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묵시록 13 : 자본주의 묵시록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21세기 초반 묵시록 담론의 중심에 자본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핵폭탄의 묵시록은 자본주의 묵시록에 의해 대체되었다. 냉전 체제가 붕괴한 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세계화 자본주의 속에서 세상의 몰락을 읽는 이유는 자본주의의 생산과 경쟁 속에서 자연과 생태계는 파괴되어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믿음과 세상이 망하더라도 자본주의는 변하지 않을 것이란 자괴적인 인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자본주의 소비 욕구를 채우기 위해 동원된 반생명적인 기술의 대가는 신체의 질병과 인류가 쌓아 올린 가치의 파괴로 나타났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욕망과 소비의 주체로 만들었다. 이전의 도덕성을 중심으로 한 인간 이해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인간 이해로 대체되었다. 인간은 경쟁의 상황 속에서 가장 인간적일 수 있고, 세상은 도덕적인 인식이 아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만이 모여도 건제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생산과 소비의 자원으로 전락한 자연은 균형을 잃고 결국 재난의 현장이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세상을 망치고 있고 결국에는 몰락의 길로 인도할 것이라는 진단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세상의 파괴와 종말의 묵시록으로 이해하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에 의해 디스토피아의 현장으로 변해버린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개념이 좀비다. 좀비는 무기력하게 죽음과 삶 사이를 배회하면서, 반죽음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살을 뜯어 먹어야 한다. 결코 이길 수 없는 경쟁의 서바이벌 게임을 하도록 강요받고 사는 현대인들은 좀비에서 그들의 아바타를 찾았다. 인간적인 세상은 이미 끝났고, 마지막 세상에서 생존해 있기 위해서 모든 가치의 종말과 패배를 인정하고 무의식의 상태에서 떠도는 모습이다. 그 상태에서도 유지되는 생각 없는 생산과 소비는 자본주의가 원하는 세상을 완성하고 있다. 인류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좀비 영화들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 인문학의 공통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미국문화의 저변에 묵시록적인 종말론이 흐른다면 미국의 자본주의는 그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실제로 자본주의를 미국의 정신으로 인정하고 미국이 없는 자본주의의 발전은 상상할 수도 없다. 미국의 자본주의와 종말론을 연결할 수는 없을까? 막스 베버의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유명한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추론을 해보자. 베버는 청교도들로부터 시작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기원을 그의 책에서 다뤘지만, 거기서 묵시록의 근거도 찾을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베버는 자본주의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에게 미국은 청교도의 나라였고, 그 나라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했다면 어떤 종교적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베버는 그 이유를 청교도들의 신학 즉 칼빈주의의 예정론에서 찾았다. 구원은 신의 주권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이 예정된 구원을 받았는지 아니면 저주의 대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상태는 두렵고도 외로운 번민의 상태다. 하지만 선택된 자들의 삶은 외부에서 보기에도 달라야 했다. 그들은 신의 부름을 받아 세상으로 왔다고 믿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의무를 다하고 충실한 삶을 사는 게 하늘에 합당한 선민의 삶이었다. 베버에 의하면 그런 삶은 근검절약을 실천하고 모든 맡겨진 일에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임하는 자세를 요구했다. 즉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일상의 생활에서 성실하고 자신감 있게 산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베버가 다루지 않은 부분을 생각해보자. 베버는 청교도들이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의식이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런 모습이 선택받은 자들의 삶의 모습이라 했지만, 청교도들의 소명의식 중에 세상의 마지막 날을 준비할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한다는 종말론적인 사명을 간과했다. 세상의 사람들과 구분되어 신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명의식은 그 자체로 종말의 사건이다. 세상의 마지막 날을 신에게 선택된 사람에게 합당한 성실과 열성을 다해 살라는 사명을 받은 것이다. 만약 베버의 말대로 청교도들의 소명의식이 자본주의 정신의 조건이었다면 그들의 삶은 자본주의 정신을 구현하는 종말론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할 수 있다. 여기서 자본주의적인 삶은 종말의 과도기적인 삶이었고 곧 사라질 시대를 사는 방식이었다는 추론도 제기해볼 수 있다. 그 방식은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세계관을 도입해 불필요한 생각과 활동을 제한하고 단순한 삶의 추구를 의미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서구의 기독교 문화 속에서 등장할 수 있었을까 묻는 것은 그 문제가 더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지금도 가치 있는 질문이다. 베버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얘기했지만 실제로 자본주의라는 단어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던 19세기에 자본주의의 탐욕이 아닌 정신을 얘기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 베버와 같은 학자의 영향과 자본주의가 체질화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와 기독교가 모순된 가치라는 사실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지만, 베버 자신은 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자본주의의 물질적 가치가 중세에는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탐욕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베버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청교도들이 자본 친화적인 신앙을 받아들이는데 필요했던 세계관을 칼빈주의의 예정론에서 찾았지만, 그 연결고리가 그다지 견고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돈을 벌고 재물을 축적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고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와는 큰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재물을 쌓아두는 행위 그 자체를 죄악이라 생각했던 종교문화 속에서 자본주의가 등장했다고 믿기 위해서는 큰 발상의 전환을 요구했고 이를 베버는 잘 알고 있었다. 베버에게 그런 발상의 전환을 체득하여 미국의 자본주의 정신을 구현한 인물이 벤자민 프랭클인이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부자가 되는 법>은 그가 살아있던 18세기에 이미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책자였다. 그는 지금도 미국의 정신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미국인으로 손꼽힌다. 베버는 프랭클린을 청교도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묶어낸 인물로 설정하면서 그의 근면 정신과 시간 이해에 주목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또는 ‘시간은 금이다’와 같은 프랭클린을 통해 알려진 격언들에 그의 인생철학이 담겨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의 핵심은 그의 시간관이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은 언제나 짧다. 시간을 잘 시켜라. 쉬고 싶으면 시간을 잘 써라. 잃어버린 시간은 되찾을 수 없다. 시간을 낭비하는 건 인생을 헛사는 길이다. 프랭클린은 청교도의 후예였지만 교회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신 중심의 생활보다는 합리적이고 정직하고 근면한 생활을 더 강조했다. 그의 생각은 매사에 신의 뜻을 찾지 않아도 성실하게 일하고 열심히 돈을 버는 행위 그 자체에 도덕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재물이 목적이 될 수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재물을 모으는 과정에 도덕성을 부여하게 된 것은 큰 발상의 전환이었다 할 수 있다. 프랭클린에게서 종말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자본주의 정신이 청교도의 윤리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세속화된 것이라면, 돈과 시간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 즉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아까운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짧아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등식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추론에 불과하지만, 개인의 종말 또는 시대의 종말 앞에서 재물의 있고 없음이 중요하지 않다면 프랭클린에게 자본의 도덕성은 과도기적이거나 마지막 시대의 현상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만약 청교도들이 자본주의의 정신적 기초를 닦았고 또 그들의 삶의 형태가 종말론적인 것이었다면, 청교도들은 그들의 삶, 즉 자본주의적인 삶을 종말론적인 것이라 보지는 않았을까? 만약 그런 생각이 가능하다면 청교도들은 이미 자본주의 종말론 또는 종말의 자본주의를 예견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를 종말론의 차원에서 이해한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가 내적인 모순으로 인한 과잉생산으로 몰락의 길을 갈 수밖에 없고, 그 잔재 위에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적인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는 맑스주의의 진단이다. 여기서 종말론은 자본주의가 망해야 천년왕국과 같은 역사의 완성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역사의 구조를 말한다. 다른 하나는 앞서 언급한 자본주의가 이 세상을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다는 현대 인문학의 진단이다. 맑스주의는 미국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따라서 맑스주의자들이 예언한 자본주의의 종말과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은 미국의 문화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 이유를 자본주의가 이미 미국의 이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반대를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자본주의가 미국에서 그만큼 용납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청교도 시대부터 현재까지 흐르는 미국의 종말론적인 사상 때문일 가능성이다. 그리스도가 지배할 천년왕국에 대한 기대 혹은 곧 닥칠 환란과 휴거에 대한 기대 때문에 자본주의의 탐욕을 마지막 날의 현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제도적 제한을 두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가 자유를 실천하는 이념이라는 공식이 성립한 후에는 자본에 대한 규제는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자본주의의 ‘자유’를 다가올 천년왕국의 가치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본주의에서 다가올 천년왕국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들과 자본주의가 세상을 재난과 파괴의 종말로 이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 중립적인 입장은 있을 수 없다.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미국의 제도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자본주의가 ‘자유’를 지향하는 시스템으로 포장되어 홍보된 역사가 있다. 자유는 원래 종교개혁 이후 청교도들에 의해 기독교의 본질로 그리고 미국정신의 근거로 뿌리내린 개념이었다. 지금도 자유는 미국을 의미하고 대변하는 개념으로 인정받고 있고, 미국은 곧 자유라는 관념의 등식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자유를 표방하는 개념으로 포장되지 않으면 미국에서 수용될 수 없었다. 비교적 최근까지 미국에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이 주류의 시민 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미국의 정신인 개인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최고의 정치와 경제의 제도가 바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논리가 펴졌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가 미국의 신앙으로 변하게 되기까지 오랜 홍보와 선전의 역사가 있었다. 미국에서 ‘기업’이라는 영리를 위한 조직이 19세기에는 법적인 사람의 권리를 갖게 되고, 자유의 주체가 되고, 20세기에는 무소불위의 통제되지 않는 권력으로 부각되는 역사다. 시장의 자유가 그 어떤 자유만큼이나 중요한 자유이고, 시장의 자유를 못 믿는 사람은 자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 논리가 1960년대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미국의 자유를 자본의 자유와 동일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시장의 자유를 종교적 양심의 자유로 또 미국의 정신으로 승화시킨 건 신자유주의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행태가 용인되어온 미국의 역사 저변에 자본의 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미국정신의 일부로 만들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묵시록은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픽션이나 실존의 갈등이 만들어낸 허구가 아니다. 그런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인정하지만, 묵시록의 힘은 어떤 실제적인 것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공상과학이란 장르가 묵시록의 테마들을 차용했다고 해서 묵시록이 공상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묵시록에 대한 신뢰가 남다른 미국 보수 기독교인들은 지구온난화의 현상을 믿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종말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선과 악, 재림과 부활이라는 거대한 드라마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자본주의라는 인간 제도의 남용과 같은 하찮은 이유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온난화의 과학적인 근거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미국엔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학적인 사고를 우선시하던 사람들은 묵시록의 종말론을 추종하던 이들을 광신적인 종교에 빠져있고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류가 묵시록의 종말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묵시록을 의미 없는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존적인 픽션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자본주의 세계화 시대의 묵시록은 급박한 종말의식을 종교적 세계관에서 상식과 과학의 세계관 일부로 만들었다. 냉전 이후에 등장한 자본주의 세계화 시대는 묵시록의 전환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핵폭탄의 묵시록은 핵무기를 소유한 소수의 국가들에 세상의 운명을 맡기고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는 불공평한 세상의 현실을 반영했지만, 세계화 시대의 환경재난의 묵시록은 모든 인간을 공범으로 만들어 자본주의 묵시록을 보편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묵시록은 멸망의 묵시록이고 이 시대 유일한 보편적인 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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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7]


유령과 함께 살아가기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후기구조주의와 해체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적 주체’라는 믿음을 깨뜨리고, 인간의 주체성은 구조에 의해 구성된 결과일 뿐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파헤친 것은 구조주의의 성과이다. 구조주의는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시작되는데, 그는 ‘언어는 사물의 이름이 아니며, 기의란 기표의 차이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라 말한다.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이 아니라, 언어가 실체와 조우할 수 없는 한계내에서 발생하는 언어들의 차이라는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의 구조[각주:1]를 분석함으로서 실체를 로고스에서 발견해왔던 기존의 형이상학적 전통을 거부하는 대신, 언어의 차이와 관계에 주목한 것이다. 이를 통해, 명증한 사실로 여겨진 자아 혹은 의식을 실재의 출발로 보았던 자아중심주의에 균열을 가하였다.이같은 구조주의적 관심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사에서 실존주의가 봉착했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면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 어떤 차별성을 갖는가? 후기구조주의자라고 불리는 푸코, 라캉, 들뢰즈, 알튀세르, 데리다와 같은 이들은 구조주의의 업적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 구조주의가 간과하였던 문제를 니체, 프로이트, 맑스주의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해석에 기반하여 전개한다. 말하자면, 라캉은 프로이트를, 알튀세르는 맑스주의를, 푸코와 들뢰즈는 니체에 대한 다시읽기를 주장하는데, 물론 이들의 시도 조차도 소쉬르의 언어학으로 시작된 구조주의의 기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은 실체적 형이상학의 철학사를 뒤집기 위해 다른 경로를 채택했지만, 지향했던 지점은 다르지 않다. 데리다의 표현대로 하자면, 기원과 중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중심이나 기원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당위적인 것으로 여겨진 시뮬라르크에 대한 위계질서와 그에 대한 차별과 억압도 일시에 무효화 된다. 그러나 그들은 한발 더나아가 구조주의의 노력으로 그나마 밝혀진 차이의 구조마저 의미관계의 본질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후기구조주의를 이해하는데 좋은 예가 된다. 구조주의는 영화에서처럼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컴퓨터 가상 인식체계가 지배하는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인간은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매트릭스라는 완벽한 통제시스템에 의해 컨트롤 당하고 있음을 구조주의는 드러냈다. 그러나, 후기구조주의는 매트릭스의 실체를 밝혀낸 구조주의의 성과를 인정하지만, 매트릭스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로 한 발 더 나간다. 말하자면, 매트릭스 조차도 가상적인 조작물일 뿐이지, 인간은 매트릭스에 의해 구조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매트릭스에 장악되지 않는 '네오(키아누 리브스)' 같은 자들이 있다는 것이며, 그들이 살아가는 시온이라는 구역이야말로 매트릭스의 구조가 지배하는 세상을 이해하는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후기구조주의자들은 인간을 일정한 규칙성과 폐쇄적 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로 인정하는 순간, 철학은 형이상학적 로고스 중심의 철학사가 걸어온 길로 되돌아갈 위험에 빠질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유의하였다. 따라서, 모든 중심과 기원에 대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매트릭스의 존재를 직시하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네오와 같이 매트릭스의 감시를 빠져나오는 탈주하고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현상을 바로 인식하는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후기구조주의가 넘어서려 했던 지점이 여기에 있다. 푸코는 성(sexuality)이 구조적으로 억압되어 왔다는 가설을 깨고 성에 대한 지식과 담론은 오히려 확산되어왔음을, 들뢰즈는 영토화/코드화된 억압적 체계를 인정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영토를 가로지르는 노마딕한 탈주선을 제시하였고, 라캉은 구조화된 무의식의 세계를 정신분석학의 주제로 등장시켰지만 동시에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주체로 한걸음 더 나아갔으며, 알튀세르는 자본의 착쥐구조를 넘어 이데올로기와 국가장치라는 중층적 관계를 인식론적 틀로 제시하였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deconstruction)는 실체론적 철학에 저항하기 위한 구조주의의 기초위에 세워졌지만 구조주의적 인식체계 마저 넘어서려는 탈구조적인 사유행위를 함축해 놓은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매트릭스라는 형이상학의 시스템을 분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완벽할 것 처럼 보이는 구조 안에서도 네오처럼 ‘뚫고 나오는 송곳 같은 놈이 반드시 하나쯤은 있다’는 사실에 의해 매트릭스조차 마침내 부정되고 해체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치밀한 관계망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내는 송곳 같은 현상이야말로 매트릭스로 구조화된 사회를 인식하는 본질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리다가 주목하는 것은 메타적 구조가 아니라, 구조를 전복시키는 미시적인 차이와 차이들 사이의 관계들이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던 태도에서 벗어나서, 안정과 질서라는 이름의 경계를 넘어 일탈하는 작은 변화들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질적 변화를 가져다 주는지를 묻는다. 이렇게 데리다에게서 후기구조주의는 전통적 사유방식을 해체(deconstruction)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해체된 빈 공간 위에 아무것도 다시 구축하지 않으려는 탈-구조화(de-construction)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데리다는 무엇을 해체하려고 했으며, 해체 뒤에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해체를 허무주의의 유포라고 비판하는 우려에 대한 반론은 무엇인가? 해체론 안에서 주체의 윤리적 실천의 계기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이 이글이 관심하는 주제인데, 그의 핵심적인 개념들 몇가지로 제한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텍스트


