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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마당] 풋내기 목사가 준비하는 하늘뜻펴기 - 기쁜 소식 (한문덕)

목회마당

by 제3시대 2010. 3. 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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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 세번째

풋내기 목사가 준비하는 하늘뜻펴기
- 기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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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지난 번 글에 이어 사복음서 연속 하늘뜻펴기의 두 번째 글을 드립니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벌이신 사건들을 잊지 못해 그리고 그 사건들을 재현하면서 쓰인 글들입니다. 참 사람 예수를 만난 이들의 신앙고백이지요. 개신교 전통이 만인사제설을 굳건한 뿌리로 가지고 있지만 예수는 누구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장벽도 없음을 설파하신 분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람인 이유만으로 하느님과 만날 수 있고, 사람은 사람인 이유만으로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에 하나는 소수의 남성 즉 목회자나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 중심의 교회운영입니다. 목회자든 당회든 교회든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로 서면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런 공로나 중재 없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조직은 서로 사랑하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들입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는 교인 모두가 주체적 신앙을 갖고 책임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평신도 교회의 정신으로 세워졌고 이미 목회자를 둔 지금에서도 그 정신을 이으려고 나름 노력합니다. 그 노력에 불을 질러 더 나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한 저는 마르코 공동체의 신앙고백들을 중심으로 두 번째 하늘뜻펴기(설교)를 했습니다. 많은 평신도들께서 그리고 목회자들께서도 누구나 하느님의 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기억하면서 교회 내의 다양한 목소리가 어울려 하느님 나라의 멋진 하모니를 어떻게 일굴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향린의 창립정신과 복음서(2)
기쁜 소식
출애굽기 1, 15-21 ; 마르코 복음 7, 24-30

인터넷 포털싸이트에 들어가서 향린교회를 쳐 보면 여러 글과 이미지가 뜹니다만 그 중 하나인 위키백과사전에서는 ‘향린교회’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 중 하나로 알려질 만큼 유명한 교회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이며 서울 중구 을지로2가에 있다. 초창기의 엄격한 모습에서는 점차 이탈했으나, 여전히 활발한 사회 참여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 민주적인 교회 운영 방식으로 유명하다. 남북 관계와 통일 문제에 대한 진보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고, 국악예배 보급에도 앞장서 왔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사회와 한국교계에 향린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알려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평가는 한편으로는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충고이기도 합니다. 초창기의 엄격한 모습에서 점차 이탈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향린교회가 더 이상 평신도 교회/독립교회/공동체생활을 하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그러하지만 공동체생활과 평신도교회 그리고 교권의 다툼과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교회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화두로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시간에 부르는 국악찬송가 217장 향린희년 신앙고백은 ‘하느님이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노래하고,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남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몸과 맘이고, 이 땅의 향기로운 이웃이며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는 생명의 숨결’입니다. 

