스가 서구사상의 오랜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임과 동시에 레비나스의 그런 철학이 신학적인 근거 밖에서 성립될 수 있는가 묻는 비판적 질문이었다.


    레비나스가 소리로 생각하는 사유를 펼치면서 서양철학의 전통에 반기를 든 배경에는 시각과 보는 것을 우선시해온 오랜 역사가 있다. 이 역사에서 생각은 언제나 빛의 영역이었다. 빛의 도움으로 제대로 보아 나오는 것이 생각이었다. 생각의 순간을 빛이 발하는 순간으로 비교하기도 했고, 반면에 무지는 어둠이라 여겨졌다. 생각을 낳는 이성도 역시 빛의 현상이었다. 서양의 언어에서 생각과 사유를 뜻하는 단어들은 주로 빛이나 보는 행위와 연결된 것들이었다. 태초의 말씀까지도 소리가 아니라 빛으로 보아야만 했다. 특히 근대라는 시간은 시각과 인식이 함께 승리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대 지식의 기준을 마련한 증언이나 증거와 같은 개념은 모두 눈으로 보는 행위를 뜻했다. 하지만 진리가 보는데서 출발한다는 생각은 서구 사상의 시초가 된 플라톤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생각이 보는 행위와 연관이 있고, 보기 위해선 빛이 필요하고, 빛은 진리의 원천이기에 참이고 선이라는 논리는 이미 그 시대에 완성된 것이다. 이렇게 빛에 맞추어진 생각은 소리를 멀리하고 소외시켜야만 깊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내 밖의 소리를 듣고 움직이는 것은 주체적이거나 자율적이지 못한 행동이었다.


    레비나스와 함석헌는 이런 역사에 대한 재고를 요구했다. 함석헌은 이성을 빛이라 분명히 말한다. 그가 얘기하는 이성의 모순은 이성이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비춰질 수 없는 곳까지 비추겠다는 ‘당돌한 등불’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그는 이성의 빛이 할 수 없는 소리에 주목했다. 그것은 이성의 힘만으로는 낼 수 없는 생명의 소리였다. 함석헌은 빛과 바람을 함께 언급했다. 빛과 바람,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이지만, 잠시 생각하면 연결점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바람은 빛과 함께 더불어 생명의 또 다른 조건인 공기가 움직이면서 만들어진다. 바람은 소리를 동반한다. 함석헌은 생명을 위해 빛과 공기가 함께 필요한 것처럼, 생각이 있기 위해서 빛과 소리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성을 바로잡기 위해 소리가 필요하고, 그 소리는 생명의 본질에 속한다고 본 것이다. 레비나스는 소리에 대한 함석헌의 생각을 잘 이해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빛과 시각을 우선시 하는 철학에 반대하고 소리의 사유를 각기 모색했다고 볼 수 있다. 레비나스는 이를 위해 눈으로 듣는 모습을 상상했고, 함석헌은 맛으로 듣는 소리를 얘기했다. 내 옆 타인의 존재는 그 자체로 나를 부르는 소리이고, 그 부름이 나의 책임을 일깨운다는 레비나스의 생각은 소리의 원형이 숨소리에 있고, 그 소리의 본질은 살고자 하는 절규라는 함석헌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소리에서 의미나 형상으로 규정되지 않은 윤리의 출발점으로 파악했던 레비나스는 소리에서 이성이 담아내지 못하는 생명의 외침을 들었던 함석헌을 잘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차이도 지적할 수 있다. 레비나스에게 소리의 사유가 존재론의 철학을 넘는 자신의 윤리철학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면 함석헌의 소리는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보편적인 생명의 현상이었다. 그리고 ‘씨알의 소리’라는 함석헌 고유의 개념이 담고 있는 고난의 이해를 더하면 그 차이는 더욱 더 분명해진다.


    <나도 인생이야>라는 함석헌의 시가 있다. 땔감으로 잘려나가는 나뭇가지, 파리채에 맞은 파리, 총에 맞은 산새, 더 이상 수레를 끌지 못하고 쓰러지는 늙은 말, 도살장의 암소는 모두 ‘나도 인생이야’라는 마지막 절규를 남긴다. 함석헌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인생이 있다고 보았다. 그 점에서 사람과 동물과 식물이 다를 수 없었다. 그 인생들은 제각기 ‘나도 살자고 태어난 인생’이란 외침을 남긴다. 함석헌은 묻는다. “그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는가? 문명이란 이 무거운 괴물의 무거운 사슬에 꿀려가다가 거꾸러지는 이 인류의 소리를 그대는 들었는가? 상아탑에 꿈을 꾸고 단 위에 이론을 펼 때 티끌 속에서, 하수도 밑에서 들리는 그 소리, 나도 인생이야!”


<벗이야 나를 보셔>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보오 벗, 내 눈 건너다보지 말고 

내 말을 들어주셔요 


말만 들어주셔요 

맘만 말이야요 


들어도 소리를 말고 

울림에 귀를 기울이셔요 


들어도 귀청으로 말고 

혀 아래 맛을 들으셔요 


울려 울려 

속에서 우러나오는 울림을


    함석헌은 벗에게 고한다. 나를 볼거리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내 말을 들어달라고. 그리고 내 말이 아니라 내 마음을 들어달라고 하고, 내 마음을 소리가 아니라 울림으로 들어달라고 부탁한다. 또 내 마음소리의 울림을 귀가 아니라 혀 아래 맛으로 들어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함석헌은 보기보다는 듣기, 입의 말보다는 마음의 소리, 소리보다는 소리의 울림이 우선이라 보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귀가 아니라 맛으로 소리를 들으라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울림을 느끼고 맛을 보는 행위의 차이는 우선 거리에 있다. 예컨대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더 멀리 볼 수 있다. 울림은 들을 수도 있지만 피부로 느낄 수도 있다. 함석헌에게 울림이 있는 소리는 말이었다. 그 말의 울림은 의미가 전달된 후에도 여운으로 남는다. 울림을 철학의 용어로 활용한 사람은 앞서 언급한 레비나스였다. 그가 다양한 의미로 활용하는 용어지만, 여기서 울림은 나의 말이 죽은 과거의 소리가 아니라 타인에게 전달되어 그의 말소리를 청하는 환영의 소리라 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소리의 울림이 남기는 여운은 ‘나도 인생이다’라는 외침일 것이다.


    이 시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맛으로 들으라’는 절이다. 거리로 말하자면 맛으로 느끼는 것만큼 대상과 가까울 수는 없다. 그런데 소리를 맛으로 들으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맛의 미각은 울림의 촉각과도 다르다. 내 입 안에 있지 않으면 맛을 느낄 수 없다. 울림의 여운이 반복된 움직임에서 나온다면, 맛의 미각은 반복해서 씹고 음미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다. 입안에서 맛으로 음미될 수 있는 소리만큼 나에게 가깝게 들릴 수 있는 건 없다. 소리의 울림이 우리를 자극하고 일깨울 수 있다면, 소리의 맛은 (소리가 맛있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영양을 공급해 준다. 미학의 시작이 맛에 대한 고찰로 시작했다면, 소리의 맛에 대한 상상은 시각을 선호하던 전통에 대한 저항이자 새로운 미학의 시작일 수도 있다. 함석헌이 소리의 원형을 생명의 자기주장과 고난과 고통의 외침에서 찾았다는 사실에서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내가 맛으로 들어야 하는 소리가 고난 받는 씨알의 소리라면, 그 소리는 내가 소화해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소리가 된다. 그렇다면 그 소리는 나를 윤리의 관계로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나와 다른 인생들이 다르지 않다는 생명의 연대의식으로 이끄는 소리였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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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고통을 좀 더 잘 이해하려면 2



심범섭*



지지난 번, 곧 1월 초에 이 웹진에 실은 글에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 세 가지(체험적, 상상적, 설명적 이해)를 이야기하면서 다음 글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데 실패하는 일상적인 경우들을 몇 가지 이야기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다음 글에서 미투 운동이라는 시의성 강한 주제를 다루느라 (비록 고통 문제를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처음의 계획을 따르지 않았다. 이번 글에서는 이 계획을 실행하여, 우리 삶에서 흔히 일어나는, 타인의 고통을 잘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가운데 세 가지를 들어 이야기하고 싶다.


1. 잘 난 사람을 잘 대하자


도올 김용옥이 <월간동아>에 연재했던 시평을 모아 1990년에 출간한 책 <도올세설>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이어령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김용옥은 이런 말을 듣는다. “조심해라. 우리 사회는 못난 놈은 밟아 죽이고, 잘난 놈은 띄워 죽인다.” 못난 놈을 밟아 죽인다는 것은 금방 이해가 되는데 잘난 놈을 띄워 죽인다는 것은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슨 말일까 이리저리 궁리를 해 보았다.

먼저 “띄운다”라는 말은 추켜세우는 것인데, 누구를 추켜세우면 그가 기분 좋아하겠지만 이것이 적절하지 못할 때에는 오히려 그의 마음의 균형을 빼앗고 그가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가 겸손한 사람이라면 부적절한 띄우기가 불편하여 마음의 평정을 잃을 것이요, 교만한 사람이라면 더욱 교만해져 올바르게 처신을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띄우기에는 추켜세우는 태도와 말과 행동에 더하여 흔히 어떤 무리한 요구가 동반하기 마련이고, 이것이 잘난 사람의 안녕을 침해하고 성장을 저해하게 된다. 띄우기가 단순한 경탄에서 비롯되어도 이러할 것인데, 여기에 띄우는 사람의 어떤 이기적인 동기나 열등의식 등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고약해진다.

띄워서 죽인다는 것은 부적절히 추켜세워서 괴롭힌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 잘난 사람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와 무시가 포함되는 것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비범한 사람을 칭찬하고 칭송할 때 그를 초인이나 영웅 같은 특별한 인간의 범주에 집어넣고 그의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다보아야 할 것이다.

특별한 사람에 대한 바람직하지 못한 심리와 태도는 반드시 내가 범접하기 어려운 비범한 사람에 대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아래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이런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유난히 똑똑한 젊은이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자기를 그리 주의 깊게 보살피지 않아서 불만이었다고 한다. 아이가 공부도 정말 잘 하고 영특하니까 부모는 ‘쟤는 뭐 자기 일은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방임한 것이었다. 또 이 사람은 최근에 무슨 기술관련 수업을 수 개월 들으면서 강사가 자기한테 별로 관심을 안 보여서 고충이 있었다고도 했다. 강사 역시 그가 수강생 가운데에서 단연 뛰어났기 때문에 ‘저 학생은 뭐 혼자서 알아서 잘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자세히 살펴주지 않은 것이었다.

니체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시장의 파리들에 대해서"라는 장이 있는데, 여기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위대한 사람에게 범용한 인간들로부터 도망가라고 열변한다. 그는 용렬한 자들이 "그대의 주변에서 칭찬으로 웅웅거린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들이 "그대에게 신 또는 악마에게 하듯 아부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더불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도 말한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복수로부터 도주하라!"

물론 니체가 말하는 상황은 지금 이 글에서 말하는 경우보다 더 심원한 차원에 속하며 또 훨씬 더 드문 상황이지만, 잘난 사람을 띄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교훈이 있는 듯 하다. 특히 "보이지 않는 복수"라는 강한 표현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남을 띄우는 진정한 동기를 더 깊고 진지하게 성찰하게 한다. 우리의 동기가 진정 복수심(뒤틀린 열등의식의 반동)이든 순수한 경외심이든 띄우기는 띄워지는 사람의 고통에 우리를 둔감하게 한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그를 먼저 한 연약한 인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내 경험을 쉽게 일반화하지 말자


많은 경우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 방해되는 것은 그의 어려움을 우리가 이해한다는 속단인 것 같다. 이런 속단은 특히 타인이 겪은 것을 나도 이미 겪어보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가난과 싸우면서 별의별 일을 다 해 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곧잘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과 같은 일을 해 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경험한 고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제대로 공감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어느 지점부터는 각 사람의 고유함이 관여하게 된다. 비록 이름이 같은 고통이라도 각 사람에게는 그에게 고유한 고통이 있음과 나는 이것까지는 모름을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병이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생각해 보자.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분명 어떤 공통된 경험이 있으며 어떤 일반적 경향이 나타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병의 구체적인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듣는 약이나 요법이 다른 사람에게는 듣지 않는다. 병세가 안 좋아 금방 죽을 것 같은 사람은 오히려 더 악화되지 않고 근근이 살아가는 반면 병세가 미미하여 큰 걱정 없던 사람이 갑자기 악화되어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오래 전에 이런 우스갯소리를 읽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파리 때문에 성가심을 느끼고 있었다. 잡으려고 해도 안 잡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파리가 이 사람 앞에 앉게 되었다. 드디어 파리를 잡을 기회를 얻은 이 사람은 파리를 노려보면서 한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손을 다시 내렸다. 옆에 있던 동무가 물었다. “왜 파리를 안 잡아?” 이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까 그 파리가 아니야.” 이 농담은 직접적으로 고통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각 개인의 고유성에 대해서 더 예민하게 생각하도록 일깨워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로부터 각 개인의 고통의 독특함에 대해 더 민감하게 생각해야겠다는 교훈을 끌어낼 수 있다. ‘나도 겪어봐서 잘 알지’같은 생각은, 납치한 사람의 다리를 침대에 맞춰 늘이거나 자른 프로크루스테스의 폭력과도 같을 수 있다.