    데리다는 로고스중심주의 철학을 현존(presence)의 형이상학, 음성중심주의, 남근 중심주의로 파악하며, 이를 해체의 대상으로 파악한다. 전통적인 이성중심의 형이상학을 타겟으로 삼는 데리다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어떠한 기원이나 중심위에 세워진 사유체계도 아님을 증명하는데 초점을 둔다. 형이상학의 근거지가 부정될 때에 순수성의 신화는 궤멸하게 되고, 비로소 본질과 현상, 선과 악, 자본과 노동, 남성과 여성, 음성과 문자 등과 같이 이항대립의 관계로 놓고 전자가 후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는 것을 필연적인 결과로 정당화시켜왔던 근거들이 폭력적인 위계질서에 불가할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Of Grammatology)’에서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데리다의 주장은 로고스 중심주의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였던 니체와 존재의 복구를 통해 근대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하이데거, 그리고 소쉬르의 반실체적인 구조주의적 언어학의 성과를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데리다가 보기에 소쉬르의 구조주의는 차이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관계에 선행하는 원초적인 기원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구조를 유한하고 폐쇄된 총체성으로 이해했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소쉬르에게서 문자에 대한 음성의 우월적 지위는 완전히 제거되지 못하였다는 것이 데리다의 진단이다. 그라마톨로지에서 데리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나타난 음성우월주의는 소쉬르에게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데, “문자는 언어를 표상하는 유일한 목적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텍스트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시킴으로서 로고스중심주의의 근거를 제공해 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리다는 소쉬르적인 구조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음성 대신 텍스트의 우월성을 주장하려는 것일까?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 항목들을 복권시키는 것으로 충분한가? 그것으로 로고스중심주의로 파생된 폭력적인 위계질서는 해체될 수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데리다의 해체전략은 또다른 형태의 이항대립구조의 탄생에 의해 좌초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의도한 것은 매트릭스를 대체할 다른 구조물이 아니라, 폐쇄적이고 총체적인 구조로 실체를 파악해야한다는 어떠한 형태의 시도도 출현하지 않을 만큼의 해체로 까지 밀고나가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해체는 단순히 형이상학의 근거를 전복시키는 작업을 의미하지 않는다. 데리다에게, 해체란 부수고 무너뜨리는 과격한 파괴운동(destruction)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 어떠한 위계지배질서의 출현도 용인하지 않으려는 탈-구조화(de-construction)에 대한 지향성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차연(difference)’이라는 개념은 탈-구조화를 위한 그의 의도안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차연


   데리다는 탈-구조화의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서, 소쉬르가 주장했던 ‘기표 사이의 차이에 의해 기의가 구성된다’는 주장을 기원의 개념으로 확장시킴으로서 순수한 기원에 대한 신화를 완전히 제거하기에 나선다. 다시말해서, 기의는 기표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것처럼, 기원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표들의 차이가 반드시 기원보다 선행해야 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이렇게 기표와 기의의 관계구조 안에서 보면, 기원은 더 이상 실체적인 것,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는데, 기원이라는 것 역시 기원에 선행하고 우선하는 다른 하위 기표들의 차이와 관계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원보다 더 앞선 기원도 텍스트에 의해 차이화된 것에 불과하다. 데리다의 표현 그대로,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텍스트 중심주의는 기존의 사유체계를 철저하게 전복시킨다. 기표(문자)는 로고스철학에서 원본과는 무관한 열등한 것으로 배제되어 왔지만, 기표와 기의의 관계구조를 기원으로까지 확대적용시킬 때에 문자(기표)는 말(기의, 로고스)에 우선하는 반전이 일어난다. 이로써 기원의 기원으로서 적용된 기표들의 차이와 관계는 기원이 가지는 말의 모순성을 폭로하며 마침내 기원의 기원으로서의 자격을 박탈시킨다.

    기표들의 차이를 기원으로 확장시킴으로서 데리다는 순수한 기원이란 말 자체가 가지는 모순을 드러냄과 동시에 음성중심의 기원의 신화를 해체시킨다. 그러나, 이것이 곧 말에 대한 텍스트의 우월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한다면 탈-구조화(de-construction)는 재-구조화(re-construction)로 퇴색하고 말 것이다. 텍스트는 기원적이지만 결코 기원의 지위를 획득할 수 없다. 텍스트는 대상을 지시하는 ‘대리보충(supplement)’으로서의 기능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문자는 그 자체로 대상을 의미하지 못하고 단지 대리적인 보충물로서 문자들간의 차이를 통해 대상의 존재를 흔적으로 남길 뿐이다. 그러므로 흔적은 이미 시간적으로 항상 뒤에서서 대상을 쫓아가는 지연된 관계에 놓여 있다. 흔적으로서 텍스트는 대상을 은유적으로 지시할 수는 있지만 대상과 동일성을 가질수는 없다. 대상은 텍스트에 의한 ‘차이’와 ‘지연’이라는 시공간적 방식을 통해서만 식별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공간성의 차이와 함께, 시간성의 지연이라는 이중적인 운동을 통해서 기원은 파악될 수 없는 흔적으로만 남겨지게 된다. 이렇게 공간적 차이와 시간적인 지연을 통칭하는 ‘차연’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데리다는 우리가 대상을 인식한다고 여기게 만드는 의미의 효과가 사실은 무의미한 것임을 주장한다. 이렇게, ‘차연’은 소쉬르의 기표가 드러내는 공간성의 차이만으로는 형이상학의 인식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주의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이이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게 하는 근거가 되어온 전통적인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뒤섞어 버림으로서 끊임없이 기원을 재생산해 내려는 모든 철학적 시도를 봉쇄해 버리려는 해체와 탈-구조화의 이중적인 전략을 수행하는 데리다의 핵심적인 개념이 된다.


유령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철학하기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데리다가 말하는 차연에 따른다면, 철학이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고 논증하기 위해 텍스트를 동원할수록 지시하려는 대상은 자꾸만 멀어져 갈 뿐이기 때문이다. 흔적으로서 글쓰기가 증명하는 것은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 뿐이다. 프랑스의 68혁명의 분위기에서 지식인들에게 보다 날카롭고 급진적인 정치철학의 태도가 요구되었던 것을 감안하자면, 데리다의 해체는 한가한 지식인의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정치적인 것을 넘어서 투항주의적인 태도로 비춰진다. 데리다의 비판론자들이 그를 철학의 종말을 고하는 허무주의로, 심지어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동력마저 무력화시키는 위선자로 낙인하는 이유는 이점에 있다. 그러나, 데리다의 초기에 거침없이 써내려간 해체적 입장이 의미하는 정치 윤리적 실천의 면모는 그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전개된 유령론에서 드러난다.

   데리다에게 차연은 전통적 시공간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개념인데, 전통적인 입장에서 현존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단절되었으며 미래와는 연결되지 않은 ‘지금’이라는 정적이고 직선적인 시간안에서만 파악되는 것이지만, 차연의 운동은 현존의 대상을 끊임없이 과거로 밀어내고 다시 미래를 향해 달아나며 남기는 흔적을 추적해야 하는 통시적인 시간속에서 파악된다. 차연의 통시적 효과는 과거, 현재와 미래의 시간성들이 일직선상위에 차례로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집합을 이루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안에서 현존은 과거에 의해 부정되며, 미래에 의해서만 유추될 수 있는 불확실성으로 남는다. 따라서 현존하는 것은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또한 존재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모호한 것이다. 그는 이를 유령(specter)으로 표현한다. 유령은 현존하는 것도 부재하는 것도 아니기에, 존재의 부재와 더불어 부재의 존재를 지칭하기에 매우 적절한 은유로 채택된다. 유령과 결부된 과거와 미래는 지금, 여기의 현존을 일자의 동일성으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한다. 유령은 그것과는 무관한 개방적이고 불투명한 절대적인 타자성이다. 데리다는, 철학이 당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왔던 자아와 현존의 형이상학적인 존재론을 유령으로 존재하는 비현존의 존재론으로 뒤집어 놓는다. 인식의 근거는 자아의 의식, 혹은 기원이 아니라 유령과 같이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흔적으로 등장하는 타자일 수밖에 없다. 유령으로서 존재하는 타자는 자아의 이성과 판단에 의해 포섭되지 않으며 단지 무조건적으로 환대(hospitality)해야할 관계일 뿐이다.

    데리다에게서 해체의 정치적 급진성은 바로 이 유령의 존재에서 발견된다. 유령은 자아중심적인 시공간 구조에서 만들어지는 예측된 미래를 추구하는 일체의 목적론적 실천행위를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착취의 현실에 저항하는 정치적 행위 역시 공산주의의 필연성을 낙관하는 것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맑스의 공산주의라는 단선적이고 목적론적 구조위에서 공산주의는 ‘유럽 전역을 떠돌며 자본가를 위협하는 유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데리다는, 맑스를 넘어 계급, 국가, 제도의 경계를 허물고 도래하는 종말론적이고 메시아적인 새로운 형태의 타자들과의 연대를 요구한다. 경계를 넘어선 개방적인 연대 안에서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오늘의 불의한 착취의 구조안에서 다시 소환될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실체론적 존재론은 자본주의와의 공모관계안에서 세계를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로 계층화하고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시켜 왔다면, 맑스의 공산주의는 같은 방식으로 가시적인 현존을 인간사회의 진보 가치로 삼아왔다. 그러나 데리다는 그 양쪽 모두가 믿어온 현존의 공간과 시간적인 경계를 넘어서 출몰하는 유령의 존재를 인식하고 유령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정치윤리를 제안한다.


유령과 함께 살아가기


    데리다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구축해 놓은 확고부동한 존재를 존재하지만 동시에 부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유령으로 대체시켜 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모호하다. 존재가 아닌 유령을 실재하는 것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데리다는 주체의 구성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봉쇄하려는 것으로 보아야 할까? 데리다의 의도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정관념 하나를 지워버릴 필요가 있다. 데리다의 형이상학적 주체 개념에 대한 비판은 주체를 부정하느냐 긍정하느냐는 식의 양자택일의 문제로 추궁하는 것은 유령론이 지시하는 정치윤리적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주체는 존재하는가, 부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익숙해 왔던 전통적인 접근법의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 고흐의 그림 “끈이 달린 낡은 구두”를 소재로 사용한다. 데리다는 하이데거와 샤피로의 입장에서 이 그림에 대한 감상법을 재구성하는데, 샤피로는 구두 그림의 제작자인 화가가 누구인지를, 하이데거는 이 구두의 소유자에게 관심을 둔다고 본다. 두 사람의 감상법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구두그림의 귀속관계가 그림을 그린 화가에 있든지, 아니면 실제 구두를 신었던 한 노동자로 보든지 간에 그들은 구두의 주체를 발견해 내려는 노력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만큼은 동일한 감상법을 취한다고 보았다. 반면, 이 그림을 보는 데리다는, 이 두 감상법이 모두 적절치 않다고 본다. 왜냐면, 이 구두의 그림은 신고 있는 상태가 아닐 뿐 아니라, 그림은 이미 화가의 화실에서 떠나 전람관에 전시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두의 주인은 화가도, 실제 신었을 법한 누군가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구두의 주인는 부재할 뿐이다. 그러나 구두의 주인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구두는 누구에게도 소유될 수 없는 폐쇄적인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데리다가 주체의 부재를 통해 주장하려는 바는 대상을 특정 주체에 귀속시키는 것으로는 사물의 실재에 다가설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유령과 같이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자유롭게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실재는 드러날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데리다가 유령론을 통해서 말하려는 바는 자기 동일적인 주체를 해체하려는 것이며, 자기 동일성이 현존의 근거로 왜곡되어온 형이상학전통을 차이와 반복, 흔적으로 치환하려는 것에 있다. 존재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을 통해 인간의 책임과 윤리를 말해왔던 전통을 해체하고, 역으로 절대적인 타자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윤리적 태도를 통해서만 존재에 대해 말하려는 철학의 시도는 가능해 진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리다가 유령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환대의 윤리는 소수자, 약자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행동규범을 도덕적 감성에 기대어 호소하려는 것과 거리가 멀다. 유령론은 서양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에 대한 해체작업이며 차이와 흔적을 통해서 출현하게 될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기다림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경계없이 예측불가능하게 도래하게 되는 선물과 같은 약속에 대한 기다림이며, 기존의 사고방식과 틀을 넘어서는 낯선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데리다는 묻는다. 유령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것인가, 유령을 축출할 것인가? 윤리적 주체로 설 것인지 말것인지는 그 물음에 달려 있다.



