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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정보] 그가 유대인이 아닌 이유 (김진호)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1. 7. 2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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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유대인이 아닌 이유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반나절의 여행이 주는 생각의 깊이는 많아야 반나절 정도입니다. 정보는 빈약하고 본 것에 대한 직관적 감정에 지배당하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선입관이 미치는 감정에 대한 지배력은 가히 위력적입니다. 내게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반나절이 그랬습니다.

한인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한 철학도의 안내를 받아 시내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유대인 묘지에 방문한 것은 그의 안내 코스의 끝자락에서였지요. 그는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의 사택도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한데 흔적도 남지 않은 채 얘깃거리만 남은 회당터를 거쳐 당도한 꽤 큰 유대인 묘지 앞에서 급격하게 냉소적으로 돌변해버린 나의 눈치를 보던 일행은 그날 관광을 거기서 마치기로 했지요. 일행에게 미안했지만, 그 순간 치밀어 오르는 심통을 더는 감추지 못했습니다.
 
묘소라기보다는 그냥 담으로 둘러쳐 있는 큰 공터라고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낡은 흠집투성이의 묘석들이 담 안쪽으로 옮겨져 안치된 듯한 공간이고, 별다른 기념비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벽 바깥으로 같은 크기로 검은 대리석 비슷한 벽돌이 가로 다섯줄로 수도 없이 박혀 있었지요. 거기에는 죽임당한 이 도시 출신 유대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외에 그가 죽임당한 곳, 죽은 날짜 등의 정보도 있었고요.

한참을 그 돌들만 쳐다보았습니다. 수많은 이름들, 날짜들, 수용소들. 수백 개쯤 읽으니 점점 기계가 됩니다. 생각은 비워졌고 그냥 알파벳 발음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 이름들이, 그저 이름만 읽을 수 있을 뿐이 그 이름들이, 어느 시간에 어느 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조차 없는 그 이름뿐인 것들이, 이젠 이름조차도 지워진 채 읽혀지고 있었습니다.

안네의 아버지처럼 은행가였을 수도 있고, 우리를 안내하는 철학도처럼 학생일 수도 있고, 노동자일지도 모르고, 공산주의자였을 수도 있고, 자유주의자였을 수도 있고, 나처럼 빵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키가 큰 사람일지도 모르고 뚱뚱한 사람일 수도 있는, ...., 모든 상상 앞에 열려 있는 그 이름들이, 어느 순간 내게는 아무런 상상도 허락하지 않고 오직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머리에 박혀버렸습니다.

비위가 뒤틀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마치 내가 상상하는 대로 그 묘소가 조성되었을 거라고 단정하면서 하나의 음모론을 상상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고 그날 모두의 관광을 망쳐버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오늘도 여러분과 나의 생트집잡기를 두고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그것이 누구의 음모는 아니겠지만 분명 우리를 환각에 사로잡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역사의 음모’라는 생각을 여전히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의 주인공들은 어느 날 나치에 의해 ‘유대인’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별’ 문양의 기호로 표상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들은 독일인이었겠지요. 폴란드에서 일거리를 찾아 온 이주한 사람일지도 모르고, 남편의 나라로 이주한 이태리 여성일지도 모릅니다. 또 그이는 부르주아였을 수도 있고, 노동자였을 수도 있고, 학생일 수도 있었겠지요. 그들은 모두 각각의 모습으로 각각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정부에 의해 유대인이 되었고, 수용소에 구금되어 죽임당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후 이스라엘 정부와 세계의 유대인 협의체들에 의해 숭고한 인종주의의 희생자들로 규정되었습니다. 하여 그들은 하나의 범주, 곧 유대인이 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을 하나의 부류로 묶어놓고 그들을 숭고한 희생자들로 규정하면, 그 숭고한 자들과 동일한 범주에 엮인 산 사람들도 그 숭고함을 덧입게 됩니다. 죽임당한 자들과 산자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 역사가 탄생하고 그 역사는 숭고함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 시오니즘이 그런 대표적 사례입니다. 유대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희생을 특화시킵니다. 그것은 자기 역사에 대한 특권화이고 다른 역사에 대한 무시와 멸시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들이 국가를 세운 땅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2천년의 역사를 무시하고 그들을 학살할 수 있었던 심성의 배경인 것이지요.