3. 추상적인 이해의 부작용을 경계하자


때로 우리는 어떤 경험을 추상적인 원리로써 요약해석하여 그 안에 배어있는 고통을 못 보고 만다. 예를 들어 월남전에서 전사한 군인의 죽음을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숭고한 희생’ 같은 말로 정의한다면 이 병사가 한 인간으로서 관통해야 했던 크고 작은 고통은 모두 은폐되어 버린다.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에서 우리는 이러한 예를 만난다. 열 여덟 살 소녀 소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스스로 공창에 들어간다. 이러한 소냐의 결단과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소냐의 가족과 같은 건물에 세들어 사는 레베쟈트니코프라는 진보주의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내 생각에, 곧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그녀는 한 여자가 처할 수 있는 가장 정상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 . . 사회의 현재 질서에서는 그녀의 상황은 온전히 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녀에게 강요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미래 사회의 질서에서는 이 상황은 완전히 정상적일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유롭게 선택될 거니까요. . . . 소피아 세묘노브나의 개인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나는 그것이 사회 질서에 대한 힘차고 진심어린 항의라고 봅니다. 그녀를 바라볼 때 나는 기쁘기까지 합니다!"


여기에서 레베쟈트니코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미래 사회를 강하게 희구한 나머지 소냐의 현재 상황이 이러한 이념을 실천하는 경우라고 주장하고 만다. 소냐의 현실을 온전히 자신의 사회사상에만 비추어 판단할 뿐 소냐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사실 소냐의 실상은 자신의 처지를 매우 혐오한 나머지 (여러 번) 자살할까도 생각했지만 계모와 어린 동생들 때문에 차마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소냐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레베쟈트니코프는 어설픈 이념에 취해 소냐의 고통은 짐작조차도 못 하면서 그녀를 바라보며 "기쁘기까지" 하다는 망언도 서슴지 않는다. 소설의 화자는 레베쟈트니코프를 저속하고 어리석고 단순한 사람으로 규정하는데, 소냐에 대한 그의 판단도 이러한 규정을 예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철학과 이념이 구체적인 개인들이 경험하는 고통에 이렇게 눈 멀어 있다면 비록 그것이 겉으로는 자유와 해방을 표방하더라도 새로운 구속과 억압의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죄와 벌>에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에 대해 "그는 젊고 이론적이였으며 그 때문에 잔인했다"라고 평하는 대목도 있다. 소설의 화자가 이런 평가를 적용하는 맥락은 지금 내가 펼쳐놓은 맥락과는 다르지만 '이론적이므로 잔인하다'라는 기술은 추상적인 철학이 섬세한 공감을 가로막는 부작용을 명료히 지적한다고 본다. 우리는 이론의 '맹'과 '치'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고통이 진정 공기처럼 편재해 있다. 우리는 이런 고통에 눈과 귀를 더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감과 이해의 노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로 쓴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언급하고 싶은 중요한 사항이 있다. 그것은 때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그에게 새로운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모순적 현실이다. 생각해 보면 어떤 고통은 비밀로 남아있는 것이 그 당사자의 존엄을 위해 더 나을 수 있다. 때로 침묵이 최고의 웅변이듯 때로 무관심이 고통에 대한 최고의 배려일 수 있다. 달리 말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잘 이해하자는 선의가 또 하나의 경직된 이념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결국 고통을 이해하는 문제는 이 세상의 다른 많은 문제처럼 깊고 섬세한 지혜를 요구하며 많은 주저함이 불가피한 어려운 문제이다.


    * 필자소개  

영어강사. Rice Univ 언어학 박사(Ph.D) 후에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과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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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영화의 윤리: <레이디 버드>(2018)



조은채*

 

※ 영화 <레이디 버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이디 버드>는 “내가 새크라멘토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해?”라는 주인공 크리스틴의 보이스오버(V.O.)와 함께 시작된다. 가톨릭 교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보수적이고 조용한 새크라멘토에서 나고 자란, 하지만 도저히 자신을 그 마을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열일곱 살의 소녀. <레이디 버드>의 감독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은 원래 이름인 크리스틴 대신에 ‘레이디 버드’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이 소녀를 설명하기 위해 내레이션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소녀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나열한 일기장이나 편지를 읽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성장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론이 바로 내레이션이겠지만, <레이디 버드>는 처음 이후 단 한 순간도 라디오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잘 안다고 넘겨짚는 십 대 시절이 쉽게 언어로 가지런히 정리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내레이션은 주인공인 레이디 버드가 어떤 소녀인지, 그리고 영화가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를 단번에 예감하게 한다.


   <레이디 버드>가 ‘윤리적인’ 성장영화로 보이는 것은 이 영화가 이 소녀를 알고 있다고 함부로 단정짓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겪었던 일 혹은 지나온 시기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과신한다. 그 순간을 겪고 있는 당사자, 흔히 나이가 어린 이가 말하지 않는 속마음이나 사정도 뻔히 다 안다고 착각한다. 다른 성장영화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자주 헛발질을 하곤 한다. 인물에게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세심한 설계가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어떤 성장영화들은 굳이 고심하지 않아도 그 시절을 너무 잘 기억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종종 일을 그르친다. 그 영화의 주인공들 역시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다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실체 없이 부풀려진 채 설명적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그 누군가는 대체로 감독이고, 그가 자신이 아직도 얼마나 소년 같은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과시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굳이 덧붙이도 않아도 될 것 같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과시욕에서 비롯된 연출이 청소년기의 인물을 대상화해서 흥밋거리로 착취하는 장면도 종종 목격된다. 감독 그레타 거윅은 이 보편적이지만 다소 비윤리적인 성장영화들과 달리 <레이디 버드>에 넘겨짚은 추측이나 주제넘은 단정이 자리할 빈틈을 남겨두지 않는다. 물론, 영화가 항상 도덕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만 다룰 수는 없고, 연출력을 뽐내며 인물의 감정을 과하게 극대화해서 담아내는 장면도 필요할 수 있다. 카메라는 근본적으로 대상의 불안 또는 기쁨에 이입하지 않고 그저 관찰하고 수록하는 중립적인 매체이다. 하지만 대상을 ‘어떻게’ 담아내는지는 필연적으로 감독의 가치판단을 수반한다. 이때 감독의 시선과 태도는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고통을 다루는 영화라고 해서 타인의 고통을 그저 전시하고 때로는 미학화라는 명목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데다가 때로는 게으르기까지 하다. 반면, <레이디 버드>는 이미 성장한 자가 그 시기를 겪는 자를 관찰하는 데서 오는 불가피한 비윤리성을 인식하고 그 경계선을 넘지 않기 위해 매진한다.


  ‘철길 건너 구린 동네(the wrong side of the tracks)’에 사는 레이디 버드에게 새크라멘토는 녹록하지만은 않다. 엄마는 매번 야근을 반복하지만 아빠의 실직은 쉽게 메꿔지지 않고, 부자 친구들과 비교되는 집안 사정에 자주 위축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레이디 버드에게 새크라멘토는 얼마간 관대한 보금자리이다. 레이디 버드는 학교 선생님의 채점표를 몰래 버려버리지만, 선생님은 범인을 색출하는 대신에 양심에 맡게 본인이 받은 점수를 적어내라고 한다. 다시 떠올리기도 창피한 거짓말을 친구에게 들켰지만, 레이디 버드는 동네방네 거짓말쟁이로 소문이 나서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수적인 미션 스쿨의 성교육 시간에 임신 중단을 무조건 부도덕한 일이라고 서슴지 않는 강사의 말에 반론을 제기했다가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정학을 당하기도 한다. 이 마을에서는 아무도 하지 않는 생각을 혼자 품고 사는(혹은 그렇다고 스스로 믿는) 소녀에게는 새크라멘토는 마냥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절하게 벗어나고 싶은 곳이다. 엄마는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의 학비까지는 지원해줄 수 없다고 못 박은 상태라서 떠날 가능성도 희박하게만 보인다. 레이디 버드에게는 엄마인 매리언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사건건 트집 잡고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지 않아서 자주 부딪친다. 누구보다도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지만, 때로는 그냥 조금 멀리 떨어져 있고 싶기도 하다.


  <레이디 버드>는 흔히 가장 자의식이 과잉된 시기라고 여겨지는 십 대의 소녀를 다루고 있지만, 그 연출은 과잉된 감정이나 자의식을 극대화하는 대신 도리어 절제하면서 효과적으로 배가한다. 배우의 얼굴과 표정을 클로즈업해서 민망함이나 비참함, 슬픔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스크린 가득 전시하는 법도 없다. 그런 욕망이 들 법한 상황을 설정해 놓고도, 가상의 인물인 데다가 나이도 어린 이 주인공과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윤리적인 연출을 선택한다. 알고 보니 게이였던, 그래서 결국은 레이디 버드를 속인 것이 된 첫 번째 남자친구 대니와의 신(scene) 역시 그렇다. 레이디 버드는 대니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분노하지만, 자신의 비밀이 들킬까 봐 무서웠다는 그를 이해하고 결국 함께 울어준다. 영화는 자신의 속마음을 가감없이 표출하며 우는 두 소년∙소녀의 얼굴을 과시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들이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둘 사이에 새롭게 싹튼 신뢰와 우정을 암시한다. 레이디 버드는 카일과 엉망인 첫 섹스를 마친 후, 자신을 데리러 온 엄마의 얼굴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는 비참함, 죄책감, 후회, 민망함, 서운함 같은 것들이 북받쳐 올라왔을 레이디 버드의 얼굴을 포착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아마 미세하게 떨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레이디 버드의 다리를 내보이지도 않고, 서러움 울음소리를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으로 삼지도 않는다. 대신 일요일에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레이디 버드를 달래는 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사지도 않을 집을 함께 보러 다니는 모녀의 즐거운 일요일로 화면이 금방 전환된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특별하지만 평범한 레이디 버드, 혹은 모든 이의 소녀 시절을 조금이라도 더 윤리적으로 그리고자 한 고민의 연장 선상이다.


  알고 보면 레이디 버드와 엄마 매리언은 서로 무척 닮았다. 둘이 서로 닮았다는 사실은 대사로 직접 주어지기도 하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를 잇는 연출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사과하러 왔던 대니는 당황했기 때문인지 되려 레이디 버드에게 그녀의 엄마가 무섭다고 험담한다. 레이디 버드는 발끈해서 엄마는 따뜻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고 항변한다. 대니는 그녀의 엄마가 무서우면서도 따뜻한 사람이라고 결론지어버리고, 레이디 버드는 무서운 동시에 따뜻할 수는 없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레이디 버드는 대니를 몰아세우다가도 이내 그를 용서하고 위로해주기까지 한다. 곧바로 레이디 버드의 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신부님이 간호사인 레이디 버드의 엄마에게 자신이 우울증을 털어놓는 장면이 이어진다. 엄마는 신부님에게 비밀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그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연민한다. 영화는 ‘무섭지만 따뜻하다’는 얼핏 상반되어 보이는 말이 진실일 수도 있음을 레이디 버드와 엄마의 모습을 통해 증명한다. 레이디 버드와 그녀의 엄마는 때로는 신경질적이지만 강하고 따뜻한 사람, 즉 닮은 사람이다.