ⓒ 웹진 <제3시대>

  1. 소쉬르는 언어가 ‘랑그’와 ‘빠롤’이라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한다. 랑그가 언어의 원리/체계라면 빠롤은 언어를 말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랑그는 빠롤을 통해 나타난다. 여기서, 그의 중요한 또다른 개념, 시니피앙(기표/기호)과 시니피에(기의/대상)가 있는데, 이 구분을 통해 소쉬르가 주장하려 한 것은, 시니피에는 시니피앙의 차이에 의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즉, 언어는 사물/대상을 직접적으로 지시할 수 없다는 것. 소쉬르는 서구의 로고스 중심의 형이상학적 언어학에 대해 반기를 들면서, 실체란 언어의 구조와 기표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구조적 결과라는 사실을 증명해 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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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네번째[각주:1]


결론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이 연재를 마감하기까지 두 번의 글이 남았다. 이제까지 내가 말하려 한 것은 웰빙우파의 문화공간으로 대형교회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즉 ‘웰빙’이라는 문화적 현상과 ‘우파’라는 사회정치적 범주가 엮이면서 하나의 문화적 주체로 형성되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장(場)으로 대형교회를 주목해보겠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웰빙우파의 문화공간으로서의 대형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총정리해보겠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는, 이 연재 첫 부분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하나의 상상적 논점을 제기할 것이다. 최근 대형교회를 주요 장소로 하여 형성된 문화적 주체로서의 웰빙우파가 정치적 주체로서 재구성되고 있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어떤 것일지에 대한 것이다.  


'1990년대', 웰빙우파 형성의 시간적 범주


   ‘1990년대’라는 시간은 이 연재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에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던 한국사회의 경제성장률이 급강하했는데, 개신교도 성장률이 급락했고 심지어 1995년 이후에는 절대수가 감소하기까지 했다. 한편 이 시기는 또 다른 중요한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한 시기이며, 또 소비사회로의 변화도 이 때를 기점으로 하여 본격화된다.


    


   이런 민주화와 소비사회화가 본격화된 시대인 1990년대를 주로 30대의 나이로 겪었던 세대가, 두 번의 베이비부머 세대(제1차: 1955~1963년생/ 제2차: 1968~1974년생) 중 첫 번째 세대다. 이들은 한국 근대사에서 보릿고개를 겪지 않은 첫 세대이고, 최소한 초등과 중등 과정까지 근대적 학교교육의 수혜를 받은 세대다. 또 빠른 경제성장의 대가로 완전취업의 행운을 누렸다. 특히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들의 경우는 중상위층으로 안착하기에 가장 용이했던 세대다. 이 세대의 많은 이들이 이 시기에 결혼과 함께 강남과 강동, 분당 등으로 이주하였거나 독립하여 살게 되었는데, 2천 년대에 이 지역의 지대가 급상승함에 따라 자산이 크게 늘은 것이다. 즉 직업의 안정성보다 훨씬 중요하게 지대의 상승 요인이 중상위계층으로의 안착에 유효했다.

   한편 이들, 1990년대에 강남・강동・분당 지역의 30대 고학력의 중상위계층 사람들은 그 무렵 민주화와 소비사회화라는 거대한 사회문화적 제도화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그 실행주체로서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이들이었다. 이들이 2천 년대에 40대가 되었고 2010년대에는 50대가 되었다. 나는 이 세대를 기점으로 해서 ‘웰빙’우파라는 문화적 주체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추정한다.(물론 이 세대에는 여전히 극우주의적 이념주의자들도 많았고, 신자유주의적 성장주의자도 많았다.) ‘웰빙’은 성장지상주의 시대를 통과하고 나서 소비사회로의 변화, 그리고 신자유주의로의 이행기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장지상주의적 주체와는 다른, 중상위계층적 고품격 문화를 가리키는데, 이 세대 이후 웰빙문화는 빠르게 확산되었고 다양하게 발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웰빙’의 다양한 발전을 단순화하여 ‘우파’와 ‘좌파’로 분류하였는데, 그중 ‘웰빙+우파’의 문화가 발전한 주요 장소로서 대형교회를 제시하였다.  


'(캐릭터)대형교회', 웰빙우파 형성의 장소적 범주


   1990년대에, 내가 분류한,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가 대거 등장했다. 이 연재를 시작하는 글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대형교회를 두 범주로 나누었는데, 첫 번째 범주는 한국사회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 대형교회로 부상한 교회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두 번째 범주는 한국사회와 교회의 성장이 정체 및 퇴조하던 시대에 빠른 성장을 이룩하여 대형화된 교회를 말한다. 즉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는 개신교에 새 신자의 유입이 현저히 줄어든 혹은 감소한 시기에 대형교회로의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것은 이들 교회들이, 새신자보다도, 교회를 떠도는 수평이동 신자들의 새로운 정박지로 선택된 결과다. 한데 유념할 것은 수평이동 신자들은 1990년대 이전에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수평이동 신자들은 대개 목사나 은사자를 따라다니는, 일종의 수동화된 팬덤(fandom)에 다름 아니었다. 반면 ‘그 이후’, 즉 1990~2010년대의 수평이동 신자들은 30~50대 연령의 교회 직분(집사, 권사, 장로 등)을 맡은 이가 많았다. 이것은 교회에 대해 꽤 많이 알고 가장 활동적인 교인들 중에 교회를 떠도는 신자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이렇게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들은 1990년대 말 이후 강남・강동・분당 등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했다. 이 지역들은 대단지 아파트들이 속속 세워짐으로써 단위 면적에 비해 유입 인구가 특히 많은 신시가지 혹은 신도시인데, 지대가 다른 곳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상승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하여 이주자들의 자산이 빠르게 증가하여 중상위계층화한 이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이다. 또한 위치상 이 지역들이 서로 인접해 있음으로 해서 중상위계층의 수가 다른 곳들에 비해 훨씬 많이 밀집된 곳이다. 바로 이런 지역에서 떠돌던 수평이동 신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크게 성공한 교회들, 내가 말한,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들 다수가 이런 교회들이다. 

   이렇게 정박할 곳을 찾은 떠돌이 신자들은 ‘그 교회’에서 현재까지 적어도 20~30년, 혹은 그 이상을 주1회 이상의 공식모임을 같이 했다. 그밖에 교회를 매개로 하는 수많은 비공식 모임을 통해 삶이 엮이었다.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서로 장기간 동안 이런 공식・비공식 관계를 통해 경험과 기억이 얽히면서 서로간의 친밀성이 깊어진다. 또한 자녀의 ‘절친’의 부모로 얽히고, 부모의 장례로 얽힌다. 해서 삶의 위기에 높일 때 교인들은 도움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사업을 하거나 취업을 할 때에 혹은 자녀를 유학 보낼 때에도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나아가 자녀들의 혼인 관계로도 얽힌다. 요컨대 대형교회는 빠른 도시화로 인해 가족과 이웃의 친밀성이 치명적으로 해체되고 있는 시기에 다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친밀성의 공간이며 인맥공장이다.

    특히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계층적 다양성이 사라지고, 특정 계층이 집약되어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계층적 문화가 형성되기에 용이했다. 학력도 비교적 높고 계층적으로도 안정된 이들이 많았기에 문화적 교류를 나눌 만큼의 여력이 충분했던 덕이다. 하여 바로 이곳에서, 사회의 다른 어느 영역보다도, 웰빙우파 문화가 잘 터잡을 수 있었다.


'주권교인', 웰빙우파 형성의 주체


   대형교회들은, 두 범주 모두 예외 없이, 담임목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중요하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란 교회에서 작용하는 거의 모든 가용자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특정인이 장악하고 있는 현상과 관련된다. 한데 두 번째 범주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첫 번째 범주와는 다르다. 첫째 범주의 대형교회에선 교인들이 수동적이고 충성도가 높아 담임목사의 일방주의적 전횡이 가능했다. 반면 둘째 범주에선 교인들이 과거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은 탓에 담임목사가 자신의 자원동원능력을 통해 콧대 높아진 교인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었는지가 중요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떠돌이 신자들은 교회를 알 만큼 아는 이들이었고, 민주화를 경험하면서 주권의식이 꽤 성장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소비사회를 경험하면서 종교도 상품처럼 선택할 수 있는 자의식이 발전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정보능력도 뛰어나 교회들이 내걸은 상품가치를 판별할 능력도 겸비한 이들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1990년대에 부상한 ‘주권시민’에 상응하는, ‘주권교인’이라고 불렀다.

   하여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는 ‘주권교인’의 취향에 맞는 방식으로 교회를 개혁했던 ‘개혁군주’형 지도자였다. 즉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들은 주권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불만을 교회 개혁에 반영하고 그이들의 취향에 맞는 요소를 발명해냄으로써 수많은 떠돌이 주권교인들을 정박하게 하는 데 성공한 교회다.

    나는 이러한 ‘개혁적 발명’을 통해 각 교회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특성화한 것을 ‘교회의 캐릭터화’라고 불렀다. 이때 캐릭터화를 특징짓는 요소를 여러 연구자들은 ‘개인주의’라고 불렀는데, 나는 ‘웰빙’이 더 적합하다고 보았다.

    가령 1990년대 이후 가열된 자녀교육 열풍은 명문대 지상주의를 낳았고, 이런 현상은 중상위계층에서 더 치열했다. 한데 몇몇 대형교회들은 2천 년대 즈음부터 명문대 지상주의를 넘어서 기독교 지도자를 통해 사회를 계도한다는 이상 아래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겸비한 전인적 소양을 갖춘 엘리트 양성을 추구하는 대안학교들을 만들어냈다.

    또 ‘부자 되세요’가 일상어가 될 만큼 신자유주의 시대 성공지상주의적 태도가 전 사회를 휘몰아칠 무렵 자신이 누리고 있는 풍요를 축복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신이 부여한 도덕적 책임의 맥락에서 보고자 하는 ‘청부론’이 일부 대형교회를 통해 확산되었다. 이것 또한 풍요를 천민화하기보다는 귀족적 덕성으로 재해석하는 웰빙신앙의 주요 항목에 속한다. 이렇게 대형교회의 캐릭터화의 기조는 웰빙신앙화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웰빙신앙적 캐릭터화가 얼마나 잘 수행되느냐를 시금석으로 하여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를 규정할 수 있다.


웰빙우파적 문화의 헤게모니화를 우려한다


    1990년대는 권위주의를 넘어서 한국근대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의 시대였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 갑자기 다가왔고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내기엔 너무 짧았다. 10년도 못 가서 신자유주의의 괴물적 파괴력에 휘둘리는 시대가 도래했고, 2천 년대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반동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1990년대에는 도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하위문화적 소리들이 등장했을 뿐 지배적인 대안적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시기에 거의 지배적 문화로 부상한 것이 없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웰빙우파’적 문화로 보았다. 오늘 우리 시대에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멋지고 규범적으로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것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용어로 ‘웰빙’이 적합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웰빙을 가장 잘 구체화한 것은 우파적 요소다. 그런데 이런 웰빙우파의 문화가 형성되고 자리잡는 데 가장 중요한 공간이 바로 두 번째 범주의 대형교회다. 그런데 이런 대형교회를 매개로 하는 웰빙우파적 문화의 헤게모니화는 다른 계층에 대한 타자화를 정교하게 제도화할 우려가 있다. 마지막 글은 바로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 1199호(2016 11 01)에 실린 '웰빙우파와 대형교회' 14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_id=2016100416403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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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끈을 절단하는 아무도 아닌 이[각주:1]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이 책(『신정-정치』)이 출간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5월 9일 19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이른바 정권의 교체, 민주정부 3기가 시작되었다. 광장을 달구며 ‘탄핵’이라는 점으로 수렴되었던 목소리 중 많은 이들은 승리의 환호를 질렀고, ‘수호되어야 할’ 정부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저마다의 의견이 있겠지만, 대다수의 목소리 즉, 이제 세워진 저 권력이 무너지지 않도록 ‘수호’하기만 하면 그 촛불’들’이 말했던 새로운 세상이 열릴까? 이에 대해 ‘신정-정치’는 그간 우리 사회는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기까지 걸어온 지난한 과정을 이야기하고,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이고 철저하게 은폐함으로 감춰졌던 어두운 역사의 경로를 폭로하여 광장에서 냈던 그 목소리’들’이 ‘새 정부’라는 알리바이 속으로 어느 하나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인양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미 자명하게 알고 있듯이, 역시 시작과 끝은 세계를 풀기도 하고 매기도 하는 그 성스러운 끈(7), 곧 성스러운 화폐와 자본의 힘이다. ‘성스러운(거룩한)’과 ‘화폐/자본’을 연결하는 이 언어는 단순히 물질의 세계를 신화화하여 표현하는 게 아니다. 즉, 다시 말해 신정-정치란 돈을 물신화하는 은유가 아니라 등가적이며, 그 운동을 통해 세계의 실재를 구축해 나간다. 그것들은 무한하게 순환하며 서로를 떠받침으로써 우리의 실제적이고 물리적 삶을, 사회적 관계들의 끈끈함을 스펙터클-사회로, 다른 말로 ‘사이비 신성체’로(24) 전환시켜 나간다. 이를 골자로 한 제단 위에 각 종류의, 각 사연이 담긴 피들이 제물로 섬겨진다. 4. 16의 피, MERS의 피, 이창근의 피, 바로 지금의 언어로는 갇혀 있는 한상균과 동성애자 A대위의 피 등 유혈이 낭자한 (사이비) 사회. 거기가 바로 우리의 삶이 바들바들 떨며 놓여진 풍찬노숙/각자도생의 현장이다. 거기서도 모두가 한 입으로 외워야 할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축적하라, 축적하라. 이것이 모세며, 예언자다.(8)”


.

