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해방하라




강선구*

 


미국 유학 중 만난 여자친구들과 만나서 자주 이야기하는 토픽 중에 하나가 ‘청순한 남자’에 관한 이슈이다. 우리들에게 청순한 남자의 정의는 저마다 달랐지만, 합의된 공통사항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남자가 청순해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대화를 나누는 나와 친구들에게 ‘청순한 남자’는 매력적인 남성상이라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왜 우리는 청순한 남자를 좋아하는가? 부끄러워 할 줄 안다는 것은, 과도한 자기 중심성을 요구받는 왜곡된 남성상을 강요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능력이다. 안타깝게도 한국남성들 중에서 당당하게 부끄러울 줄 아는능력을 가진 남성들을 발견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이라는 것이 대화를 나눈 우리들의 공통된 경험들이었다. 청순한 남자에 대한 이슈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없는 사회적 맥락과도 연관되어있지만, 나는 이 지면을 통해서는 감정 그 자체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감정이라는 주제는 문화 예술 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주목받는 연구주제이다. 감정에 대한 많은 이론들 가운데 헤겔의 감정이론은 이성적 사유를 위한 가장 중요한 토대로서의 감정을 설명해주고 있다. 헤겔은 이성의 철학자, 사변철학자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의식 구조를 감정, 표상, 이성으로 구분하며 설명하는데, 모든 단계의 의식구조는 반드시 이성의 매개를 통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성으로 매개되지 않은 직접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이나 표상들은 온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의식은 정지되거나 분절적인 사유를 지양하고, 무한성과 유한성이 서로를 초월하고 매개하는 사유다. 이성을 강조하는 헤겔은 철학자이긴 하지만, 이성을 통해 초월적 사유를 지향하기에, 나는 헤겔을 초월적 철학자라고 부르고 싶다. 헤겔에게서 가장 중요한건 한 곳에서만 규정적으로 머무르거나 멈추는 방식의 물화적 사유체계를 극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변증법적 운동을 사유의 제일 원칙이자 이성의 정체성으로 여긴다.

변증법적 이성을 그토록 강조한 헤겔이지만, 감정에 대한 그의 견해도 이성 못지 않게 독특하고 중요한 토대를 제공한다. 헤겔은 감정 이전에 존재하는 직접성(immediacy)의 단계도 설명하는데, 직접성의 단계는 아예 주체와 대상이 인식되지도 않는 상태이기에 이 단계는 매우 주관적인 확실성(certainty)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감정의 상태로 접어들면서 비로소 주관적인 주체가 객관적인 대상에 의해 오롯이 영향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주체와 대상이 동시에 인지되는 상태가 감정인 것이다. 감정은 아직 매개가 일어나지 않은 직접적 상태로 존재하기에 아직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대상의 객관적 내용이 분명하게 분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감정을 넘어 이성적 의식의 단계에 들어서면, 비로소 주체와 대상이 분명하게 분리됨으로써 감정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 헤겔의 사유구조이다. 주체와 대상간의 변증법적인 운동을 가장 중요시하는 헤겔의 사유구조에는 물론 모든 인식구조에서 주체와 대상을 이성으로 매개하는 과정이 가장 우선시되지만, 감정 역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유의 토대이다. 이를 위해, 헤겔은 경험적인 감정과 종교적인 감정으로 나누어서 구분한다. 경험적 감정은 경험하는 주체에만 초점을 맞추어 일시적이고 즉흥적인데 반해, 종교적 감정은 객관적인 대상으로부터 주체에게 오는 ‘연결성’에 초점을 맞추기에 자아중심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상태에서 벗어나, 대상을 인식하는 변증법적 사유체계로까지 나아가게 한다고 보았다. 즉, 경험적이고 즉흥적인 감정은 헤겔의 사유구조 체계를 설명해주지 못하지만, 종교적 감정은 주체와 대상의 변증법적 운동의 기초를 만들어 주는 토대이자 이성적 사유구조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헤겔은 감정을 설명할 때 씨앗과 나무의 비유를 사용한다. 그는 앎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설명하는데, 표면적 지식과 다르게 ‘내면적 지혜’는 주체와 대상의 역동적인 변화와 한계적 사유를 넘어서는 초월적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종교적 감정은 내면적 지혜로 나아가게 하는데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헤겔의 감정이론에 따르면, 종교적 감정이란 주체와 대상간의 역동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 가운데에 있는 변화를 통해 사유체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헤겔이 말하는 정지된 물화적 사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감정에 제대로 충실해야 한다. 감정에 오롯이 충실할 수 있을 때 이성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단순히 일시적인 경험적 감정들에 충실하라는 말이 아니다. 객관적 진리의 대상으로부터 다가오는 내면적 지혜에 스스로를 개방하여 변화에 자신을 맡기는 감정의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을 헤겔은 종교적 감정이라고 설명했고, 종교적 감정을 통해서만이 주체는 초월적 이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헤겔이 지향하는 초월적 이성의 반대개념은 자기중심적인 물화적 이성이다. 자기 안에 머물기만 하는 이성적 사유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타자와의 연결성을 차단시킴으로써 객관적 진리로부터 오는 초월적 사유를 막는다. 헤겔에게 진리는 내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밖의 타자들로 부터 역동적으로 운동하는 가운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자유개념 역시 내안에 머무는 것을 넘어서서 타자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나를 느낄 수 있을때 진정한 자유성취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서두에서 말했던 감정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유로운 주체가 되기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성에 사로잡힌 물화적 사유와 감정에서 벗어나야한다. 나만 홀로 있는 이기적 감정상태에서 벗어나, 모두와 함께 연결된 대상들(혹은 신이라는 대상)로 부터 얻는 종교적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자아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 타자와 함께함으로써 얻는 진정한 자유는 소외된 감정과 이성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낼 것이다. 헤겔의 감정이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진정한 자유와 이성을 위해서 우리는 충분히 감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을 해방하라!


* 필자소개

현재 '목회적 삶'과 '목회자의 삶'의 경계에서 고민중에 있으며, 친구들에게는 네살 선구라 불리우고 있다.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목사수련생 과정을 밟고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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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각주:1]


조영관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선생님들과 인권교육을 하면서 ‘우리는 언제 인간이 존엄하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관해 토론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을 위한 요양보호시설, 노숙인의 자활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시설과 같은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식상한 결론을 예상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교과서 같은 결론을 넘어 오랫동안 서로 갑론을박 토론을 이어갔다. 현장에서는 국회, 정부, 언론 등 우리 사회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결정이 많아지고 있는 점을 가장 많이 우려했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두텁게 보장되기 위해서는 몇몇 사회복지시설이 마련하고 있는 기초적인 수준을 넘어서, 그 사회가 구성원인 인간을 무시하지 않고 있음을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인간이 사회에서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당하지 않고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멀리하는 법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은 강조된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8년에 제정되어, 다양한 인권 문제의 세계적 기준이 되는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dignity)하며, 평등하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우리 사회의 최상위 규범인 대한민국 헌법에도 ‘존엄’이라는 단어가 총 3번 등장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제10조)는 선언을 시작으로,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제32조 제3항)하도록 하고,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제36조 제1항)는 조항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인 ‘생산의 현장인 일터’와 ‘재생산의 공간인 공동체’의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우리 헌법의 성찰은 소중하다. 그런데도 최근 이런 헌법의 지혜가 무색해지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5월25일 새벽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의결했고, 바로 오늘(2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매월 1회 이상 지급하는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 중 일부를 최저임금에 포함하도록 하고, 이를 위한 취업규칙 변경을 사업주가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국회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사업주의 부담을 줄이고,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저임금 노동자에게 집중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이번 개정안이 최저임금 인상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개악(改惡)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 민주노총에서 연봉 2500만원 미만 저임금 노동자 602명을 대상으로 이번 개정안을 적용하여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내년 최저임금이 지금보다 15% 인상되더라도 저임금 노동자 10명 중 1명에게는 최저임금 효과가 전혀 발생하지 않고, 평균적으로 약 20%의 임금인상 삭감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절차를 노동자와 상호 합의가 아닌 사업주의 일방적인 ‘의견청취’만으로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고 사업주와 힘의 불균형도 클 수밖에 없어, 최저임금 효과가 절실한 곳에서 각종 꼼수가 등장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지난 대선 후보의 공통 공약이었던 최저임금의 실질적 인상은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약속이었다. 일하는 인간의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더 이상 후퇴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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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은 2018. 5. 27 경향신문에 동일한 제목으로 실린 칼럼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272106015&code=9901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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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게임문화사: 디지털 게임, 피시방, 이스포츠 경험에 대해서