  졸업을 앞둔 레이디 버드는 학교 수녀님에게 그녀의 대학 지원 에세이에 새크라멘토에 관한 애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말을 듣는다. 레이디 버드는 그럴 리 없다고, 그저 관심을 가진 것뿐이라고 부정하지만, 수녀님은 관심과 사랑이 같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한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레이디버드는 프롬 드레스를 함께 고르던 엄마의 지적에 크게 상처받는다. 엄마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한다는 레이디 버드에게 엄마는 당연히 사랑한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레이디 버드는 자신을 좋아하냐고 되묻는다. 엄마는 쉽게 답변하지 못하고 네가 언제 어디서든 최고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어쩔 거냐는 레이디 버드의 말에, 수녀님 앞에서의 레이디 버드처럼 엄마의 말문도 막힌다. 닮은 두 사람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대면하자 똑같이 침묵에 잠긴다. 레이디 버드는 고향이 지긋지긋하기만 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깊이 사랑했고, 엄마는 레이디 버드를 몹시 사랑하지만 소녀의 지금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둘은 일견 반대되는 깨달음은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둘이 누구보다도 닮고 서로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에는 맞물리는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심과 애정, 사랑함과 좋아함 사이의 미묘한 차이 속에서 그들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관계는 앙금을 남긴 채로 멈춰버린다.


  엄마 몰래 지원했던 뉴욕의 대학에 결국 합격하면서 모녀 사이의 관계는 더 틀어진다. 자신이 반대하던 일을 슬쩍 저질러버린 레이디 버드에게 엄마가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레이디 버드와 대화를 내내 거부하고, 그녀가 뉴욕으로 떠나는 공항에 데려다줄 때도 게이트까지 배웅해주지도 않는다. 엄마가 뒤늦게 후회하고 울며 달려왔다는 사실을 레이디 버드가 알 길은 없다. 엄마가 자신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언제나 가장 많이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까지도 좋아하는지를 확신할 수 없는 채로 레이디 버드는 뉴욕에 도착한다. 이때 레이디 버드가 수녀님에게 자기도 몰랐던 새크라멘토에 대한 애정을 들키게 한 대학 에세이처럼, 아빠가 엄마 모르게 가방에 넣어둔 엄마의 부치지 않은 편지가 등장한다. 엄마의 내레이션으로 이 편지가 읽히고 레이디 버드가 펑펑 눈물을 흘리는 식의 효과적이겠지만 진부한 장면 대신, 그저 엄마가 편지에 쓴 문장 몇 개가 화면을 언뜻언뜻 스쳐 지나간다. 마지 못해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주기는 했지만 늘 못마땅해하고 심지어 비웃기까지 하던 엄마가 쓴 “레이디 버드라는 네 예명 참 예뻐.”라는 문장은 그 절제된 연출 속에서도 스크린 밖까지 잔상을 남긴다.


  뉴욕에 도착하고 엄마의 편지를 읽은 후에야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이름인 ‘크리스틴’이 꽤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주어진 것은 고향이든 심지어 이름이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열일곱 살 소녀에게도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거리’가 드디어 주어진 것이다. 떨어져야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는 법이듯이, 이제 레이디 버드에게는 고향과 엄마 모두를 사랑하는 동시에 좋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레이디 버드는 고향 집의 자동응답기를 통해 엄마에게 크리스틴이 참 좋은 이름인 것 같고, 사랑하고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아직 영화상에서는 엄마에게 도착하지 못한 이 메시지는 둘 사이의 관계 역시 성장하리라고 암시한다. 미숙해서 혹은 너무 사랑해서 서로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으며, 서로를 좋아하는 일이 가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하지만 누구보다도 서로를 좋아하고 싶어서 매번 삐걱대다가 멈춰버린 둘 사이의 관계도 비록 영화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내 움직이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새크라멘토에서도 “보기에 추한 것이 꼭 부도덕한 것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소녀는 뉴욕에서는 아마 더 자주 세상과 부딪칠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앞으로 성장할 엄마와의 관계가, 그리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무엇이든 성장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소녀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다. <레이디 버드>의 결말은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으로부터의 졸업, 또는 ‘크리스틴’과 ‘레이디 버드’ 사이의 화해와 같은 쉬운 말로는 봉합되지 않는다. 성장이 결코 완료된 후 닫히는 개념이 아니라고 믿는 감독 그레타 거윅은 엄마에게 소녀의 메시지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시점에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누군가의 소녀 시절을 전지적인 위치에서 하나의 분명한 결말로 종결하는 대신,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끝마치는 것이 더 옳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까지 <레이디 버드>가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성장영화의 윤리이다.



* 필자소개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조형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현상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같은 전공으로 석사에 진학하여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관심 분야는 페미니즘,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이다. 블로그(http://eunchaecho.tistory.com)를 드문드문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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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ness: 허구의 실체를 드러내다!

 



김혜란
(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영어를 주로 쓰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한국 디아스포라 학자의 어려움 중 하나는 번역이다. 특수한 사회적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와 이슈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많은 용어들이 있고, 그 용어는 특정 사람들의 경험을 표현하고 반영하는 그릇으로, 학문적 담론으로, 비판적 대중의 분석 도구로 쓰인다. 그런데, 그 용어를 다른 상황에서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이 번역이 요구된다. 많은 경우 번역이 쉽지 않다. 어떤 용어의 경우 번역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불가능하지 않아도 불충분한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번역되지 않은 원용어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한국의 토착신학인 민중신학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용어, “민중” 그리고 “한” 이 용어들은 영어권에서, 영어로 번역이 안되고 그냥 “Minjung” “Han”으로 쓰는 것이 그 예이다. 오늘 필자는 역으로 영어권에서, 특히 북미 영어권에서 만들어진 한 용어, whiteness에 대해 소견을 나누고싶다. 이 소견의 배경을 설명하려면 종교교육학회 이사회 퇴수회의 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해야한다. 그리고 초대 전, 종교교육학회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필요할 듯 싶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학회는 종교교육학회 (Religious Education Association, 이하 REA)이다. 1903년 실용주의 철학자이자 교육이론가였던 존 듀이를 포함한 시카고대학 학자들 중심으로 공적 신학교육을 표방하면서 기독교적 정신을 담은 민주주의적 평등교육을 지향하면서 이 학회는 만들어졌다. 미국에서 시작한 REA는 곧 이어 카나다학자들을 포괄했고, 지난 50년간 유럽 나라에 속학 학자들도 REA 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래서 존듀이와 창립멤버들의 의도와 달리 종교교육학회는 국제적 학회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미국 중심이고, 북미중심이고, 백인중심이고, 기독교중심이지만, 2016년 벨기에 출신 학자를 회장으로, 2017년엔 처음으로 이슬람 종교교육 학자이 여성이 REA 회장으로 당선되었고, 2019년 회장은 이스라엘의 한 대학 학장으로 있는 유대교 종교교육학자이자 랍비를 선출한 상태이다.

매년 11월에 있는 종교교육 학회는 주제가 있고, 그 주제에 따라 다양한 학술논문들이 발표되고, 특별한 강연을 포함해서 현장견학과 교육의 기회가 학회기간에 이루어진다. 2018년 올해 학회 주제는 “Beyond White Normativity” 이다. 매년 3월 이사회가 퇴수회로 모인다. 이 퇴수회에서 이사회가 하는 일 중 한가지는 바로 선출된 회장을 도와 그 다음해 있을 학회 주제를 심도있게 토론하고 그 주제에 맞는 교육적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지난 해 3월 이사회는 선출된 회장이 Whiteness 에 대해 다루고 싶다고 제안했다. 필자를 포함해서 유색인종 이사회원들과 이미 이 주제 관련으로 수업을 하고 글을 쓴 백인 이사회원들은 그 주제를 대환영했다. 그 때 유럽출신 전회장이 고개를 저으면서 질문을 던졌다. 이 회장은 벨기에 출신이고, 자신의 모국어와, 네덜란드언어와 독일어, 그리고 영어까지 4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소위 언어가 탁월한 학자이다. whiteness가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벨기에어, 화란어, 독일어 그 어느 언어로도 북미에서 말하는 그 뜻을 담는 번역이 안된다고, 그래서, 유럽권 학자들에게 흥미있는 주제가 못되니 whiteness 용어를 삭제하고, 다른 용어를 쓰자고 제안했다.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열띠고 긴장되는 토론이 벌어졌다. 결국, whiteness 라는 용어는 제외되고, 이 내용을 풀어서 white normativity 라는 용어로 주제가 정리되었다.

그 때 처음으로 난 whiteness를 한국말로 하면 어떻게 번역이 될까 궁금해졌다. 인터넷 구글로 ‘whiteness 한국어로’ 치니, ‘흼’이라고 나온다. 으악…전혀 그 의미가 아니다. 제대로 번역이 안 되어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그 의미까지도 한국사회에서는 소통될 수 없을까?

번역이 안되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이 문제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whiteness 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은 아니다. 이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번역이 완전하게 안되는 불가능성을 인지하고, 즉, 번역의 한계, 어떤 용어도 그 지식이 담고 있는 의미도, 그 용어가 탄생된 그 상황을 벗어날 때 갖게 되는 부분성(partiality)을 충분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충분한 한계를 상정하고, whiteness 그 의미를 한국말로 쉽게 설명하면, whiteness는 하나의 이념이고 권력과 특권을 말한다.[각주:1] 단지 개인적 힘이 아니라, 이념화된 제도적, 역사적, 식민주의적 그리고 구조적 권력을 말한다. 다시말해 whitnesss는 백인 개인을 가리키고 그들을 지칭하고 탓하는 용어로 국한되어선 안된다. 백인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자들이 지니는 특권 (white privilege)을 포괄하지만, whitenss는 백인 특권을 넘어서서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들 안에서도 발견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racialized whiteness). 즉, whiteness의 영향은 피부색깔의 농도로 인해 차별과 계급화 (hierarchy)로 그 폭력의 실체를 드러낸다. 우선 한국 안에서 벌어지는 예를 보면 이렇다.

한국에 수백만명이 넘는 이주 노동자들, 이주 결혼자들, 한국인이 아닌, 백인도 아닌 유색인종들이 많이 살고있다. 시골에 가면 한국사람들만큼 비한국인 (종족) 이주자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비한국인 비백인 이주자들이 겪는 삶의 고통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의 삶이 쉽지 않은 이유들을 따지자면 복잡하다. 언어, 문화의 차이, 종교적, 경제적 차이, 등 한가지로 정리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고통, 어려움의 원인 중 하나는 바로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일 것이다. 즉, 유색인종 이주자들은 그들이 백인이 아니어서 차별을 받는다. 더 나아가 피부색이 덜 진할수록 한국인들에게 차별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왜 한국인들은 어두운 피부색을 싫어하고, 피부색이 연한 걸 선호하는 것일까? 왜 미국 흑인 출신을 폄하하는 용어가 한국말로 검둥이, 피부색깔로 표현되었을까? 왜 이런 인종차별적 언어가 피부색깔을 지칭할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자성적으로 바라보기를 바람으로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한국사람으로서 난 한국사람만큼 피부를 태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등산을 가고, 여행을 가고, 자연으로 나가는 것은 좋지만, 피부색이 햇볕에 그을리는 것이 싫어서 만들어진 상품들을 보면 한국사람들의 기발한 발명정신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완벽하게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창을 두른 모자, 목피부를 감싸주는 수건, 팔 전체를 두르는 이상한 밴드, 가능하다면 햇볕에 닿을만한 모든 피부를 완벽하게 덮도록 동원된 이 발명품들은 각양각색이고 보편화, 대중화되어 있다. 이 발명품들은 한국이 아닌 카나다 록키산을 가도 보이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가도 보인다. 국제도시 어디를 가도 한국여행객들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국사람들이 입고 차고 두르는 오색찬란한 햇볕가리기 의상때문이다. 피부암이 두려워서일까?

