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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한 '얼치기 무신론자'의 신앙고백 (오종희)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0. 3. 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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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얼치기 무신론자'의 신앙고백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한백교회에서 예배드리기 시작한지 벌써 달수로 8개월 정도 됩니다.
작년 여름 한백교회서 드린 첫 예배는 설교도 없이
환경에 관한 퀴즈를 내던 예배였습니다.
종교적인 감수성만 부풀리던 보수교회를 기십년 다녔고 그 후에는
소위 예전과 정통신학을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교회를 다녔던지라
그 동안의 예배 형태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한백에서의 예배가
내게는 한마디로 싱거웠습니다.
‘차’도 ‘포’도 빠지고, ‘예수’도 ‘성령’도 빠지고
‘인간’만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느낌이 그리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즈음, ‘삼위일체’니 ‘구원’이니 언제나 화려한 말잔치 뿐이던 교회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도 한 이유지만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의 강의를 먼저 듣기 시작한 것이
한백에서의 예배를 놓지 않게한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세상과 인간’을 배제하지 않는 예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부부의 신앙생활은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간이었습니다.
늘 신앙심 깊고 뭐든 교회중심이던 안수집사 남편과 교회조직 생활은
힘들어 했지만, 나름 새벽기도에, 매일 딸과 등교전 예배를 드리던 내가,
그리고 주일이면 아침부터 각각 고등부교사로 유치부교사로 성가대로
각종모임으로 용을 쓰다가 저녁때나 되어야 집에서 겨우 얼굴보는
신앙생활을 하던 우리 부부가 어찌어찌해서
지금 한백교회의 싱거운 예배를 드리고 맛있는 밥을 먹게 되었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가끔, 서대문까지 예배드리러 오면서 ‘이런게 은혜인가’라며
남편과 키득거리곤 합니다.
올해 고1이되는 딸 아이가 얼마전 친구와 있었던 일을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 일인데
반 친구에게 자기가 읽은 <천사와 악마>라는 소설이 재미있으니
한 번 읽어보라고 권했더랍니다. 작가가 누구냐는 친구의 물음에
<다빈치 코드>를 쓴 사람이라고 말하자 교회를 다니는 그 친구는
‘그런 책은 읽으면 안된다’고 정색을 하더랍니다.
친구 이야기를 하던 딸아이가 내게 다시 이렇게 말 하더군요.
“엄마, 우리도 옛날 같으면 그 아이 처럼 생각 했었겠지?...”
그랬을 겁니다. 대단한 경건주의자는 아니었어도
종교가 심어준 생각의 금기는 늘 우리를 옭아 메었으니까요.
금기가 깨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제법 불경스런 말도 시원스레 내뱉기도 합니다.
“나, 요즘 무신론자야!”

주님~
얼치기 무신론자가 당신께 기도합니다.
당신은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언어사건 만으로 규정되는 무엇이 아니라고 생각되기에
내가 쓰는 사전에서 당신을 지우는 것이 오히려 좋을 듯합니다.
신앙 또한, 어떤 대상화된 존재를 믿는다거나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내 맘과 행위에서 신앙이란 것을 지우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당신을 지우고 신앙을 지우니 말수가 더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당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뭐,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당신이 없고 신앙이 없는 것은 내게 ‘기이한 부재’입니다.
‘도화지가 갖는 한계를 벗어나니 예술의 확장이 쉬웠다’라는
데미안 허스트의 말처럼
당신을 규정하는 단어서 벗어나니 오히려 당신이 확장되는
기이한 부재를 느낍니다.
당신을 잘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의심하는 것이 죄스럽지 않습니다.
당신은 내게 더 이상,
기계장치를 타고 내려와 단번에 모든 갈등을 해결해주는
비극무대의 신이 아닙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궂이 당신 이름을 불러 감사하기보다
내 앞의 인연과 생명을 예뻐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단지, 좀 더 예뻐하길 ....  좀 더 기뻐하길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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