‘향린희년 신앙고백’의 토대가 된 1993년의 “향린교회 신앙고백 선언”의 교회 항목을 보면 이렇습니다. “교회는 또한 예수의 복음에 의해 해방된 사람들의 해방공동체이고, 공동체 내의 모든 구성원이 자유하고 평등한 삶을 누리는 민주 공동체요 정의로운 평화 공동체이다. 부활한 예수의 몸인 교회 안에는 몸이 활동하도록 하기 위한 여러 지체들이 존재한다. 이 모든 지체들의 직무와 기능은 각기 다르지만, 각 지체들 간의 관계는 그 지위에 있어 우열이 있지도 않고, 어느 한 지체가 다른 지체에 예속되지도 않는다. 또한 교회는 목회자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구성원들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평등하고 서로 함께 조화를 이루어 평화롭게 살며, 함께 하느님을 예배하고, 서로를 위하고 봉사하며,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이 고백문은 향린의 비전이며, 목표이고 지금 조금씩 이루어가고 있는 현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직(聖職)”이 주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 나라의 일을 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자신의 생활터전인 직장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와 사회에서 예수의 삶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직분에 관계없이 모두 성직자일 것입니다. 또한 부활한 예수의 몸인 교회가 원활하게 하느님의 선교를 위해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면 목회자 또한 신학 쪽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평신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6년간의 조헌정 목사님의 목회활동의 핵심을 한마디로 하라고 한다면 부교역자인 저는 “평신도 목회를 위한 노력”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평신도 설교, 공동축도는 한국교회에서 보기 드문 것이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옆에 자기의 십자가 달기, 매월 첫 주 십자가를 상징하는 후드를 전교인이 목에 걸고 예배하기, 평신도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평화 나눔 작은 공동체와 각종 소모임들, 매주 목요일의 평화기도회 등은 모두 평신도 목회의 일환입니다. 각신도회와 부서대표, 그리고 당회와 목회실이 함께 모이는 목회운영위원회를 통해 교회를 운영하는 방식 또한 평신도 목회를 통한 교회 민주화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평신도 교회를 향한 조 목사님의 목회철학은 그가 향린교회에 부임할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2003년 6월 15일 성령강림절 두 번째 예배이자 3대 담임목사 취임예배 설교 때 했던 조 목사님의 설교를 다시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3년은 향린교회가 희년을 맞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50년이기에 희년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 교회를 세우신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을 다시금 세우기에 희년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이 교회가 명동 입구에 명동성당 바로 앞에 위치한 상징적 의미가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은 신교와 더불어 동반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향하는 목회의 방향은 결국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교황으로부터 시작하는 수직적인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향린교회는 이에 반해 수평적인 체계를 갖고 시작했습니다. 이 둘이 함께 만나 십자가를 이룹니다. 명동성당이 한국 기독교의 절반인 가톨릭을 대표하는 성당이라면, 우리 향린교회는 또 다른 절반인 프로테스탄트를 대표하는 교회라고 믿습니다. 혹자는 이 말을 독선 내지 교만, 그래 착각은 자유라고 비난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향린교회가 그러한 한국 교회의 사회사적인 위치를 지금까지 유지해 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안병무 선생님이 평신도들이 설교에 참여함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초대교회 전통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평신도가 주인이 되는 목회, 그리고 홍근수 목사님이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함으로 기존의 틀을 깨고 저 성전의 벽을 허물라는 예수님의 예언자적인 외침 속에서 교회 자체가 사회 안에서 평신도로 존재하고자 했던 또 다른 의미에서의 평신도 목회라면 저 또한 여기에 기초한 제3의 평신도 목회로 나아가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 제3의 평신도 목회가 어떻게 드러날 것인가는 여러분과 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우리의 몫입니다.”

지난 2008년 촛불집회는 기존의 집회의 성격과는 많이 다르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특히 핵심이 되었던 것은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의 경험을 통해 대표권 없는 대의정치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게 되었습니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성을 띠지 않고 일부 기득권자들의 이익집단이 된 것을 본 것입니다. 시민 모두가 주인이 되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꿈이 인터넷이나 통신의 발달로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 때에, 평신도의 주체성 강화를 통한 수평적 교회 구조를 만들고 누구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교회 공동체를 일구는 과제는 오늘의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수직적인 구조는 봉건적이고 위계질서적인 중세 사회의 재현이었고, 개신교의 장로들을 통한 회의제도는 근대의 대의정치의 구조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계획되었던 당회가 연기되어서 저는 희년청년회 모임에 잠시 들렀습니다. 3층 예배실에서는 평신도들의 모임인 정의평화를 위한 기독인연대의 총회와 평신도아카데미 강의 모음집인 “평신도, 성전을 헐다”의 출판기념회가 이어지고 있었고, 희년청년회 모임 공간에서는 향린교회 예배에 대한 평신도들의 논의가 활발하게 오가고 있었습니다. 논의의 발단은 지금 곡조를 붙여서 부르고 있는 교독문에 관한 것이었지만 예배음악과 예배형식의 다양화로 확대되었습니다. 팽팽한 여러 의견들이 오고 가는 중에 한 새 교우가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이 논의 자체가 무척 새롭습니다. 평신도들이 예배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낯설어요. 예배에 대해 그렇게 세밀히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저 주어져 있는 대로 해 오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향린교회 정관에 의하면 예배형식에 관한 사항은 당회의 소관이지만, 우리교회는 예배부가 따로 있어 주일예배의 형식에 관해서 예배부와 의논하고, 특히 음악적인 부분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야 하기에 음악위원회와 함께 신중하게 논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주체는 교인 전부이므로 누구나 예배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고, 또 필요하다면 목회운영위원회에 예배에 대한 좋은 안건을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향린교회는 평신도 교회의 정신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 더 나은 모습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급진적으로 평신도 교회의 정신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평신도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정답은 목회자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조 목사님은 30명씩 분가해서 10개의 향린교회를 만들라고 설교한 적도 있었지요. 만약에 향린교회에 목회자가 없고, 을지로 2가에 위치한 이 건물도 사라진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임으로서의 교회 즉 건물도 없고 목회자도 없는 향린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 사역을 해 나갈까요?