김의환*

 


한동안 발길이 뜸했던 피시방을 다시 찾는다는 아들놈의 말에 엄마는 혀를 끌끌 차신다. 그럼에도 꿋꿋이 ‘게임하기 좋은 봄날’ 타령을 하는 나는, 대중문화를 연구하려는 대학원생이자 어려서부터 일상적이고 열성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해온 게이머다. ‘보는 게임’인 이스포츠(e-sports)도 즐겨서 트위치나 아프리카tv, 유튜브로 다른 게이머들의 플레이와 프로게이머들의 리그 경기를 틈틈이 챙겨 본다. 그런데 게임을 대하는 내 태도는 양가적이다. 게임을 즐기면서도 다 허송세월하는 짓이니 멀리해야 한다고 종종 자책하며(‘이럴 시간에 책 한 줄이라도 읽지...’, ‘아 피곤해. 차라리 낮잠이나 잘 걸...’), 대중문화와 취향에 있어 고급/저급으로 줄 세우지 않기로 하면서도 가끔은 플레이어의 상태를 미성숙함이나 유치함과 연관 짓는다. 괴로운 현실을 피해 게임으로 도피하기도, 게임 덕분에 숨통이 트이기도 하며, 게임 플레이를 통해 즐거움뿐만 아니라 짜증과 분노를 느낄 때도 있다.


지난 가을학기에 대학원에서 ‘게임문화연구’를 수강했다. 게임의 본질에 관한 오랜 논쟁부터 캐릭터와 공간, 규칙 등의 주요 요소, 게임의 역사, 중독 담론과 젠더 이슈, 비물질노동 등 게임과 연관되는 쟁점 등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게임을 주요 문화현상으로 인식하고 학술장에서 연구할 필요성과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내가 만나고 경험했으며 알고자 하는 연구 대상은 ‘재미의 추구’를 핵심으로 하는 ‘게임’이자 그런 게임을 열심히 즐겨온 ‘나’이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나 오랜 기간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 종류의 게임을 접해온, 그럼에도 스스로 ‘겜덕’이라 여기거나 게임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지는 않는, 문화현상을 주목하고 분석하여 말과 글로 표현해야 하는 나란 사람의 위치와 맥락에서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그토록 게임에 빠져 있는지, 게임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다른 게이머들은 어떤 게임을 어떤 식으로 향유하는지, 결국 이러한 현상 혹은 실천이 지닌 사회문화적인 함의는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졌다. 일단 나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적어보기로 한다.


88년생의 게임사


유치원생이던 1993년으로 기억한다. 아버지께서 집에 게임기를 한 대 사오셨다. 닌텐도의 8비트 게임기인 패미컴(Famicom)의 해적판으로, 정확한 제조사를 알 수 없는 그 게임기를 우리 가족은 ‘패밀리 오락기’혹은 ‘껨보이’라고 불렀다. 텔레비전이 놓여있는 거실에 모여앉아 슈퍼마리오와 펭귄 어드벤쳐, 쿵푸, 로드 파이터, 닌자거북이 등을 즐겼다. 아버지와 누나는 마리오가 점프할 때마다 몸을 덩달아 들썩였고 조이패드를 따라 들었다 놓았다 반복했다. 게임팩은 불법 해적판 카트리지로, 64가지 게임이 들어있는 종합팩이었다. 동네 문방구에서는 몇 천원을 내면 게임팩을 교환해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집에 386 컴퓨터가 생기면서 DOS 기반의 고인돌과 황금도끼, 범피, 팡팡 등도 자주 플레이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오락실에 출입했다. 그곳은 시끄럽고 정신없으며 어딘가 불량한 느낌을 풍기는 곳이었기에, 부모님의 눈을 피해 몰래 들락거릴 때면 죄책감과 긴장감, 쾌감이 뒤섞였다. 대전격투게임인 킹오브파이터즈와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을 주로 했는데 뒤에서 고수들의 플레이를 훔쳐보는 재미가 있었다. 오백원이 크던 시절이지만 용돈이 생길 때마다 꼬박꼬박 오락실에 갖다 바쳤다. 종종 고학년 형들에게 돈이나 물건을 뺐기고 얻어맞는 경우도 있었지만 게임과 그 공간이 주는 묘한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었다. 5학년이던 98년부터는 처음으로 피시방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포트리스, 마지막왕국, 스톤에이지, 퀴즈퀴즈 등의 온라인 게임에 빠져 지냈다. 어느 순간부터 가정용 8비트 게임기가 시시하게 느껴졌고, 몰래 부모님 눈치 보면서 게임하지 않아도 되는 편한 놀이 공간이 필요했기에 피시방과 오락실을 찾은 것 같다.


무엇보다 또래 집단이 주말과 방과 후에 모이는 장소라는 점에서 피시방과 오락실은 놀이문화의 공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왜 피시방은 대다수 기성세대에게 한심한 아이들이 가는 위험하고 불량한 곳으로 인식되어야만 하는지 의문이 든다. 피시방의 오랜 인기는 가격 면에서나 접근성 면에서나, 이것을 대체할 만한 문화 컨텐츠나 놀이공간이 우리 사회에 부재하다는 뜻이 아닐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천 원에 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이제는 식사와 커피까지 취급하는 카페테리아가 되었다는 점에서 피시방만큼 서민과 친숙한 여가공간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피시방의 문화사’ 연구를 꼭 해보고 싶다.


