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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정보] 자기의 윤리(I) – “주체여, 안녕히!” (이상철)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0. 11. 1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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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윤리(I) – “주체여, 안녕히!”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프롤로그: 포스트모던 윤리의 지형

포스트모던 윤리학의 계보를 투박하게 분석하면, 니체로부터 기원하여 푸코, 들뢰즈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고, 다른 하나는 레비나스와 (후기)데리다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다.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요근래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는 슬로베니아 학파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실재(the Real)의 윤리를 들 수 있다. 기본적으로 맑스와 라깡의 세례를 받은 이 그룹에 속한 학자들에는 21세기 최대의 스타철학자라고 불리우는 지젝과 칸트에 대한 라깡적 독해를 시도한 <실재의 윤리>의 저자 주판치치가 있다. 요약하면, 포스트모던 윤리는 크게 세가지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니체로부터 시작되는 자기의 윤리, 레비나스와 데리다로 대변되는 타자의 윤리, 그리고 슬로베니아 학파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실재의 윤리가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논의의 집중을 위해 전자의 두 경우에 포커스를 맞추어 내용을 전개할 것이고, 새롭게 등장하는 실재의 윤리에 대한 부분은 다음의 과제로 넘긴다.

우선 두 그룹의 공통점을 지적하자면, 서구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자행되었던 개별자를 향한 동일자의 무차별한 폭력에 반대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까닭에 많은 경우 레비나스와 데리다가 성급하게 포스트구조주의[각주:1] 계열의 학자로 묶여서 알려지게 된다. 물론 해체주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초기 데리다를 포스트구조주의 계열로 분류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만, 적어도 90년대 이후 자신의 해체주의적 이론을 윤리적 테마로 이행하던 시기의 데리다는 오히려 레비나스를 닮았다. 레비나스는 애초부터 니체-푸코라인과는 다른 출발점이었다. 후설과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현상학적 계보를 따라 레비나스의 사유는 시작되었고, 특별히 유대교 신비주의의 영향이 그의 문장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포물선을 그려왔던 양 진영은 서구 형이상학이 지니는 전체성의 폭력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이루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전략적인 면에서 니체-푸코-들뢰즈로 이어지는 계열은 자기의 해석학으로 치달았고, 레비나스와 (후기)데리다는 타자의 발견에서 그 해결점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포스트모더니즘, 니체에 기대다!

영어원서를 읽다보면 Subject 라는 단어를 만날 때 만큼 모호하고 이중적인 해석을 하는 경우도 드물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체, 실체, 자아, 주제라는 뜻 이외에, ‘신민(臣民), 신하, (집합적)국민이라는 뜻도 Subject 안에 들어 있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더니, 급기야는 형용사로 쓰일 때는 복종하는, 지배를 받는, 당하기 쉬운,…에 빠지기 쉬운으로 해석을 해야한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주체, 강철과도 같은 불패의 정신을 지녔던 그 주체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전 깊숙한 곳에는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주체의 숨은 뜻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니체 (Friedrich Nietzsche, 1844-1900)


이렇듯 가려져 있었던 주체를 수면위로 강하게 끌어올린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니체였다. 기본적으로 니체에게 있어 세상이란 더 이상 나를 어떤 합리적 구조에 가두는 아폴론적인 세계가 아닌 디오니소스적인 축제가 벌어지는 공간이다. 이런 이유로 세상은 나의 욕망이 끊임없이 활기치는 놀이터 같은 곳이 된다. 우리가 지난 호 웹진에서 살펴보았듯이,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밝힌 주인의 도덕이란 이러한 세계 속에 있는 나의 삶을 긍정하고, 그런 삶의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상상하고 생성시키는 윤리이다. 이는 근대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투명하고 통합된 주체의 도덕도 아니고, 엄숙하고 너무나도 체제 순응적인 노예의 도덕일수도 없다. 어떤 에네르기에 의해 분열되고 그래서 앞날이 불투명하고 혼돈에 쌓인 그런 주체를 위한 도덕인것이다.[각주:2]