햇볕가리기 상품을 넘어서 화장품이야기를 해보자. 매년 개발되는 화장품을 보면, “백미” (피부가 하얗게 되어 아름다워지는)를 가능하게 한다고 선전하고 그 원료 (백미원료가 있는가?)가 가미되어 있다고 선전하는 화장품들이 있다. 아니 번역도 안하고, 바로 화이트닝(whitening)라는 이름이 붙여진 기능성화장품도 비일비재하다. 이 화장품을 볼 때마다 정말 피부를 연하게 해준다고 믿고 이 상품들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상품을 팔고자 하는 기업의 욕구를 읽지 못하고, 그 광고에 유혹을 당해 이런 제품을 사는 한국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많은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니, 한국화장품이 국제적으로 좋다고 알려져 수출이 되는 이 상황에서 백인 이 아닌 피부색이 진한 비한국인들에게도 이 화이트닝 화장품 선전이 구매욕구로 이어질 지도 모르겠다. 난 바로 이런 예가 유색인종들 안에도 존재하는 whiteness이고, 그 힘이 발휘되는 예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넘어서 whiteness 와 racialized whitenss 에 대한 국제적 예를 한가지만 들어보자. 르완다 종족말살 사건이 그 예이다. 르완다 학살을 모르는 분들은 최소한 영화 ‘호텔 르완다’를 볼 것을 추천한다. 그 영화에서 그렸던 것처럼 1994년 약 100일 동안 거의 백만명에 달하는 투치종족이 살해된다. 수년에 걸쳐 육백만명의 유대인과 다른 소수자 (유색인종, 장애인, 성소수자 포함)들이 나치에 의해 살해된 것을 생각해보면,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살인이 일어난 최악의 폭력으로 르완다 종족학살을 꼽는다. 이 학살의 요인은 비한국이주자들의 고통, 차별, 억압의 엉켜있는 고리처럼 복잡하다. 탈식민주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한가지로 딱 부러지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사회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국내적, 국제적 관계들이 연관되어 쉽게 말할 수 없다. 르완다 문제도 그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 이는 바로 르완다를 정복했던 독일과 벨기에 식민주의 정책이다. 식민주의 지배 논리는 바로 피부색이 연한 투치족을 후투족보다 선호한 정책이었다. 이것이 바로 또다른 racialized whiteness이다. 공공연하게 피부색이 연한 것을 인종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표방했다. 백인이 가장 우월하고, 백인처럼 피부색이 연한 종족이 우월하므로 그들이 정치를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논리가 그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투치족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렇게 유럽식민주의자들은 투치족을 식민지배의 꼭둑각시로 이용했고 후투족을 무시하고 차별했다. 이들의 이른바 분열정복 정책(divide and conquer)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1962년 독립까지거의 100년간 지속되었다. 탈식민주의 국가가 된 르완다는 1960년 이후 종족간 갈등이 내전으로 이어졌고, 식민주의하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았던 후투족의 세력이 커지면서, 94년 종족말살의 대학살로 이어진 것이다.

단지 멜라닌 색소의 농도차이로 나타난 피부색의 다름이 이렇게 끔찍한 폭력을 양산한다고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황당할 뿐이다. 피부색의 차이가 차별과 억압, 계급화를 정당화시킨다는 사실만큼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부정의한 논리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되는 비상식적인 논리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 즉 생물학적 사실 (fact)도 진리 (truth) 도 아닌 이 허구의 실체 (이데올로기)가 사실은 근대 유럽 식민주의를 가능하게 했고 수백년간 그렇게 성공적 지배와 착취를 가능하게 한 가장 무시무시한 도구였다. 아니 2018년 오늘 우리 사는 지금도 이어지는 지배의 구조적 이데올로기고 허구의 실체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벌어진 대서양 노예 무역정책 (Atlantic Slavery), 즉, 아프리카대륙에 있던 흑인들을 유럽으로 북미, 남미, 중미, 그리고 카리비안 지역으로 강제이주시키고, 노동력을 착취한 정책은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말하면, 피부색깔 농도에 의한 차별정책이었다. 백인이 가장 우월하고, 그 다음은 황인종, 적인종 (원주민),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출신 흑인종을 가장 열등한 존재, 아니, 인간이하의 존재 (동물에 가까운)로 그려낸 그 이론은, 사실도 진리도 아닌 허구지만 물질적 문화적 실체가 되었다. 허구적 이데올로기가 지식으로 양산이 되었고, 물질화되었고 자본화되어, 극도의 이윤을 창출했고, 인권은 침탈되었고, 그렇게 유럽식민주의는 부를 축적했다. 20세기 두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최고의 제국주의으로 등장한 미국역시 흑인들을 노예화하지 않고, 철저한 노동착취와 차별을 자행하지 않았다면 현 21세기 최대 강대국으로 그 세력을 계속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차별은 단지 경제적 자본주의적 착취만이 아니라 문화적 심리적 억압을 포함한다.[각주:2] 물론 무기를 팔고, 세계를 군사화시킨 그 효과도 크다.

이 말도 안되고 어이없는 비인간적 피부색 차별정책, whiteness의 실체는 철저하게 연구되었고, 과학자 (다윈), 인류학자, 고고학자, 철학자 (볼테르, 칸트, 쇼펜하우어, 헤겔, 슐라이에르마허들까지 동원되어 객관적(?) 이론으로 정립되었다.[각주:3] 특히 철학자들의 whiteness 이론이 신학과 성서해석에 영향을 미친 것을 보면 기독교를 유럽식민주의 미국제국주의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가 잘 아는 아니 심지어 존경하고 학교에서 배웠던 과학자, 철학자, 신학자들이 이런 글을 쓰고 설교를 하고 교육을 한 것을 아는 것이 충격이다. 배신을 당한 것처럼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황당하고 화가 난다. 그 황당함, 그 분노, 그 짜릿한 감정적 반응을 잊지 말자. Whiteness는 이데올로기이지만 그래서 보이지 않는 괴물처럼 좀비처럼 잡히지 않을 수 있기에, 감각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 허구지만, 아프면 바로 반응하는 피부와 직결되어 있다는 걸 기억하자. 피부가 햇볕에 심하게 그을리면 빨개지고 열이 나고 아프다. 그 아픔처럼 whiteness의 폭력을 그 허구적 실체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인종의 문제, 식민주의의 문제, 이주의 문제를 이론화하는 노력으로 사라 아메드는 피부, 우리 몸의 제일 외부에 존재하는 피부가 home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home은 단순하게 집이 아니라, 고국이기도 하고, 정체성이기도 하고, 동시에 기억이자 상실 (이주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다. Home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복잡하다. 번역이 충분히 안되는 또 하나의 용어이다. 낯선 환경 (고통, 소외, 차별의 경험)을 만났을 때 우리 몸 중에 가장 외부에 존재하는 피부, 우리 몸을 보호하는, 동시에 우리 정체성을, 우리의 다름을 각인시키는, 그 피부, 그래서 때로는 지워버리고 싶은 피부, 그러나 우리의 한 부분인 피부가 바로 home이다. 그 피부가 느끼는 그 경험에 관심을 두는 일이, 인종, 식민주의, 이주의 문제를 이론화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각주:4]

유색인종인 우리 안에 잠재한 racialized whiteness 허구의 실체, 폭력의 잔인함을 자성하고 인식하고 거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얼굴을 씻고 거울을 볼 때마다 (고백과 회개의 의식) 이 실체를 드러내는 일을 하면 어떨까? 그리하여 이제 햇볕이 따스해지는 4월, 뜨거운 여름을 앞두고, 햇볕가리기를 사용하게 될 때, 백미, 화이트닝화장품을 구매 (또는 거부?)하고 사용할 때마다 각자의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의 장에서 허구의 실체인 whiteness를 드러내길 바란다.


ⓒ 웹진 <제3시대>



  1. Daniel Coleman, White Civility: The Literary Project of English Canada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2006), 7-8. [본문으로]
  2. Cornel West, Prophesy Deliverance! An Afro-American Revolutionary Christianity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2), 50-59. [본문으로]
  3. Shawn Kelly, Racializing Jesus: Race, Ideology, and the Formation of Modern Biblical Scholarship (New York: Routledge, 2002). [본문으로]
  4. Sara Ahmed, Strange Encounters: Embodied Others in Post-Coloniality (London/New York: Routledge, 2000), 91. [본문으로]
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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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과 에머슨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함석헌을 철학의 이름으로 생각하게 된 동기를 내게 처음 제공한 것은 미국의 에머슨(1803-1882)이었다. 19세기 미국의 제일 중요한 사상가라 할 수 있는 에머슨은 그와 오랜 친분을 유지했던 후학 소로우와 더불어 미국적인 학문의 터를 닦았다. 한때 함석헌과 에머슨의 글을 동시에 읽기도 하면서 내린 결론은 두 사상가 사이에 유사함이 많다는 것이고, 그 유사함의 일부는 철학적이란 것이었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살았던 시대도 달랐던 두 사상가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결론만을 도출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담을 감수하면서 두 사람을 연결해보는 이유는 함석헌이 서구사상과 맺은 인연이 주로 에머슨과 같은 낭만주의의 사상가들과의 교감 속에서 이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함석헌이 자주 언급하는 서양의 인물들의 이름을 나열해보면 알 수 있고, 이는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겠다). 여기서 에머슨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미국의 사상에 끼친 영향,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이 유럽의 정신적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상적 독립의 발판을 마련했던 그의 역할이 바로 함석헌이 한국 사상의 독립을 위해 자처했던 역할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미국 내에서 에머슨의 그런 역할이 미국학문의 전통을 가능케 한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함석헌이 남긴 정신적 유산에 대한 평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함석헌은 에머슨에 대해 많은 말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주로 동시대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이나 에머슨과 콩코드라는 마을에 함께 살았던 소로우와 함께 언급된다. 함석헌이 소로우의 유명한 <시민불복종>이란 글을 한국어로 번역까지 한 것에 비하면 에머슨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함석헌은 이 세 사람을 미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들로 이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함석헌의 글에는 미국의 정체성을 이들과 연관 지어 언급한 내용이 있다. 에머슨, 소로우, 휘트먼이 아니었다면 ‘미국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미국의 어떤 면이 가능했고, 미국을 가능케 만든 사상적인 조건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또 에머슨은 빠졌지만 <월든>을 쓴 소로우와 <풀잎>의 저자 휘트먼이 없었으면 ’미국은 더 썩었을 것’이란 주장도 했다. 큰 맥락에서 에머슨의 이름을 포함하여 이해해도 무리는 없어 보이는 주장이다. (함석헌이 미국을 어떤 나라로 생각했기에 그들의 사상이 아니었다면 미국이 더 썩었을 것이라 했는지는 다른 각도의 분석이 필요하다). 함석헌은 이들을 ‘야인’이라 불렀다. 이들이 야인이라면 함석헌과 추구했던 인간성에 부합하는, 즉 함석헌적인 인물들이 된다.


    실제 에머슨과 소로우가 없는 미국의 사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함석헌이 19세기 중반에 완성된 이들의 사상이 미국의 본질적인 모습을 담아낸, 미국을 대표하는 학문으로 이해했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함석헌이 살았던 20세기에 미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평가받던 인물은 존 듀이(1859-1952)였다. 듀이를 에머슨과 소로우나 휘트먼 같은 인물의 반열에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잠시나마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을 완성시켰고, 진보적인 사회개혁에도 큰 관심이 있었고, 실험적인 학교까지 세워 교육이론을 펼쳤던 듀이는 함석헌의 사상적이고 실천적인 행적과도 괘를 같이 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듀이는 함석헌이 미국을 처음 방문하기 10년 전에 이미 사망했지만, 그의 명성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세계적인 것이었다. 듀이는 동아시아에서도 유명했다. 그는 1919년 봄 두 달간 일본을 방문해 동경제국대학에서 강연을 했고, 그 내용은 <철학의 재건>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그의 중요한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듀이는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대신 그의 콜롬비아 대학 제자였던 호적의 초청을 받아들여 중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2년이란 긴 시간으로 보내면서 많은 강연을 했고, 특히 5.4운동으로 고조된 중국의 사회개혁과 교육개혁을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 가운데 그의 존재는 큰 화제가 되었다. 1919년 북경에 머물던 듀이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로부터 한국방문을 요청받고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도 했었다. 미국을 여러 번 방문했고, 미국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관심이 컸던 함석헌이 듀이를 몰랐다고 보긴 힘들다. 함석헌은 1962년 첫 미국 방문 때 하버드 대학의 은퇴 교수였던 철학자 Ernest William Hocking을 만났다. 그는 윌리엄 제임스의 제자였고 훗날 듀이와 철학적인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고, 한때 듀이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는 철학자란 평가도 받았던 사람이다. 큰 틀에서 듀이와 마찬가지로 실용주의의 시각으로 유럽의 철학과 대화를 이어갔던 미국의 철학자였다. 함석헌은 Hocking 교수와의 만남과 소감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만약 듀이가 그때 살아 있었다면 미국 국무성에서 함석헌과 듀이가 만나 미국의 정신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도록 주선하지 않았을까 상상도 할 수 있다. 듀이에 대한 함석헌의 침묵이 의도적인 것이었다면 미국의 정신을 대변하는 사상가로 듀이가 아니라 에머슨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실은 미국의 실용주의에 대한 함석헌의 판단일 수도 있다. 특히 실용주의가 기술주의로 흐르는 경향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가능성이 생긴다. 20세기 중반 미국이 썩었다는 함석헌의 판단도 에머슨과 소로우가 꿈꿨던 이상적인 미국은 사라지고 자본주의와 결탁한 기술과 폭력의 문화가 팽배한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다.