   신정-정치의 사제들은 사목의 권력을 이용해 먹이며, 살리고, 심지어는 머리털까지 센다고도 할 수 있는 바(누가복음 12:7), 진정 그리 살고 있다고 ‘착각’함으로써 바틀비의 변호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심지어 매일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고통 앞에서 마음의 운동을 자기 안락을 위한 자위의 도구로, 자기가 속한 법의 권역을 보존하기 위한 장치로 환수하는 고통의 질료화/추상화(350)’하기를, 조남호가 그랬던 것처럼 김주익을 모른다 하며 ‘눈물을 훔치면서’ 김진숙을 불법자로 매도하기를(257), 그리고 바로 지금 최순실이 법정에서 진실을 묻던 의원을 딸아이의 영혼살인자로 매도하며 울부짖는 스펙터클을 매순간 집전한다. 그 ‘사이비성’과 실제 지금/여기의 삶을 묶는 전능성은 어디서 오는가? 최초의 가치이자 성부인 축적의 법과 그것을 운동시키면서 매개하여 잉여가치로 화하는 성자인 국법의 이위일체, “신-G’”(13)이다.


   이에 사람들은 저 ‘성스러운 끈’, 세계를 단단히 매고 있는 저 매개/매듭에 다양한 방식으로 봉헌하고 있는데, 어떤 이는 성스러운 끈의 매듭을 더 매는 방식으로, 그 반대 편의 이는 그 끈의 성분을 조사하고 끈을 푸는 지식을 체계화하여 이른바 ‘지식팔이, 책팔이’를 하는 방식으로, 또는 그 둘의 결합의 모양으로 이 세계에 매개의 매개를 더하고 있다. 그 끈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는커녕! 한 번 엉킨 작은 실타래나 목걸이를 풀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안다. 풀려고 할수록 더 엉키고, 자신이 더 엉김을 가하고 있는 자신, 변수에 기하급수적 변수를 얹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의 그 분노를 말이다. 그러므로 그런 모세의 사목권력적 후생체에 봉교하는 인간(92) 떼들에 맞서 정치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 모든) 매개성을 드러내 보이는 것, 수단 그 자체를 그대로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가 목적인 목적의 영역도 아니고 이러저러한 목적에 종속된 수단의 영역도 아닌 인간 사유와 행위의 장으로서의 목적 없는 순수 매개성의 영역”(226)이다.


    그 정치를 누가 수행하는가? 누가 그 매개/매듭들의 경첩을 절단할 수 있는가? 비존재들을 분리/양산하고 그들을 재합성함(291)으로써 축적의 축적을 거듭하고 급기야는 모든 매개를 절멸시켜 ‘순수한 축적’ 곧 금융자본주의G-G’(96)의 체제 속에서 빚(Schuld)을 볼모삼아 피를 빨아먹고 사는 체제를 끝장낼 수 있는가? 바로 폭력의 당사자들 즉, 고통의 최전선에서 고통을 사변적으로 환원시키려는 자들에 분통과 원통으로 소리치는 자들, 그리고 그들을 위시하여 깨어 있기로 결단한 ‘모두가 된’ 이들이다. 예를 들어 ‘아무도 아니’었던 수많은 5. 18 엄마들이 ‘모든 이’로 화하여 4. 16 엄마들에게 보내는 저 절절한 인사말이 선취하였고 그것이 광화문과 곳곳의 불로 옮겨 붙어 최순실-박근혜-이재용(104)으로 이어지는 비밀의 카르텔을 끝장냈듯이.

<5. 18 엄마가 4. 16 엄마에게>[각주:2]


   고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이어야 한다.”[각주:3] 라는 저 맑스의 말을 바로 오늘 하늘로부터 내려온 성령의 불로, 세계의 무능/유능(406)을 도려내고 태워버리는 불로, 사목적 게발트로 위장하여 “서로가 서로를 비밀스런 끈으로 거듭re엮고 매회 짜이게 하는ligio, 그럼으로써 축적이라는 비밀스런 제 1목적의 위기를 관리하고 종교적religious 원상복구를 수행하는 공동 ‘비선’의 게발트”(118)를 대항하는 익명들 곧 ‘아무도 아니’(296)로 존재하는 고유한 존재자들로 맞아들이자. 최종목적론적이고 메시아주의적인 선언문을 쇠말뚝처럼 박아댐으로서 세계의 ‘잔여’(351)가 그 맹아로 품고 있는 ‘파송된 그리스도-아이들’(153), ‘바틀비-그리스도(348)’등을 절멸시키려는 의지를 꺾고, 계속해서 그 입지점을 ‘다른 곳에’ 세움으로 ‘사랑의 시도’(291)를 이어 나가는 그 말로 읽도록 하자. 그 ‘다른 곳’이란 김영민이 정의 내린 ‘세속’이 가리키는 바, “스치고 섞이면서 만날 수 없고, 겹치고 묶이면서 만날 수 없고, 손을 잡고 혼인하면서 만날 수 없고, 악수를 하고 계약을 하면서도 만날 수 없는 어긋남의 표상. 내 속에 있으면서도, 아니, 내 속에 있기 때문에 결코 만날 수 없는 너와의 아득한 거리에 대한 표상”[각주:4]이며, “개인의 호의 앞에 무력한 관계의 구조 곧 그 애틋하고 알뜰했을 호의가 속절없이 부닥치는 벽” [각주:5]인 곳임에도 불구하고.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윤인로의 책 『신정-정치』(갈무리)에 관한 서평입니다. [본문으로]
  2. 오월어머니집과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 등 5·18 단체 회원들이 지난 11일 진도 팽목항을 찾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조속한 세월호 선체 인양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팽목항에 ‘5·18 엄마가 4·16 엄마에게’라는 제목으로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의 펼침막을 내걸었다. 사진=5·18 기념재단. 연합뉴스 원문보기: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6508.html#csidx1afe6d7bc52ceb493856a24879f17e8 [본문으로]
  3. K. Marx,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헤겔 법철학 비판』, 강유원 옮김, 이론과 실천, 2011. 25쪽 [본문으로]
  4. 김영민, 『동무론』, 한겨레출판사, 2008, 164쪽. [본문으로]
  5. 앞의 책, 16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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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녕 작가의 〈서울_기억_반기억〉 전시회를 관람하고


 라운드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눈 뒤 



최진영
(Colgate Rochester Crozer Divinity School 교수)

 


    역사서술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박물관, 교과서, 기념비 등은 기록된 역사를 보존한다. 기록된 역사 외에 과거를 보존하고 과거와 관계 맺는 다른 방법들로 구전과 기억 등이 있을 것이다. 역사를 쓸 수 있는 도구와 권력을 소유하지 못한 민중들은 주로 구전과 기억을 통해 과거를 그들의 현재의 삶의 일부로 만든다. 그들은 기억에 기초해서 이야기를 구성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통해 기억하기도 한다. 때로 기억된 이야기들은 일기나 메모의 형식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공식적인 역사서술은 획일적이고 그 해석도 제한되어 있는 반면, 이야기로 전해온 과거의 전승들과 기억은 다중성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 대한 지식, 또는 과거와 관계하는 또 한 가지의 영역이 있다. 과거에 대한 기억마저도 억제될 때, 그 억압된 과거는 유령처럼 현재의 시간으로 찾아온다. 이러한 현상을 huanting이라고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억울하게 죽음을 경험하거나 제대로 장사되지 않은 존재가 혼령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로마 황제 네로가 자신이 독살한 모친 아그리피나의 혼령의 출현으로 시달린 일을 전한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햄릿》,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Beloved)》, 그리고 우리 설화 《장화홍련》의 망령들에 이르기까지......


   어떤 억눌렸던 과거의 사건들, 당시 현재화되지 못하고 기억에서마저 잊혀진 억압된 그 존재와 사건들은 마치 유령이 돌아오듯 오늘 어떤 자리로 찾아오고 또는 미래의 시간으로 다가가 서성인다. 이야기와 기억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haunting에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유동성 또는 혼종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말로, 공간의 한계가 허물어지고, ‘과거-현재-미래’라는 일차원적 시간의 순서가 흐트러지며, 그리고 존재와 부재와의 경계가 뒤섞이는 현상이다.

   순전히 나의 관점에서, 자우녕 작가의 한강을 중심으로 한 서울에 대한 〈기억, 반기억〉은 바로 이렇게 과거와 현재, 장소와 비장소, 주체와 객채,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서울에 위치한 한강 자락은 작가의 고향으로 잊혀진 과거의 공간인 동시에, 출퇴근 길에 늘 바라보면서도 접근하기 어려운, 부재와 다름없는 곳이다. 한강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역사적 기념비가 새겨진 곳이고 한국의 밝은 미래를 예시하는 곳이면서, 또 수많은 이들이 던진 몸들, 죽은 고기떼, 버려진 기억들이 부유하는 곳이다.

    작가는 지난 해 추운 겨울, 기억의 장소, 모래밭이 드넓었던 한강변 광나루를 찾는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 양평까지 이르지만 한강은 그의 기억을 돌려주지 않는다. 기억은 오직, 마포대교에서의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 2〉 촬영 중 떠오른 시신 한 구의 이미지, 작가가 한강 뻘 속에서 캐낸 한 가족의 한복과 “소원성취”가 적힌 부적, 차와 인적이 드문 광진교를 휘어감는 바람과 물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통해서만 찾아온다. 그는 한강에서 ‘수행’ 중, 강변에 묻힌 이야기들을 캐어 내고, 강을 스쳐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고통과 욕망을 목격한다. 한강, 그곳은 억눌렸던 기억들이 회귀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출몰하고 배회하는, 그리하여 예기치 않은 타자와 만나는 공간이었기에, 자우녕 작가의 〈기억-반기억〉은 단순한 노스탤지어의 재현도 아니고 도시공간에 대한 이념적 비평도 아니다.

    그는 시간과 공간, 존재와 부재,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넘어서는 한강이라는 공간을 전시장 안에 형상화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거기 있는 것들은 물화될 수 없는 형상이고, 기억에 가두어 놓을 수 없는 초시간적 역사이기에 관람자의 몫은 감상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예기치 않은 존재-비존재들과의 조우를 엿보는 것이다.

    오늘 한강은 우리에게 있는 ‘비존재’인 동시에 ‘없는’ 존재이다. 도시의 욕망이 강 저변에 똬리를 트는 순간 무의식들은 쉴 새 없이 강의 남과 북을 횡단한다. 나의 그리고 타인의 기억들은 뒤엉켜, 부유하는 바람과 물소리를 통해서만 들려온다. 이렇게 기억되고 기억에 반하여 흐르는 것이 한강뿐일까. 성수대교는 어떻고, 세월호는 또 어떠한가? 기억은 어느 시점까지 살아있다. 그러나 역사에 쓰이지 않고 박물관 안에 박제화되지 않은 어떤 기억들, 존재들, 사건들은 유령처럼 어느 순간 산 자들에게 돌아온다. 자우녕 작가의 작업은 그들을 초대하는 몸짓으로 느껴진다. 역사 속에 억울하게 매장된 망자들의 출몰을 기다리기 위해 온 겨울 끝이 보이지 않는 강변을 걷는 그 걸음은 이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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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세번째[각주:1]


선교의 ‘웰빙-우파화’, 가능성과 한계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공격적 해외선교’에 대한 낭만주의, 그 끝자락


    1990년대 한국교회는 해외선교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초고속으로 성장하던 한국개신교의 교세가 급작하게 꺾이기 시작한 상황에서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인해 우연히 발견된 ‘해외’라는 상상력은 역성장의 위기에 대한 새로운 출구로서 선택되었다. 그간 해외선교는 선교전문기관들이 교회와 불화하며 외롭게 이어가고 있었고, 교회는 거의 무관심했었다. 교단 선교국이 국제 기독교네트워크와 연대하여 극소수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이 한국교회가 수행했던 해외선교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한국선교연구원의 한국개신교의 세계선교 현황 자료(2003).  이 통계에는 개별 교회의 선교사는 빠졌다한데 2천 년대에 오면 개별 교회 파송 선교사의 수가 적지 아니 늘었다


   그런데 1990년대는 사정이 달라졌다. 수많은 개별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했고, 선교전문기관 파송 선교사에게도 교회들의 후원이 답지했다. 그리고 이런 급격한 증가추세는 2천 년대까지 이어져, 2006년 세계 선교사 파송 순위가 미국 다음인 2위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증가율이 현저히 줄기 시작했고, 2012년 이후 감소 추세에 있다.

   그 이유는 국내에서의 성장 정체를 세계로 향한 팽창주의로 만회하려는 성장지상주의가 점점 교회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겠다. 피선교국이던 한국이 세계적인 선교사 파송국이 되었다는 자긍심은, 한국 내에서 지탄을 받았던 공격적이고 배타주의적인 선교방식이 피선교지역 주민들을 포함해서 전 세계의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까지만 유지될 수 있었다. 2004년 김선일 사건이나 2007년 단기선교팀의 아프간 피랍사건을 계기로 해외선교라는 낭만적 자부심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후 언어능력과 독서능력이 뛰어난, 게다가 비판적이기까지 한 주권교인들은 이러한 공격적 해외선교에 얽힌 문제점들을 인지하게 되었다. 여전히 선교전문기구들과 여러 목사들은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열렬히 부르짖었고, ‘미전도종족 입양’이라는 좀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공격적 선교의 새로운 아젠다를 내걸었지만, 이제 해외선교라는 의제 자체만으로 교회 신자들을 동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구호/개발 선교


   해외여행 자유화 시대 배낭여행 붐을 일으켰던 한비야 씨가 기독교계의 세계 최대 구호・개발 NGO인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공격적 해외선교의 로망이 무너진 자리에 한비야 씨를 통해 전해진 새로운 해외선교의 가능성이 쑤욱 끼어들어왔다. 1950년 전쟁 이후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원조의 대상이었던 한국이 이제 원조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더구나 정부의 해외원조업무의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여러 지역에서 구호・개발 NGO로 활동하는 한국 단체 가운데 기독교계 단체가 40% 이상이나 되고, 활동력이나 영향력 등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의 구호・개발 NGO들의 예산 총액은 국내 최대의 모금・배분기구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예산총액의 4.3배에 달하는데, 이는 기독교계 구호・개발 NGO들의 예산 총액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2~3배쯤 될 것임을 시사한다. 나아가 이 규모는 전 세계 기독교계 구호・개발 NGO 가운데서도 최대 수준이었다. 선교사 파송 순위야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나 장한 일로 통할 것이겠지만, 해외원조 분야에서 최고라는 건 한국사회 전체를 향해 우쭐해도 될 것이었다.