나는 RPG 게임은 가급적 하지 않았으며 가급적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단판 게임을 선호했다. 그러나 RPG 게임이 아니라고 해서 중독성이 덜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장르의 게임은 각자 다른 종류의 보상을 안겨준다. 그것이 승리이든, 레벨업이든, 캐릭터 꾸미기이든, 랭킹 상승이든 간에 게이머는 그 보상에 대한 갈증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붙든다. 그런 면에서 게임은 인생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게임의 플레이어가 되어 생애의 매 단계마다 크고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매진하며, 달성 후에 성취감과 허탈함을 느끼거나 달성하지 못해 좌절하고, 다시 목표를 수립한다. 특정한 보상의 획득보다는 이러한 과정의 반복 자체가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내 인생의 게임을 하나 꼽자면 단연 스타크래프트로, 1998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20년째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피시방에 몰려가 4:4 플레이를 하는 것에서 시작했고, 실력을 늘리기 위해 임요환이나 이기석 같은 초기 프로게이머들이 쓴 게임책을 구매해서 읽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 자주 드나들며 열심히 전략전술을 익혔고, 내 손에 맞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구매하였다. 스타크래프트는 ‘하는 게임’뿐 아니라 ‘보는 게임’이자 이스포츠 그 자체이기도 하다. 2000년 itv에서 하는 프로게이머들의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시청하는 것으로 시작해, 온게임넷(현재 OGN)과 MBC Game에서 열리는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의 경기를 거의 다 챙겨보았다. 여기에는 프로게이머들의 기발한 플레이뿐 아니라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중계진들, 맵 제작자, 방송국 게임 연출자의 노고가 종합적으로 담겨 있었다. 경기를 볼 때마다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제작자들이 의도한 바를 뛰어넘은 창조적인 생산물로 여겨졌다. 여기에 좋아하는 프로게임 구단과 게이머가 생기면서 오프라인 경기장을 찾아가 직접 관람하고 응원하는 새로운 팬덤문화도 체험할 수 있었다. 나의 성장기와 이스포츠 판의 성장기가 일치하는데다, 이스포츠는 팬과 선수 간의 거리가 매우 가까우므로 특히 애착이 깊었다.


빡겜에서 즐겜으로


앞서 늘어놓은 의문에 하나라도 답해볼까 한다. 오랜 시간 왜 그토록 게임에 몰두했을까?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성장’ 혹은 ‘승리’에 대한 갈망이 강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장르의 게임이건 간에 할수록 게이머의 숙련도와 이해도가 쌓인다. 오락실 게임이 아닌 이상 이전의 플레이가 데이터로 축적되고 다음 플레이에 반영된다. 그러면서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때의 변화는 퇴보보다는 성장일 경우가 많다. 게임머니가 늘어난다거나, 캐릭터의 의상이 다양해지거나, 전에 쓰지 못하던 스킬을 쓰거나, 무시무시한 몬스터를 잡거나, 가지 못하던 곳에 가는 식이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미숙하다는 의식은 내가 게임세계에 더 몰두하게 되는 중요한 기재로 작동했다. 게임 내에서의 충족을 통해 현실에서의 공백을 채우고자 했다.


지난 3년간 몰두했던 피파온라인3의 경우, 오직 이기기 위해서 부단히 애썼다. 아낌없는 현질로 능력치가 더 뛰어난 선수를 영입하고 유행하는 전략전술을 익혀서 승률을 높여야 했다. 대부분의 국내 온라인 게임이 그러하듯, 피파온라인도 티어 시스템을 사용한다. 피라미드 형태의 계급체계에서 최상위 등급에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 랭킹 400위권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기쁘지 않았다. 이겨도 본전이고 지면 너무 화가 치밀었다. 게임에서까지 승패를 따져야만 한다는 점이 피곤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온갖 꼼수와 조롱이 오가는 경험을 했다. 이 경쟁의 체제에 들어오라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지만 내 발로 들어선 이상 ‘즐겜’은 없었다.


작년 초부터는 오버워치에 입문해 네 달 동안 하루 열 시간씩 꾸준히 플레이했다. 6대6 팀플레이 게임인 오버워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화려한 그래픽, 다양한 맵과 쉬운 조작법 등 게임성이 뛰어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결국에는 승리해서 상위 티어로 도약하는 것에서만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팀게임이라는 점은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불러왔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게임을 켰는데, 그곳에서 남 탓과 정치질, 온갖 욕설을 육성으로 들으며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이다. 팀보이스(음성채팅)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원활한 의사소통보다는 즉각적인 욕설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평소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 나로서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설득하고 달래가며 승리를 이끌어내는데 피로감을 느꼈다. 사회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게임에서도 느끼게 된 것이다. 이기지 않으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계속 상위 티어로 올라가야만 한다는 강박에 빠진 나는 결국 한동안 게임을 멀리하였다.


요새는 그냥, 경쟁전 아닌 친선전에서 즐겜을 한다. 이기려 애쓰지도, 내 플레이에 괜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 순간에 즐거우면 됐다고 생각한다. 가뜩이나 너무 심각하고 딱딱하며 어려운 일들로 가득한 세상인데, 게임에서 만큼은 힘을 빼고 싶다. 또한 게임과 이스포츠, 피시방 등을 향한 기존의 부정적인 시선에서 탈피해 일상의 중요 테마로 다루는 연구나 관점이 확산되길 바란다. 재미있는 주제를 재밌게 다루기, 쓸데없이 각 잡거나 힘주지 않기, 작은 것에 주목하기, 과도한 의미부여를 지양하기. 게임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가 남아있는 한, 나는 게임을 놓지 않을 것만 같다.



*필자소개

청춘을 허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한량. 어두운 자취방의 혁명가. 문학과 영화, 음악과 라디오에 기대 하루하루 때우고 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다. 21c39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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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와 새로운 정치[각주:1]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장·한신대 교수/ 한백교회 교인)




지난 3월 20일 서울시의회에서는 촛불혁명으로 어렵사리 진전시켜놓은 민주주의를 여지없이 짓밟는 폭거가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야합해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안을 자기들 이해관계에 맞게 수정해서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심지어 저지하려는 동료의원들에게 폭언을 한 의원도 있었다. 이로써 서울시에서는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 비해 2인 선거구와 3인 선거구가 늘어나고, 4인 선거구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제 2개의 거대정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는 서울시의회에 진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개혁소위원회는 3월 15일 회의에서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 선거에 두 번 참여해 두 번 모두 의석을 얻지 못하거나 100분의 1 이하의 유효득표를 하지 못한 경우 정당 등록을 취소한다는 내용의 정당법 개정에 합의했다고 한다. 정당 등록 취소는 과거 군사정권에서 소수정당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독소조항이었고, 지난 2014년 녹색당 주도로 헌법재판소에 제소하여 위헌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다시 이를 뒤집어엎겠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기득권을 가진 거대정당에 유리한 정치시스템을 가져가려는 속셈이다.


소수정당이 의회에 진출하지 못하게 되면 다양한 의견들, 특히 소수자나 사회적·생물학적 약자의 목소리, 생태계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지역 혹은 국가 정책에 반영될 수 없고 정치는 오직 기득권자들의 권력투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의 정치는 좌우를 막론하고 산업화 세력들의 운동장이 된 지 오래다.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지향성은 거칠게 말하자면 산업화의 결과물 분배방식을 두고 입장 차이를 보이고 경쟁을 벌일 뿐, 산업화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은 부족하다. 또 산업화가 초래한 환경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산업화 시대의 이데올로기 속에서만 접근할 뿐이다.


산업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기후변화, 미세먼지, 방사성 폐기물, 미세플라스틱 등의 심각한 환경문제를 발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새로운 목소리가 기존 정치판에 들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거대정당에 포섭된 정치판은 최악의 미세먼지로 가득한 도시와도 같다. 여전히 대기업 및 토건세력과 유착되어 있는 거대정당들이 전횡을 일삼는 정치판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오기 어렵다.


문명의 근본적인 전환을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치적 실험이 시도되어야 하고,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당들이 정치적 장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악몽 같은 미세먼지를 만들어낼 뿐인 산업화 세력에게 작별을 고하는 새로운 정치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수정당이 진출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의 창이 지금보다 더 열려야 한다.