    에머슨과 듀이를 좀 더 연결시켜 보자. 미국 내에서도 최근까지 에머슨의 학문적 유산을 철학적인 것이라 보는 시각은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낭만주의 학풍의 에세이 형식의 글을 썼고, 자립적인 인간이해를 통해 미국의 독립정신을 표현해냈고, 시를 쓰기도 했고, 미국 실용주의의 동기를 제공했고, 당시 많은 문인들과 교류했다는 등의 이력이 그를 이해하는 주된 관점이었다. 문학적인 사상가로도 미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부각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에머슨을 니체와 하이데거와도 연결시키며 독창적인 철학적인 작가로 부각시킨 사람은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이라는 미국의 철학자다. (지식사의 사적인 연결점들에 대해 비교적 관심이 많은 나에게도 니체가 에머슨의 책을 항상 들고 다녔고, 반복해 읽으며 밑줄을 긋고 여백에는 극찬의 감탄사까지 남겼을 뿐 아니라 글의 스타일까지 모방하려 했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동을 넘어 충격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 에머슨을 철학적인 사상가로 부각시킨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존 듀이였다. 1903년 시카고 시절 그는 “Emerson: the Philosopher of Democracy”(에머슨: 민주주의의 철학자)란 글을 썼다. 듀이는 에머슨의 글을 어떤 철학으로 이해했을까? 에머슨에 대한 듀이의 평가는 함석헌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듀이의 글을 들여다보자(이 글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듀이는 에머슨의 글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를 잘 알고 있었다. 듀이는 에머슨에 대해 철학적이라고 하기엔 논리가 약하다는 평가를 논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비판했다. 듀이에게 논리는 논증의 도구만이 아니라 직관의 반응을 구하는 논리가 있을 수 있었고, 침묵마저도 논리의 양식이 될 수 있었다. 에머슨은 ‘말’이 의미를 축소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침묵이 말을 부끄럽게 만드는 순간들에서 사유의 동기를 찾았다. 에머슨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방법론을 묻거나 그가 발전시킨 논리의 형식을 묻기 전에 그의 글에 담겨 있는 그만의 논리와 방법을 깨달아야 했다. 또 에머슨을 철학자라 부르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에머슨이 철학 이상의 학문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머슨은 형이상학자가 아니라 시인으로 철학을 했고, 반성적인 사유가 아니라 창조적인 사유를 했다. 이성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사유를 했던 에머슨에게 철학은 ‘아직도 거칠고도 기초적인’ 상태에 있었다. 에머슨은 미래의 철학을 시인들이 가르칠 것이라 예고했다. 그에게 철학자는 믿을 이유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지만 시인은 믿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철학자와 시인 사이의 분쟁은 고대 희랍의 철학과 함께 시작했다. 형이상학과 예술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내는 글을 써온 에머슨은 그 분쟁을 19세기에 재현해냈다. 에머슨에게 철학과 문학의 방법론적인 구분은 인위적이고 유치한 것이었다. 에머슨이 문제 삼은 것은 정신이었다. 그 정신의 본질은 새로움에 있었다. 이전 시대의 지치고 낡은 원칙의 한계를 파헤칠 지식인을 찾았고 타성에 젖지 않은 새로운 사유를 찾았다. 에머슨이 추구했던 철학은 시스템이나 방법론에 얽매이지 않고, 삶에 정직하고 일상의 경험에 충실한 철학이었다. 그는 모든 위대한 사상이 결국 보통 사람들에게 익숙한 경험을 설명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요구했고, 모든 사상의 대한 판단의 기준이 일상의 삶 속에 있음을 설파했다. 그에게 모든 진리는 일상에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논리의 싸움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철학이나 자신의 생각을 체계화 시키려는 철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에머슨은 교리나 제도, 관습이나 체계적인 것을 싫어했고, 철학과 종교, 예술과 도덕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것들을 되돌려놓고자 했다. 신학과 형이상학의 기술과 속임수로 인해 감춰진 진리의 단순함을 찾고자 했다.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이해할지 고민했다. 그를 실패한 개혁자, 지혜의 철학자, 또는 덕의 삶을 가르친 선생으로 보는 등 다양한 시각이 있었다. 오늘날 플라톤의 글에서 체계와 논리의 철학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해석의 역사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듀이는 에머슨 철학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석의 역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듀이는 20세기가 에머슨에게 그런 역사를 제공할 것이고, 역사는 결국 에머슨을 민주주의의 철학자로 기억할 것이라 예언했다. 20세기에 민주주의가 사상적인 자기표현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에머슨에게서 찾을 것이란 예언이었다. 듀이가 말한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맛서는 이념적인 제도가 이니라, 일반 대중의 경험이 사유와 판단의 기준이 되는 정신적인 평등이라는 에머슨적인 이상을 말한다.


    19세기 미국에서 제일 중요한 사상가였던 에머슨과 20세기에 그 역할을 맡았던 듀이의 관계는 미국의 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듀이의 사상에 에머슨이 얼마나 어떻게 반영됐는지, 에머슨의 사상에서 듀이의 실용주의 철학의 뿌리를 얼마나 찾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듀이가 에머슨의 사상을 철학으로 이해하고 옹호하려 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듀이는 에머슨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던 해석의 역사를 직접 참여했다. 듀이에게 미국의 철학은 미국이 추구해온 가치나 이념과 분리될 수 없었고, 에머슨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미국의 철학이 논리의 놀이터가 아니라 역사와 사회와 함께 발전한 정신사의 산물임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머슨에 대한 듀이의 평가를 함석헌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듀이의 글 곳곳엔 에머슨 대신 함석헌의 이름을 넣어도 이해가 될만한 문장들이 있다. 듀이가 제시한 논리와 방법의 한계, 시와 철학의 경계에 대한 성찰, 일상의 경험이 기준 되는 철학은 분명히 함석헌의 철학을 위한 논변으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듀이는 에머슨의 철학을 말했지만, 그 내용을 철학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그 작업은 앞서 언급한 스탠리 카벨이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해왔고, 카벨의 이름은 앞으로 더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함석헌과 에머슨 사이에 비교가 가능한 부분을 몇 가지 언급해보자.


    약 100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지구 반대편에서 각각 태어난 두 사람의 사상은 기독교 신앙에서 출발했다. 에머슨은 교회의 낡은 교리를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는 양심의 이유로 3년간의 목회를 그만두었다. 특히 교리나 관습에 따라 성만찬을 집전할 수 없다는 게 사임의 직접적인 이유였다. 함석헌은 예수의 대속이란 교리를 자유로운 인격이 받아드릴 수 없다는 이유로 이단의 길을 걷기로 작정했다. 그 후 두 사람이 각자의 언어로 발전시킨 사상은 ‘스스로’, ‘자기 신뢰’, ‘자유로운 인격’과 같은 인간이해를 기초로 한 것이었다. 인간은 그들에게 제도와 관습이 묶어놓을 수 없는 생각하는 영적인 존재였다. 에머슨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은 자아를 찾았고, 함석헌은 문명에 가려진 야성의 영성을 찾았다. 에머슨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생각의 사람’(Man Thinking)이었고, 함석헌은 좀 더 집단적인 ’생각하는 백성‘이었다. 철학의 사유를 “창백한 생각”(Pale cast of thought - 에머슨이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햄릿 대사)에서 벗어나 생각의 조건인 일상에 대한 반성으로 되돌리려는 노력도 하나의 공통점이다. 자연과 일상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회의주의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함석헌은 한국의 정신을 가로막는 숙명적인 세계관이 있음을 경고했고 이를 극복할 삶의 자세를 믿음이라 했다. 에머슨이 미국을 약속과 미래와 새로움의 언어로 이해한 이유는 미국이 유럽의 낡은 제도와 교회의 교리가 낳는 억압적인 자아의식을 극복할 사명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모두 퀘이커의 영향을 받았고, 한때 힌두교에 심취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퀘이커주의의 영향 때문인지, 두 사람 모두 공중기도를 싫어했다). 함석헌과 에머슨을 함께 생각할 근거를 말하면서도 기억해야 할 차이점이 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에머슨과 개인과 전체가 긴장관계 속에서도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했던 함석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또 에머슨이 당시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사회운동에 직접 참여했다고는 할 수 없는 반면에 저항과 참여정신을 배제한 함석헌의 사상은 생각할 수 없다. (함석헌과 에머슨을 함께 읽는 글은 1회 더 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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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도 함께 "미투"[각주:1]


조영관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가 진실의 햇빛 아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상처받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또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와 이어지며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견고한 장벽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 모든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관계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오랜 시간 동안 뿌리내렸던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인 권력구조가 가해자에게 압도적인 권력을 주었고,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침묵을 강요해왔다. 지금 드러나는 수많은 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된 가장 큰 이유다.

같은 이유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피해자가 여기에도 있다. 한국에 머무는 많은 이주여성이다. 얼마 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실시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12.4%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농촌 노동의 특수한 문제는 아니다. 식당, 공장에서도 여성 이주노동자에 대한 성희롱, 성폭력은 빈번하다. 혼인이주 여성의 성폭력이 동반된 가정폭력도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성폭력 사건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이주여성들은 공장, 가정, 학교 등 공간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외부기관의 조력을 받기 쉽지 않다. 또한 성폭력 피해에 대처할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 무엇보다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져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이 언어의 부담 없이 자국어로 소통하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대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통합 지원 기관의 설립과 경찰·검찰·법원의 사법적 지원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후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처음부터 이주여성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다. 우리나라의 출입국 정책에 따르면 이주여성은 너무도 취약한 지위에 놓여 있다. 한국 사람과 결혼한 이주여성은 매번 자신의 체류자격을 연장하려면 한국인 남편이 함께 출입국관리소에 동행해야 한다. 두 사람이 진정한 결혼생활을 계속하고 있는지를 심사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진정한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정부 기관이 심사한다는 것도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이러한 심사를 처음 혼인신고 이후에도 매년 반복해야 한다.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해도 “신고하면 출입국관리소에 같이 안 가준다”는 말 한마디에 수년 동안 피해를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일터에서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금의 제도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사장이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자격을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는 사장이 싫어도 사업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예외적인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사장의 허락 없이 사업장에서 이탈하면 그 순간 ‘불법체류자’가 된다. 사장이 가진 권한은 막강하지만, 책임은 거의 없다. 제대로 된 잠금장치도 없는 낡은 비닐하우스가 이주여성 노동자의 숙소이며, 그마저 사장은 여성 노동자의 숙소를 제멋대로 들락날락한다. 이런 숙소를 제공하고 월급에서 매달 20만~30만원씩 깎는다.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른 것이라니 할 말이 없다. 이런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사장의 온갖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이다.