서력 기원 70년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의 거룩한 성소를 잃고 혼란에 빠집니다.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자 신앙의 중심지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성전이 사라졌으니 이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위기가 시작됩니다. 유대교 갱신 운동으로 시작되었던 예수 운동의 한 분파는 성전의 멸망에 당황하지 않고 전쟁을 피해 북쪽으로 자리를 옮겨 그들만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듭니다. 세례예식을 통해 기존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과 함께 각 가정에 모여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기억하며 빵과 포도주를 나눕니다. 그러나 새로 시작된 이 종교 또한 위기가 닥칩니다. 44년 교회의 세 기둥 중 하나이고 예수의 제자이자 사도 요한의 형제였던 야고보가 유대 서기관과 손잡고 있는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처형당합니다. 이때 베드로도 잡혔지만 하느님의 은혜로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이 일로 예루살렘 교회에서의 베드로의 권위는 떨어지고,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 됩니다만 예수의 동생 야고보도 62년에 예루살렘의 유대인 지도자들에 의해 돌로 맞아 죽습니다. 60년대 후반에는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 가장 큰 지도력을 발휘했던 베드로마저 순교하고 그리스도교 교회는 지도자들을 모두 상실하는 상황이 되어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지게 됩니다. 

전쟁의 위기 상황이고, 지도자도 없이, 유리걸식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예수를 따라 제자가 되겠다는 마르코 공동체는 새로운 방식의 가족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교회를 만들어 갑니다. 이 새로운 가족공동체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데 이상하게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구절인 마르코 3장 35절은 이러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예수는 영생을 묻는 부자 청년에게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누고 나서 나를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는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갑니다. 이 모습을 본 베드로가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하십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에서도 자세히 보면 아버지가 빠져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이것은 마르코 공동체가 처한 상황과 관계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태동한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제자단이었던 사도계 공동체들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마저도 그들에게 자신의 선교에 대해 허락을 맡아야 했으니까요. 시간이 갈수록 이 사도계 공동체는 예수님의 평등한 관계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 되었을 때, 야고보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고, 이들이 유대의 정결 예법을 지킬 것을 강요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절 이하에 보면 베드로와 바나바를 포함하는 유대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출신 기독교인들이 함께 식사를 나누고 있는데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와서 이것을 비난했고, 베드로가 슬금슬금 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자리를 피한 것에 대한 바울의 분노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수장이 되면서 유대교의 율법을 준수하는 기독교로 모든 교회를 통일하려고 했고, 야고보의 순교 이후에 예수의 삼촌 시므온이 수장이 되고 이후 도미티안 시대에는 예수의 동생 유다의 두 손자가 통치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가족들이 메시아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와야 한다는 근거를 가지고 계속 권력을 가지게 되자 초기 그리스도교 내부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저항과 불신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마르코 복음 곳곳에 드러나 있습니다. 12장 35-37절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임을 문제 삼고 있고, 3장 20-35절에서는 예수의 가족과 예수의 불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1세기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버지는 바로 권력의 상징이고 예수 사후 예루살렘 교회가 가부장적 권력의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바울이 죽은 다음에 디모데전후서나 디도서의 기록자들인 바울 2세대들 또한 비슷하게 교회에 직제를 도입하면서 교회는 점차 제도화되어가고, 제도화에서 생기는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서 전체를 자세히 그리고 꼼꼼히 읽어보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열둘의 제자들, 특히 예수께서 수행원처럼 데리고 다녔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얼마나 무지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몰라주고, 하느님 나라 선교에 대해 몰지각한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하느님 나라 운동에 함께 하자고 초청한 이들이고 그 초청에 의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나선 사람들임에는 분명하지만 갈수록 그들은 예수의 제자됨의 길에서 멀어집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말씀을 선포하고,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악한 것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받았으나,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들을 먹이는데 실패하고, 악령에게 사로잡힌 아이를 고치지 못하며, 세상을 향해 산 밑으로 내려가기는 커녕 산위에 좋은 집을 짓자고 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나, 열둘 중에 그 길을 따른 남성제자들은 한명도 없습니다. 첫 번째 수난예고에서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를 가로막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가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는 호된 꾸지람을 듣고, 계속 되는 수난 예고 속에서도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가 왕이 될 때 한자리 차지하려고 애를 씁니다. 예수 곁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을 못 오게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막는가 하면, 누가 높은지 다투기 일쑤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열두 남자 중 하나가 예수를 배신합니다. 땀이 피가 되도록 고민하며 괴로워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드리는 예수의 마지막 기도에 함께 해달라는 요청에도 쿨쿨 잠이나 자다가 예수가 잡히자 모두 도망가 버립니다. 끝까지 예수를 따르겠다고 했던 베드로조차도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라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면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이런 모습이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권력을 추종하고 권력의 시녀가 된 집단의 지도자들이 보여주었던 행태였던 것입니다. 그럼 권력을 상징하는 아버지를 없애버린 공동체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제가 태동고전연구소에서 사서삼경을 배울 때 한양대 철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선배와 마르코 복음을 함께 읽고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다 공부하고 나서 그 선배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그 선배가 하는 말이 이렀습니다. “여자들이 엄청 나오네. 논어에는 여자가 등장하지 않잖아” 그렇습니다. 논어에는 딱 한번 여인에 관한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이렇습니다. “공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와 소인은 가르치기가 어렵다. 친밀하게 대해주면 불손하고, 좀 엄격하게 하면 원망한다”(子曰: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陽貨-25-01)