ⓒ 웹진 <제3시대>

  1.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_id=201804021517201#csidx225fa6797dcb96cb88ec988ac72df65 이 글은 주간경향 2018. 1. 23에 동일한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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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가 말라버려 마실 포도주가 없을 거라고

 


박여라*




주변을 돌아보니 지금 내가 건사하는 생명체는 네 개다. 회사 책상 위에 놓은 화분 두 개, 그리고 집 마당에 있는 고양이 한 마리랑 포도나무. 회사에 있는 스투키와 자미오쿨카스는 크기가 작기도 하지만 그저 지겨운 일과에서 딴눈 팔게 하는 게 목적이자 존재이유다. 집에 있는 고양이와 포도나무는 존재감도 훨씬 무겁고 그래서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게 희노애락을 준다.


고양이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하는 것으로 하고 포도나무 이야기를 하자면, 여러 해 전 서울 강남 어느 와인학교에서 분양한다고 하여 하필 그날따라 종일 쏟아지는 비를 뚫고 가서 가져왔다. 그때 두 그루를 받아왔다. 화이트와인 만드는 샤르도네는 수도관 묻는 공사 와중에 땅 파는 삽에 뿌리가 패여 죽었고, 남은 하나는 까만 메를로인데 고맙게도 해마다 계절 따라 다른 모습으로 살아있음을 뽐낸다.


그러던 지난겨울. 영하 10도를 훨씬 밑도는 날들이 여러날 계속되기를 몇 번 거듭하더니 봄이 오기도 전에 어느날 마당에 있는 대나무가 푸른빛을 잃었다. 추위가 심해지면 고양이가 자기 집에서 잘 지내는지 아침저녁으로 살피고 물그릇에 물이 얼어있으면 바지런히 새로 물을 떠다 주기만 했지 지난가을 잎이 다 떨어진 뒤 포도나무는 돌볼 일이 없었다. 청청하던 대나무가 어는 것을 보고 그제야 아, 포도나무도 얼어 죽겠구나.. 했다.


구약성서 요엘서는 무서운 심판이 온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요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유다 사람들에게 전한 말씀이다. 너네 계속 이딴 식이면 메뚜기떼가 다 쓸고 지나간다. “포도 농사가 망하였으니, 새 술을 만들 포도가 없다… 포도송이가 말라 쪼그라들고 포도나무가 말랐다.” 딸랑 세 장뿐인데 요엘서처럼 무서운 경고가 또 있을까. 마실 포도주가 없다니. 으어.


내 포도나무가 죽었다는 절망에 늦겨울까지 망설이다 3월 첫 주말이 되어서야 가지치기를 했다. 작년에 새로 난 가지에 하나, 둘, 마디를 세고 싹뚝 싹뚝 잘랐다. 혹시 모르니까. 그런데 가지를 자르며 단면을 만져보니 말라 있었다. 에고.. 얘 진짜 얼어 죽었네. 여러 해 키웠는데 이렇게 끝이라 생각하니 몹시 섭섭했다. 그래도 뿌리까지 얼어버린 게 아니면 한두 해 있다 어디서라도 순이 나오기도 한다는 말을 듣고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날이 풀리고 봄비가 내리니 그때마다 가지 몇 개 끝에 물이 올랐다. 너무 늦게 가지치기를 하면 이럴 때 감염위험이 있다고 하던데 모든 가지가 죽은 건 아니라서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무가 살아있었다.


마실 포도주가 없다며 너네 다 망했다는 요엘의 경고는 갑자기 목소리를 바꾼다. 근데, 너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혹시 마음과 뜻을 돌리실지 누가 아냐? 그리고 마음 아파 하시고 너희를 불쌍히 여겨 비를 내리시고, 포도나무에 다시 열매가 맺고 포도주가 넘칠 것이라고. 그리고 심판의 때에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 너희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며칠 전 포도나무에서 새순이 하나 나왔다! 가진 것도, 알고 있는 것도, 알 수 있는 것도 참 보잘것 없으니 맡길 뿐이다. 내가 건사한다는 생명체들에게 내가 하는 일이 뭐가 있나. 비를 내리는 대신 물을 주는 정도다. 그냥 작고 볼품없지만 소박하게 흉내 내는 일이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포도잎은 또 부쩍 자라겠지.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썼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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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동성




강선구*

 


훤칠한 키에, 냉철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그는 말 그대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전문 통역사 이상의 동시통역으로 청중들에게 단순히 말을 전하는 감동 이상을 전해주는 그를 처음만났을 때, 나는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보았었다. 그의 카리스마와 냉철한 이미지는 쉽게 다가가 말을 걸기가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깊이있는 대답들을 전해줄 것만 같은 진중함과 단단함을 풍기는 사람으로 느껴졌기에 나도 모를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만난 그에 대한 첫 인상이다.

이후의 만남들을 통해 그는 기대이상으로 나를 비롯한 청년들에게 깊이있는 시각을 제공해주었고, 냉철한 사유 가운데에 흘러나오는 따스한 위로를 전해 주셨던 분이었다. 그는 내게 소중한 멘토이자 스승이었고 선배였다. 그리고 아쉽고 슬픈마음을 다 표현할 길 없게도 지난 3월 25일 마흔 여덟의 일기로 너무도 일찍 생을 마감하신 김동성 목사님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물론 그분을 많이 알지 못하고, 그분에 대한 기억의 아주 작은 한 조각만을 가지고있을 뿐이지만, 그분에게 받았던 감사한 가르침들을 글로 남기며 추모하고 싶다.



내가 동성 목사님을 두번 째로 만난 건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세계교회 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사무실이었다. 목사님은 WCC에서 디아코니아 및 아시아 국장을 맡고 계셨다. WCC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무엇이냐고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세계 1,2차 대전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악에 대해 저항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다양한 교단들이 함께 신앙으로 일치되고 협력하기 위한 운동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을 책으로만 배워와서 판타지만 가득했던 나는 그 곳에서 인턴을 하면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화려한 태동기와 부흥기만을 학습했던 내게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 가운데에 존재하는 현실의 모습은 적잖은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협의체로써 중재와 화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기관의 성격이 나는 소극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세계의 중심을 흔들만큼 큰 영향력을 미치는 힘을 갖기를 바랬었던 것 같다. 시민사회나 교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보편성의 담론을 주도하고 변화를 디자인해 내는 것이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믿고 싶었었다. 나는 ‘운동’이 너무 하고싶었던 나머지 에큐메니칼에 대한 더 깊고 다양한 정의들에 귀기울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의미에만 집중하며 인턴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인턴 중 참여했던 크고 작은 회의들에서는 주로 다양한 소속 교단이나 사회, 종교단체들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의견을 조율하고 시대를 통찰하는 선언문을 만들어내는 작업들을 많이 했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에서 시대가 요청하는 일들을 함께 성찰하고 화해의 장을 모색하는 대화의 과정들은 모두가 다 소중한 배움의 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더 현장성있는 실천적이고 가슴뛰는 운동이 하고싶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스스로 정의할 수 없으면서도 나는 나만의 잣대에 맞춰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평가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동성목사님을 찾아가 심각한 얼굴로 질문했다.

“저는 운동이 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는데, 내가 하는 대부분의 업무들은 행정일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하는 업무들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할 지 모르겠어요.”