    이 구호・개발 차원의 선교는 공격적 선교를 대체하는 새로운 선교 항목으로 떠올랐다.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가르침에 기반을 둔 나눔을 실천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나눔의 대상에 대해서도 그들의 신념에 상처를 주지 않고 나아가 그들 자신의 자생력을 북돋고 그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방식의 선교다. 확실히 구호・개발적 선교는 공격적 선교보다 진화한 것이었다. 적어도 주권교인들은 그렇게 보았다. 그들은 더 이상 교회의 자기 충족적 비용을 위해 자신들의 기부가 다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러 가치 있는 영역들로 나누어 기부를 실행했다. 

   하여 떠돌던 주권교인들을 정착시킴으로써 대형교회가 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구호・개발 차원의 선교를 교회 활동의 하나로 수용하는 데 있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개별 교회가 모든 걸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 곳곳에서 원조가 필요한 사회를 찾아내고 그 사회에서 책임 있는 파트너를 찾아 그들에게 전달하며 그 과정과 결과를 수집・분석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운 구호・개발 전략을 기획할 수 있는 단체여야 한다. 또한 이런 활동은 개별 교회의 기부금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기부자들로부터 굉장히 큰 원조금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여 개별 교회는 전문적인 구호・개발 NGO와 연합하여 다양한 프로그램과 캠페인을 통해서 주권교인들을 교회 활동에 동원하려 했다.

    동시에 이런 프로그램과 기획들을 통해 교회는 자교회 청년들에게 구호・개발 분야의 취업 기회(기독교계 구호・개발 NGO의 직원수가 1만 명이 넘는다)를, 그리고 해외유학을 원하는 청소년에게 대학입시를 위한 봉사활동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구호・개발 선교 프로젝트는 공공적 가치와 사적 이해가 ‘잘 결합된’, 가치 소비 시대에 걸맞는 종교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행의 전 지구적 시스템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과시적 성과주의보다는 그 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에 대한 소비가 주권교인들의 신앙태도로 형성되는 데 구호・개발형 선교는 한몫했다. 그것은 전형적인 ‘웰빙우파스러운’ 선교였다.


아동결연 선교


    이러한 구호・개발 선교 프로젝트 중 가장 많은 대중의 참여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동결연 사업이다. 가난한 제3세계 아동 1인에게 매월 3만 원 정도를 후원한다는 것인데,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활동으로 유명해진 한국컨패션(Compassion Korea)을 포함하여 240여 개 단체에 무려 600만 명에 달하는 기부자가 참여하여 전 세계에서 67만 명의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이중 개신교 단체와 기부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여기에는 무려 30명의 제3세계 아동과 결연을 맺었다는 차인표・신애라 부부뿐 아니라, 105명과 결연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정애리, 무려 2백여 명이나 된다는 션・정혜영 부부 등, 공격적 선교를 지양하고자 하는 많은 유명 개신교 신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대형교회들이 아동결연 캠패인을 벌이고 있는데, 분당우리교회는 3000명의 제3세계 아동과 1:1 결연을 맺기로 한국컴패션과 약정을 맺었다.

    이러한 아동결연을 매칭하는 NGO들은 주기적으로 후원아동의 성장을 체크하여 후원자에게 공지해주고, 때로는 서신교환 및 만남을 주선하며, 나아가 후원아동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해당 지역사회의 개발에도 관여하고 이를 후원자에게 알려 준다.


한국컨패션이 후원하는 필리핀 아동들과 이 단체의 홍보대사 신애라


분당우리교회(이찬수 목사)는 제3세계 아동 3000명과 1:1 결연 계약을 한국컨패션과 맺었다.



    이러한 사업은 후원의 일회성과 익명성을 지양하고, 개인후원과 사회개발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들보다 한층 진일보한 선교다. 또한 적은 기부금액으로도 기부효과가 작지 않다는 상각에 이르게 함으로써 대중성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이 프로젝트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은 강남과 분당 지역의 대형교회들이다. 주권교인들의 기호에 대한 맞춤형 선교의 압박이 더 컸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공적 가치를 소비하게 한다는 점에서 웰빙적 선교라고 할 수 있다.


'진공포장'된 선교


    그러나 이러한 구호・개발형 선교는 너무 ‘진공포장’되었다. 현지의 고통에서 철저히 차단된 사치스런 선교다. 그럼에도 구호・개발 선교기구들과 교회는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기부자에게 최고의 립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동결연자에게 ‘입양자’라는 칭호를 주고, 후원자의 현지방문을 ‘단기선교’로 명명하곤 했다. 가벼운 참여를 ‘부모 되기’ 혹은 ‘선교사 되기’와 연결시키는 과장된 자의식과 결합된 주체는, 현지에서 벌어지는 난감하고 불편한 진실로부터 그들이 차단되었을 때만 그 ‘자뻑’형 착시를 유지할 수 있다.

    실제로 구호・개발 사업을 벌이는 NGO들은 현지에서 종교성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재정의 15% 가까운 지원을 받았다. 이 정부지원금이 이들 단체들의 운영기금으로 활용됨으로써 참여자들의 기부금 거의 전액이 현지에 전달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점점 기독교계 구호・개발 NGO들의 종교색이 노골화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교회들의 후원금이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권교인들의 바람을 수용하여 구호・개발 선교에 끼어든 교회들은 구호・개발 선교에 대한 신학적 고민을 치열하게 하지 않았다. 단지 교인들의 바람을 교회에서 흡수하기 위한 전략에만 몰두했다. 이것은 동시에 주권교인들의 ‘자뻑형 착시’가 일으키는 주체 효과와 상응관계에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권교인들은 ‘먼 곳’의 수혜자를 타자화함으로써 현장의 복잡한 고민에서 거리를 둔 ‘깨끗한 선교’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진리의 수행자로서의 자의식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은 현지의 복잡한 정보를 단절시킨 ‘진공포장된 선교’를 만드는 구조적 요인의 하나였다.

    아동결연 사업도 그 사회의 성장 인프라 구축이라는 사회구조적 요소를 포함한 선교기획이지만, 사회구조의 문제는 개별 구호・개발 NGO가 담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축적된 연구와 활동의 기반을 갖고 있는 기독교계 국제네트워크들을 포함한 여러 국제기구들과 협의하고 연대하며, 현지 시민사회 및 정치 단체와도 공조하며 진행해야 할 것이었다. 이런 거시적인 협의와 연대 없이 진행되는 사회 인프라 구축 기획은 성공하기 쉽지 않으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아동결연 사업 참여자는 그 아동이 겪을 혼란과 갈등에 얽히지 않은 채 자신의 안전한 기부가 성과로 돌아오길 바랐다. 그들이 원한 것은 시시콜콜한 현지 사정이 아니라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하여 웰빙-우파적 주권교인들의 ‘깨끗한 선교’ 욕구는 선교 현지의 사회적 복잡함에 대한 외면과 은폐를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공격적 선교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타자화’에 다름 아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 1199호(2016 11 01)에 실린 '웰빙우파와 대형교회' 13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_id=2016100416403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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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허구일지도 몰라, 여성혐오[각주:1]



신윤주*



# 나의 이야기


    지난 세월을 돌이켜 헤아리는 일은 시간의 유속을 왜곡하는 셈법이라지만 그래도 그렇지, 8년차 부부라니! 맘이 그렇지 않다 해도 신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기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버렸다. 낯선 열정이 친숙한 다정함으로 변모하는 동안 동갑내기인 우리 부부는 양가 부모님 네 분의 환갑 기념행사와 동생의 결혼, 그리고 몇 번의 이사를 함께 치렀다. 그리고 서른여덟이 되었다. 서른여덟짜리 여성의 몸은 어떤 것일까. 나는 아이를 가지는 일을 두고 숙고할 때마다 내 몸의 나이를 센다. 그렇게 ‘나 자신’인줄 알았던 몸이 사실은 ‘대상’이었음을 자각한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가정되어 있지만 사실은 통제의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대상으로서의 육체가 불모를 선언하기라도 할까봐 내심 불안해한다.

    나는 아직 초산을 하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간의 피임은 성공적이었다. 처음부터 아이 없는 삶을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망설임은 유보 혹은 지연으로 귀결되곤 했다. 주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한두 해가 지났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이 소식을 묻기 시작했다. 양가 부모님 역시 순리처럼 아이를 기다렸다. 엄마는 애를 태우기까지 했다. 혹여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않아 쌔한 대접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신 것이다. “시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셔?” 어느 날 엄마는 무심한 척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물론 기다리기야 하시지만 재촉하진 않으신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남편이 부모님을 나름 성공적으로 설득해내고 있기도 했다. “지금 저희 벌이로는 아이 못 키워요. 다른 여건도 어렵고요. 저희 아이는 저희가 키울 거예요.”

    결혼 후 첫 해를 채운 후에 나와 남편은 순차적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결혼할 당시에 진학을 계획했던 건 아니었지만 출산의 시기 때문에 조금 서둘렀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무 것도 못한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고 우리에겐 더 해야만 하는 공부가 있었으니까. 마치 사명처럼 우리를 추동한 욕망을 따라 남편과 나는 출산도, 커리어를 쌓는 일도 다음으로 미뤘다.

    물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일과 공부와 육아를 병행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한정된 자원의 배분에 관한 문제였다. 육아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이의 부모가 포기하지 않으면 조부모가, 그마저도 어려우면 아이 자신이 포기할 지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여성으로서의 당위와 기대가 만들어낸 내적 갈등이 한동안 이어졌다. 빨리 아이를 갖지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자기 몸의 한 자리에 난 방을 작고 여린 생명에게 내어주고, 열 달 즈음 몸 안에서 자라게 하고, 때가 찼을 때 광활한 우주의 어느 공간에 내어놓는 일. 그리고 그가 스스로 자기 몸과 세계를 다룰 수 있을 때까지 여전히 지키고 돌보는 일. 자녀를 만난다는 것은 분명 대단히 특별한 경험이자 엄청난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 원하지 않는 아이만큼 여성을 괴롭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아이와 상황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지 끝내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를 바라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아버지가 되는 일의 숭고를, 부모님에게 갚아야 할 생명의 빚이 있음을 생각했지만 경제적인 부분에 관한 현실적 우려를 떨칠 수도 없었다. 아이가 생긴다는 건 진로와 사랑 양쪽을 모두 건 모험을 감행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남편의 관심 분야는 모종의 성취와 돈벌이 사이의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았다. 또,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방향으로든 부부의 관계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꽤 만족스럽게 잘 지내고 있기도 했다. 남편에게도 아이의 등장으로 인해 자신이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몇 해 전 어느 모임에 참석했을 때였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의 간부급 남성 한 분이 걱정이라는 듯 점잖게 말했다. “요즘 젊은 여자들은 이기적이어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게 큰 문제에요.” 자녀를 위한 희생을 감당하지 않으려한다는 거였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기는 했다. 하지만 출산 기피 현상을 그런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입체적인 사안을 너무 납작하게 만들어놓는 일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그때 ‘아이를 낳는 일도 자녀를 갖고자 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을까? 적어도 이기심과 이타심의 이분법 외에 다른 준거들이 존재할 수 있음을 반문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식물처럼 앉아 있었을 것이다.


#자궁은 누구의 것인가


    모성은 당위가 아니지만 어머니가 되는 일에서 발견 되는 숭고가 있다.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는 실천은 삶의 깊이를 더하고 외연을 넓히는 결과를 낳곤 한다. 그러나 아이를 원하는 이유가 이타성을 훈련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사명 때문이든, 부부의 모습을 닮은 아이를 보고 싶기 때문이든, 부모님이 기다리시기 때문이든, 엄마가 되는 경험이 주는 긍정적인 기억 때문이든, 첫째 아이를 위한 것이든 출발점은 희생이 아닌 ‘욕망’이다.

    새 생명의 삶은 소중하다. 아니,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그렇다면 생명을 잉태한 이의 생명도 소중하다. 그리고 두 생명이 맺는 관계의 양상도 소중하다. 축복 속에 시작한 결혼이라도 순탄치만은 않듯, 축복 속에 시작한 삶이라도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이다. 수많은 필요와 장애를 해결할 의지와 기지를 발휘해야 할 때 누군가에게 욕망되지 않는 삶은 쉽게 좌초된다. 욕망하지 못하는 양육자는 죄책감을 쉬 떨치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러므로 여기에 사회적·도덕적 당위의 잣대를 가져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임신과 모성을 선택할 혹은 포기할 권리와 책임은 일차적인 책임의 주체인 성인 여성에게 있어야 한다.

   임신 중단은 여성이 자신의 삶에 일어난 낯선 사건을 다루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완성이라기보다 새로운 관계의 시작에 불과하며, 그 관계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양육자의 돌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임신과 출산, 양육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은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갓 엄마-되기를 시작한 한 여성은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고 새로운 몸의 신호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라가는 생명과 더불어 호흡한다. 하나의 흔적이 미미한 박동이 되고, 그 박동이 인간 신체의 형상으로 광활한 세계에 떨어지고, 최초의 폐호흡을 시작하면 비로소 진짜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 덩어리의 숨 쉬는 육체가 사회 속에 자리를 만들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하나의 인간 개체가 되기까지 복수의 양육자와 공동체와 사회와 국가는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수의 양육자가 아이의 생존을 책임질 길을 상상할 수 없다면 출산하지 않는 선택을 과연 이기적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임신 중단으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여성 자신인 경우가 많다.