한 인간이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정부에서 만든 제도가 이주여성을 열악한 사각지대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만든다면,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지속해서 은폐될 수밖에 없다. 어떠한 법과 제도도 사람을 누구에게 종속된 존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뒤늦게나마 그동안 감추어진 여성들에 대한 폭력의 역사를 햇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게 한 위대하고 용감한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어느 곳에서 눈물 흘리는 피부색 다른 이주여성에게도 울림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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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042116005&code=990100#csidxe0aca3183569570a5e3c65bcd2b0a41 이 글은 경향신문 칼럼 2018. 3. 4에 동일한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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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해선 안 되는 불편한 진실



심범섭*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수훈에서 예수는 이런 말을 한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7장 6절). 개와 돼지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마음에 느끼는 심한 불편(당황)을 달리 해소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곧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거나 자신이 감당(소화)할 수 없는 것을 마주쳤을 때에 느끼는 불편을 성숙한 방식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어 이를 폭력적으로 표현하고 마는 것이다.

영국 작가 프레드릭 포사이드(Frederick Forsyth)가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Opera)>에 바탕하여 쓴 일종의 속편 소설 <맨해튼의 유령 (The Phantom of Manhattan)>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에릭(Erik)은 태어나면서부터 얼굴의 일부가 심히 일그러진 사람이라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젊은 시절 어느 날 밤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불량배 몇 명과 만나 시비에 휘말리는데, 어느 순간 그의 가면이 벗겨지고 불량배들은 그의 추한 얼굴을 보게 된다. 이때 이들은 반사적으로 에릭을 두들겨 패기 시작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 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들이 에릭을 얼굴을 보고 폭행을 시작한 동기에 대해 소설의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추한 것은 악한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이 깡패들은 에릭의 비정상적인 얼굴이 주는 불편함을 감당할 수 없었고, 이러한 불편함을 일으키는 대상은 악한 것이라고 즉각적으로 반사적으로 판단했고, 이 판단이 일으키는 거친 감정(아마 공포도 포함하는)을 해결할 방법으로 폭력행사 이외의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예수의 말에서 개와 돼지가 야만적인 불편반응을 보이는 대상과 포사이드의 소설에서 불량배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대상은 일반적인 인식에서 그 평가가 상반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진주는 좋아하고 심히 훼손된 얼굴은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이 일반적으로 좋거나 나쁘게 평가 받음을 떠나 무엇이든 그것을 마주친 사람에게 불편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이러한 난폭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예수의 말에서 개와 돼지는 먼저 좋은 선물 자체를 "발로 밟"아 무시하고 그것으로는 분이 안 풀려 그 다음에는 이 선물을 준 사람을 난폭하게 공격하기까지 한다. 이 두 단계는 모든 미성숙한 불편 반응에 적용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신약성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 강도 만난 사람이 길에 쓰러져 있었는데 제사장이 그를 보고 길 반대편으로 그냥 지나쳤고 그 다음에 레위인도 그를 보고 똑같이 행동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10:30-31).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불편한 상황을 만나자 이 상황을 그냥 무시하기로 마음 먹은 것인데, 이는 성숙하지 못한 불편반응의 1단계를 예시한다고 할 수 있다.

못된 불편반응의 2단계까지 나아가는 예로서 이런 것은 어떠한가? 서울의 모 신학대학원에 다니던 사람으로부터 수 년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한 교수가 자기가 번역 출판하고자 하는 영어원서를 대학원생 몇 명과 함께 번역해 보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모임에서 교수가 어떤 대목을 번역하는데 이 학생이 보기에 잘못 옮기고 있어서 교수에게 이리이리 번역하는 것이 맞다고 일러주었다. 그러자 그 교수는 화를 내면서 자기 의견이 맞다고 우겼다. (이 학생은 이 순간 다시는 교수의 오역을 바로 잡아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다른 학생도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오역이 지적 받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가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학생의 의견을 받아들였겠지만 그러지는 못 했는데, 그래도 불편반응의 1단계까지만 가서 그냥 학생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문제는 의견 일치가 안 되니 더 생각해 봅시다"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그는 이 정도도 못 할 정도로 마음이 비좁은 위인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 자신은 과연 이 두 단계 반응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어떤 것을 마주쳤을 때 그것을 제대로 알려고 하기보다 단지 불편한 것이 싫어 그것을 은근슬쩍 무시하고 외면하는 일이 없는가? 더하여, 불편반응 2단계까지 나아가, 비록 예수가 말하는 개와 돼지처럼, 그리고 바로 앞에서 예로 든 신학교 교수처럼 난폭하게 반응하지는 않더라도, 불편하게 하는 대상 또는 제3자에게 경미하나마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는가? 인간은 사실 편안함에 깊이 중독된 존재라 이러한 철없는 반응에서 완전히 자유롭기가 어렵다.

그런데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대상 가운데 어떤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불편한 진실"이라는 표현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진실이라는 중요한 것일 때가 있으며, 이 불편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큰 어리석음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진실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정신 차리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권침해의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미투 (ME, TOO) 운동"이 전개되면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들의 고통을 말하고 있고 이에 온 사회가 충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이 드러내는 진실이 초래하는 불편에 대해 이런저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안희정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폭로 이후 "김지은과 함께 하는 사람들 성명서"를 발표한 사람들의 반응은 성숙한 반응으로 보인다. 그들은 사안의 중대함을 인식하고, 자신들이 과거에 성폭력을 묵과한 점을 반성하고, 김지은씨를 비롯해 모든 피해자와 함께 하겠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그들은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이 문제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펜스 룰(Pence Rule)"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펜스 룰은 현 미국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가 2002년 미국 의회 전문지 <더 힐 (The Hill)>에 밝힌 것으로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고 아내가 옆에 없으면 술자리에도 가지 않겠다"는 규칙이다.[각주:1] 성적인 차원에서 오해를 받거나 유혹을 받을 상황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원칙인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회식이나 출장에서 여성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식으로 번지고 있다"[각주:2]고 한다. 이런 반응은 이 글에서 언급하는 미성숙한 불편반응 2단계에서 1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반응, 곧 드러난 진실을 간과하고 무시하는 반응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간 것으로 판단되는, 미련하고 난폭한 불편반응도 만나게 된다. 얼마 전 민주당 소속 부산시 시의원 출마자가 미투 운동에서 나온 성폭행 폭로에 대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SNS에서 저열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고 당에서도 제명 당했다.) 홍준표가 3월 7일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에게 안희정 사건에 대해 "임종석이 기획했다는 얘기가 있던데"라고 말한 것, '세계여성의날'인 3월 8일 자유한국당 성폭력근절대책특위 위원장인 박순자가 "우리에게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들은 거의 터치나 술자리 합석에서 있었던 일들이지, 성폭력으로 가는 일은 없었다"고 말한 것은 어떠한가? 이들의 말은 정치적인 계산이 포함되어 있어 민주당 시의원 출마자의 말보다 그 의미구조가 더 복잡하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이고 분별력 없으며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그 본질이 같다고 여겨진다.

(사실 이렇게 미성숙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애당초 인권침해의 고통에 대해 불편한 느낌이 있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들에게 불편한 것은 인간의 억울한 고통이 아니라 이것이 사회문제가 되어 초래되는 현실적인 제약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어리석음이 엄존하는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해져서 인권침해라는 진실의 불편함에 더 현명하게 반응하고 더불어 인권침해를 더 예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다양한 주제로 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나는 여기에서 다소 원론적으로 들릴 수 있는 두 가지 노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이 가운데 한 가지는 3월 10일 경향신문에 실린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본부장의 인터뷰에 나오는 말에서 예시된다. "실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미투 폭로 이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심각하다"라는 기자의 말에 그는 이렇게 응답한다.


미투는 드라마 소재가 아니다. 개인끼리의 농담마저 막을 수는 없지만 농담에도 정도가 있다. 남성들이 피해여성의 입장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적어도 내 딸이나 내 아내가 피해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라도 생각해봐야 한다. 미투는 남성·여성을 떠나 자신의 문제로 봐야 한다. 그러면 함부로 2차 피해를 입히지는 못할 것이다.[각주:3]


여기에서 이지문 본부장은 남성들에게 "내 딸이나 내 아내가 피해자"라고 가정하면 피해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말한다. 내 식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의 구체성에 되도록 가까이 가려는 "상상적 이해"를 시도해 보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적 이해의 시도 및 훈련은 이미 일어난 고통을 이해하는데, 그리고 앞으로 같은 고통이 발생하는 것을 더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밤(Martha Nussbaum, 1947~ )은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Not for Profit: Why Democracy Needs the Humanities)"라는 강연에서 성숙한 민주시민을 기르기 위해 세 가지 차원, 곧 철학과 역사와 예술 차원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가운데 예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는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상상하는 능력이 키워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각주:4] 우리 사회에서도 예술을 통한 상상 교육, 공감 훈련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권침해의 고통에 더 지혜롭게 대처하고 더불어 이를 더 잘 예방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경주해야 할 또 다른 노력은 인권침해라는 폭력이 왜 나쁜 것인지를 깊게 고찰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철학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은 <서양철학사>에서 중세에 가톨릭 교회가 막강한 힘을 누렸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진단도 제시한다.


교회가 싸워야 했던 전통으로 로마와 게르만 전통이 있었다. 로마 전통은 이탈리아에서, 특히 법률가 사이에서 가장 강했고, 게르만 전통은 야만인들을 정복함으로써 태어난 봉건 귀족에게서 가장 강했다. 그러나 여러 세기 동안 이 두 전통 가운데 어느 것도 교회에 성공적으로 맞설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 못 했다. 그 주된 이유는 이 전통들이 적절한 철학(adequate philosophy)으로 구현되지 못 했다는 사실에 있다.[각주:5]


러셀은 이런 견해를 밝힌 다음 왜 적절한 철학을 마련하는 것에 힘이 있는가를 전혀 설명하지 않고 다른 화제를 도입한다. 하지만 러셀이 철학을 이렇게 중시하는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한 깊고 견실한 철학(사상, 이론)은 그 문제에 관련된 경험들을 언어로 명확히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며, 인간이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데 필수적인 '이유'와 '명분'을 제공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 사회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통해 심오하고 견고한 철학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과 예방하기 위한 교육에 모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각주:6]

불편한 진실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 가운데 어떤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권침해의 고통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며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가 지금 이를 그냥 짓밟고 묻어버린다면 지금의 어린 세대가 나중에 우리에게 '당신들은 비겁한 어른들이었다!'고 욕할 것이다. 그리고 신과 역사가 우리를 이렇게 저주할 지도 모른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 .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마태복음 25:26, 30).


    * 필자소개  

영어강사. Rice Univ 언어학 박사(Ph.D) 후에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과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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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tip.daum.net/question/102379210 [본문으로]
  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082056015&code=990100#csidx60c9a8d011fb757999cfe9a4577136d [본문으로]
  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101114001&code=940100#csidx234c576532f7409871bd72bb54df41e [본문으로]
  4. https://www.youtube.com/watch?v=mxgYsx1AJ68 [본문으로]
  5. Bertrand Russell,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Simon and Schuster, New York, 1945, p.302. [본문으로]
  6. 한 정치인은 올해 2월 23일 '스리체어스'라는 출판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의 성폭력 해결에 대해 다음과 같은 훌륭한 견해를 제시했다. 여성이 성희롱과 차별의 문화를 겪은 이유는 여성의 세력화된 정치적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래서 '(여성을 건드려도)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빨리 뽀뽀하라는 얘기야'는 류의 왜곡된 성 인식이 생긴 것 . . . 현재의 성희롱과 성폭력의 문화에선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며 "일차적으로 여성의 목소리와 여성의 거부권을 확실히 정치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 . 섹슈얼리티(sexuality)라는 것에 대해 최근 몇 년 동안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 . 여성의 지위가 높아져야 직장 내 성희롱이든, 이런 문화들도 자연스럽게 견제된다. 여성 공무원들이 관리 및 간부직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촉진하고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서글픈 것은 이 정말 말이 되는 말씀을 한 사람이 안희정이라는 사실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101133011&code=940100#csidx361c784084f1251b84e4df286a8e49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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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9]