이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한 토론회에서 바울에 관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날 발제자의 주장에 대해 내가 시비를 걸었던 소재는 ‘바울이 유대인이라는 주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바울 연구사에서 중요한 발견이었지요.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 바울이 아니라 유대인 바울이라는 것, 거기에서 바울에 관한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가 평소 주장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교를 창시한 이라는 낡은 주장은 현대 바울 학계에서는 폐기처분되어야 하는 낡은 관점이지요. 그런 점에서 바울이 수없이 말한 ‘교회’라는 표현은 후대에 그리스도교의 모임 혹은 장소를 지칭하는 용어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 개혁운동의 한 지도자였지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데 나는 오늘날 바울 역사학계에서 일반화된 이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울 당대에 지중해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를 유대교라고 지칭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중해 지역 도시들에서 이스라엘인들의 종교는 예루살렘 종교와 결코 동일한 범주에 묶였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들 대다수는 예루살렘 성전뿐 아니라 사마리아의 성전도 존경했고, 그 역사도 존중했습니다. 또한 지중해 지역의 회당들 각각 또한 매우 다양했습니다. 회당들은 어느 하나를 중심으로 정치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통합되어 있지 않았고,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공존했고, 단지 서로를 존중하며 야훼의 이름으로 네트워크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더욱이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의 층위로 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대중의 벽화 같은 것을 보면, 지중해 지역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지역의 종교와 문화에 상당히 동화되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대중들은 결코 야훼 순결주의에 물들어 있지 않았고, 다분히 혼합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었습니다.

야훼신앙은 이렇게 다층적이었습니다. 바울이 접한 지중해 지역의 이스라엘인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가 골방에서 세상을 말하는 사변가가 아니라 사람들가 몸과 마음을 마주하며 활동한 목회자이자 예언자였다면, 그는 이런 다양한 이스라엘 인들의 경험과 신앙과 무관하게 말하고 활동하였다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바울은 유대화된 이스라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늘 예루살렘과 자신의 연결고리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대중의 눈높이와 함께 한 실천가였습니다. 더욱이 그의 대중은 주로 회당의 엘리트가 아니라 무지렁이 대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바울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바울은 유대인이다’라는 명제가 알려주는 정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말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바울을 유대인이라는 범주로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내 생각에는, 현대 서양의 주류 학계가 빠져 있는 유대주의적 편견의 산물입니다. 나치의 범죄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그렇게 생각한 것이겠지요. 더구나 유대인 협의체들의 발명된 역사관과 이데올로기적 공모자의 자리에서 신학을 한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바울 자신의 말에 주목해봅니다. 그에게서 예수는 무엇일까요. 그는 분명 예수를 만나기 이전에는 철저한 유대 순수주의자였습니다. 한데 예수를 알게 된 이후 자신의 순수주의를 포기합니다. 이때 그가 강조한 것은 ‘십자가’입니다. 알다시피 당시 십자가는 로마제국과 연관된 구체적인 표식입니다. 제국에 의해 처형당한 자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필경 지중해의 이스라엘인들의 회당에서 십자가에 달린 자, 저 제국의 반대편에 서서 죽임당한 의인을 설파하는 이들이 있었고, 바울도 그런 이들로부터 예수에 관해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분을 받아들였고, 십자가를 자기 신앙의 중심적 가치로 이해했습니다. 한데 그의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러한 바울의 성찰을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그분에 관한 표식이 아니라 내면으로 들어온 그분의 표식이라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그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이 말은 유대인이라는 자의식, 유대인이라는 범주의식을 그가 버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을 유대인이라는 범주로 묶어서 사고하는 것, 그 범주에서 어떤 삶과 역사를 특권화시키는 것을 포기했다는 애깁니다. 하여 그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제국만이 아니라, 제국에 의해 희생된, 멸망당한 식민 백성인 유대인을 특권화시키는 유대주의적 역사관과도 싸움을 벌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가르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고,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주인과 종을 가르는 일체의 분리주의, 그 분리주의를 정당화하는 범주적 유대주의인 것입니다. 해서 그는 결코 유대인일 수 없습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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