물론, 당시 나의 주요 업무는 한국에서 열리는 13차 총회 준비에 관한 업무들이었기에, 행정일이 많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당시 개인적인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그동안 나름 꿈을 가지고 걸어왔던 신학의 길도 그만 두고 싶었던 참이기도 했었다. 그런 상황을 잘 아시는 목사님은 답해 주셨다.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추동성’이야. 사유를 멈추지 않고, 행동을 멈추지 않고, 연대를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추동성이야. 추동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죽은 운동이 되지. 살리는 운동은 생각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함께 함을 살리게 되지만, 죽은 운동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해. 그리고 죽은 운동은 모든 것을 의미없게 만들지. 너가 있는 곳이 운동하는 현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추동성을 발견해보도록 노력해봐. 추동성은 어쩌면 한계에만 갖혀있던 내 생각이나 행동을 해방시키고 모두를 향한 운동으로 향하게 해 줄 수 있을꺼야. 그리고 어쩌면 그 작업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살리는 일이 될 수 있을꺼야.”


목사님의 조언은 내 삶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에 하나인 ‘추동성’을 발견하게 했다. 스스로 너무 당연한게 많아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나에게 목사님의 현명한 조언들은 큰 해방감을 주었다. 인턴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방황했던 내게 목사님은 우문현답으로 고난의 시간들을 의미있게 만들어주셨었다.

목사님은 한결같이 정직했고, 현명하셨고, 열정적이셨다. 그리고 나에게 에큐메니칼 운동이 곧 목회라는 것을 환기시켜주셨다.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소중한 에피소드 중 하나는 목회가 곧 현장을 사랑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보여준 목사님의 태도이다. 2013년 제13차 WCC세계총회에서 동성목사님은 맡은 직무와 더불어 총회 총괄을 하는 부서와 협력하면서 더욱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세계 각 교단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인종, 성별, 연령, 장애여부 등 반드시 한 집단의 사람들이 절대다수가 되지 않도록 골고루 대표단을 구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 에큐메니칼 운동의 소중한 원칙이다. 열흘간의 총회기간동안 다양한 주제로 회의가 열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모임들이 진행된다. 해외에서 약 3천여명이 참가하고, 국내에서도 많은 인원들이 참가하기에 크고 작은 사고들도 어쩔수 없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총회 기간 도중 해외참가자 중 장애를 가지셨던 한 분이 어지러움을 호소하시며 병원에 이송된 적이 있었다. 총회기간 내내 잠도 거의 못주무실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했던 동성목사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지에서 보호자 없이 홀로 두려움의 밤을 보내야할 뻔했던 그분의 병상 옆에서 밤새 함께 해주셨고 기도해주셨다. 다음날 있을 중요한 대표단 회의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대신 간호를 부탁하고 먼저 자리를 떠나셨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소중한 원칙인 모두를 귀하게 여기는 목사님의 삶의 태도는 내가 총회현장에서 경험한 사건들 중에 가장 목회적이었고 가장 에큐메니칼 적이었다. 덕분에 나에게 에큐메니칼 운동은 현장을 소중하게 돌보는 목회적 태도로 다가왔고, 그 태도를 잃지 않고 매순간 깨어있으려는 추동성이라는 값진 의미로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소중한 길잡이가 되주셨던 분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목사님을 애도하는 큰 슬픔들 가운데에서 그래도 그와 같은 시대를 살 수 있어서 많이 배웠고 행복했었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목사님이 세상에 남기시고 간 선한 흔적들이 아픔과 소외의 현장들을 위해 ‘함께 함’으로 추동되기를 소망해본다.


* 필자소개

현재 '목회적 삶'과 '목회자의 삶'의 경계에서 고민중에 있으며, 친구들에게는 네살 선구라 불리우고 있다.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목사수련생 과정을 밟고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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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아,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율아,

오늘 다시 첫 등굣길에 오르는구나. 우선, 엄마가 상의 없이 갑작스레 학교를 옮기게 되어 정말 미안해. 첫 학교에서 적응하느라 많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 힘든 과정을 한 번 더 해야 한다니 엄마도 마음이 많이 아파.

우리 가족이 새 터전으로 옮길 때, 엄마와 아빠는 율이가 폭신한 잔디가 깔린 학교운동장에서 실컷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했어. 그런데 입학 첫 날 다녀온 학교는 확장공사로 운동장 출입도 어렵고, 같은 반 친구들도 기대보다 많아서 조금 실망했지. 그래도 공사는 일 년 안에 끝난다하고 율이에게 친구들이 많은 건 좋은 일이니, 조금만 기다리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

어린이집을 다닐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지낸 이야기를 시시콜콜 풀어놓지 않는 네가 어느 날 하굣길에 이런 말을 했어.

       “엄마, 나 오늘 벌섰다.”

       엄마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벌’이란 단어에 상당히 당황스러웠지만, 엄마보다 더 묘한 표정의 너에게 다시 물었지.

       “율아, ‘벌’이 뭐야?”

       그랬더니 조용히 양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씩 웃더라.

       “아, 그게 벌이야? 그럼 벌은 왜 서는 거야?”

       “음, 복도에서 뛰어서.”

       “복도에서 뛰면 왜 벌 서?”

       “다칠까봐,”

       “아, 그렇구나. 복도에서 여러 친구들이 뛰면 다칠까봐 선생님이 벌을 주신거구나. 율이도 알고 있었어? 복도에서 뛰면 벌 받기로 선생님이랑 약속한 거야?”

       너는 대답을 않고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버렸지.

       입학한지 딱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어. 네가 벌을 받았을 그 순간만큼이나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단다. 몇 주 뒤 선생님과 상담 중에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애쓰면서 말이야.

       “어머, 그런 일이 있었어요? 한참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지만, 현재 학교 여건상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 위험요소가 많아요. 그래서 복도에서 뛰는 행동은 벌을 주기로 1학년 선생님들과 정했어요. 아마, 율이가 복도에서 장난치다 다른 반 선생님께 혼났나봐요.”

       그래, 선생님의 이야기는 당연해. 사실, 맨날 이 산 저 산 뛰며 놀러 다니던 네가 복도를 날아다녔으면 날아다녔지, 설마 발뒤꿈치까지 땅에 대고 얌전히 걸었을까. 부주의한 너희들의 안전을 위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등하굣길 만나는 엄마들에게 ‘단체벌’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으면서 뭔가 잘못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는 학교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해. 특히 1학년은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기’부터 시작해야 하지. 복도에서 여러 사람이 뛰어다니면 위험하듯이, 함께 생활하다 보면 안전과 편의를 위해 서로 지켜야 할 약속과 규칙들이 생겨나기 마련이야. 그런데 말이야, 엄마는 그런 과정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수 있는 어른들이 많은 곳에서 율이가 지냈으면 좋겠어. 먼저 배운 어른들의 편의를 위한 규칙을 어떤 방식으로든 강요하는 것은 너와 친구들이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빼앗는 거라고 생각해. 더욱이 그 방식이 어린 너희들의 몸을 힘들게 하고 수치심을 자극해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엄마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래서 며칠을 고민한 끝에, 집에서 멀지 않은 작은 학교를 찾게 됐어. 체육관은 없지만 마음대로 뛸 수 있는 운동장이 있고, 화려한 놀이기구는 없지만 하교 후 심심한 친구들이 모여드는 놀이터가 있더라. 함께 뛰어 놀 친구를 찾는 너에겐 최고의 조건이지. 음, 솔직히 선생님은 어떤 분일지 모르겠어. 그래도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어른들은 좀 더 여유롭지 않을까? 엄마와 아빠는 그럴 거라 믿기로 했어.

       그런데 모든 결정을 마치고도 또 다른 고민을 생겼어. 과연 이곳은 너에게만 힘든 곳이었을까? 이 학교에 남게 될 다른 친구들은 괜찮을까? 왜 나는 선생님한테 정말 궁금했던 것을 묻지 못했을까, 왜 너의 적응을 핑계로 작은 학교로 옮겨야겠다고 했을까? 새로운 학교에 너를 데려다 주고 홀로 앉아 마시는 커피가 꿀맛일 줄 알았는데, 커피는 여전히 쓰고 엄마 마음을 어지럽힌다.