이렇듯 니체의 사상 안에 함의된, 체제가 선사하는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에 의해 길들여진 주체에 대한 거부는 집단에 대한 딴지와 개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모색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원조격으로 받아들여진다. 니체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밝힌 것처럼 거대담론의 붕괴와 작은 이야기들의 발견으로 전승된다.[각주:3]  진정 우리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거대담론이니 공동체니 역사의 발전이니 하는 선언적인 구호들이 아니다. 그보다는 작은 이야기들, 예를 들어 개인은 누구인가? 집단과 이념의 그늘에서 개인은 어떻게 살아남아 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이다.[각주:4] 이 질문은 완강했던 근대적 주체의 붕괴를 예고하는 서술임과 동시에 새롭게 번역되는 주체에 대한 기대와 전망으로 우리를 이끈다.

Episode: 내가 주체로 서기까지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이 지적하고 있는 주체란 어떤 집단에 몸담고 난 이후에 만들어진  주체이고, 어느 특정 이념에 노출된 이후 형성된 그 주체이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에서 남자로서의 주체성을 담보하려면 군대에 갔다와야 한다. 병역미필자는 해외에 나갈 때도 제한이 있고, 이력서를 쓸라치면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항상 꿀린다. 사람들은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그럼 군대 가기 전 사람과 군대갔다 와서 된 그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고백하자면 내 경우는 군대에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체득해야 할 온갖 나쁜 것은 다 배웠다. 굴욕에 복종하는 법, 짜웅(아첨)하는 법, 여자를 오로지 즉물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법, 가라(허위)로 보고하는 법, 인간을 격멸하는 것까지그런데 세상은 그런 군대를 나온 남자를 사람됐다고 사회적으로 인정한다.

공적차원에서 내 주체되기의 완성이 군대를 통과한 이후의 일이라면, 그것의 시작은 그 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지금도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거의 다 외우고 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도덕 시험이 그것을 외워서 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국민교육헌장은 그 이후로 내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에 이어 통째로 암기하고 있는 세 번째 주문이 되었다. 당시 중간고사 시험을 보면서 국민교육헌장의 마지막 문장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를 쓰고 난 후 책상에 엎드려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내 자신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있다는 것, 내가 민족의 역사를 창조할 일꾼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러웠고 그런 조국이 너무나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원통하고 분하다. 그 어린아이를 그렇게 기만하다니! 어떻게 나라 전체가 이런 사기극에 집단적으로 공모할 수 있는가?

주체의 죽음! 주체여 안녕 !!