   지난 해 보건복지부에서는 여성의 자궁을 관리하기 위한 정책들을 내놓았다. 그중 하나로 ‘낙태죄’의 유령을 불러낸 조치로서 여성·사회 운동가들에게 비판을 받은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령안’과, 성경험에 대한 궁극적 책임을 여성에게 귀속하는 접근인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사업이 있다.

    우선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령안’이 문제가 된 것은 근본적으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임신중절수술 조항을 포함시켰다는 데에 있다. 불법임신중절수술에 관한 처벌 조항이었지만 산부인과의사회는 11월 2일부터 모든 병원에서 임신 중절 수술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을 발표했다. 한국 사회에서 임신중절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합법인 경우는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유전성·전염성 질환 등의 보건 의학적 사유나 성폭력에 의한 임신 등의 경우에 제한된다. 또 합법적 사유에 해당되더라도 임신 24주 이내에, 그리고 부득이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남성)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임신 중단은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라는 조항에 따라 불법이며, ‘낙태’를 한 여성도, 시술한 의료인도 형사 처벌의 대상이다. 

    임신의 ‘과정’에 남성이 개입되고 임신 이후의 모든 기간에 사회적 장치들이 개입되는 만큼, 임신 중단의 결정을 여성 개인의 죄로 처리하는 것은 부당하다. 임신 중단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여성에게 인구 재생산의 사회적 의무를 부과할 때뿐이다. 여성의 삶을 고려하지 않고 여성의 몸을 단순한 인구정책수단으로 바라보는 것은 여성혐오적 접근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최초의 쾌락과 최초의 수정에 대한 기여도를 감안한다면 준비되지 않은 임신에 대한 도의적 책임과 과오를 모두 여성에게 묻는 것 역시 성평등지수가 낮은 사회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여성혐오적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각종 여성·사회단체의 청원 덕에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처벌을 12개월 자격 정지로 강화하려던 개정안의 조항은 현행과 동일한 수준인 1개월 자격 정지로 유지되었고, 복지부는 현행 의료법령에 명시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대체 용어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책임을 여성 자신에게만 귀속하는 시각은 지난 해 6월에 발표된 사업인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에서도 발견된다. 건강여성 첫걸음 클리닉은 2003~2004년에 태어난 12~13살 여학생이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하도록 권장하는 사업이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도에 국회로부터 예산을 배정받아 매해 230억원을 이 사업에 배정하여 무료 접종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주사제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어 접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11월에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동행’ 캠페인’이라는 것을 내놓기도 했다. 무료 접종 대상을 12, 13세의 여학생으로 제한한 이유로 제시된 것은 HPV 감염이 성 접촉을 통해 전파되므로 성 경험 전 예방을 통해 최적의 효과를 내도록 한다는 것, 9∼15세 연령에서 접종 시 그 이상 연령에서 접종한 경우보다 면역반응이 더 높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는 성별을 특정한 근거로 충분하지 않다.

    사실 이 백신은 정확히 말해 자궁경부암 예방 주사가 아닌 HPV 백신이다. 마치 인플루엔자(flu)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주사를 플루 백신이라고 하는 대신 독감 예방 주사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사실상 HPV 예방 주사는 자궁경부암만을 예방하는 주사가 아니다. 이 주사는 항문암에 80%, 자궁경부암에 70%, 여성생식기 계열 암에 60~40%, 그리고 몇몇 구강암에 대한 예방 효과를 기대한다. 또한 성 접촉을 통해 감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예방주사를 반드시 ‘여성 청소년’만 맞아야할 이유는 없다. 이미 한국은 캐나다, 호주, 홍콩, 영국, 미국 등과 더불어 남성에게도 이 예방접종을 할 수 있는 승인을 받은 상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방접종 대상이 여성으로 제한되기 때문일까. HPV 예방주사 중 하나인 ‘서바릭스’의 홍보물은 학생들 간 대화의 내용으로 인해 여성혐오 논란을 촉발하기도 했다. 


     여학생 A: 우와- 오늘 자궁경부암 백신인가 때문에 병원 간다구? 

     여학생 B: 아 몰라~!! 지금 우리 나이가 공짜로 놔주는 때라서 엄마가 절호의 찬스래. 


     남학생 C: 너 그거 얌전히 맞는 게 좋을 거야. 신문에서 사춘기 때 맞는 게 좋다고 했어! 

     여학생 B: 이 자식, 네가 뭘 알아? 남자가. 

     남학생 C: 사... 상관있어! 여자가 나중에 내 아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


# 여성혐오의 정의는 고정되어 있는가


    여성혐오Misogyny에 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지난 한 해였다. 온라인 서점 내 페미니즘 분야의 도서 판매량이 전전해 같은 기간에 비해 급증했다는 내용이 기사화되었고, ‘여성혐오’는 2016년 누리미디어(dbpia) 에서 선정한 사회과학분야 최다 검색 키워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깊은 공감과 학습 의욕을 불러일으킨 여혐 논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반감의 대상으로 자리하는 일에 그쳤다. 그런데 저마다에게 정의된 ‘여성혐오’는 같은 것일까?

    한국말에서는 Misogyny가 여성혐오라는 번역어로 굳어졌지만, 이 개념어 자체에 대한 정의나 이해는 학자들이나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다소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해석의 여지나 ’혐오‘라는 어휘에 대한 정서적 반응의 문제 때문인지 여성혐오 개념의 적용에 관한 논란은 피할 수 없는 일인 듯하다. 그러던 중 일본의 사회학자인 우에노 치즈코의 저서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의 일본어 제목이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여성혐오’에 해당하는 단어가 원어인 ‘Misogyny'의 음가를 그대로 차용한 ‘미소지니(ミソジニー)’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용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2012년 10월, 호주의 국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통해 여성혐오 개념에 관한 비교적 최근의 논의 중 하나를 확인할 수 있다. 맥쿼리 사전Macquarie Dictionary은 이 일로 여성혐오의 사전적 정의를 개정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호주의 대학에서, 또한 법률가들이 참조하는 사전으로서의 권위가 인정되는 맥쿼리의 개정은 결과적으로 여성혐오에 관한 가장 최신 버전의 정의로서 회자되기도 했다.

    사건에 달린 표제는 여성혐오 연설Misogyny Speech이다. 사건은 2012년도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피터 슬리퍼Peter Slipper가 여러 스캔들에 휘말려 사임을 하는 과정에서 촉발된다. 슬리퍼는 2012년 4월 이후로 여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보좌관에게 노골적인 성희롱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를 고소한 보좌관은 제임스 애쉬비James Ashby로 서른세 살의 동성애자였다. 당시 총리였던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는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는데, 야당의 영수인 토니 애보트Tony Abbott는 (슬리퍼와 같은 성차별주의자를 국회의장직에 남겨 두는 것은) 정부의 수치를 또 하루 더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애보트가 길라드 총리에게 자극적인 발설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길라드는 슬리퍼가 의장직에서 물러난 다음 날인 10월 10일, 작심이라도 한 듯 15분에 걸친 연설을 통해 애보트를 비판한다. 이 연설을 찍은 동영상을 업로드하며 ABC 뉴스는 다음의 제목을 붙인다. “길라드가 애보트에게 여성혐오자라는 딱지를 붙이다.”

    이 연설에서 길라드는 애보트의 발언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왜 애보트가 성차별주의sexism나 여성혐오에 관한 문제제기를 할 자격이 없는지, 그리고 어째서 애보트 자신이야 말로 성차별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인지에 관해 논증한다. 호주 최초의 여성 총리인 길라드가 취임한 후 애보트는 인터뷰 도중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만약에 남성이 여성보다 일반적으로 더 많은 권력을 쥔다는 게 사실이라면요, 그게 나쁜 가요?”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때때로 의사당 내부의 웅성대는 소리가 거세지고, 의장이 저지하다 못해 고개를 가로젓기도 하지만 길라드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취임 이후로 애보트로부터 들은 모욕적인 언사들, 애보트가 여성의 역할에 대해 구시대적 선입견을 가지고 한 발언들, 한때 가까운 동료였던 슬리퍼와 그의 스캔들에 접근하는 애보트의 이중 잣대, 그리고 의결 과정에 대한 절차적 존중을 성차별 담론으로 퇴색시킨 것에 대한 분노를 꿋꿋이 발화한다.

    이 연설로 길라드 총리는 여성혐오라는 용어 사용의 부적절성과 및 야당 총수에 대한 태도에 관하여 호주 내 언론인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SNS상에서 그리고 페미니스트들로부터는 주목을 받는다. 나아가 연설 장면을 담은 동영상의 조회 수는 수백만에 이르게 된다. 이에 맥쿼리 사전은 표제어 ‘여성혐오’에 관한 정의에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여, 기존의 정의였던 “여성에 대한 미움/반감”이라는 의미에 “여성에 대한 확고한 편견들”이라는 의미를 더한다. 여성혐오에 관한 기존의 정의로 담아낼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을 수용하고 사전적 정의를 확장한 것이다. 이 용어의 정의에 관한 한 맥쿼리 사전은 옥스퍼드 사전보다 비교 우위에서 논의되었다.

    같은 달 17일, 가디언 지에서는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 무엇이 다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다뤘다. 여섯 명의 페미니스트는 각자의 견해를 내놓았는데 그 중 나오미 울프는 “반유대주의가 유대인을 싫어하는 것이듯 성차별주의란 여성을 싫어하는 것”으로서 줄리아 길라드의 용례는 매우 정확했다고 말한다. 울프는 길라드의 연설 내용 중 토니 애보트가 ‘낙태’를 두고 책임을 회피하는 쉬운 길로 묘사한 것, 선거 운동 중 야당 지지자들에게 마녀를 쫓아내자는 구호를 인용한 것이 있었던 것에서 근거를 찾는다. 한편 줄리 빈델은 성차별주의자가 늘 여성혐오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예컨대 여성은 천성적으로 모성이 있다거나, 기본적으로 운전을 못 한다거나 하는 주장을 한다면 그는 성차별주의자이지만, 이에 덧붙여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자신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존재로 제한한다면 그는 여성혐오자라는 것이다. “여성혐오자들은 반드시 성차별주의자이지만, 성차별주의자들이 항상 여성혐오자인 것은 아니다.” 라일라 굽타는 “성차별주의란 여성혐오를 꽃피우는 우물인데, 물이 하도 탁해서 우리는 가끔 그게 얼마나 실하게 자라고 있는지 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성차별주의는 남자들이 당신을 새치기해서 줄에 설 수 있도록 끼워주고 붐비는 버스에 먼저 탈 수 있도록 도와주고는 싫든 좋든, 아 가엾지만, 그들의 손이 “우연히” 당신의 가슴을 감싸며 여성혐오의 광기로 당신을 짓밟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성혐오라는 허구


    여성혐오의 정의는 언어 표상의 운명을 따라 통시성과 공시성을 지닌다. 개념이 속한 시대와 지역의 특성이 의미를 구성하는 사건들에 차이를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옥스퍼드 사전에서 정의하는 여성혐오의 의미(“여성에 대한 증오, 미움, 편견”) 및 용례들이 19세기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2017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2012년 호주에서의 여성혐오 논쟁을 촉발한 사건이 길라드 총리의 연설이었다면 한국의 경우는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여성혐오를 둘러싼 페미니즘 이슈는 급격히 일상의 언어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여성혐오 논의에 의해 계몽된 주체는 ‘여혐’하는 남성보다 ‘여혐’하던 여성이었다.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물질성을 얻은 도서가 다수 출간되었을 뿐 아니라, SNS상의 페이지 혹은 그룹과 페미위키 등을 통한 아카이빙 작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호주의 사례와는 달리 권위 있는 사전에서 새로운 정의를 내놓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의미가 고정된 기표의 부재는 다성성polyphony을 띠는 운동력의 원천인지도 모른다.

    각자가 이해하는 여성혐오가 동일한 의미를 담아내지 않는 것은 불편한 일일 수 있으나 어쩌면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명사의 의미에 대한 하나의 약속 위에서 소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맥락 속에서 그 어휘가 소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여성혐오적 상황에 대한 각자의 고백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만드는 첫 번째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다성적 실천이야말로 무엇보다 여성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정신분석학자 자끄 라깡이 보편적 명사로서의 여성은 ‘없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오히려 서로 다른 개별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긍정이었다. 일반화된 여성 이미지는 어쩌면 불가해한 여성 혹은 부재하는 집합 명사를 견디는 대안적 허구다. 그렇다면 여성혐오도 허구일지 모른다. 고유한 삶의 역사를 지닌 개별적 인간들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반화한 여성에 관한 담론으로서의 허구 말이다.

    나와 남편은 전형적인 역할의 틀에 맞추기보다 둘 사이에서 실현되기에 적합한 관계의 양상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다. 좀 더 까다로운 필요를 갖고 있거나 이미 유능한 일을 중심으로 역할을 분담하다보니 일반적인 성역할이 분배되는 방식과는 조금 차이가 생겼다. 남편은 언제부턴가 요리 파트를 맡고 있다. 남편이 요리를 잘하게 된 후로는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가는 요령을 익힌 것 같다. 장을 보는 단계에서부터 식재료는 남편이 고른다. 나는 공산품 담당이다. 상품 패키지에 적혀 있는 원재료를 읽거나 가격을 비교한다. 대신에 나는 처음부터 남자가 돈을 벌어오는 방식으로 가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소득이 많진 않았지만 결혼 시기 중 대부분의 기간에 가계 소득 기여도는 내 쪽이 더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건강 상태나 감정을 살펴서 챙기거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고민이 생겼을 때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듣는 나의 태도는 좀더 여성적인 역할일 것이다. 관습적인 성역할을 기준으로 볼 때 현실적인 수행의 부분은 일관되지 않았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린 것은 나였다. 여성적 수행으로 고정된 일들에 대한 죄책이 가부장제의 질서 하에서 형성된 여성혐오적 기준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이제는 나의 역할과 신체를 도구화하는 일을 좀더 비판적으로 인식한다.