       율아, 오늘 학교는 어땠니? 잘 지내고 있는 거지?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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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콩은 청국장이 되고, 포도는 와인이 되고

 


박여라*




    지금 나는 '홍어 과다' 상태다. 지난 1년 동안 먹은 홍어는 내 평생 그 이전까지 먹은 홍어보다 훨씬 많다. 가리는 음식이 없어 뭐든 잘 먹지만, 그리고 홍어는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여기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날 홍어가 먹고 싶다든지, 먼저 나서서 먹으러 가자고 주창할 정도로 홍어가 내게 우선순위가 높은 음식은 아니다.


    작년 겨울 몇이 모여 홍어삼합에 애탕을 먹고 다음에 또 만나기로 했는데, 처음 만날 때 고른 홍어집 명단에서 다른 곳들도 가보자고 한 게 발단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홍어 먹은 얘기를 하다가 그 모임에서도 홍어를 먹으러 갔다. 급기야 몇 주 전 원래 모임 사람들과 홍어 기행이라며 영산포엘 다녀왔다.


    나주 기차역에 내려서 영산포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온 동네에 홍어 기운이 공기에 가득했다. 좋다고 하기도 싫다고 하기도 모호하고 오묘했다. 문득 오래전 만들었다 망한 청국장이 떠올랐다.


    먹고 싶은 것은 다 만들어 보던 시절, 좋은 콩 구해다 무쇠솥에 푹 삶고 정성 들여 뜸 들였다. 그리고 꼬마 불이 켜 있어 늘 미지근한 구식 가스 오븐에다 청국장을 띄웠다. 끈끈이가 잘 떠서 보기에 모양은 좋았는데 냄새가 좀 청국장 더하기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더 있었다. 온도가 너무 낮았을 수도 있고 그 오래된 오븐 안에 오만가지 잡균이 있어 다같이 콩에 들러붙어 함께 번식했을 수 있다.


    그래도 가게에서 파는 것처럼 한 덩이씩 빚어서 양념을 얹고 이쁘게 포장했다. 막상 청국장을 끓이니 냄새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들인 정성이 아까워 연거푸 몇 끼를 끓여 먹다 결국은 나머지를 버렸다. (정성은 정성이고, 청국장은 사 먹는 걸로!) 문제는 그 뒤로 며칠을 두고 부엌에만 들어가면 풍기던 그 청국장인 듯 청국장 아닌 청국장 같은 냄새가 영 없어지지 않았다. 홍어를 먹으러 간 영산포구에서 이때가 떠올랐다.  


    콩이 청국장(또는 된장)이 되는 과정은 환골탈태(換骨奪胎)다. 한자어 뜻 그대로는 뼈를 바꾸고 태를 빼내는 그런 변화다. 뒤져보니 중국 송나라 때 무슨 문헌에 적혀있기로는 시 쓰는 방법을 설명하는 말이란다. 옛 시문을 따다 뜻은 그대로 두고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환골'이고, 자기 표현으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탈태'라고 한다.


    발효는 환골탈태 같은 변화과정이다. 콩이 청국장이 되는 과정도 그렇고, 흑산도 홍어가 영산포 삭힌 홍어가 되는 과정도 그렇고, 포도가 와인이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물론 온도, 습도 같은 조건이 잘 맞아야 하지만, 재료는 단순하고 꼭 필요한 효모는 공기 중에 있다. 그리고 환골탈태하여 알아볼 수 없이 다른, 더 좋은 것이 된다.  


    나주 내려가는 길에 일행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내보았다. "우리 다른 것도 먹으러 다녀요." 그럼 냉면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어떨까 하다 곧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영산포구 수많은 홍어집 가운데 아무 데나 들어가 앉았는데, 막상 먹다 보니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데 한 3년은 먹자"는 말에 크게 호응을 보내진 못했지만, 충분히 이해는 가더라는! 아이고야, 다음번엔 와인을 한 병 가져가야겠다.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썼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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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연결고리 




강선구*

 


제니-스티븐(가명) 부부가 위탁가정(foster care family) 되기로 결심한건 결혼하고 오년이 지난 후였다. 서로 첫눈에 반해 결혼을 결심하고, 둘을 닮은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를 꿈꿨지만 마음먹은 것처럼 쉽게 반가운 소식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몇 번의 유산 끝에 간절히 원하는 아이가 꼭 내 몸을 통해 낳은 아이가 아니여도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사실 그 결심은 두 부부에게 절망의 끝에서 살아남기 위한 합리화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부모가 되고픈 희망을 버리지 못했고 그렇게 지역의 한 기관을 통해서 위탁가정을 권유받게 되었다. 위탁가정은 아직 입양되지 않은 아이들을 임시로 위탁해서 돌보아주는 가정을 말한다. 아직 입양되지 않은 아이들은 주로 원가정에서 학대를 당하거나 방임상태에 놓여있는 상태에서 발견되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고, 아주 소수의 입양성공률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위탁가정을 거치면서 성인 (만18세)이 될 때까지 정부로부터 보호서비스를 받게된다. 특히 이민자 출신의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과 다른 문화권의 위탁가정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고, 불안정한 위탁가정을 떠돌다보면 사회부적응 확률이 더 높아지는 현실에 처해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지역의 위탁가정 출신의 현황을 보면 약 80%이상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범죄, 마약 등에 연루되는 상황이었다. 제니-스티븐은 위탁가정이 되기 위한 까다로운 절차들을 거치며, 자신들에게 올 아이들이 비록 3개월에서 6개월정도 되는 시간일지라도 잠시나마 따뜻한 보금자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첫번째로 부부에게 온 '연'이라는 이름(가명)의 아이는 눈이 참 맑은 이제 막 여덟살이 된 남자아이였다. 그동안 위탁부모를 위한 교육을 철저하게 받아온터라, 부부는 연이가 긴장하지 않도록 천천히 집을 소개해주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함께 세워보자고 말해준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들에게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일부러 과거의 사연을 묻지 않고 지금 무엇이 하고싶은지,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만 대화를 시도해본다. 하지만 잔뜩 얼어붙어서 방안에서 웅크리며 소통을 거부하는 연이는 그런 부부의 시도가 낯설어 방어태세로 더욱 무장해본다. 그렇게 두 주 정도가 지났다. 여전히 연이는 말이 없었지만, 부부의 따뜻한 분위기에 어느덧 스며들어 적응이 되어갔다. 여느때처럼 식사를 하는 중에 연이는 바다를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바다를 한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학교에서 바다에 관련된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받았단다. 부부는 아이가 처음으로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이 반가워서 내일 하루는 둘다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길에 연이는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보인다. 부부는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린다. 연이가 처음으로 보는 바다 앞에서 행복해하는 얼굴이 비로소 또래의 아이같이 평범해 보였고, 그 평범함을 마주한 연이의 미소가 부부의 가슴을 깊이 울렸기 때문이다. 연이는 전에 있었던 가정의 부모로부터 심하게 학대를 받아왔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도 연이의 몸 구석구석에는 멍투성이들이 남겨져있었고, 이따금씩 아이가 내뱉는 거친 말들 속에서 그간 연이에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해본다. 연이는 눈앞에 펼쳐진 바다의 광경이 믿을수 없다는 듯 설레어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부부를 향해서 손을 내밀어본다.