군대를 갔다오지 않아도 사람이 될 수 있고, 구태여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않아도 삶은 넉넉히 지속된다. 누군가가 창조하려했던 새 역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당했는지 우리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않은가! 병역을 필해야만 비로소 한국땅에서 남자 노릇 할 수 있는 그 주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되새기며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세례를 받으며 자라난 그 주체! 어쩌면 주체란 이런 필터링을 거친 후에 걸러진 찌꺼기가 아닐까? 그 필터는 군대일수도 있고, 국민교육헌장일수도 있으며, 그 밖의 여러가지 이름과 가능성으로 현존하며 그 다음을 대기하고 있다. 현대 철학자들이 언급하는 주체의 죽음이란 바로 그렇게 필터링된 주체에 대한 사망선고인 셈이다.  (다음 호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논쟁: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경계를 나누고 그것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필자가 보기에는 소모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구조주의의 주창자라 평가받는 레비-스트로스, 알튀세, 라깡, 푸코 등의 학자들 스스로가 구조주의의 틀 안에 묶이는 것을 거부했고, 그 거부의 몸짓들을 투박하게 포스트구조주의라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에 대한 변별점을 분석하는 작업보다는 오히려 구조주의/탈구조주의 논쟁이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유익한 논의가 되리라 본다. 서구 근대 형이상학을 대표하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생각하는 나) 중심의 철학은 시대를 달리하며 현상학과 해석학, 실존주의로 이름을 달리하면서 포물선을 그리게한 동력이었다. 물론 이것은 대상이 주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전 시대의 형이상학과는 차이가 있지만, 인식 주체가 인식 대상을 포섭한다는 점에서는 여전한 동일자의 폭력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주의는 이에 맞서 인간의 인식과정이 결코 투명한 의식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들은 인간의 의식으로는 파악이 안되는 구조(언어, 문화, 역사, 무의식 등) 안에서 인간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본다. 인간이 선천적 종합판단과 의지적 결단에 의해 행위하는것 같지만, 기실 그것은 어떤 짜여진 판에 의해 의도되어진 예상 가능한 함수라는 것이다. 이는 코기토적 주체에 대한 정면도전이라 할 만하다. 구조주의 처음 시작은 소쉬르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문화인류학등 과학적 분석방법에서 출발을 했지만, 이는 점차 영역을 확대하여 서구사상 전반에 대한 비판(반이성주의, 반인간중심주의, 반민족중심주의, 반서구중심주의 등)으로 이어지는데 그 일련의 과정을 포스트구조주의라 부른다. 포스트구조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는 이론, 이념, 주의등이 지닌 보편화의 가능성과 영토화의 음모를 의심하는 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구조주의, 더 나가서 근대성이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면서 공들인 체제 어딘가에 틈이 생겨 물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서 그럴싸하게 보이는 그것이 실재가 아니라, 지금 실재라고 일컫는 것의 보이지 않는 어느 구석에 틈이 생기고 그 틈새로 무언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진짜 실재라고 말이다. 라깡은 이를 ‘증상’이라 말하고, 데리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해체불가능자’이다. 지젝은 아예 대놓고 이를 ‘실재’라 부른다. 물론 구석에 난 틈과 그 틈을 통해 스며나오는 불순물은 이론의 체계 내에서는 비합리적, 비이론적, 비학문적 요소이지만, 포스트구조주의는 오히려 이 부분을 통해 이론의 체계가 성립된 흔적을 역으로 추적하면서 이론에 주름을 내어 결론적으로는 이론의 표면적을 넗히는 역할을 한다. 기존 이론의 문제를 지적하고 무화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의 허위를 인정하지만 안고 나가는 애정이 포스트구조주의에 스며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구조주의는 근대라고 일컬어지는 전 지역에서 파생된 문제에 대한 변론이자 땜질이며, 그러기에 그들에게 있어 사유는 단절과 봉합이 아닌 개방과 재서술의 형태로 미끄러져간다. [본문으로]
  2. 니체식 (흔들리는 혹은 욕동하는) 주체를 잘 드러내는 문장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용한다: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나의 모든 의지를 다해 의지해야만 하는 곳에, 내가 사랑하고 또 소멸하기를 원하는 곳에, 하나의 상이 단지 상으로만 남아 있지 않은 곳에 존재한다” - Friedrich. Nietzsche.「Thus Spoke Zarathustra」in the Portable Nietzsche, Edited by Walter Kaufmann. (New York: The Viking Press, 1968), 235. [본문으로]
  3. J.F. Lyotard. 『The Postmodern Condition: A Report on Knowledge』, trans. Geoffrey Bennington and Brian Massumi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4), 60. [본문으로]
  4.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은 이 대목에서부터 시작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사회의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그것이다. 작은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자기의 의지와 욕망에 대한 한없는 관용이 냉전 종식 이후 몰아 닥친 신자유주의 시스템과 교묘한 결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이야기들의 발굴을 통한 자기의 확장이 거대담론을 다시 복원하고 거시세계의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으리라는 그들의 낙관적 견해는 과연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인지? 이같은 지적은 90년대 초.,중반 사상계를 달구었던 중요했던 이슈 중 하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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