지젝 (2) : 헤겔 같은 라캉, 라캉 같은 헤겔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라클라우가 지젝의 저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의 서문에서 지적하듯이, 지젝은 라캉을 데카르트, 칸트, 헤겔로 내려오는 관념론적 전통속에서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앞선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참고: 지젝(1) : 까다로운 주체), 지젝은 헤겔을 동일성 원리의 형이상학적 관념론을 고착시킨 철학자로 비판하는 탈근대주의 철학자들의 입장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헤겔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석은 헤겔의 부정성에 대한 개념이 항상 개념의 자기 동일성으로 회귀함으로서 타자를 대상화하고, 차이를 말소한다는 점에서 지배논리를 정당화하는 형이상학 체계로 받아들여왔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 안에서 다름과 차이의 정치를 위해 헤겔은 항상 넘어서야 할 고지였다. 그러나, 지젝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교과서적인 해석처럼 헤겔의 절대지식은 초월적인 주체가 이성과 일치되는 상태가 아니라, 절대지식의 불가능성에 대한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젝은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는 헤겔의 변증법을 '부정의 부정은 절대적인 부정'이라는 해석으로 뒤집어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다시 말해, '정'과 '반'의 모순, 주체와 객체의 모순은 '합'에서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 합이라는 단계에서 은폐되었던 모순의 실체가 확실하게 입증되고 드러나게 된다. 정신이 자기와의 관계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현실화되지 않은 가능태로 남아 있지만, 타자라는 대립과의 만남을 통해 정신은 비로소 현실화된다. 타자와의 모순적인 공존이야말로 헤겔이 말하는 정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지젝은 헤겔이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부정적인 것에 머무르기'라는 말을 사용한 의도는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정신 안에 내재하는 모순은 궁극적으로 통일을 지향하지만, 그 통일은 모순이 지양되고 해소된 상태의 통일이 아니라 모순 없는 화해의 순간은 불가능하며, 분열은 지속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통일이다. 다시 말해, 모순이 제거된 절대지식은 환상일 뿐이며 그 환상을 인정하고 포기하는 것에서 진정한 주체가 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지젝이 해석한 헤겔의 절대지식이란 '모순'의 지속되는 상태를 말하고, 나아가 부정적인 것, 모순, 분열이 없는 절대지식은 '존재하지 않음', 또는 '불가능성'을 가리킬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젝은 헤겔주의는 칸트의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근본화의 작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칸트가 주체를 초월적 통각과 물자체의 두 영역 사이에 있는 존재로 본 것 처럼, 헤겔이 말하는 주체는 현실의 감각세계 너머에 있는 물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성에 대한 경험에서 나온다. 헤겔은 칸트적 주체의 비판자가 아니라, 오히려 칸트가 애매한 것으로 남겨놓은 물자체를 근원적으로 폐기함으로서 칸트가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인식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해결한 것이라고본다. 그러나 헤겔에 대한 이러한 과감하고 도전적인 해석이 지젝 자신의 창안물은 아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헤겔에 대한 지젝의 급진적인 해석은 주목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전통적 헤겔 해석을 뒤집고 헤겔의 숨겨진 본연의 모습을 복구하려 한다.


이데올로기와 판타지


라캉에 의해서 상징계는 기표들로 채워져 있으며 이 기표들에 의해 의미의 그물망을 형성한다. 이 상징적인 질서가 우리가 말하는 현실세계이다. 그러나 현실의 상징질서 안에서 항상 실재계로부터 미끄러지고 부유하며 떠다니는 기표들은 하나의 주인기표 (혹은 대타자)를 만남으로 비로소 의미의 관계를 구성한다. 여기서 실재계는 기표의 관계망이 형성한 의미화의 영역에 포섭되지 않고 저항하는 상징질서의 잔여물이다. 실재계는 상징으로서 언어와 기표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고, 상징적 현실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위협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재계가 없다면 상징계의 존재 또한 불가능하다. 상징계는 실재계에 대한 불가능성이 상징계 자신의 존재 가능의 조건이 되는 모순을 내포한다. 상징계 안에는 실재계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지만, 그 자체가 실재와 동일시 되지 못한다. 여기서 주체는 소외를 경험한다. 상징계 안에서 편입될 때에 주체는 존재의 안정을 보상으로 얻을 수 있지만, 대신에 자기의 본래적 존재를 상실해야 하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 결국 의미의 사슬망에서 벗어나 기표와 동일시되지 못하는 자신의 존재로부터 소외와 결핍을 느낀다. 상징질서 안에서 경험한 결핍과 소외로부터 주체를 지탱해주는 장치가 바로 판타지이다. 판타지는 실재계에 이르지 못하는 주체가 느끼는 결핍을 상상으로 대리할 수 있는 대상을 욕망하는 데서 발생한다.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다고 믿는 오인된 욕망의 대상(Object a)과의 관계가 판타지이다.


지젝이 라캉의 눈으로 헤겔을 뒤집어 보려는 정치적 의도는 분명하다. 탈이데올로기시대를 선언하며 이데올로기를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으로 다루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조류에 도전하려는 것에 있다. 지젝은 탈이데올로기의 시대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비가시적인 메커니즘에 대해 파헤쳐야할 당위성에 대해 주장한다. 이데올로기 개념 자체를 부정하거나 폐기하는 것은 순진하거나 섣부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담론은 오히려 부활되어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주체를 호명하는 방식으로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현실을 전면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실 사회주의를 이데올로기적 억압으로 간주하고,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자유방임적 시장활동)로 가는 변화를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주장 자체가 이데올로기의 효과라고 보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여기까지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과 일치한다. 그러나, 지젝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의 논의가 오늘날의 이데올로기의 현상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보았다. 지젝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의 분석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보았는데, 자발적인 주체는 대타자의 호명에 의해 구성된다는 주장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신분석학의 분석을 통과함으로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물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분석 역시 '호명'과 같은 개념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프로이드와 라캉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지젝이 보기에 알튀세르는 대타자의 호명이라는 국가의 억압적 장치의 메커니즘에 의해 주체가 구성된다는 주장에 멈춰서고 말았다. 지젝은 알튀세르의 주장대로, 대타자의 호명을 통해 주체는 형성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대타자의 호명으로 인해 호명된 존재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호명은 표면적으로는 대타자의 목소리로 들리지만, 사실 이 호명은 타자의 욕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이 내는 주체의 목소리이다. 그러므로 호명된 주체란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주체의 환영, 착각으로 형성된 것에 불과하다. 주체의 호명이라는 과정은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오인'된 호출에서 이뤄진다. 대타자의 호명으로 형성된 주체는 자신의 욕망이 타자의 욕망이었음을 발견하고 욕망하는 타자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결핍된 존재임을 알게 된다. 마침내, 주체는 대타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출현하지 않으며, 대타자의 결핍은 주체를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시킨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분석이 놓치고 있는 점은 이것이다. 여기서 이데올로기의 억압적인 작동방식은 균열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주체의 출현은 이데올로기라는 대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실재가 아니라, 실재를 대신하는 대타자이다. 대타자는 언제나 상징화되어 있다. 그러나 상징으로 실재를 대체할 수 없다. 상징과 기표는 언제나 실재와의 메울 수 없는 차이로 인해, 실재로부터 분리된다. 성공할 수 없는 상징계의 완전성을 성공으로 위장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는 환상으로서 출몰하며 상징계와 실재계의 간격을 채우기를 시도한다. 여기서, 지젝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은 상징과 기표의 체계로 질서화된 사회를 이상적 유토피아로 위장하는 시도들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으로 한 발 다가선다. 이데올로기는 제거된 것 처럼 보이지만, 판타지와 유령과 같이 현실 사회의 상징질서를 완전한 시스템인 것 처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재로부터 추방된 이데올로기는 상징계가 의심받을 때마다 상징질서의 균열을 막아주는 구원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실재의 세계에 속한 본질이 아니므로 상징화의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


라캉과 헤겔의 접점은 이 지점에서 발견된다. 지젝이 해석한 헤겔은, 절대지식의 부재이다. 절대지식의 자리는 공백으로 남아 있을 뿐이며, 불가능성을 암시할 뿐이다.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대타자는 없다'이다. 대타자를 존재하는 것처럼 판타지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나 헤겔이 진정한 주체는 모순과 부정성을 끝까지 긍정하는 것에 있다고 보았듯이, 지젝의 라캉적 주체는 이데올로기는 실재가 아닌 유령과 같이 비어있는 가상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자면, 판타지와 유령이라는 말이 실체없는 허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판타지와 유령은 실체없는 대상이 아니라, 현실사회의 상징질서를 지탱하는 힘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부정과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진지하게 대면해야하고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실체이다.


환상을 가로지르기


지젝은 이데올로기가 현실에서 배제된 것 처럼 보이지만, 상징질서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언제든지 소환되어 유령과 같이 출몰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현실을 분석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고 가로질러 통과해야 하는 문제로 받아들인다. 환상을 가로질러 틈새의 균열을 발견하는 가운데 주체는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 환상을 가로지르는 행위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 물음에서 지젝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은 윤리적, 정치적 차원으로 넘어간다. 라캉에게서 환상을 가로지르고, 틈새에 균열을 가하는 행위는 욕망에서 충동으로 넘어가는 과정이고, 상징계에서 실재의 차원을 추구하는 행위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젝은 환상을 가로지르는 행위는 상징적 질서의 메워질 수 없는 간극에 맞서 대타자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정치적이고 윤리적 사건이다. 결코 주체는 실재의 불가능한 영역과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없지만, 상징질서에 대한 저항의 행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실재에 다가선다. 그 실재란, 자신의 비존재의 공백을 수용하는 것이다. 주체의 결핍을 경험함으로서 주체는 자신의 상징적 정체성을 지탱해 왔던 환상의 구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환상을 가로지르는 행위를 통해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주체의 결핍을 경험하고 상징적 질서를 폐기시킬 때 이데올로기로서의 대타자는 극복될 수 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욕망에서 충동으로 넘어가는 윤리적 행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젝은 환상을 가로지르는 행위의 모델을 라캉이 '정신 분석의 윤리'에서 분석한 안티고네와 소포클레스의 주인공들에게서 발견한다(안티고네의 분석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므로 상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가 사회적 선이라면 라캉의 정신분석적 윤리는 충동에 있다. 이 충동은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죽음을 욕망하는 것이다. 라캉은 명령을 거스르고 자신의 오빠인 폴리니케스의 시신을 매장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여 마침내 죽음을 선택한 안티고네의 행동을 윤리적 행위로 묘사한다. 크레온은 상징계의 법적 질서망을 의미하고 안티고네는 이 법망을 넘어서는 욕망의 캐릭터로 설정되었다. 안티고네는 죽음의 행위를 통해 비극의 윤리를 실행한다. 이 죽음의 충동을 실현하는 것은 곧 상징계의 의미화의 사슬망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주체는 죽음에 대한 충동이 실현되는 시점에서 상징질서로부터의 해방을 얻게 된다. 죽음의 충동에 의한 비극적 자유야말로 바로 환상을 가로지르는 윤리적 행위이다. 주체는 바로 이처럼 상징질서가 제거된 비워진 공백 그 자체이며 이 공백을 지향하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전복적이며 저항적인 주체의 실현이다. 따라서, 주체는 주체를 공백으로 비우는 부정적인 행위이며, 죽음을 감수하면서 까지 주체의 결핍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주체는 이데올로기안에서 자신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실하고 이데올로기 구조의 틈새를 파고들어 상징적 죽음을 감수하면서 까지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지젝은 실재에 대한 주체의 결핍이라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통해 주체의 새 모델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죽음충동에 의한 주체화의 과정은 헤겔의 '부정성에 머물기'의 개념에서 보여주는 주체의 이해와 거의 일치한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의 생명은 죽음을 감내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한 죽음의 활동에 있다고 말한다. 현실의 안정된 세계안에 머물고 이를 고수하려고 할 때에 정신은 정신의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러나 정신이 생명을 드러내고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안정되고 친숙한 세계와 결별하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헤겔이 '부정적인 것에 머물기'를 말할 때에 이는 죽음을 감수하고 부정적인 상태를 수용하고 외면하지 않으며 끝까지 대면하는 것을 말한다. 라캉과 마찬가지로 헤겔에게도 죽음은 고립된 정신이 현실안에서 진정한 자아와 마주하게 되는 주체화의 과정인 셈이다.