그렇게 마주잡은 손으로 셋은 한 가정이 되기로 결심했고, 부부는 아이를 입양하고 난 후 지금까지 십여년간 연이와 함께 위탁가정이 되어서, 새로운 아이들을 위해 잠시나마 따뜻함을 줄 수 있는 거처가 되어보려고 하는 중이다. 연이 역시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지금의 가정에 적응하려 애쓰는 중이다. 혹여나 자기처럼 이 집에 방문한 아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면 어떻게하나 하는 두려움때문에 가끔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연이 역시 타자를 맞이하는 과정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중에 있다. 각기 다른 모양의 고통들을 품은 아픔 가운데에서도 서로를 향해 다가가려는 잔잔한 움직임들이 담겨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당사자들 뿐 아니라 그곳에 모인 청중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서로 다른 타자들이 함께 함'의 의미와 '서로를 위해 울어주는 타자들'이 사회적 고통을 읽어내고 치유와 화해로 향할수 있을지 질문을 던져본다. 현실적으로 자기자신이 아닌 타자들을 향해 얼마만큼 참여할 수 있는 것일지, 타자와 함께하는 삶이 과연 가능한 것일지가 궁금하고, 살고자 희망하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호르크하이머는 이성을 통해서 타자와 함께하는 삶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학자이다. 무언가를 사유한다는 것은 '자기중심성'의 한계를 넘어서 고정시키거나 물화(reify)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호르크하이머는 이러한 사유방식을 '비판이성'이라고 정의했다. 이성을 필두로 한 계몽의 역사가 자기중심성의 역사 였기에, 비판이성은 이러한 이성중심주의 역시 철저히 비판하며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를 전제한다. 자기중심성은 대상을 타자 그자체로 인식하지 않고, 자기와 동일시하려는 기제를 통해 타자의 본래성을 훼손시키고 이를 정당화시키기까지 한다. 이러한 이성의 과정은 타자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시키고, 나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도구적 이성으로 나아간다. 자기중심성과 도구적 이성은 개인과 타자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각자를 소외시키는 분리된 삶으로 여기게 만든다. 비판이성은 이런 의미에서 타자성을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사유방식을 자기중심적 고정상태가 아닌, 타자를 향한 개방으로 나아가게 한다. 끊임없이 물화된 사유를 정당화시키는 자기중심성은 서로를 분리시키고 소외시킴으로써 사회적 고통을 발생시킨다. 비판이성은 그런의미에서 비판적 유물론으로 나아간다. 유물론은 개인들의 고통이라는 현실을 변혁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기제들을 보이도록 밝혀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의 유물론이 비판적인 이유는, 무언가를 당연하게 주어졌다는 긍정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대 때문다. 긍정주의는 자기중심적 메커니즘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예를들면, 필요나 생산이라는 부분적 단면만을 주어진 완성된 형태로 고정하고 그것만 해결하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의심의 여지없는 믿음상태를 긍정주의라 한다. 비판적 유물론은 이러한 긍정주의를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타자성을 억압하는 현실의 메커니즘을 밝혀내고자 한다. 

비판이론에 따르면, 타자와 연결된 자기인식은 자기반성으로 향하게 한다. 사유하는 것은 타자를 인식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노력은 이성을 통해서 이루어져야하고, 비판이성을 통해서 서로를 분리시키고 소외시키는 사회고통 메커니즘을 밝혀내야 한다. 더 나아가서, 비판적 유물론은 더 철저하게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고 현실에 놓인 사회적고통을 변혁시키기 위한 시도이다. 이러한 비판이론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타자와 함께 한다는 건, 타자를 위해 울어준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자기자신를 위한 '의미의 작업'이다. 서로를 속이는 자기중심성의 메커니즘 때문에 자기소외와 고통에 시달렸던 자기 스스로를 극복하고 위로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바로 비판이성을 통해 타자와 연결된 자신을 인식할 때부터 시작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타자 인식이라는 위의 전제가 여전히 자기 중심성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지라도, 그럼에도불구하고 자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타자와의 연결고리 안에서의 자기인식이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는 물화하는 사유가 아닌 열려있는 사유를 가능하게하고, 서로를 분리하고 소외시키는 사회가 아닌 '다름들을 인정해주는 함께함'의 사회로 이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사유방식의 실천은 너와나의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첫 단추가 된다. 나이브한 긍정주의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비판이성과 비판적 유물론을 통한 '비판적 유토피아'가 열려있는 사유를 향해, 그리고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구원시키기위해 지금 여기에 도래되기를 희망해본다.


* 필자소개

현재 '목회적 삶'과 '목회자의 삶'의 경계에서 고민중에 있으며, 친구들에게는 네살 선구라 불리우고 있다.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목사수련생 과정을 밟고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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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사가 아닐 때





 김정원*

   

    취미가 '지질히' 고상한 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좋아하여, 특별한 절기에는 꼭 세인트 폴 대성당을 방문하곤 하였다. 그날도 오르간 연주자 근처에 앉을까 하였지만, 이미 만석이라 비껴 놓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미간까지 찌푸려가며 '영국말 설교'를 알아듣고자 했지만 영 쉽지가 않다. 나의 빈곤한 리스닝 능력에 더해 어디선가 스멀스멀 거리는 퀴퀴한 냄새를 맡고 난 뒤부터는 '영국말 예배'를 향한 집중력은 이내 무너지고 말았다. 그 냄새의 발원지를 찾고자 큼큼거렸고, 곧 내 옆의 여성에게서 나는 냄새임을 알아차렸다.







세인트 폴 대성당의 미사 모습(사진 : Leon Neal/AFP/Getty)


    그녀가 노숙자라는 것을 눈치 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느 노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서너 개의 큰 보따리를 가지고 있었고, 보따리는 거뭇거뭇한 살림살이로 가득했다. 이제 예배는 물 건너갔다. 내 코를 비롯한 대개의 감각은 그녀에게 꽂혀 있었다. 그녀는 베이지색의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돌려 맨 푸른색 스카프가 가슴 언저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내가 입은 그것들 보다 좋아 보였다. 순간 그녀가 노숙자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조금 과감해지기로 한다. 살짝 목을 돌려 그녀의 차림새를 더욱 찬찬히 살펴보니, 꼬질꼬질 때가 가득한 소매는 베이지색을 잃은 지 오래 돼 보였고, 영근 때가 머리카락에 드레드레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노숙자였다. 시간이 지나도 코를 자극하는 그녀는 노숙자가 분명했다.