작년 가을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바람의 화원>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은 화려한 색체에 언제나 여성이 등장하는 신윤복의 그림을 근거로 신윤복이 여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저는 혹시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는 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나친 상상일까요? 마르코 복음서를 만들어낸 공동체는 여성들이 많은 활약을 보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의 사도들은 죽고 그들이 이끌던 공동체들은 유대교의 가부장적 제도와 권력으로 변질되는 상황에서 마르코 공동체에는 평등한 하느님 나라의 밥상공동체를 예수와 함께 준비했던 것을 기억하며 다시금 갈릴리의 예수 운동을 일으키려 한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에 제일 처음 등장하는 여인은 베드로의 장모입니다. 그는 열병을 앓고 있었고, 예수께서 열병을 고쳐주자 일어나 곧바로 그들을 섬깁니다. 처음 여성은 제일 낮은 자리에서 시중드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 다음 우리가 주목해 볼 여성은 12년 동안이나 하혈증을 앓았던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당시의 여성이 피 흘릴 때는 부정하다는 고정관념을 무시하고 예수께로 나아가 구원을 얻은 여성입니다. 남들에게 부정을 전염시키는 옳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오히려 “정하다/부정하다”라고 가르고 판단하는 인간들의 나쁜 습성을 깨뜨리는 행위였고, 예수는 그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세기는 엘리트와 대중으로 철저하게 계급을 나누고 계급에 따른 규정이 정해져 있는 것만큼 성별의 차이에 의해서도 역할 배분과 능력할당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자는 강하고, 용감하고, 관대하며 신중하고 이성적이며 절제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여성은 약하고 겁이 많고 소심하고 수다스러우며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며 절제되어 있지 않다고 여겼지요. 그래서 약하고 겁이 많고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여성은 남성의 보호아래 가정의 영역에 갇혀 지내야 했고, 공적인 영역으로 나오는 것은 자신에게 수치이자 자신의 남편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물론 여기서 사람은 남자들이겠지만) 이런 시대적 인습을 깨고 나온 여성이 바로 하혈증 걸린 여성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시로페니키아 여인은 어떻습니까? 이 여성은 배울 만큼 배우고 상류층의 문화를 향유하던 헬라 여성이었고,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대 제국을 세웠던 페니키아 왕국의 후예였습니다. 이 여인이 자신의 딸, 즉 병들어 있는 다음 세대를 살리기 위해 모욕적인 언사를 참아가며 얼마나 지혜롭게 예수와 논쟁하는지 보십시오. 히브리 산파들이 이집트 대 제국의 황제의 명령을 그들의 기지와 재치있는 말로 거부하고 출애굽의 첫 관문을 여는 것처럼 오늘 이 시로페니키아 여인은 인내와 지혜로 이방 땅에 복음이 전해지는 교두보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이 여성만이 유일하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음 등장하는 여인은 과부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으나 보상을 바랬던 열둘과 달리 그녀는 구차한 중에도 모든 것을 바칩니다.