이처럼 지젝은 독일의 관념론적 전통을 폐기하지 않고, 주체의 담론이 형성되는 이론적 토대로 사용한다. 특별히 헤겔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이 라캉의 정신분석과 공명을 이룸으로서 오늘의 이데올로기의 현실안에서 저항의 주체에 말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기대를 자극한다. 다음에는 지젝의 라캉식 정신분석학적 주체이해가 맑스주의와 어떻게 만나는지, 그 안에서 발견되는 주체의 변혁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다룰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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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을 직시하며 고통을 통한 연대의 정당성을 묻다.




엄기호

('인권연구소 창' / 연구활동가, 사회학)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공동정범은 지금까지의 '사회'파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던 문법을 깨뜨렸다. 보통 이런 '사회'파 영화들이 가진 기본적인 서사가 있다. 선량하게 살던 사람들의 삶이 국가와 자본에 의해 파괴되고 피해자들은 그 고통에 절규한다. 화면 가득한 절규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내 자리가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피해자의 '편', 혹은 피해자의 '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아니라 이들이 피해자라는 단수여야 한다는 점이다. 설혹 그 피해자들 안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봉합 가능한, 즉 큰 틀에서 국가나 자본에 의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라는 단수로 봉합가능한 차이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차이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는 차이 같지 않은 차이로 무시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결코 복수일수가 없다. 단수로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문법을 완전히 깨트렸다. 그 가정 자체를 부정하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이 피해자'들' 사이의 차이는 '봉합' 가능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고통은 국가로 인해 시작되었지만 삶에서 이들이 겪고 느끼고 분출하는 분노와 고통은 국가보다는 오히려 그 국가의 폭력을 '함께' 겪었던 사람들과의 반목 때문에 생긴다. 이전에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동지'라는 관계/언어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관계'가 박살났다. 이것이 국가가 가한 가장 큰 폭력이라는 것이 이 영화가 다른 사회파 영화와 달리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국가가 행사한 폭력은 관계를 박살난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의 관계만 박살낸 것이 아니다. 당사자들은 그 이후 '우리처럼'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간'을 박살내어 그가 더 이상 사람일 수 없게 하는 것, 그것이 존재 자체에 가하는 국가 폭력의 핵심이다.

인간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말한다. 이 사이를 두고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어떤 얼굴로 만나는가?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맨 얼굴로 만나지 않는다. 항상 우리는 다른 사람을 '가면'을 쓰고 만난다. 그리고 이 '가면'에는 언제나 사회로부터 오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들이 처음 만났을 때는 '동지'라는 이름으로 그 가면을 쓰고 만났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시민' 혹은 '민중'이라는 가면을 쓰고 이들을 만난다.

사람이 가면을 쓰지 않고 그저 '나'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그 만나는 사람도 그저 '그'로서 만날 수 있는 경우는 대단히 한정적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신이나 동물, 식물 그리고 아주 희박하게 사랑하는 사람정도다. 교회에서 통성기도, 무속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 바로 그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언어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언어 이전의 언어로만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그 언어는 침묵이거나 혹은 의성어나 절규와 같은 '소리'다.

첫 번째로 이 영화에서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것은 이들 사이에 더 이상 가면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상을 넘어서는 국가의 폭력은, 그 국가의 폭력 앞에서 이들을 묶어 놓았던 가면인 '동지'를 박살냈다. 동지가 서로 같은 뜻을 나누고, 서로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함께 하는 것이라면, 이전에 쓴 글에서 말했듯 국가의 폭력은 이들의 '동지'라는 가면이 그저 '가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폭로했다. 가면이 아니라 얼굴로서의 그런 동지는 애시 당초 있지도 않았다.

그 가면이 깨어진 순간 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다. 누군가는 바로 거기가 출발점이 아니겠냐고 말하겠지만 그런 '민낯'에서 출발하여 새로 서로에게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면'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영화가 탐색하여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이 가면이 박살난 이후 관계에 대한 가능성이다. 이들은 어떤 가면을 쓴 얼굴을 서로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서로 그 가면을 쓴 얼굴을 대면하면서 그 가면 뒤의 민낯을 떠올리며 역겨워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바로 이 가능성을 찾기 위해 참사의 당사자들도, 끝 무렵에 등장하는 인권활동가들도 애를 쓴다.)

어찌 보면 자기 자신도 한 번도 제대로 대면해보지 못했던 추한 자신의 얼굴, 그 민낯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당사자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들 사이의 관계를 박살낸 국가권력이 향하는 종착지가 있다. 바로 더 이상 이들이 가면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 혹은 가면을 쓰고 있으면서 언제나 자산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하는 것. 그래서 당사자들이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구역질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존재에 가하는 최종적인 폭력이다. 그 결과 이들은 가면을 쓰지 못하거나 가면을 써도 스스로에게 역겨운 존재가 되어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낯익은, 아우슈비츠에 던졌던,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이 던졌던 동일한 질문을 만난다. 이것이 사람인가? 가면이 벗겨진 존재, 더 이상 쓸 가면이 하나도 남겨져 있지 않는 존재, 그래서 발가벗겨진 이 존재들은 과연 사람인가? 사람이 모든 이름을 박탈당하고 발가벗겨 졌을 때, 그래서 그저 사람에 불과하게 되었을 때 인간이 아니라 비인간으로 전도되어 버렸던 아우슈비츠처럼 가면이 박살나고 더 이상 가면을 쓸 수 없게 된 이' 사람들은 사람인가?

가면이 깨어진 자는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폭력을 가한다. 그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참혹한 폭력은 서로에게 '진심'을 묻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잔인하이 있다.사람에게 진심은 믿어주거나 서로에게 있다고 가정하기에 물어보지 않을 때 존재한다. 진심에 대해 그것이 진심이냐고 묻는 순간부터 아주 희박한 경우를 제외하고 진심은 존재할 수 없다. 진심은 답할수록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다.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사과했을 때 문을 박차고 나가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진심을 묻지 않고 믿어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의 맨 얼굴이 아니라 그가 쓴 가면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가면을 쓴 우리 모두는 '위선자'이다. 스스로도 자기의 맨얼굴을 다른 가면으로 가린다는 점에서도 위선자이고 다른 사람의 진심을 진정으로 확인하지 않고 믿는 척 한다는 점에서도 위선자다. 그러나 이 '위선'은 단어가 풍기는 느낌과는 달리 나쁜 위선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라는 '나약한' 존재는 가면을 쓰고 위선자가 됨으로써 자기를 보호할 수 있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게 된다. 사회는 이런 위선자들이 펼치는 일종의 가면무도회이다.

그러나 가면이 깨어진 자는 더 이상 위선자가 될 수 없다. 그는 가면이 깨어졌기에 더 이상 사람을 못 만나거나, 사람 아닌 존재만 만나거나, 혹은 서로에게 네 얼굴은 가면이라고 폭로하거나. 마지막으로 자신이 쓴 것이 가면이라는 것을 알면서, 요구되는 그 가면에 충실해버리거나 할 수 있을 뿐이다. 앞의 두 경우가 도피라고 한다면 뒤의 두 경우를 우리는 '위악'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이 영화에 나오는 한 '문제적' 인물처럼 위선을 부리는 것조차 그것이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위악'이 된다는 점이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유일'하게 충실한 사람이다. 피해자로서, 당사자로서 그는 자로 잰 것처럼 움직인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 참사의 다른 당사자뿐만 아니라 관객들조차 바로 눈치 챌 수 있다.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충실하되 영혼이 없는 것처럼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까지 충실하게 드러낸다. 위선인 것처럼 보이는 그것조차 그가 자신에게 가하는 위악이다.

이것이 국가가 가한 가장 잔인한 폭력이다. 삶의 터전을 부수고, 관계를 박살냈다. 이 이후로도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능하지 않게 만들어 더 이상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참사의 당사자들을 스스로 내가 과연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영원한 고통으로 밀어넣었다. 또한 그 고통이 영원하기에 좀처럼 그 고통에서 벗어나 가면을 쓰고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함으로서 인'간'이 되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존재가 말살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살아가야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에 있는가?

영화는 같은 질문을 관객에게도 던진다. 이들의 고통을 목격하고 있는 우리는 이들과 어떻게 만나야할 것인가? 이 영화를 보며 관객은 깨닫게 된다. 이전에 이런 사회파 영화를 보며 그들을 만나던 가면으로는 이 영화에서 더 이상 이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민이라는 '익숙한' 가면을 쓰고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 역시 역시 피해자라는 단수의 '익숙한' 가면을 써야한다. 그런데 그들이 겪는 '피해'의 핵심이 바로 이 '가면'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이 영화다. 따라서 관객들 역시 영화를 볼 때 다른 가면을 써야한다. 무슨 가면? 그러니 관객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연대'라고 부르는 것이 언제 결정적으로 취약해지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가 저항한다고 하는 '국가'에 의해 그 가면이 깨어져버렸을 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가 저항을 분쇄할 때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이 더 이상 '동지'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저항하던 국가에 의해 '동지'가 파괴된 사람들과 우리는 어떻게 '동지'가 될 것인가? 그것은 가능한가? 이 영화가 출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여기이며, 사람들이 멈추고 싶은 것이 바로 여기다.

여기서 사람들은 싸늘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건 너네 문제다. 그러니 당신들이 알아서 해결하라. 우리 앞에서는 싸우지도 말 것이고, 내보이지도 말아 달라. 당신들이 해결하고 난 다음에, 혹은 당신들이 해결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연대하겠다. 당신들이 불화한다면 우리는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의 역할을 위해 당신들의 역할에 충실해 달라. 우리의 역할을 위해 당신들의 가면을 써 달라. 그러니 관객들은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고.

그런데 이런 요구가 연대일 수 있는가? 가면이 박살나서 고통 받는 사람에게, 그리고 그들의 가장 결정적인 고통의 원인 중의 하나인 그 '익숙한' 가면을 다시 쓰기를 원하는 것이 운동이고 연대인가? 피해자의 가장 큰 비극은 피해자로서만 살아야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참사를 알리기 위해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언제나 피해자이기만 해야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말하는 것처럼 피해자는 피해자로서만 주체화된다.

연대의 잔인함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연대를 한다는 우리가 그들에게 가하는 잔인한 폭력은 그들이 피해자로만 박제된 삶을 살아야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아니라 연대한다는 우리를 '환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들이 피해자로서 피해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그 피해에 연대하는 우리를 환대하는 것이 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를 환대하기 위해 그들은 피해자로만 살아야 한다. 한 친구가 말한 것처럼 참사의 당사자들이 늘 언제나 똑같은 얼굴로 다른 사람들이 올 때마다 '피해자'가 되어 '환대'한다. 우리가 그들을 '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환대'해야 한다. 이것이 연대인가?

그럼 이 영화는 연대의 불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깨어진 가면 이후, 그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인가? 전혀 아니다. 이 영화를 주로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 영화에 대한, 그리고 이 영화가 나오기까지의 사회운동의 고민에 대한 완전한 모독이다. 만일 우리가 이 영화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며 '민낯의 중요성' 운운한다면 우리는 완전히 반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운동'이 지나간 자리를 허무와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위악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국가 폭력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일일 것이다.

가면이 깨어진 이들의 민낯을 포르노처럼 드러내는 것은 영화의 의도도 아니고,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이 감독들의 운동이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 영화는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다. 참사가 한 존재에 가하는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존재가 말살당한 채 죽어있는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참사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자칫 참사의 당사자들에게 매몰되어 놓치지 쉬운 이 질문을 이 영화는 끝가지 붙들고 있다. 드러내야하는 민낯은 이들이 아니라 바로 국가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내가 이것까지 알아야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바로 그 '이것'의 뒤에 있는 국가의 민낯을 폭로한다.

또한 관객에게도 질문한다. 참사의 당사자들을 '피해자'로서만 만나고 그들이 '피해자'로서 우리를 환대하며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는 너희는 정당하냐고 말이다. 이런 '우리'들의 연대는 겉으로는 우리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이 연대하려는 우리를 환대하기를 바라는 그 익숙하고 편안한 연대인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편안하고 감동적으로 고통과 연대하는 것, 그것이 연대인가? 그 연대는 정당한가? 스스로의 정당성을 허물지 않고 당사자의 정당성을 묻는 연대는 정당한가? 연대는 스스로의 정당성을 허물고 질문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닌가?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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