    그녀는 부산스러웠다. 예식이 많은 성공회 예배 절차를 따라 여러 개의 책자를 찾아 보느라 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쪽수를 못 찾을 때가 많았는데, 나는 빤히 알면서도 그런 그녀를 돕지 않았다. 뒷자리의 미소 띤 백인 여성이 그녀를 도와주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 아니, 실은 그 노숙자에게 미안한 것이기 보다는 그 미소 띤 백인 여성에게 민망스러웠다. 문제는 성찬식이었다. 한국 개신교의 그것과는 다르게 영국의 성공회는 대개의 경우 배잔 없이, 하나의 큰 은잔에 담긴 와인을 차례로 나눠 마신다. 잔을 들고 있는 성직자는 총 네 명. 줄을 잘 서야 했다. 잘못하다가는 내 옆의 그녀가 마신 잔을 나도 사용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뿔싸. 나는 그녀 바로 뒤에 서 있었고, 난 그야말로 주의 '쓴 잔'을 마셨다. 쓴 잔이 지나자, 이번엔 서로에게 'peace be with you'라고 인사말을 건네며 악수를 나누는 시간. 본디 작위적이고도 어색한 그 시간을 즐기지 않지만, 그 날은 특히 그랬다. 거무튀튀한 그녀의 손을 잡는 게 영 석연치 않았다. 그렇게 온 감각이 그녀를 향해 쭈뼛 댈 때, 온통 예민해진 나를 향해 그녀가 손을 내민다. 나를 올려다 보는 그녀 얼굴에 함박 미소가 들었다. 못 돼 쳐먹은 나를 향한 그녀의 미소가 너무 환하여 금새 주눅이 들고야 말았다. 내 손을 꼬옥 잡으며 그녀가 말한다. "PEACE BE WITH YOU"


    영국 교회에 가면, 나는 더 이상 목사가 '아닐 수' 있다. 누구를 챙길 필요도 없고, 설교를 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내 소개를 할 필요도 없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고, 먼저 다가갈 필요도 없고, 어색한 칭찬을 건넬 필요도 없다. 몇 명이 출석했는지 알 필요도 없고, 분주할 필요가 없고, 찬양을 크게 부를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친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더 정확하게는 친절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영국 교회에서의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목사가 아닐 때'의 나, 즉 '참 나'를 마주한다. 오르간 연주는 핑계일 게다. 실은 소극적이고 폐쇄적이고 예민한, 그런 나를 만나러 교회에 갈는지도 모른다. 공간은 엄연히 교회당인데, 내 존재가 한국에서와는 참 다르게 머문다. 이곳에서의 나는, 노숙자의 냄새에 코를 찡긋거릴 수도 있고, 도움에 소극적 일 수도 있고, 예민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다만 가끔 '양심'의 소리가 내 속을 긁을 뿐, 그 낯설면서도 편안한 '참 나'의 시간은 모순적이지만 값있다.


    양심은 모순적이지만 값진 그 시간을 방해한다. 양심의 소리 때문에 완전한 해방감을 얻기가 영 쉽지 않다. '평화의 인사'를 건네는 그 노숙자의 미소 앞에서 양심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곧 죄책감을 몰고 온다. 친절과 환대를 머뭇거릴 때,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죄책감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프로이트의 생각을 빌려오면 조금 가벼워질 수 있을까. 그는 양심을 사회적 압력이 만들어 낸 사회 규범이 우리 속에 내면화 된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억압이 빚어낸 친절을 가장하지 않았으니, 그러니까 '초-규범적' 인간일 수 있었으니 그리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겠다. 니체야 오죽하겠나. 그는 양심의 가책이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채무자가 느끼는 부채감과 같은 것이라 말한다. 빚을 갚지 못하고 있는 채무자에게 채권자가 들이닥쳐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의 본래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하다. 신 안에서 늘 불편한 나에게 그의 말이 꿀 같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빚 받으러 몰아쳐 오는 채권자가 아닌 이상, 나는 억지로 '유죄판결 된 삶'을 살 필요가 없다. 물론 노숙자에게 친절과 봉사를 행하던 그 백인 여성이나 환하게 웃으며 휙휙 악수를 나누던 그 교회의 목사들 앞에서 기가 죽을 이유도 없다. 그들이 나를 '까칠한 아시아 여자'로 인식하더라손, 그 판단에 아쉬워 '목회적 마인드'로 갈아 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른바 노예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면 너무 자위적일는지.


    "노예의식을 갖는 개인들 사이에서 타자에 대한 승인은 여론이나 평판 혹은 대중들의 판단에 의해 규정된다. 허영심 있는 인간은 자신에 대해 듣는 모든 좋은 평판에 기뻐하며, 모든 나쁜 평판에 대해서는 괴로워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 두 평판에 예속되어 있으며, 자기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복종이라고 하는 본능에 예속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니체 전집 VI 2, 281)."


    이왕 이렇게 된 거, 포이에르바하까지 가보자. 그는 신앙인들의 특권의식을 비판하며 신앙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에게 우월감과 특수한 명예감을 부여한다고 지적한다. 하인이 주인의 품격을 자신의 품격으로 여기듯, 스스로의 본질을 어떤 다른 본질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지금껏 교회 안팎에서의 나의 시혜적 행동은 신 혹은 목사라는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인격을 꾸역꾸역 다른 인격 안으로 밀어 넣으며 도덕, 선, 평화, 사랑과 같은 개념들을 성취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신학(anti- theology)을 벗삼아 되묻게 된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페미니스트인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고독했지만 강했고, 사랑했지만 배신당했고, 걷지 못했지만 자유로웠던 그녀의 자아가 둘로 쪼개져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맞닿아 있다.(두명의 프리다, 프리다 칼로, 1939)



    죄책감이나 특권의식이 만들어 낸 '친절한 나'를 까뒤집고 나면, 마침내 '폭로된 나'를 마주하게 된다. '폭로된 나'는 여리고 작고 보잘것없다. 호의를 가졌지만 그 호의를 베풀 용기가 부족한, 겨우 그런 여자일 뿐이다. 주목 받는 것이 두려워 큰소리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아량이 좁아 불쾌감을 이겨내지 못한다. 탈-죄책감과 탈-노예의식을 선취했을지는 몰라도, 마주한 '참 나'는 부끄럽다. 반신학 위에 올라 타, 의기양양 했다면 좋았으련만- 가식과 허위를 벗겨낸 나의 모습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은폐된 나'의 폭로는 한줌의 자유로움과 곱절의 부끄러움을 몰고 온다. 목사를 벗고, 성도를 벗고, '신앙'을 벗고, 죄책감을 벗고, 양심을 벗고…… 그리고 난 후에 마주하게 되는 '참 나'는 부끄러움으로 물들어 있다. 비로소 유한함의 고백이 터져 나옴에 겸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신 없이 신 앞에' 엎드려지는 기도의 시간이 얻어진다. 죄책감도 없고 참회도 없는데, 신 앞에 엎드려진다. 죄의 고백 없이 눈물이 나고, 선포 하나 없는데 자유롭다. 작은 나를 발견하고는 이내 신을 끌어온다. 이 때 나를 만나러 오는 신의 손에는 회초리도 율법책도 없다. 도덕군자의 형상도 아니요, 신실한 모습도 아니다. '신앙심이 깊고 친절을 베푸는 여자'가 아닌 '소극적이고 아량이 없는 여자'를 만나러 오는 그 신은, 나를 탓하지도 않고 타이르지도 않는다. 특권의식과 우월감을 내려놓고 신을 부르니, 신 역시 권위를 벗었다. 부끄러운 나와 함께 부끄러워하고, 자유로운 나와 함께 자유롭다. 부족한 '참 나'의 모습 속에 되려 신의 기운과 신의 고백이 들어찼다. 사랑과 자비의 기운 속에서 나와 신은 거듭 만나고, 그로 인해 역시 부끄럽지만 이내 자유롭다. 다시 모순이지만, 다시 값지다. 어찌 된 일인지 반신학의 조화가 요사스러워 다시 신학적이다. 내 교육과 내 설교에 죄책감을 느낀 이들에게 죄를 고백하며 새해를 부끄러움으로 연다.


    <이번 원고는 필자가 2017년 2월 에큐메니안에 게재했던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다시 목사'로 돌아온 이 때, 내 근거를 '참 나'로 삼을 것을 다짐하며 묵혀진 글을 함께 나눕니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했다. 현재 향린교회에 맘을 풀고 '다시 목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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