    최근에 개정하여 출간된 어느 책의 제목처럼 페미니즘은 사실상 ‘모두를 위한’ 것이다. 페미니즘의 시선을 통해 질문하는 일보다 페미니즘의 시선에 대하여 질문하는 일이 더 익숙한 것은 무엇이 이데올로기인지를 반증한다. 이상적으로 제시된 여성 일반의 특성도, 삼가야할 것으로 제시된 특성도 모두 하나의 통념이다. 통념은 안전하지만 우리를 우물 안의 세상에 가두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변화는 불편하게 겪어낼 수밖에 없지만 어떤 변화들은 우리가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계기로 기능한다.

    우리는 어떻게 환경으로서의 여성혐오를 넘어설 수 있을까. 우선은 여성 각자가 성차를 둘러싼 고정관념에 복무하려 애쓰는 대신 자기 자신을 발화하고 욕망을 찾아가는 일을 통해 균열의 지점들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혐오적 틀의 편리함 대신, 남성들과 여성들이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개별적 여성에 대하여 질문하며 그들 각자와 고유한 관계성을 구성해가기 위해 얼마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통념은 강하다. 하지만 불멸하는 것 또한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 필자소개  

메모광. 학부에서 국제어문학을, 석사과정으로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며, 향후 프로이트 라깡주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1. <가톨릭평론> 2017년 5·6월호에 송고한 원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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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묵시록 12 : 맥도날드 블루스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나의 미국은 동네 맥도날드에서 시작한다. 아침에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리지 않는 날은 거의 없다. 내가 나타나는 모습이 보이면 주문을 하지 않아도 남미출신 직원은 커피를 따르기 시작한다. 분명한 단골이지만, 장사에 도움이 되는 고객은 아니다. 작은 사이즈 커피에 크림 두 개가 전부다. 직원은 전부 남미 출신 아니면 흑인이다.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다. 아침의 맥도날드는 동네 백인 노인들의 다방이다. 10명 내외의 노인들이 예외 없이 앉아 대화를 나눈다. 주로 전날 스포츠 경기에 대한 얘기나 자동차 문제, 젊은 시절 군대나 최근 정치 얘기가 주된 대화거리다. 대화에서 개개인이 맡는 역할은 언제나 비슷하다. 늘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 늘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맥도날드를 처음 드나들 때부터 내 시선을 끈 한 사람이 있다. 언제나 검은 운동모자를 쓰고 다니는 백인 노인이었다. 군부대 마크와 더불어 한국전쟁 참전용사란 글씨가 박혀 있는 모자였는데, 한 번도 그 모자를 안 쓴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미국에 징병제가 있던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라 거의 모두가 한국전쟁 아니면 베트남전쟁의 참전용사들이었다. 어깨 너머로 그 노인이 한국 어느 지역의 전투에서 싸우던 얘기를 하는 걸 몇 번 들은 적도 있다. 그 경험이 특별하지 않았다면 그런 모자도 쓰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눈인사만 나눴지 한 번도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보지 않은 노인이 작년부터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멤버들도 교체된다.


    맥도날드는 한때 미국의 상징이었다. 맥도날드의 브랜드 로고인 골든 아치(Golden Arch)는 미국의 효율주의와 실용주의를 대표하는 가장 미국적인 상징이었다.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끝없는 확장과 불패의 상징이었다. 효율주의를 자본주의의 조각난 시간개념에 맞는 ‘패스트푸드’란 음식문화로 완성시켰고, 여기서 근대의 합리성은 패스트푸드의 효율성으로 대체되었다. 맥도날드는 어느 순간 저렴한 햄버거를 효율적이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기업이 아니라 미국의 가치와 문화를 대변하는 이념으로 부각되어, 반미 데모의 현장에선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 강해 어떤 훼손에도 소송으로 대응하는 기업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상징과 경험의 괴리는 언제나 넓고도 깊다. 그 내부를 직원으로 또는 고객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이 맥도날드의 상징을 얘기하는 경우는 없다. 그들의 경험은 맥도날드가 상징하는 이미지나 매장 내부 공간을 디자인한 사람들이 만들지 못한다. 그것은 그곳에서 일하고 음식을 사먹는 고객들의 몫이다. 최근 맥도날드의 직원들이 미국의 생활임금 논쟁의 주역으로 등장한 이유는 맥도날드의 상징성 때문이었다. 효율주의는 개념에 불과하지만, 그 대가는 최저임금을 약간 웃도는 시급이다. 내가 아는 맥도날드는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노인들이 경로할인 받은 커피 한 잔으로 친구들과 하루를 시작하는 곳이고, 남미의 이민자들이 미국이라는 땅에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기 위해 투쟁하는 일터다. 승리의 교향곡보다는 서글픈 현실의 블루스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테일러주의(Taylorism)라는 효율성을 강조한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체제는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체인점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졌다. 프레더릭 테일러의 이론은 단순했지만 20세기 미국의 자본주의에 그 어떤 이론보다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실험은 노동의 과정에서 불필요한 동작을 줄인 최소한의 동작을 시간으로 환산해 하루의 목표치를 노동자에게 지정해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의 효율성 연구는 과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했지만, 효율성과 경쟁을 20세기의 종교로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가 스톱워치를 사용해 철강회사 베들레헴 스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측정해 노트에 기록하는 모습은 20세기 자본주의의 노동자가 만들어지는 장면이었다. 노동의 시간을 분 단위까지로 나누고 그 쪼개진 시간 내에서의 효율성을 측정하여 노동자의 가치를 평가했다. 테일러주의의 의도는 실수나 불확실성을 배제하고 계산과 예측을 할 수 있는 경영을 추구하는 것이었지만 그 본질은 ‘인간적’인 차원을 생산과정에서 배제하여 ‘기계적’인 인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햄버거를 생산하는 목적은 고객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기계화된 생산 시스템을 관리하는 게 된다. 자본주의가 원하는 소외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내가 목격한 만큼의 인간관계가 이뤄진다는 것은 사람들의 창의성과 저항정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라는 ‘빠른 음식’은 흥미로운 시간의 이해를 담고 있다. 음식이 빨리 제공되어야 하는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노동시간도 짧아진 20세기 중반에 시간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왜 패스트푸드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여 가난한 자들의 음식문화로 정착하게 되었을까? 맥도날드를 필두로 패스트푸드 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한 1950년대 미국은 손목시계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던 시기였다. 시간이 갑자기 소중해진 것일까 아니면 차원이 다른 개념의 시간을 살게 된 것일까? 그 시대 미국은 핵전쟁으로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살고 있었다. 불안과 공포의 시간은 자본주의에 유용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를 이해하는데 시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제국주의가 공간의 개념이라면 자본주의는 시간의 개념이다. 자본주의 문화가 보편화 되면서 시간에 대한 이해도 바뀌게 된다. 시간은 쪼개지고 나뉘고 분리되어 사라지게 된다. 출근표에 시간을 찍고 출근하고 휴식시간이나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 또다시 시간을 찍고 나와야 하는 일상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일이 아니라 시간에 사로잡히고 내몰린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시간은 여유가 아니라 참고 견뎌야 하는 대상이 되었고 결국은 시간으로부터의 소외라는 현상을 만들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의 의식 속에 자본주의의 시간은 사라진 시간 그리고 남의 시간을 사는 경험으로 남아있다. 패스트푸드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실제적인 시간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몇 분의 시간도 기다리기 힘든 시간이 된다. 시간의 효율성을 지향하는 자본주의는 햄버거를 만드는 과장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에게도 그 공간은 자본주의의 시간을 확인하고 강요받고 실천하는 곳이다.


    시간이 없다는 인식은 묵시록의 시간 이해다. 미국에서 그 인식을 재확인시켜준 건 냉전 시대의 핵전쟁 공포였다. 패스트푸드의 개발과 함께 대규모 고속도로 건설이 진행됐다. 핵전쟁으로 먼저 파괴될 도시로부터의 탈출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공간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역설적으로 사라졌다. 패스트푸드는 냉전 시대의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그 중심에 묵시록의 시간 이해가 있다. 자본주의가 끝나야만 새로운 시간이 열릴 것이란 기대를 일축하며, 자본주의로 시간이 끝난다는 어떤 예언을 패스트푸드는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냉전 시대 묵시록의 공포를 만들어내고 패스트푸드를 통해 ‘사라진 시간의 음식문화’를 만들어낸 자본주의를 묵시록의 철학이라 할 수 없을까. 맥도날드는 몇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으로 유명하다. 구매한 지 몇 년이 지나도 멀쩡한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박물관에까지 전시 되었다는 뉴스가 한때 화제였다. 또 한 달 동안 맥도날드 음식만 섭취하고 몸의 변화를 측정한 사람이 만든 다큐멘터리도 있었다. 음식이 썩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의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시간이 멈추어 더는 작동하지 않는 상태이고, 소비자 인간에겐 사라진 시간을 사는 상태다. 바로 여기서 묵시록의 시간과 자본주의의 시간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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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말고 동무 I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친구 / 친구사이


    옛부터 어른들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누차 말씀하셨다. 친구 따라 강남을 갈 수도 있고, 친구 따라 감옥을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아이가 어떤 친구를 사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아이의 환경은 어떠한지 늘 노심초사 감시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럴까, 심지어 요즘은 천진난만하게 아무에게나 ‘너 나랑 친구할래?’라고 말을 걸며 코묻은 간식을 건네던 어린이들의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아이들이 먼저 친구를 어른들의 기준에 따라 ‘가려서’ 사귄다는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아이들이 사는 동네에 따라서 사람을 판단한다거나, 임대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친구를 왕따시키는 등의 행동은 돈에 찌들어버린 어른들과 이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물론 어느 누가 친구를 잘 사귀고 싶지 않을까? 그 누구도 좋은 친구를 만나서 ‘강남’ 가고 싶어 하지 어두컴컴한 감옥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친구 하나 잘 사귀어서 삶의 도약을 이룬 사례와 친구 하나 잘못 만나서 인생을 망친 사례는 늘 존재하는 것이니 미리 그 사실을 예측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좋은 친구를 만나 그 덕으로 ‘강남’ 한 번 가보겠다는 심산을 누가 모르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좋은 친구를 가려서 만나는 방법을 이야기할 마음이 없다. 애초에 그런 방법이란 없을 뿐더러 오히려 그렇게 친구를 ‘가려가며’ 만남으로써 우리가 반드시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에게 꼭 맞는 맞춤의상처럼 잘 만들어진 ‘완제품’으로서의 친구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즉, 애초에 좋은 친구란 없다. 오로지 존재하는 게 있다면 나와 친구의 ‘사이’만 있을 뿐이다. 나와 만나기 전에 좋은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리란 보장이 없다. ‘좋은 친구’를 만남으로써 내 삶이 윤택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나며 친구와 나는 많은 기억과 경험들이 켜켜이 쌓이고 그 와중에 상호적으로 에너지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모진 비바람을 헤쳐 나가 어느덧 옥석같이 빛나는 ‘친구사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친구란 어떤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친구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틈, 그 친구’사이’를 일컫는 말이었던 게다.


   한데, 이 생각에 기초하여 오히려 이 참에 한 발 더 나아가서 ‘친구’라는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의심을 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은 ‘좋은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챘다면 이제는 과연 친구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관계를 지향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김영민 그리고 '동무론'


    이에 나는 김영민이라는 한 철학자를 소개하려 한다. 그는 오랫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습을 고민하고 디자인해 온 이다. 특히 친구라는 관계의 그 ‘끈끈함’과 ‘축축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런 친구라는 관계의 특성이 끌어들이는 여러 부작용들에 대해 고민했다. 하여 그는 친구의 대안으로 ‘동무’라는 새로운 관계 양식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 왔고 단행본으로 세 권에 걸쳐 – ⌜동무론⌟ (한겨레출판 2008), ⌜동무와 연인⌟ (한겨레출판사, 2008), ⌜비평의 숲과 동무공동체⌟ (한겨레출판사, 2011) – 왜 우리는 친구라는 관계 말고 ‘동무’여야 하는지에 대해 길게 논의를 펼쳤다. 나는 여기서 그 모든 이야기들을 할 수는 없지만, 몇 회에 걸쳐 짤막하게 김영민의 동무론을 소개함으로 우리가 이제까지 맺어온 친구 또는 친구 사이를 성찰해보고 새로운 관계의 방식, 새로운 연대의 방식을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어 보려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여 김영민이 말하는 동무란 ‘동무(同無)’다. 다시 말해, 동무란 즉 ‘같음이 없는 사이’인 것이다. 본래 동무란 순우리말로서 친구를 의미하지만, 김영민은 기존의 친구에 관한 통념을 뒤엎고 자신만의 특별한 동무론을 펼치기 위해 일부러 ‘동무’를 한자로 언어놀이하듯 만들어 ‘친구’라는 관계와 차별화하였다. 그에 의하면 친구와 동지, 그리고 동무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면 인간과 인간이 새롭게 맺어야 할 교우관계는 그 셋 중 ‘동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복잡하고 헷갈리니 길지만, 직접 그가 말하는 ‘동지’와 ‘친구’, 그리고 ‘동무’의 비교를 들어보도록 하자.


대의가 푯대라면 그 푯대 아래 ‘동지’가 모인다. 그들은 거사에 함께 투신하고 혁명에 신명을 바친다. 그 과정에서 취향은 무시되어도 좋고, 사랑조차 종종 걸림돌일 뿐이며, ‘의사소통적 합리성’도 부차적이다. 더불어 벤야민의 비평론이 가르치듯이 객관성마저도 당파적 실천을 위해서 희생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배신만은 용서할 수 없는 짓이다. 

