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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이 물질은 제겐 면죄부이자 노동의 고통입니다 (최종봉)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0. 2. 1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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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질은 제겐 면죄부이자 노동의 고통입니다”

최종봉
(IT산업 노동자, 88만원 세대)

나는 내일 아침 9시 30분이면 아마도 1000원의 교통비를 내고 회사에 도착할 것입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일을 시작할 것이며, 아마도 내일 하게 될 일은 보험과 대출에 대해서 광고글을 만드는 것일 겁니다.

보험이라는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행복한 4인 가족에 위기를 만들어, 되도록이면 많은 보험가입상품을 유치하게 해야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야 하며, 당신은 이런 위험성으로부터 준비되지 않았음을 경각시켜주는 글을 써야 합니다. 쓸 때마다 사회악적인 담론은 만들어 내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그렇게 오전의 일이 끝나면 저는 점심으로 약 3천 원에서 4천 원 정도의 식사를 하고 다시 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계가 여섯시 반을 가리키면 저는 다시 집으로 1000원의 교통비를 내고 돌아올 것입니다.

이렇게 일주일에 5일 한 달에 25일을 일하게 되면 저는 각종 보험과 세금을 제외한 110만 원 가량을 수령하게 됩니다. 통장에 찍힌 액수에 이번 한 달도 잘 버텼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돈이 다른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거기에 속았기에 얻을 수 있었던 돈입니다. 이런 돈을, 이 물질을 주님이 어떻게 받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돈은 나를 위한 돈이 아니라며 받지 않을실지, 어렵게 번 돈을 드리니 기뻐하실지 전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고작 만원을 가지고 과연 이런 기도를 드려도 되는지도 사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님, 그렇기에 지금 드리는 이 헌금은 제겐 면죄부이자 노동의 고통입니다. 부디 뜻대로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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