예수가 진정한 메시아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십자가의 도상에서 열둘은 모른 채 하거나 피하거나 전혀 딴소리를 해댔으나 무명의 한 여인은 노동자의 1년 품삯이나 되는 향유를 마련해 예수의 메시아 등극을 준비합니다.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왕의 임명식에서 하는 행위였습니다. 여인은 예수에게 기름부음으로 진정한 메시아가 지는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냅니다. 열둘은 도망가고 아무도 남지 않은 십자가 아래, 시체를 뜯어 먹으려고 들개들과 까마귀만이 우글거리는 곳에 갈릴리부터 예수를 섬기며 따랐던 여성 3명이 남아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이들은 이제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대치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만이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이들만이 갈릴래아에서 다시 예수 운동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전 향린교회 교인들 정도이면 목회자들이 없어도 마르코복음의 여성들처럼 얼마든지 하느님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사실 목회자 평신도 구분 없이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교회의 선교에 동참하는 분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금만 더 노력해 봅시다. 하혈증 걸린 여인처럼 시대의 인습을 깨는 일은 무척 두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믿음으로 12년이나 닫혀 있었던 생명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려면 시로페니키아 여인처럼 인내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의 모욕에 같이 화를 내고 싸웠다면 병든 후세들을 치료할 길이 없어집니다. 요즘 청년들이, 요즘 대학생들이 예전 같지 않다고, 민족과 사회의 문제에 너무 무관심하다고, 윽박만 지르고 한숨만 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론 과부처럼 모든 것을 아무 보상 없이 내어놓은 순진함과 신앙의 결단도 필요합니다. 2004년 6월 29일 열린 목회자와 평신도 토론에서 김경호 목사님은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이 합리성은 있으나 말씀을 지키려는 순진성이 부족하고 아는 것은 너무나 많은데 실천이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혹시 우리가 그렇지는 않은지요?

여인들만이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예수를 끝까지 따르며 섬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섬김부터 십자가 죽음의 현장의 섬김까지 새로운 공동체의 평신도들의 핵심 키워드는 섬김이었습니다. 예수를 섬기며 따르는 일에서 영광을 바라던 열둘은 실패하고 사랑으로 남을 돌보는 데 익숙했던 여성들은 참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말없이 섬김의 길을 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길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렇게 조용히 남을 시중드는 일은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고, 또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중드는 일을 하는 이들은 지치기 쉽고, 상처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왼손이 모르게 하는 오른손들이 많을 때 그 공동체는 온갖 새들이 깃드는 나무가 됩니다. 드러내지 않고 하는 말없는 봉사가 많을 때 그 공동체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는 30배, 60배, 100배가 됩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처음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복음”은 한자 그대로 풀면 “복 있는 소리”이겠고, 오늘 설교제목처럼 “기쁜 소식”입니다. 원어로는 “유앙겔리온”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는 주로 로마 황제와 관련해서 쓰였습니다. 황제 임명식을 할 때 그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유앙겔리온”이라고 선포합니다. 제국의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가 궁전으로 입성할 때면 나팔을 크게 불며, 옆에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유앙겔리온”하고 외쳤지요. 또 황제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을 손에 들고 “유앙겔리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황제의 “유앙겔리온”은 바로 폭력과 억압과 권력의 승리를 뜻하는 “유앙겔리온”이었습니다. 기원전 1년 6월 18일 힐라리온이라는 이집트의 한 노동자가 자기 아내 알리스에게 쓴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힐라리온이 알리스에게 진심으로 안부를 전하오. 또 나의 존경하는 장모님 베로우스와 나의 아들 아폴로나리온도 잘 있는지요. 우리는 아직 알렉산드리아에 있다오. 나만 빼고 다른 사람은 다 돌아갔는데, 나만 알렉산드리아에 남은 것을 걱정하지는 마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간절히 부탁하는데 내 아이를 잘 돌보아 주오. 이제 곧 내가 받은 품삯을 당신에게 보내리다.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되면, 아들이면 그대로 두고 여자 아이라면 내어버리시오. 이하 생략”

평범한 노동자의 편지에서도 나오듯이 당시의 기쁜 소식은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소식이 될 수 있던 것입니다. “사내 아이면 그대로 두고, 여자 아이거든 <죽도록> 내어버리시오” 황제의 경우 여자아이면 그 아이를 낳은 대리모와 함께 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늘의 기쁜 소식은 무엇인가요? 뭐가 “유앙겔리온”입니까? 마르코는 말합니다. “사랑으로 섬김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지배하려고 하는 모든 이들은 회개하여라.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다. 이제 서로 섬기는 평등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리고 마르코는 본론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갈릴래아로 가셨다는 말로 갈릴래아에서 본론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암시만 합니다. 그럼 본론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해답은 여러분 손과 발에 있습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위가 어둡다고 불평하기 전에 한 자루의 촛불을 켜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은 세상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백 척 벼랑 끝에 섰을 때 오히려 한걸음 내딛으시오.
그러면 온 우주가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섬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사랑으로 세상을 변혁하십시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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