그러나 ‘친구’에게는 대의도 이데올로기도, 관념의 일관성만으로 묶어둘 끈도 없다. 전두환들이나 김영삼들이, 최민수들이나 강호동들이 웃는 표정만으로도 족하다. 이론이 부재한 자리를 정서적 일체감이 들물처럼 채우는 사적 우연성, 그것이 친구다. 공유된 이념이 없으니, 원칙상 배신도 존재할 수 없는 두루뭉수리한 관계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배타적 관계의 형식은 대의와 이념의 부재가 남긴 정서의 진공 속에서 생긴다. 대의라는 공간적 관념의 정합성이 없는 대신, 친구는 ‘시간’을 먹고 산다. (중략) 그러나 동무는 동지도 친구도 아니다. 굳이 조어로 그 취지의 한 극단을 잡아내자면, 동무는 동무(同無)다! 오히려 서로 간의 차이가 만드는 서늘함의 긴장으로 이드거니 함께 걷는다. 공유된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면서 히틀러나 스탈린의 수염같이 가지런히 정돈된 길을 행진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길없는 길’을 걷고 어울려 다른 길을 조형하면서, 잠시만 한 눈을 팔면 머-얼-리 몸을 끄-을-며 달아나 그림자조차 감추어버리는 관계다. (중략) 우선적으로 ‘기분’과 ‘감정이입’의 차원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그것은 친구가 아니며, ‘뜻(이념)’ 중심주의적 결집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지도 아니다. (동무와 연인, 31~32쪽)


    김영민이 말한 동지라는 관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지’적 관계가 맞다. 이들은 어떠한 신념에 의하여 결합되어, 특정하고 뚜렷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인 사이다. 그들 관계 안에서는 ‘개인’으로서의 사람은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 ‘큰 뜻(대의)’ 곧 이데올로기가 움직이는 대로 사람은 거기에 맞춰져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신의를 저버리니 ‘배신’이다. 푯대를 향해서 가는 데에 거치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만두어야 하고,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이라면 그것 역시 뭉개야 한다. 동지들 사이에서는 신념과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곧 존재 이유다. 그런 신념이 맞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하루 아침에 결별과 재결합도 가능하다.


    반면에 친구는 동지의 대의와는 아주 상반된 관계다. 친구는 동지적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큰 뜻(대의)’ 자체가 온데간데 없다. 오히려 그것 자체를 비어 두기로 작정한 관계다.안재욱의 노래 ‘친구’에서 나오는 것처럼 ‘괜스레 힘든 날 무턱대고 전화하여 말없이 울어도 오래 들어주는’ 관계다. 즉, 수많은 자기 자신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입었던 옷들을 다 벗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상태이더라도 전혀 괘념치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수 있는 관계가 친구다. 이런 말을 들으며 우리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김영민은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그것은 ‘환상’이라고 말이다.


당신은 ‘친구’를 붙잡는다. 끈끈해서, 혹은 공유된 기억이 축축해서, 어렵지 않게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무론, 197쪽)


    친구는 끈끈하고 축축하다. 아니 그런데 ‘대의’, 이데올로기와 같이 사람을 물건 대하듯 폭력이 사라진 관계, 사회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써야만 하는 가면 즉 페르조나라는 나를 가두고 억압하는 잔인한 것들이 사라진 관계, 그런 칭찬받아야 마땅한 친구사이가 왜 그런 부정적인 호칭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촉촉하고 포근하다면 모를까!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김영민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내 실천의 진정성을 담보해주던 그 완고한 사물의 질서는 꺼져내리고, 다만 기표들의 편차와 그 점증, 혹은 점감하는 시선들만이 나를 표시해주는 시대, 신화와 상징마저 전자화되는, 전자적 기호들의 유희가 절정에 달한 시대, 그 속에서 흔들리며 미끌어지는 낡은 주체는 그 낡은 ‘친구’ 관계를 통해서, 그들이 나누고 있는 공통의 기억, 그 습도, 혹 열기를 통해서 제자리, 혹은 그 죽을 자리를 잡는다. (중략) 친구의 미소, 그 주름살, 그 걸음걸이와 뱃살, 그 술잔과 그 담배 연기, 그 변치 않는 말버릇과 허장, 그 과도한 기대와 그 과소한 실천의 패턴 속에서 제자리, 혹은 죽을 자리 찾으며, 당신은 안심하고 안정하며 안돈하는 것이다. (동무론, 198~199쪽)


    쉽지 않은 말이긴 하지만, 느낌은 온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들어와 과연 ‘나’란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 즉 존재의 붕괴, 고정된 나로서 존재할 수 없고 늘 하염없이 흔들리는 존재의 가벼움 속에서 신음하는 우리가 그나마 ‘괜찮다, 다 괜찮다’라고 말하며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손에 붙잡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친구인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의 말대로 늘 ‘액체 상태’인 세계, 즉 사물의 소비와 유통이 너무 빨라서 그 유동이 물과 같이 되어버린 상태인 세계에 멀미하는 와중에 ‘친구야, 우리가 남이가!’라며 내 손에 다 낡은 진리 한움큼 쥐어줄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친구란 말이다.


    그래서 김영민은 묻는다. 과연 그 ‘안심, 안정, 안돈’이 이 세계와 나를 성장시키는가 하고 말이다. 기독교의 친숙한 언어로 말하자면, 그런 안심, 안정, 안돈의 관계가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시키는 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다. 결국 친구에 관한 우리의 과도한 긍정은 그 긍정의 크기만큼 우리가 얼마나 현실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세계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낼 수 없고 쉼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는 그런 세계의 흐름에 반대되는 고정되고 틀에 박힌, 그래서 안정적인 ‘나’와 ‘세계’를 찾고자 ‘친구’라는 허위로 도망친다고 말하는 것이다. 끝없는 ‘다름’들이 쏟아져 구역질이 날 정도의 속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도피하는 곳, 거기가 ‘친구’다. 그 친구에게 가서 우리는 묻고 또 묻는다.


    “나 원래 괜찮은 사람인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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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열두번째[각주:1]


교회청년에게 세습되는 웰빙 보수주의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대형교회 대학부와 인맥공장


    거의 모든 교회는 잘 짜인 연령별 조직을 갖고 있다. 대략 유년, 소년, 청년, 장년, 노년 등으로 구성된다. 신자들은 3~4세부터 시작해서 거동 가능한 시기까지 이 연령별 조직들의 일원이 된다. 그러니까 비슷한 연령대의 교인들은 그 교회에 속해 있는 한, 평생 관계가 이어진다. 이렇게 연령별 네트워크가 평생 이어지는 곳은 교회 외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1981년 이후 대학생 수가 크게 늘면서 연령별 조직의 순차적인 흐름에 약간의 변수가 생겼다. 몇몇 교회에서나 가능했던 대학생부가 독자적인 조직으로 탄생하는 일이 현저히 늘었다. 그러나 고등부와 청년부 사이에 대학부가 마치 연령별 조직으로 상례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그때 대학생 수는 급격히 늘었고, 고교졸업자는 감소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대형교회, 특히 강남, 강동, 분당 지역의 대형교회로 갈수록 심화되었다. 이 지역들에선 대학입학에 실패하면 교회를 떠나는 일이 흔했다. 심지어 서울 지역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도 대학부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더 극단적으로 명문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조차 대학부 참여를 꺼려하는 분위기의 교회들도 있다. 해서 몇몇 교회들은 고등부 졸업자들 중 재수생을 위한 별도의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영락교회의 베드로부, 지구촌교회의 꿈사모 등).

   이쯤 되면 강남, 강동, 분당 지역의 대형교회들에서 대학부는 중요한 인맥 만들기의 장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탈퇴하는 것은 삶의 중대한 기회를 상실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대학부에 진입하는 건 단지 시작일 뿐이다. 졸업과 함께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청년부에 순조롭게 진입하지 못한다. 물론 대형교회에서 대학부의 일원으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취업은 훨씬 유리하다.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정보와 특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정보와 특혜를 대학부원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그곳 나름의 평가기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이들에게 그런 기회가 훨씬 많이 주어진다. ‘교회오빠’니 ‘교회누나’하는 말들 속에 함축된 외모, 옷차림새, 행동거지로 규율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연애도 포함된다. 이를 테면, 명문대학에 다니는 한 여성은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녀는 엄마의 반대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은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엄마는 그녀가 연애하고 있었던 사실조차 몰랐다. 진짜 이유는 엄마가 반대할 것이라고 ‘그녀가 생각’했던 데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엄마’는 집합명사였다는 점이다. 그녀가 상상한 ‘엄마’는 그 교회 대학부 남자들의 ‘엄마들’이다. 그이들은 이 여성의 상상속의 ‘잠재적 시어머니’였던 것이다. 요컨대 그녀는 이들 상상속의 시어머니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연애 행위를 규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나눠줄 자원이 넘치는 몇몇 대형교회들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어떻게 어른 세대의 시선을 내면화하면서 전략적 행위를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그 교회들의 어른 세대의 보수주의가 대학생들에게 전수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편 수가 아주 적었던 시절부터 대학생들은 교회에서 많은 활동을 도맡아야 했다. 다른 종교 기관들에 비해 개신교 교회는 매우 많은 발런티어를 필요로 한다. 그중 많은 부분은 대학생들의 몫이다. 대학생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어도 사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 많은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나뉘고, 그것은 대학부원으로서의 훌륭한 신앙인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척도가 되었다.

    교회학교 교사, 교회 청소, 성가대, 각종 봉사부서, 각종 선교프로그램들에서 대학생은 없어서는 안 될 발런티어다. 여기에는 단기선교도 포함된다. 단기선교란 대개 방학기간에 3주 정도 진행되는 해외봉사활동을 의미하는데, 그 비용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남아시아의 경우 70~80만원 정도, 중앙아시아・중동의 경우 100~150만원 정도), 그 기간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더욱이 사전교육이 2개월 안팎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신앙심이 투철하더라도,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몇 탕씩 뛰며 좀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항시 스마트폰의 연락망 안에 있어야 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이 프로그램에 의해 걸러진다. 요컨대 단기선교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이타적 신앙심은 중상위계층 친화적 성격을 지닌다.

   한편 청년부는 엄청난 결혼시장이다. 특히 몇몇 대형교회들의 청년부에는 우리사회 어느 곳보다도 ‘물 좋은’ 결혼 적령기 여자와 남자들이 넘쳐난다. 명문대 출신들만 들어간다는 대형교회 대학부라는 관문을 통과해서 들어온 교회청년부에는 가문 좋고 유능하며 좋은 직장에 다니는 스팩 넘치는 이들로 가득하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사회의 30대 비혼률은 2010년 기준으로 20.4%나 된다. 이는 1980년대에 비해 무려 11배나 상승한 수치다. 여기에 40대까지 포함하면(이혼자나 사별자를 제외하더라도) 그 수치는 훨씬 높아진다.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30~40대 비혼자들의 상당수는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감안하여 자발적으로 비혼을 선택한 이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교회에선 좀 다르다. 특히, 앞서 말한 것처럼 강남, 강동, 분당의 많은 대형교회들의 경우 대학부를 거치면서 중하위계층의 20대 청년들이 교회를 속속 이탈했다. 즉 이들 대형교회의 청년부는 경제적 위기를 덜 겪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게다가 교회에서 결혼은 신앙의 성장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목처럼 이해되었다. 가톨릭처럼 독신이 장려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 간의 관계를 삶 속에서 체험하는 신이 준 기회로 해석되었다. 즉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유비적이다. 요컨대 여자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자에게 복종하고 남자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처럼 여자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결혼관으로 남자와 여자 신자를 규율한다. 하여 이런 결혼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신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신의 계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교회 제도의 관행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으면 대개 장년부에 속할 수 없다. 장년부는,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거의 기혼자들의 모임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장년부에 속해야 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로 이어지는, 일종의 신앙제도상의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 그래야 신자는 교회라는 인맥 공장의 중심부에 다가갈 기회를 얻는다. 해서 교회는 비혼자 중 ‘미’혼자 수가 훨씬 더 많다. 즉 결혼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결혼을 아무리 강조해도 미혼률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30대가 되면 사랑의 열정만으로 결혼을 감수할 수 없을 만큼 현실적 조건들이 까다로워지기도 하거니와, 교회의 성비 불균형이 너무 심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6:4의 비율, 혹은 그 이상으로 많다. 이것은 미혼여자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여 여러 대형교회들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청년부와 장년부 사이에 또 하나의 예외적 연령조직(30~40대 미혼자들)인 싱글공동체를 만들곤 했다.

    이 모임을 중심으로 연애특강이 열리고 남녀 간의 스킨십을 늘리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다. 나아가 성비 불균형으로 인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타교회 청년들과의 만남도 주선된다. 이것은 개신교 대상의 결혼 매칭 기업들과 결혼 매칭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회사들을 탄생시키게도 했다.


    기독교의 비합리성과 비과학성에 상처받고 목사들의 무식함과 나쁜 행실에 실망한 많은 청년들이 개신교 교회를 떠나가고 있고, 또 새로 개신교로 유입되는 이들도 현저히 줄었다. 한국 개신교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교파이고 가장 부유한 교파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파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교인 대비 5.8%만이 청년층이다. 이것을 전체 개신교로 확장해서 보아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2015년의 한 종교인구 조사에 의하면 연령별 개신교인의 구성에서 20대는 유・소년과 청소년을 빼고는 가장 적은 연령층이고 현재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을 차지하는 것이 30대다.


    그럼에도 일부 대형교회들에서 대학부와 청년부는 별로 줄지 않았고 심지어 늘기까지 한 교회들이 있다. 청년층을 유인할 여러 장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데 그중 중상위계층의 청년을 견고히 유지하는 교회들에는 대개 인맥 만들기에 효과적인 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이런 교회들의 대학부와 청년부원들은 그들의 부모세대와 비교적 관계가 원만하다. 그것은 부모세대의 많은 이들이 이른바 교양 있고 합리적인 성향을 보인 탓이기도 하다. 이른바 웰빙 신앙이 잘 정착된 교회에서 청년들은 더 잘 적응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교회들이 청년층에게 줄 수 있는 자원이 많아서 청년층 스스로가 교회 어른들인 부모세대의 시선에 스스로를 규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런 현상을 ‘사회적인 착함’과 후발대형교회의 연관성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오늘날 교양 있고 합리적이고 배려 있는 성향과 물적 자원의 풍요 간에는 서로 상응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또 빠르게 신자유주의의 야만성에 깊게 노출된 한국사회에서 청년층이 독자적 능력만으로 생존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도 몇몇 대형교회 청년들의 자기규율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하여 이런 대형교회들에서 웰빙보수주의는 청년층에게 세습되고 있다. 유복한 중상위계층의 청년들이 교회에 남아 있는 한, 그들의 웰빙 성향은 좌파보다는 우파적 성향을 지닐 가능성이 큰 이유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다섯번째 글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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